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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이야기

‘군 역사 바로 세우기’ 배경엔 정권의 정통성 강화 의도

남북한군의 진짜 생일은?

 

■ 북한군의 과거 생일로 돌아가기

 

북한이 올해 북한군의 생일 날짜를 바꿨다. 한국군도 국군의 날 변경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남북한군의 진짜 생일 찾기의 배경은 무엇인가.

 

북한은 지난 8일 북한군 ‘생일’인 조선인민군 창건 70주년 기념일을 맞아 평양에서 ‘건군절’ 열병식을 실시했다. 앞서 북한은 지난달 23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은 2월8일을 조선인민군 창건일로 할 데 대한 결정서를 22일 발표하였다”고 보도했다. 정규군 창설일인 2월8일을 ‘건군절’로 공식화한 것이다.

 

북한 건군절은 애초부터 2월8일이었다. 그러다 1978년부터는 김일성 주석이 중국 동북의 안도현에서 정규군 모태가 된 첫 ‘주체적 혁명무력’인 반일인민유격대를 조직했다는 1932년 4월25일을 군 창건일로 정하고 건군절로 불러왔다. ‘생일’을 바꾼 것이다. 북한의 4·25문화회관, 4·25체육선수단, 4·25예술영화촬영소, 4·25훈련소, 4·25여관 등은 인민군 창건일로 지정된 4월25일에서 비롯됐다. 반일인민유격대는 1934년 3월에 조선인민혁명군으로 개편됐다. 이후 조선인민혁명군은 북한 정부 수립을 앞두고 1948년 2월8일에 정규 무력인 조선인민군으로 개편됐다. 즉 반일인민유격대→조선인민혁명군→조선인민군으로 변화한 것이다.

 

지난 8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북한 건군절 7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군인들이 대열을 맞춰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은 올해부터 군 생일(건군절)을 2월8일로 환원했다. 북한이 건군절을 다시 2월8일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을 보인 것은 3년 전부터다. 북한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집권 이후 2015년부터 2월8일에 별도로 대대적인 경축 행사를 벌이며 기념해왔다. 북한은 2015년 2월7일 평양 4·25문화회관에서 황병서 당시 군 총정치국장, 현영철 당시 인민무력부장, 리영길 당시 군 총참모장을 비롯한 군부 고위인사들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보고 행사를 개최했다. 정규군 창설일을 기념해 북한 군부가 총출동해 행사를 치른 것은 최근에는 이때가 처음이었다. 중요한 기념일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나오는 노동신문 사설도 이때부터 등장했다.

 

김 위원장은 이미 신년사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선인민혁명군을 정규적 혁명무력으로 강화 발전시키신 일흔 돌이 되는 올해”라고 언급했다. 이로 미뤄볼 때 2월8일 열병식은 오래전부터 준비돼온 것임을 읽을 수 있다.

 

북한이 2월8일을 인민군 창건일로 기념하기로 한 것은 김정은 위원장이 그의 아버지인 김정일과 차별성을 노리고 일종의 ‘군 역사 바로 세우기’에 나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항일투쟁과정에서 무장세력(군)이 당을 만들었다는 인식을 바꾸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아버지인 김정일의 통치이념인 이른바 ‘선군후당’과 반대로 당을 앞세우는 ‘선당후군’을 내세워 노동당이 군을 만든 것으로 바꿔버렸다. 이를 통해 비대해진 군부 권력을 견제하고, 군이 통치하던 비상 국가에서 당이 주도하는 정상 국가로 발돋움했다는 걸 과시하는 걸로 보인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유격대 전통을 강조하는 김정일 시대를 벗어나 당 국가체제를 복원하면서 국가를 정상화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건군절 변경은 김정은이 군에 대한 아버지·할아버지의 해석과 다른 자신만의 군에 대한 관점을 차별화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라며 “특히 올해가 정권 수립 70주년인 만큼 정규군 창설일을 건군절로 지정함으로써 국가성의 의미를 더 부각하려는 차원”이라고 분석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김정일 시대의 선군정치가 과도체제라면 김정은 시대의 선당정치는 당 우위의 국가체제로 정상화시키는 그런 의도가 담긴 것으로 분석한다”고 말했다. 과거보다 멀어진 중국과의 관계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정부 당국은 분석하고 있다. 항일유격대는 북한과 중국의 관계가 친밀하던 때인 1932년 4월25일에 이뤄졌는데, 이에 대한 의미를 축소하려는 시도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9월28일 경기 평택 해군 2함대사령부에서 열린 국군의날 행사에 참석해 송영무 국방장관과 함께 열병을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 10월1일은 국군의 진짜 생일인가

 

한국군도 국군의 날(창군일)을 놓고 여러 말이 나오고 있다. 현행 국군의 생일은 1956년 9월21일 대통령령 1173호에 의해 제정됐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몇몇 여당 의원들은 국군의 날을 10월1일에서 광복군 창설일인 9월17일로 바꾸겠다고 나섰다. 앞서 16대 국회 때인 2003년, 17대 때인 2006년에도 ‘국군의 날 기념일 변경 촉구 결의안’이 발의된 바 있다. 하지만 두 결의안 모두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광복군은 1940년 9월17일 중국 충칭에서 한국광복군 선언문을 내걸고 창설됐다. 헌법 전문은 대한민국이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되어 있다. 국군의 날 시작을 임시정부의 광복군 창설기념일인 1940년 9월17일로 옮기는 것이 논리적으로나 정통성 차원에서 맞다는 주장의 근거다.

