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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 코멘터리

여군 전투복은 패션의류가 아니다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가 있는 용산 삼각지 일대에서는 점심시간이면 전투복을 착용한 군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여군은 남군과 달리 허리선이 안으로 약간 들어간 전투복을 입고 있다. 이는 국방부가 2011년부터 허리를 약간 잘록하게 디자인한 여군 전투복을 보급했기 때문이다. 남녀 구분이 없는 미군 전투복과 달리 한국군은 여군용 전투복이 따로 있는 셈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그런데 일부 여군은 평균선을 벗어나 피팅 작업을 통해 상의 허리선을 더 파거나, 허벅지에 지나치게 달라붙도록 전투복을 착용하고 있다. 심하게 전투복을 피팅한 여군의 경우 전시에 사격을 하다 봉제선이 터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들 정도다. 이 정도면 전투복이 전투를 위한 기능복이 아니라 외부 시선을 끌기 위한 역할에 더 충실한 경우다. 과거 전투복 상의를 바지 안으로 집어 넣어 입어야 했던 시절 설문조사에서 상당수 여군 장교가 ‘전투복을 입었을 때 부하들 시선이 힙 라인에 쏠리는 것을 느껴 부담스러웠다’고 답했던 것과는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물론 대다수 여군은 ‘전투복은 전투복다워야 한다’고 단호히 말하고 있다.

 

삼각지는 요새 국정감사 시즌이다. 이맘때만 되면 낮은 여군 진급률이나 부족한 편의시설에 대한 국회 국방위원들의 질타가 쏟아진다. 매년 반복되는 모습이다. 여군의 활동영역이 다양해지고 있지만 시설과 환경이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군이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임에도 여군을 위한 시설과 환경은 여전히 ‘사각지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여군 영관 장교들과 얘기를 하다보면 그들이 그 자리에 오기까지 겪었던 어려움은 만만치 않다. 한 간부는 신병훈련소 중대장 시절 행군을 앞두고는 물을 거의 마시지 않았다고 한다. 화장실 문제 때문이었다. 이쯤 되면 여군에게 화장실은 전투력 향상에 매우 중요한 문제다.

 

이같이 사소한 것처럼 보이는 부분부터 진급에서의 ‘유리천장’ 깨기까지 여군의 질적·양적 전투력 향상을 위한 연구와 투자는 시급하다. 여군 스스로도 전투력을 생각한다면 전투복의 과도한 허리선 피팅에 관심을 가질 틈이 없을 터이다.

 

나아가 군내에서 여군과 관련한 성역도 무너뜨려야 한다. 대표적인 게 국군간호사관학교다. 국군간호사관학교는 생도 1명당 투자 비용과 향후 활용도를 비교해보면 소위 ‘가성비’가 매우 낮은 기관이다. 군당국도 이를 감안해 과거 정부에서 폐교를 시도했으나 여성 정치인 등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좌절됐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일반대학 간호학과 출신들의 군 취업을 제한하는 아이러니를 빚었다. 군내에서도 이런 문제점을 잘 알고 있지만 자칫 ‘역풍’을 맞을까 봐 군 간부들은 언급 자체를 금기시하는 분위기다.

 

여군의 전투병과 진출도 마찬가지다. 충분한 사례 연구와 검토 없이 특정 병과의 ‘1호 여군’ 배출 홍보에만 신경을 쓰면 곤란하다. 군내 ‘금녀의 벽’을 깨뜨리는 것을 반대하는 게 아니다. 현대전에서는 ‘전투’의 구분이 분명하지 않다. 수㎞ 후방에 위치한 야전 통신부대의 여군도 미사일 공격 밑에서는 소총수와 같은 위험에 처한다. 전투와 최전선의 개념이 모호해진 것이다. 전쟁 개념도 개인의 육체적 능력이 중시되는 섬멸전에서 하이테크 전략무기로 적 지휘부를 무력화하는 제한적 타격전으로 바뀌고 있다. 이처럼 전술이 중요해지고 첨단 과학기술이 동원되는 등 전장 환경이 바뀌면서 여군의 활동영역은 더 넓어질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게 미군이다. 전체 군인 가운데 15%가 여성인 미군은 10여년 전만 해도 육군 전투병과에 여군이 없었다. 미 국방부(펜타곤)의 ‘직접지상전투’에 관한 규정에 여군은 최전선 지상 전투에 직접 참가하지 못하도록 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라크전 등 몇 차례 전쟁을 치르면서 최전선 개념이 모호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미 국방부는 여군에 대한 전투임무 배치 금지 규정을 폐지했다. 이후 미군은 소규모 부대 편성 시 남군과 여군을 ‘몇 대 몇’ 비율로 하는 게 전투력 발휘에 가장 적합한지까지 연구했다.

 

이스라엘에서는 여성이라도 17세부터 준비해 만 18세가 되면 군에 입대한다, 여군이 차지하는 비율은 31%로 알려져 있다. 이스라엘군 대외협력처에 따르면 이스라엘 여군은 전쟁이 발발하더라도 국경선을 넘을 수 없다. 여군 전투병은 주로 혼성 국경방어부대에 소속돼 국경 방어 임무에만 활용된다. 이는 이스라엘군이 적군에 의한 여군 피랍은 절대 발생해서는 안되는 경우로 간주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이스라엘군은 여군 피랍 방지를 위한 방안 관련 연구를 장기간 실시해 왔고, 그 결과를 군 편성 및 전투교리 수립에 반영하고 있다.

 

육군은 마지막 ‘금녀지대’였던 기갑부대에도 여군을 배치했다. 이를 놓고 기계화부대 사단장 출신인 ㄱ 예비역 중장은 “전쟁이 벌어지면 전차 안에서 수일 동안 숙식과 생리현상을 해결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며 “이는 과거 이스라엘 전차부대가 골란고원 전투에서 실제 겪었던 사례”라고 말했다. 남군과 구별하지 않는 전투병과 배치도 좋지만 군 당국이 과연 전투 발발 시 여군 전투력 활용의 명암을 고민했는지에 대한 반문이었다.

한국군에서 여군은 올해 6월 기준 1만1000여명이다. 전체 군인 가운데 6%다. 한국군에서 여군 참여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육군 보병 소대장과 특전대원에서부터 해군 전투함 요원, 공군 전투조종사에 이르기까지 거의 전 전투병과에 여군이 진출해 있다.

 

공군 조종사들의 전투기량을 측정하는 공중사격대회에서도 여성이 두드러진 성적을 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 당국이 여군과 남군이 전투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위한 실제 연구를 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바 없다. 소위 실전용 연구·검토보다는 여군 비율 확대에만 골몰한 탓이다. 두가지는 병행해서 이뤄져야 한다. 그리고 전투복은 전투복일 뿐이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