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연합군의 대북 군사억제력 상징인 키리졸브(KR)연습과 독수리(FE)훈련이 올해는 한·미동맹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군 안팎에서는 대북 특사단의 방북 결과에 따라 올해 독수리훈련의 규모가 축소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북·미대화 협의까지 순조롭게 이뤄진다면 키리졸브연습·독수리훈련이 취소될 수 있다는 섣부른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반면 대화 결렬에 따른 ‘한반도 4월 위기설’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2017년 3월 한·미 연합훈련인 키리졸브에 참가한 미국 제3함대 소속 핵항공모함인 칼빈슨호 비행갑판에 FA-18 전투기가 착륙하고 있다. 같은 기간 열린 독수리훈련에는 미국의 최신예 스텔스 전투기인 F-35B도 참여, 한국의 F-15K 전투기와 함께 북한에 대한 핵심정밀타격 연습을 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키리졸브연습은 한반도 유사시 미군 지원병력의 ‘수용·대기·전개·통합’ 훈련을 의미하는 RSOI연습의 명칭이 한·미 간 전작권 전환 합의 이후 바뀐 것이다. 키리졸브연습과 연계해 실시하는 독수리훈련에는 한·미 연합작전과 후방 방호작전 능력을 키우기 위해 통상적으로 한국군은 군단·함대사령부·비행단급 부대의 20여만명, 미군은 주로 해외에서 증원된 1만여명이 전략 자산과 함께 참가한다.
■연습은 예정대로, 훈련은 축소하나
한·미 군 당국은 4월1일부터 5월30일까지 두 달간 야외 실기동훈련(FTX)인 독수리훈련을 실시하는 것으로 잠정 합의한 상태다. 한반도 전시상황을 가정한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하는 지휘소 연습(CPX)인 키리졸브연습은 4월23일부터 약 2주간 실시하는 것으로 확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문정인 대통령통일외교안보특보는 지난 1일(현지시간) 미국 PBS 방송 인터뷰에서 “키리졸브는 (한·미 간에) 합의된 것으로 이야기를 들었다”며 “독수리훈련은 아직 일정을 안 잡은 것으로, 북·미 간에 대화가 되면 조정이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게 워싱턴에 있는 사람들의 얘기였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은 ‘연습(Exercise)’인 키리졸브와는 달리 연합군사 ‘훈련(Practice)’인 독수리훈련은 북·미 간에 대화가 되면 일정 축소와 같은 조정이 가능하다는 의미로 국내에서는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면서 통상 두 달간 실시되던 독수리훈련 기간의 ‘한 달 단축설’이 급부상하고 있다.
국방부 고위관계자도 “독수리훈련에 관행적으로 포함시켰던 각군별 훈련을 나중으로 미루고, 종료일을 조정하면 기간 축소가 불가능한 건 아니다”라고 밝혔다. 다른 군 관계자는 “한·미 연합훈련을 2~3월에 실시하는 이유 자체가 본격적인 농사철 전에 야외 기동훈련을 마쳐 농가 피해를 줄이기 위한 것”이라며 “올해는 독수리훈련이 평창 동계올림픽으로 농사철인 4월로 늦춰졌기 때문에 야외 기동훈련을 한 달로 단축할 명분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는 “독수리훈련을 2개월간 할 경우 5월에는 합참이 주관하는 한국군 최고 훈련인 태극훈련과 겹치는 문제가 있다”며 “미군도 전 세계적으로 이미 정해져 있는 해외 훈련 일정을 감안하면 굳이 2개월씩 한반도에서 훈련을 할 필요는 없다”고 덧붙였다. 나아가 남북대화가 북·미대화까지 이어지면서 미측에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올 경우 한·미 연합훈련 취소 가능성까지 거론될지 주목된다.
키리졸브가 진행 중인 2017년 3월 서울 한미연합사 용산기지 내 연합전투모의훈련센터에서 한·미 양국군이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작전 훈련을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키리졸브·독수리에 경기 일으키는 북한
북한은 키리졸브연습을 방어가 아닌 ‘침공을 위한 전쟁연습’으로 규정하고 있다. 키리졸브연습·독수리훈련이 시작되면 북한군의 ‘스트레스 지수’는 급상승한다. 막대한 인원과 물자를 동원하는 ‘소모전’을 감수해야 하는 맞대응 훈련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군이 건설·어업·무역 등 다양한 경제적 역할까지 하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한·미 군사훈련이 실시되면 그 기간 중 북한군이 경제적 부문을 포기할 수밖에 없어 군사적으로만이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심대한 타격을 받게 된다. 그런 만큼 북한도 한·미 연합훈련을 빌미로 2009년 개성공단을 차단했고, 2011년 ‘서울 불바다’를 거론하며 남측을 협박했다. 2013년에는 키리졸브연습 하루 전날 정전협정 무효를 선언하는 등 한반도에서 긴장도를 높였다.
