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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 코멘터리

독도함을 ‘국제관함식’ 좌승함으로 하라

대한민국 최초 관함식(觀艦式)은 1949년에 열렸다. 해군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1주년을 기념하고, 발전된 해군 모습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1949년 8월16일 인천 해상에서 관함식을 개최했다.

 

해군 함정 8척이 참가한 이 관함식은 요새 기준으로 보자면 편대기동훈련이나 다름없었지만, 단종진(單縱陣·함정이 일렬로 항진하는 형태)으로 항해하면서 실시한 37㎜ 함포 사격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사열한 이 관함식은 대한민국 해군의 위용을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과 국민에게 인식시킨 계기가 됐다.

 

세계 각국의 군함이 참가하는 국제관함식은 해군이 건군 50주년을 기념해 1998년 처음 개최한 이래 올해 3번째로 열린다. 해군은 다음달 10~14일 제주 민군복합관광미항에서 역대 최대 규모로 ‘2018 대한민국 해군 국제관함식’을 실시할 예정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 국제관함식이 일본 해상자위대 군함이 ‘욱일기’를 달고 참가하는 문제로 시끄럽다. 논란은 국제관함식에 일본 해상자위대 함정이 욱일기를 달고 참가할 예정이라고 해군이 지난 6일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14개국 21척의 외국 군함이 참가한 가운데 열리는 이번 국제관함식에는 미국이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 등 4척, 러시아가 순양함 바랴그 등 3척을 보낼 예정이다. 중국과 일본은 구체적으로 어떤 함정을 파견할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일본 자위대 함정은 과거 제국주의 해군기에서 유래한 욱일기를 달고 참가한다는 것이다. 군함은 정박 시 통상 함수(뱃머리)에 소속 나라의 해군기를 단다.

 

일본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욱일기는 일본 국기 ‘일장기’의 붉은 태양 주위에 욱광(旭光·아침 햇살)이 퍼져나가는 것을 형상화했다. 일본은 1945년 패전과 함께 욱일기 사용을 일시 중단했으나, 1954년 육상자위대와 해상자위대를 창설하면서 욱일기를 자위대기로 다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를 국제사회가 용인해주다보니 심지어 주일미군마저 후지산과 욱일기 햇살 문양을 합해놓은 형상의 마크를 사용하고 있는 형편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욱일기를 단 일본 군함의 참가를 거부해야 한다는 게시글이 수십개나 올라온 상태다. 욱일기는 일본 제국주의 상징이며 한국민에겐 아픔과 치욕의 역사를 떠오르게 한다는 이유에서다.

 

급기야 한국 홍보전문가인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13일 “전범기(욱일기)는 달지 말라”고 촉구하는 내용의 e메일과 편지를 자위대와 무라카와 유타카 해상막료장(해군참모총장)에게 보내기에 이르렀다. 서 교수는 e메일에서 “행사에 초대받아 참여하는 것은 좋으나, 일본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전범기를 군함에 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역사를 제대로 직시한다면 스스로 게양하지 않는 것이 기본적인 예의”라고 밝혔다.

“일본은 또 다른 곳에서 제주 입항을 사례로 들며 전범기 사용의 정당성을 주장할 것이 뻔하다”는 서 교수의 지적에도 일리가 있다. 독일은 전쟁이 끝난 뒤 ‘나치기(하켄크로이츠)’ 사용을 법으로도 금지했지만, 일본은 전범기를 부활시켜 여전히 군사제국주의 사상을 버리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해군은 국제 관례 등을 고려할 때 초청 국가인 우리가 일본에 자국 해군의 군함기인 욱일기 게양을 하지 말 것을 요구하긴 어렵다는 입장이다. 군함의 경우 국제법적으로 치외법권이 인정되기 때문에 일본 함정이 우리 영해에 들어오더라도 국내법이 아닌 일본법의 적용을 받는 까닭에 자위대 함정에 어떤 깃발을 달지는 전적으로 일본의 권리라는 것이다. 일본 자위대는 1998년과 2008년 우리나라에서 열린 관함식 때도 모두 욱일기를 달고 참가했다는 과거 사례도 소개했다.

 

그렇다면 정부는 1만4500t급 대형 상륙함인 독도함을 이번 국제관함식의 좌승함(座乘艦)으로 해야 한다. 관함식에서 좌승함은 대통령이 탑승하는 사열함이다. 국가 주요 인사, 군 수뇌부, 외국군 대표 등 초청 인사도 함께 탑승하는 영예로운 함정인 것이다.

 

해군은 이번 국제관함식의 좌승함이 4900t급 한국형 상륙함인 ‘일출봉함’으로 정해졌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독도함으로 좌승함을 교체할 필요가 있다. 독도함은 일본이 자국 영토라고 억지 주장을 하는 독도를 함정의 이름으로 자랑스럽게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8년 국제관함식 때도 해군이 애초 계획했던 좌승함은 독도함이었다. 그러자 일본이 “독도함이 좌승함이라면 관함식 참가를 거부하겠다”며 격렬하게 반발했다. 정부는 자칫 외교적 갈등으로 번질까 우려해 좌승함을 ‘강감찬함’으로 변경했고, 독도함을 시민 등이 탑승하는 시승함으로 변경했다. 그것이 올해도 반복돼 독도함은 시승함으로 예정돼 있다.

 

만약 당시에도 해군이 일본의 억지 주장을 수용하지 않고 독도함을 좌승함으로 했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국제사회가 한국 해군이 외교적 결례를 범했다고 할지, 아픈 식민지 역사를 다시 한번 자극한 일본 해군의 오만함을 비판할지 그것은 모르는 일이다. 분명한 것은 그러는 사이 일본은 욱일기를 자랑스럽게 군함에 내걸고 유세를 떨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 정부는 과거 미국·영국·독일·중국 등 14개국 외국 무관들이 참석한 독도함 진수식 때 자국 무관의 참석 거부를 지시했다. 이후에도 일본 정부는 한국을 방문하는 일본 해상자위대 예비 장교들에게 다른 함정의 견학은 허용하지만, 독도함만큼은 탑승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도 일본 해군은 욱일기를 달고 한국 군항을 방문하고 있다.

이에 맞서 독도함이 좌승함으로 나서는 것은 전 세계 해군에 ‘독도는 대한민국 영토’임을 분명히 인식시켜주는 카드다. 일본 욱일기를 누르는 자존심의 과시이기도 하다. 또 독도가 우리 땅임을 홍보하는 최대·최상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안이기도 하다. 이는 일본의 반발이나 불참을 상쇄하고도 남는다고 본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