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공군 출신 국방장관과 학군(ROTC) 출신 합동참모본부의장은 상대적 ‘비주류’다. 물론 예외도 있지만, 과거 정권이 육군 출신 국방장관과 육사 출신 합참의장을 주로 임명해 온 것과 견줘 하는 비유다. 6·25전쟁을 빼고 육군에서 비육사 출신 대장이 육사 출신 보다 더 많이 배출한 것도 이번이 처음 아닌가 싶다.
현 정부가 ‘비주류’ 군 고위층에게 맡긴 핵심 미션은 ‘전시작전권(전작권) 전환’이다. 이들에게 문 정부 임기내 전작권 전환을 책임지라고 한 것이다. 이는 과거 주류인 육군과 육사 출신이 전작권 전환에 소극적이고, 그 결과 진행이 지지부진하고 사실상 퇴행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임기내 전작권 전환 의지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5일 군 장성 진급 및 보직신고 후 가진 환담에서 한 발언에서도 읽을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정전 후 70년 가까이 아직도 한미 동맹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고, 독자적 전작권까지 갖지 못한 상황”이라며 “북한의 핵도 대화와 외교를 통해 해결해야 하지만, 대화를 통한 해결도 강한 힘이 있어야만 비로소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절치부심(切齒腐心)을 8차례나 언급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일제강점기를 예로 들며 “이를 갈고 가슴에 새기면서 치욕이나 국란을 다시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에 화답하듯 새로 ‘별 넷’을 단 군 고위층들은 지난 16일 취임식에서 한목소리로 “전작권 전환 추진”을 강조했다.
과거 10여년 동안 전작권 전환이 지지부진했던 것은 육사와 육군이 주축인 ‘군 수뇌부’의 소극적 자세가 한몫했지만, 북한의 도발과 위협, 특히 핵무장 능력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당장 핵실험과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를 앞세운 북한 도발에 대한 대응이 그 무엇보다도 시급한 과제였던 탓에 전작권 전환은 후순위로 밀렸다. 북의 현실적 군사위협은 지지부진한 전작전 전환에 대한 ‘핑곗거리’로는 충분했다.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남북 정상회담을 시작으로 북한의 도발 위협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런만큼 군 당국이 전작권 전환에 보다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고 할 수 있다. 합참도 합참의장 직속으로 ‘전작권 전환추진단’ 편제를 반영하는 등 외견상으로 전작권 전환에 박차를 가하는 모양새다.
군 당국은 올해 한국군 주도의 작전지휘체계를 구축하여 전작권의 안정적 전환여건을 조성하고 미래연합지휘구조 개편(안)을 구체화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최초작전운용능력(IOC)을 평가할 때는 미래 연합군사령부 편성안을 적용하고, 전환조건을 조기 충족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전작권 전환 이후 연합방위 및 위기관리체제를 규정하는 근거문서와 관련약정도 작성해야 한다.
국방부는 25일 “한미 국방부가 23∼24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제15차 한미통합국방협의체(KIDD) 회의에서 남북 군사합의 이행으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완화됐고,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계획도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고 평가했다”고 보도자료를 냈다.
국방부 발표와 설명을 듣고 있자면 ‘무지개 빛’ 얘기처럼 들린다. 무지개 건너편에 뭐가 있는 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구체적인 내용은 군사비밀이라니 공식 발표 때까지는 세부사항을 알 수 없다. 지상전은 한국군이, 해전·공중전은 미군이 주도한다는 과거 ‘무늬만 전작권 전환’이 지금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도 확인이 어렵다. ‘막연한 안보’, ‘막연한 국방’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이유다.
합참은 이번주에 “근무직원들의 사기진작과 화합, 단결 차원”이라며 매일 반나절씩 4일간 체육대회를 열었다. 직원들간에 서로 얼굴을 익히는 단합의 계기였다고 했다. 이를 거꾸로 해석하면 서로 얼굴을 모르는 직원이 많았다는 것으로, 합참 기능이 수평적으로 이뤄지지 않은 비효율적인 업무환경이라는 반증이다.
합참체육대회는 ‘전작권 전환’을 위한 군의 ‘치열한 몰입’과는 거리가 있다. 합참은 체육대회로 친목을 도모해야 하는 단순한 단위부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체육대회 자체를 비판하는 게 아니다. 합참은 전쟁을 대비하는 육·해·공군의 최고 군령기관이다. 군정기능까지 겸하는 행동부대인 일선 야전 사단이라면 체육대회를 얼마든지 할 수 있겠지만, 지휘부인 합참은 성격이 다르다. 분야별 전략, 전력·작전기획 등 전문가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시간과 관계없이 일해야 하는 군의 ‘고급 두뇌’ 집단이다. 800여명 근무자들이 반나절씩이라고는 하지만 나흘간 단체로 체육대회를 하는 모습은 합참이 한가롭게 비쳐지게 한다. 누가 합참이 ‘절치부심’하고 있다고 보겠는가. 게다가 합참 근무자들에게는 수요일 전투체육의 날을 제외하고라도 매일 오후 4시30분부터 1시간씩 체력 단련 시간이 주어지고 있다.
옛말에 ‘오얏나무 밑에서 갓끈을 매지 말라’고 했다. 합참 체육대회는 북의 도발 위협이 없으니까 여유가 생겨 하는 것으로 밖에서는 보여진다. 북의 군사위협에 밀려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전작권 전환에 군 당국이 ‘일로매진’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을 허송세월하고 있다는 의문이 들게 한다. 이러다가 남북관계가 급냉각되면서 북한 도발이 재현되면 전작권 전환은 ‘조건에 의한’이란 단서 조항에 더 힘을 실어주면서 또다시 후순위로 밀려나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경우 군의 ‘주류’와 ‘비주류’나 똑같다는 평가가 나올 것이다.
국방부에서는 최근 불법 논란과 함께 자연환경을 파괴하면서까지 강행하고 있는 ‘워라밸’을 위한 테니스장 건설로 시끄럽다.
문 대통령은 새로 임명된 군수뇌부 신고를 받으며 ‘칼은 칼집에 들어 있을 때 무섭다’고 말했다. 그러나 작금의 모습을 보면, 군 수뇌부 칼집에서 나온 ‘칼’의 날이 시퍼렇게 서 있을 지 의문이다. 전쟁에 임한 7년 동안 허리 요대를 풀지 않았다는 ‘칠년불해대(七年不解帶)’란 이순신 장군의 어록이 생각난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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