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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이야기

국익 앞세운 비밀 군사협정, 중동 정세 급변 땐 뜨거운 감자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의 아랍에미리트연합(UAE) 특사 방문으로 촉발돼 정치권 갈등으로 번진 UAE 파병 의혹이 ‘수건돌리기’ 끝에 한달 만에 봉합됐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11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앞의 정부에서 양국 간에 공개하지 않기로 합의했다면 그 점에 대해서도 존중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혀 양국 간 이면합의는 수면 아래로 다시 잠수했다.

 

해외 파병까지 전제된 비밀 군사협정 내용은 여전히 공개되지 않은 채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봉인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UAE 파문의 발원지가 어디인지를 놓고 여당과 야당은 물론 청와대와 국방부까지 책임 떠넘기기를 하는 듯한 모습을 노출했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왕세제(오른쪽에서 세번째)와 김태영 전 국방장관(두번째)이 2010년 5월 특수전사령부 707 특수임무대대의 대테러 시범을 함께 보고 있다. 국방일보 제공

 

협정 체결 필요성을 놓고도 긍정론자와 비판론자의 의견이 극명하게 갈린다. 문제는 UAE 파병을 둘러싼 논란의 본질과 그 파장은 첫 파병안이 국회에서 일방 처리된 2010년 12월이나 지금이나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UAE와의 군사협정 후유증이 언제 활화산처럼 다시 터질 지 모른다는 의미다. 청와대가 시사한 절차적·내용적 보완을 하기도 전에 중동정세 변화에 따라 논란이 다시 불거질 개연성도 있다.

 

■ 아크부대는 ‘비즈니스’ 파병부대

 

UAE 파병부대 이름인 아크(Akh)는 아랍어로 형제라는 의미다. 국방부는 2010년 12월8일 국회 본회의에서 UAE 국군 파견동의안이 통과함에 따라 다음달 11일 ‘UAE 군사훈련협력단’ 아크부대를 파병했다. 당시 국방부는 “파견부대 임무는 UAE군 특수전 부대에 대한 교육훈련 지원, 연합훈련 및 연습, 유사시 우리 국민 보호 등”이라고 밝혔다. 아크부대 주둔 기간은 2010년 12월부터 2년간으로, 2년마다 연장돼 왔다.

 

UAE 파병 전까지 국군의 13차례 파병은 모두 헌법 5조 ‘국제평화’가 법적 근거였다. 하지만 UAE 특수전 부대 파병은 ‘국익창출’이 명분이었다. 정부 스스로 원전 수출의 대가인 ‘비즈니스형 파병’임을 분명히 했다. 당시 장광일 국방부 정책실장은 “UAE 특수전 부대 파병은 비분쟁 지역에서 군사협력을 강화하고 국익을 창출하는 데 기여하는 새로운 개념”이라고 밝혔다. 기존의 분쟁지역에 대한 평화유지활동이나 미국의 요청에 따른 다국적군 파견과는 성격이 다른 원전 수주에 따른 경제활동을 지원하는 신개념 파병이라는 것이었다. 당연히 ‘끼워 팔기 파병’이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특수전 부대 파병은 당시 UAE군 부총사령관이기도 했던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왕세제(58)의 적극적인 ‘구애’가 결정적이었다. 그는 2010년 5월 특수전사령부 707 특수임무대대의 대테러 시범을 보고 크게 감동받았다.

 

당시 특전사는 줄을 타고 건물 안으로 진입하는 장면에서도 실제 유리창을 깨면서 리얼한 모습을 연출하는 등 실전을 방불케 하는 시범을 선보였다. 테러리스트 대역인 마네킹이 총탄을 맞고 쓰러질 때는 (인조)피를 품으며 넘어지기까지 했다. 저격수가 한발 한발 표적을 명중시킬 때마다 ‘WELCOME’이라고 쓰인 플래카드와 태극기, UAE 국기가 차례로 펼쳐졌다. 왕세제 일행은 일제히 박수로 화답했다.

 

아크부대는 기존 주둔지가 UAE군 신병훈련장으로 운용됨에 따라 2016년 UAE 특수전단과 항공기지가 위치한 아부다비 인근 스웨이한 지역으로 새 건물을 지어 이전하면서 영구주둔 논란이 일기도 했다. 군 입장에서는 UAE 파병이 특수부대의 기량 향상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한국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UAE 특수전사령부(SOC)는 막강한 자금력으로 전 세계 4곳밖에 없는 시뮬레이션 훈련장도 갖고 있다. 가상현실(VR) 헤드셋을 통해 가상의 공간에서 실전처럼 전투훈련을 수행할 수 있는 최첨단 시설이다.