 

일제의 대한제국군 해산일이 국군의 날이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1940년 9월 광복군을 재조직할 때 기록인 ‘한국군 광복군 총사령부 성립보고서’를 보면 ‘정미년(1907년) 8월1일 국방군(대한제국군) 해산의 날이 곧 광복군이 창립된 날이라 할 것이다’라고 하면서 일제에 선전포고한 날로 규정했다는 것을 근거로 하고 있다. 일제의 대한제국군 해산에 박승환 참령이 자결한 1907년 8월1일, 대한제국군은 총을 들고 일제에 대항했다. 이 정신은 이후 의병과 독립군, 광복군, 국군으로 이어졌다. 기록을 보면 1908년 한 해만 해도 수백회의 전투와 7만여명의 참전이 있었다. 재향군인회가 1993년 8월 펴낸 <광복군전사와 국군의 맥>은 국군의 정통성이 의병에서 이어져 온다고 분석했다.

 

조선국방경비대 창설일(1946년 1월15일)이나 정부수립일(1948년 8월15일)을 국군이 탄생한 날로 하자는 의견도 있다. 정작 흔히 알려진 ‘38선 돌파일이 국군의 날’이라는 통설은 국방부 공식 입장을 보면 맞지 않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자료를 보면 10월1일은 창군 이후 군별로 창설기념일을 제정하여 시행해 오던 것을 하나로 통합하는 과정에서 제일 마지막으로 출범한 공군의 창립일이 1949년 10월1일이기에 이에 맞춰 국군의 날로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것으로 돼 있다. 국군의 날을 확정한 당시 국무회의의 심의경과표를 보면 국군의 날 제안 이유와 제정 배경에 대해 ‘3군 단일화와 국군의 사기, 그리고 국민의 국방사상 함양에 바탕을 두고 재정 및 시간을 절약하는 데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육·해·공군과 해병대가 제각각 창설기념일에 행사를 치러 물적·시간적 낭비를 하고 있어 이를 막기 위한 목적이 크다는 의미다.

 

국군의 뿌리를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에서 찾는 것은 남북 통일 후를 생각한다면 모순이라는 시각도 있다. 김영관 전 광복군동지회 회장은 “6·25 전쟁에는 동족상잔의 아픔이 담겨있는데, 국군이 38선을 돌파했을 때를 국군의 날로 기념하는 것은 남북 통일을 생각해서도 모순이 아닐 수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나아가서 38선 돌파일은 일본군 출신들이 자신들의 친일 행적을 회피하려고 마치 동족상잔의 아픔이 담겨있는 6·25 전쟁에 국군의 정통성이 있는 양 호도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장병들의 인식 역시 국군이 항일독립전쟁의 역사와는 무관한 것처럼 여기는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군 당국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국방부 업무보고에서 “광복군 역사를 국군 역사로 편입시키는 문제를 검토해달라”고 말한 이후 국군의 역사를 광복군과 연계시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육군사관학교는 지난해 육군과 육군사관학교의 역사가 독립군·광복군에서 유래됐다는 취지의 특별학술대회를 열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학술대회 발표를 놓고 마치 빙하기에 멸종한 ‘매머드’가 ‘코끼리’의 조상이라고 주장하는 격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실제 코끼리의 조상은 멸종한 매머드가 아닌 신생대 마이오세와 플라이오세 때 생존했던 ‘프리멜레파스’다.

 

당시 학술대회 발제자들과 토론자들 사이에서는 “우리 군의 다수가 일본군, 만주군 출신이었지만 건군 당시 수뇌는 광복군이 이끌어야 한다는 공동인식이 있었다”며 “중국에 주둔했던 일본군과 만주군 내의 조선인도 광복군에 흡수됐기 때문에 광복군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현대사적 의미에서의 재해석과 근거를 제시하기 위한 문헌 고찰 등은 미흡했고, ‘광복군은 한국군의 뿌리’라는 당위적이고 감정적인 접근이 주류를 이뤘다. 그러나 이 같은 논리로 국군의 날을 변경하면 북한군처럼 정권 편의에 따라 군 창설일을 바꿨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론적·논리적 근거가 취약할 경우 정권이 바뀌면 또다시 국군의 날 변경 주장이 나올 개연성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longriv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