지난해 키리졸브연습·독수리훈련에는 주한미군과 해외 증원전력을 포함한 미군 약 1만명, 핵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호(CVN 70), 핵잠수함 콜럼버스함(SSN 762), 장거리 전략폭격기 B-1B 등 전략무기를 대거 투입해 북한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였다.
■관전 포인트는 전략자산·해병 훈련·북 참관 여부
최근 미군 전력의 태평양 지역 활동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독수리훈련에 미 전략자산이 어떤 규모로 참가할지 주목된다. 현재로서는 북한의 핵·대량살상무기(WMD) 위협에 대응한 ‘맞춤형 억제전략’에서 칼빈슨 항모전단과 F-35B를 탑재한 강습상륙함 와스프, 괌의 B-52, B-1B 전략폭격기의 참가가 유력하다. 문 특보는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축소하는 건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 이후 전개되고 있는 미국의 전략무기를 이전 수준으로 돌리자는 것”이라며 “이는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조건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부분”이라고 밝힌 바 있다.
외신 등에 따르면 현재 일본 요코스카에는 핵추진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 사세보에는 강습상륙함 와스프가 머물고 있다. 또 다른 핵항모 칼빈슨호와 강습상륙함 본 험 리처드, 병원선 머시함과 고속수송선 폴 리버함 등은 남중국해에서 다국적 재해대응훈련인 퍼시픽 파트너십(Pacific Partnership)에 참가하고 있다. 이 미군 전력들은 남북대화가 결렬될 경우 언제든지 한반도로 전개돼 북한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전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게 군사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 경우 4월 위기설의 재발은 불가피해진다.
올해는 한·미 해군과 해병대의 연합 상륙훈련인 쌍룡훈련이 독수리훈련과 연계돼 있다. 올해처럼 짝수 연도에 대규모로 실시하는 쌍룡훈련은 북한 내륙 (가상)진공작전도 포함해 북한이 북침 연습이라고 맹비난하는 훈련이다. 현재는 미 핵항모가 쌍룡훈련을 지원하는 것을 양국 군 당국이 합의한 상태로, 이것이 실현되면 북한은 강력히 반발할 게 뻔하다.
정부가 북한에 키리졸브연습·독수리훈련의 참관을 요청할지와 북이 이를 수용할지 여부도 관심거리다. 그동안 정부는 한·미 연합훈련이 순수한 방어훈련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관례적으로 북측에 훈련 참관을 요청해 왔다. 그러나 키리졸브연습의 핵심인 ‘작계 5015’ 자체에 북한 수뇌부를 겨냥한 공세적 작전이 포함돼 있다는 점에서 북한이 훈련 참관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진화하는 한·미 연합훈련
한·미 연합 모의 지휘소 훈련이 상반기·하반기에 걸쳐 매년 두 차례씩 실시되는 것에 대해 군 내부에서는 평가가 엇갈리는 분위기다. 한쪽에서는 상반기 키리졸브연습과 하반기의 을지프리덤가디언(UFG)을 하나로 통합해 내실을 기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미군조차도 주한미군사령관이 1년에 두 차례씩 훈련 강평서를 내놓는 바람에 미 의회의 예산 등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는 주장이다. 그런 면에서 1년에 연합지휘소 연습 1회, 한·미 연합 야외실기동훈련 1회의 조합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매년 3~4월 키리졸브와 독수리 훈련, 8~9월 UFG 훈련을 반복하는 바람에 한반도 정세를 관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 왔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고 밝혔다. 두 차례 훈련을 하나로 통합할 필요성을 제기한 것이다. 그는 “걸림돌은 훈련 축소를 한·미동맹의 약화나 북핵 용인으로 간주하는 보수층의 시각과 미측에 한국 정부를 비판할 수 있는 빌미를 줄 수 있다는 점”이라며 “만약 북한의 무력도발이 계속된다면 아예 말을 꺼내기도 어렵게 된다”고 말했다. 관건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에 달려 있는 셈이다.
반면 고위장성 ㄱ씨는 “주한미군 병력이 1년에 50% 이상 교체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한국에 새로 배치된 미군들이 자기의 직책에서 해야 할 일을 한국군과 함께 종합적으로 연습하는 것은 1년에 한 차례로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전인범 예비역 중장(전 특전사령관)은 “키리졸브연습과 독수리훈련을 합친 결과가 과거 팀스피리트 훈련과 유사해졌다”며 “이는 한·미 연합훈련이 수십년간 진화한 결과”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남북관계의 틀을 재건하겠다는 대승적 차원에서 훈련 횟수를 줄이겠다면 그 대안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라며 “그 대신 북한이 핵무장을 한 상황에서 우리가 얻는 게 커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에 잘못된 신호를 주지 않으면서 논의와 연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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