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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 코멘터리

“한반도 평화에 참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

과거 한 건강식품 광고가 인기를 끈 적이 있다. “○○○, 남자한테 참 좋은데, 남자한테 정말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 직접 말하기도 그렇고”란 광고 문구가 히트를 친 것이다. 이 광고 문구는 건강식품을 광고할 때 식품위생법상 제품 성분 및 효능을 구체적으로 넣을 수 없어서 나온 고육책이었는데 역설적으로 그 어떤 표현보다 더 효과적으로 소비자에게 전달됐다. 오래전 건강식품 광고를 뜬금없이 내세운 것은 ‘9·19 남북 군사합의서’가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는 데 얼마나 기여하는지가 국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있는 데 대한 안타까움에서다. 게다가 6개 항목의 22개 조항으로 돼 있는 남북 군사합의서가 갖는 의미는 벌써 퇴색되는 분위기인 데다 이를 둘러싼 논란만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한마디로 “남북 군사합의서, 한반도 평화에 참 좋은데…, 국민들이 알아주질 않네”라는 푸념이 나오는 판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국방부를 출입하면서 군을 20년 가까이 지켜본 기자 입장에서 봤을 때 정부의 ‘9·19 남북 군사합의서’ 대국민 홍보는 거의 최악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아도 싸다. 국방부가 군내 적폐청산과 관련한 사안에 대해서는 관련 브리핑을 봇물 터트리듯이 해왔던 것과 크게 대비된다. 남북 군사합의서가 담고 있는 6개 항목의 하나하나는 신문 1면 머리기사나 방송 헤드라인을 장식할 수 있는 폭발력을 지닌 것들이었다. 항목 하나하나가 모두 국방부의 백브리핑이나 군 고위관계자 및 실무자들의 자세한 배경 설명이 요구되는 사안들이었다는 의미다. 정부는 국민들에게 군사 합의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남북 군사당국이 합의한 항목 하나하나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그 의미를 설명했어야 했다. 그러려면 언론을 상대로 한 개 항목씩 나눠서 백브리핑을 해야 하는 기간만 적어도 일주일 정도는 필요했다. 또 그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사후 설명이 아닌 ‘엠바고’를 전제로 한 사전 브리핑이 이뤄졌어야 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마치 양계장 닭들에게 모이를 뿌리듯 ‘남북 군사합의’ 보도자료와 해설자료를 기자들에게 돌리고 한두 차례 질의응답을 한 게 전부였다. 게다가 해설자료에 잘못 표기된 부분이 몇 군데 있다보니 “군이 북한에 양보한 것을 숨겼다”는 불필요한 억측도 이어졌다.

 

군의 편의주의적 ‘비밀주의’는 남북 군사합의 이행과정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남북 군사협상의 대상인 최전방 초소(GP) 숫자조차도 군사기밀이라는 군의 입장은 이해하기 힘들다. 협상하는 과정에서 양측이 자료를 교환해 서로가 뻔히 아는 사실조차도 국민들은 알 필요가 없다는 식이다. 국민들은 최전방에 얼마나 많은 GP가 있고, 그동안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알 권리가 있다는 것은 상식인데도 말이다. 이 같은 군의 태도는 남북 군사합의를 비판하는 세력들이 GP 철수에 대한 왜곡된 주장을 할 수 있도록 시빗거리를 제공했다.

 

여기에다 남북한군 지휘관이 만나 악수했던 시기조차도 숨기는 국방부의 태도는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 국방부는 지난달 22일 강원 철원 화살머리고지 일대에서 공동유해발굴을 위한 남북 도로 연결 작업에 참여한 남북 인원들이 군사분계선(MDL) 인근에서 인사하는 장면을 포함한 사진 4장을 공개했다. 사진을 찍은 시기는 국방부가 공개한 날보다 약 일주일 전이었다. 국방부는 남북 인원들이 만난 지 일주일이나 지난 후에 사진을 공개하면서 ‘정확한 날짜를 말씀드리지 못하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라고 했다. 남북한군이 만나 악수하는 사진을 한참 뒤에 공개하면서 그것도 날짜를 정확히 알려줄 수 없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까닭인가. 또 국방부가 공개한 사진에 등장하는 남측 군 지휘관은 전유광 육군 5사단장이었다. 북측 군 지휘관의 신원에 대해서는 국방부가 ‘알아서’ 밝히지 않았다. 북측 지휘관이 장군이라면 MDL에서 남북 장성이 악수하는 사진은 역사적 기록물임에도 불구하고 국방부가 그 의미를 축소했다고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국방부의 부실한 발표와 설명은 몇몇 보수언론과 일부 군 출신 인사들의 반대 목소리에 힘을 실어줬다. “9·19 군사합의서가 한국군의 손발을 묶어 안보를 위태롭게 한다”는 그들의 주장은 국방부 장관 출신이 포함된 ‘안보를 걱정하는 예비역 장성 일동’ 토론회로까지 이어졌다. 문제는 이에 대응하는 정부의 태도가 ‘손 안 대고 코 풀려는’ 모습으로 비치고 있다는 점이다. 정공법적인 대응보다는 뒷담화식으로 비판세력을 비난하는 식이기 때문이다. 남북 군사합의를 비판하는 예비역 고위 장성에 대해 ‘현역 시절 입장과 다르다’는 그의 이율배반식 태도를 여당 국회의원을 통해 지적하거나, 정부를 지지하는 예비역 장성들의 언론 기고를 부추기는 게 대표적이다.

 

야전에서는 정훈장교들의 하소연도 들린다. 상부에서는 남북 군사합의 의미를 장병들에게 잘 홍보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지만 뭐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막막하다는 것이다. 자신들도 기껏해야 신문 보도 수준의 정보밖에 없는데, 그나마도 중구난방식 보도여서 답답하다는 것이다. 이런 사태가 벌어지는 데는 남북 군사합의에 대한 ‘무소신’ 장군들의 태도도 한몫하고 있다. 구태여 나서서 정권이 바뀐 뒤에 불이익을 당할 이유가 없다는 식이다. 실제로 머릿속은 ‘태극기 깃발부대’인데 몸은 촛불이 흔들리는 대로 이리저리 따라가는 장군들의 모습도 보인다. 심지어 인사철을 앞두고 진급 후보 대상자들이 써야 하는 서식에 “본인은 진급을 원하지 않는다”고 기재했음을 주변에 밝힌 장군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어차피 지금 정권에 찍혀 진급이 안될 것이 뻔한 그의 입장에서는 정권이 바뀐 후에 ‘과거 정권에서 진급을 원하지 않았다’는 것이 ‘소신’으로 둔갑할 것이다.

 

어찌 됐든 정부가 남북 군사합의가 한반도 평화에 좋은 점을 국민들에게 표현할 방법은 차고도 넘친다. 건강식품처럼 제품 성분 및 효능을 구체적으로 광고 문구에 넣을 수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안보부서 고위층과 장군들은 그것을 대놓고 표현하기를 싫어하는 것 같다. ‘군사기밀’이라는 핑계 뒤에 숨어서 말이다. 그러면서도 언론 입장에서는 정보가 없어 팩트 검증이 사실상 불가능한 한마디를 꼭 한다. “우리 군의 안보태세에는 전혀 변함이 없다”고.

 

<박성진 안보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