 

■ 외국 주둔군에 안보 의존하는 UAE

 

UAE는 1971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신흥국으로 세계 6위 원유 보유국이다. 국제사회 영향력도 상당하다. 그러나 약 940만명인 인구 중 자국민은 107만명(11.3%)에 불과하다. 그러다 보니 안보가 가장 큰 고민거리로 특히 아라비아만(페르시아만) 건너에 위치한 이란은 가장 큰 위협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외국 군대를 자국에 주둔시키면서 안보를 상당 부분 외국군에 의존하고 있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UAE가 한국과의 군사 협력에 적극 나섰던 것 역시 UAE 특유의 안보 방침에 따른 것이다.

 

영국 싱크탱크인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에서 발간하는 ‘밀리터리 밸런스’ 2016년도 판을 보면 UAE에는 미국(5000명)과 호주(800명), 프랑스(750명), 한국(128명), 영국(100명) 등 10여개국 병력 7000여명이 주둔하고 있다. 아크부대가 처음 발 디뎠던 2010년에 외국군 병력이 3000여명이었던 것과 견주면 2배 이상 증가했다. UAE는 1994년 미국과 방위협력협정을 맺었고, 유럽 군사강국인 프랑스와는 2008년 자국 내에 프랑스 공군기지를 세우는 협약을 맺었다.

 

하지만 UAE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때부터 아라비아만의 작은 2개 섬인 턴브와 아부무사를 놓고도 이란과 영유권을 벌이고 있어 무력충돌이 벌어질 가능성은 언제라도 열려 있다. 한국군이 사우디아라비아 동맹국인 UAE의 특수전 병력 5000명을 두배로 늘리는 추진 계획의 사실상 교육 책임자라는 점도 이란과 카타르 등 주변 아랍국과 갈등을 빚을 소지가 있다. UAE에 특수전 부대가 주둔하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게다가 국방부는 UAE에 주둔 중인 외국군 실태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밀리터리 밸런스 자료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당연히 UAE 주둔 외국군도 한국군과 유사한 협약을 맺었을 것이라고 막연히 추정만 할 뿐 구체적인 자료를 갖고 있지 못하고 있다.

 

■ 비밀인 군사협력 MOU와 위헌 논란

 

세계 3위의 무기 수입국인 UAE는 국영 방산업체인 EDIC를 중심으로 필요한 무기체계의 국산화와 다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기술력과 경험, 생산능력이 부족해 한국 방산업체가 진입하기 좋은 환경이다. 한국은 UAE 파병을 계기로 2011년부터 2016년까지 5년 동안 1조2000억원어치의 무기를 수출했다. 이는 파병 직전 5년의 무기 수출액 393억원과 견주면 무려 30배나 증가한 수치다. 이는 파병 부대가 국가 이익을 창출하기 위한 가용자원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비밀 군사협정이 불가피했다는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국회 비준도 받지 않은 비밀 군사협력협정은 위헌 논란의 불씨를 애초부터 안고 있었다. 경향신문은 2009년 12월29일자에 UAE의 원자력 발전 건설공사를 수주하기에 앞서 한국이 UAE와 ‘동맹국 수준 군사협정(MOU)’을 체결했다고 단독 보도했으나 정부는 구체적 내용의 확인을 거부했다. 파병 초기부터 서강대 임지봉 교수(헌법 전공)는 “원전 수주라는 경제적 이익이나 양국 협력증진이라는 외교적 이익을 위해 파병하는 것은 헌법에서 명시하고 있는 국방의 의무와 군인의 사명에 반하는 것으로 위헌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방부는 파병 근거로 “대한민국의 위상을 제고하고 국익창출에 기여할 수 있도록 국제평화유지와 재건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고 밝힌 이명박 정부의 국가안보전략지침(2008·8·18)을 근거자료로 내놓았다. 그러나 국방부 스스로 UAE 파병이 국제평화유지나 재건활동을 임무로 하지 않는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김태영 전 국방장관이 최근 “내가 책임지고 (UAE 유사시 한국군이 개입한다는 비공개 군사) 협약으로 하자고 했다”고 밝힌 것도 그런 까닭에서다. 그는 “그렇다고 (해도) 만일 UAE에 한국군을 보내야 하는 상황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국회 동의 없이는 할 수 없다”고 말했지만, 이는 국가 간 신의를 깨뜨릴 수 있는 또 하나의 불씨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UAE 바라카 원전 4기의 공사는 2020년쯤 마무리될 예정이다. 이때 다시 아크부대 주둔의 명분을 놓고 논란이 재연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군은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헌법으로 군의 쓰임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며 “UAE 파병 때 경제 논리를 앞세워 이를 무시했다면 국가 간 약속이더라도 실체를 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longriv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