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한반도 긴장 완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남북 간 군사적 대립을 푸는 방편으로 우선 ‘상호 비방 대남·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 카드가 꼽히고 있다.

 

군은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 6월 남북 합의에 따라 대북 확성기를 모두 철거했으나,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 천안함 사건 이후 재설치하는 등 남북관계 부침에 따라 확성기 방송 중단과 재개를 반복했다. 북한의 4차 핵실험이 이뤄진 2016년 1월 이후 대북 확성기 방송이 지속되고 있다. 북한군도 이에 맞서 대남 확성기 방송을 재개해 남북 간 ‘소음전쟁’은 2년 넘게 계속되고 있다.

 

휴전선 일대에서 과거 북한군이 남측을 향해 설치한 확성기 등 대남 비난 방송 시설. 경향신문 자료사진

 

남북 간 확성기 방송에서 해빙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북한은 최근 대남 비방방송 음량을 낮춘 것으로 확인됐다. 외신은 북한이 지난 9일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 이후 비무장지대(DMZ)의 대남방송 음량을 줄였다고 보도했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전력 상황에 따른 것이란 의견도 내놓고 있지만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시작된 대남 유화정책의 일환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국군도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최전방 지역의 확성기 방송 내용을 일부 변경했다. 합참은 19일 “국군심리전단이 최근 대북 확성기를 통해 평창 올림픽 소식을 방송했다”고 밝혔다. 국군심리전단은 대북 확성기 방송에서 평창 올림픽 개회식 남북 공동입장,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구성 등의 내용을 상세히 소개했다.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의 방남과 예술단 공연,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의 남북정상회담 제안 등의 내용도 방송했다.

 

■ 베일에 가려진 대북 확성기 실태

 

군 당국은 매일 500W급 대형 스피커 48개로 구성된 확성기 40여대를 통해 방송을 송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내용은 ‘남한의 발전상’과 ‘북한 실상 및 체제 비판’ 등이 주류다.

 

박근혜 정부는 2016년 174억원을 들여 고정형 24대, 이동형 16대 등 대북 확성기 40대를 도입했다. 이 가운데 차량으로 움직일 수 있는 이동식 확성기 16대의 성능이 부실한 것으로 드러났다. 도입 기준은 소리가 10㎞까지 퍼져나가야 하는 것이었지만, 상당수 장비의 방송이 5㎞ 정도밖에 전달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DMZ에 수풀이 우거진 점 등을 고려하면 북방한계선을 1㎞밖에 넘기지 못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배명진 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장은 한 방송사 인터뷰에서 “(소리가 밤에는) 평지에서 10㎞를 간다고 해도 낮에는 산이 있고, 바람이 불고 그러면 1~2㎞밖에 못 간다”며 “확성기 방송이 경우에 따라 북측 철책조차 넘지 못했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기동형 대북 확성기가 최전방 전술도로를 제대로 이동하지 못하는 문제점도 군 내부에서 제기됐다.

 

2016년 1월8일 정부가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응해 경기 연천군 중부전선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국회 보고 자료 등에 따르면 대북 확성기 방송은 하루에 적게는 8시간, 많게는 16시간 등 하루 평균 13시간씩 실시되고 있다. 실제로는 2시간, 장소에 따라 6시간 정도 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오지만 외부에서는 정확한 확인이 불가능하다. 국방부가 ‘작전’과 ‘보안’을 내세워 대북 확성기 방송의 시간과 장소, 내용 등의 구체적인 공개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군심리전단이 지난해 말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김학용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제출한 ‘대북 확성기를 통한 한국 가요 현황’을 보면 지난해 1월부터 10월 말까지 가수 방미씨의 ‘날 보러와요’를 가장 많이(14회) 방송한 것으로 나타났다. 종합적으로 보면 지난해 상위 50위권 가요의 송출 횟수를 모두 합쳐도 265회에 불과했다. 이는 지난해 1월1일부터 11월27일까지 330일 동안 하루에 한 곡조차 채 틀지 않았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군 당국이 비밀과 보안을 핑계로 자세한 현황을 숨기고 있다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군 당국은 북한 정치보위부 요원들이 대북방송 내용에 대해 ‘허위 거짓날조’라고 아무리 교육시켜도 매일 전달하는 일기예보가 정확하고, 북한 내부에서 제대로 전파하지 않는 정권의 치부나 군부 인물 처형, 홍수 등 대규모 재해, 사건 등을 사실대로 전달하면 방송 내용을 믿게 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남한의 최신 음악을 포함한 감성적인 유행가도 통제된 북한 사회엔 강력한 심리전 무기로 작동한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2016년 6월 중부전선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온 북한군 귀순자가 대북 확성기 방송을 듣고 탈북을 결심했다는 사례도 들고 있다.

 

■ 부실한 확성기 효과 검증

 

대북 확성기 방송의 직간접 영향을 받는 이들은 MDL 북쪽 2㎞를 담당하는 북한군 민경(민사행정경찰) 대원과 DMZ 바깥쪽 2㎞ 안팎을 책임지는 ‘1제대’ 부대(한국의 GOP 성격), 1제대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 등 세 부류다. 군은 대북 확성기 방송이 북한군에 대한 심리전 차원에서 상당한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 실효성은 제대로 검증되지 않고 있다.

 

북한군은 남측의 대북 확성기 방송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북한군은 신형 디지털 스피커까지 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군인들과 주민들이 듣지 못하게 하는 맞대응 방송(맞불방송)과 내부방송 등 소위 ‘심리전 제압방송’도 한다. 일부 지역의 경우 확성기를 남측의 대북 확성기와 같은 방향인 북쪽으로 돌려놓고 방송하는 것이 군 당국의 감시에 포착되기도 했다. 이렇게 되면 남측의 대북방송이 북측에서는 거의 들리지 않게 된다. ‘사운드 마스킹’ 효과다.

 

북한군은 출력이 약해도 소리 전달효과가 큰 심야에는 남측을 향해 선전선동 수단의 대남방송도 같이하고 있다. 북한의 대남 확성기 방송은 북한군 총정치국 산하 적공국의 지시를 받아 군단 산하 적공부와 사단 산하 적공과가 운영하는 전선지역의 대남방송국과 80여곳의 비무장지대 확성기 초소를 통해 전개되고 있다.

 

군은 북한군이 예측할 수 없도록 불규칙하게 대북방송을 하고, 이동식 확성기로 장소를 바꾸어가며 방송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북한 군인 또는 주민에 대한 실태조사를 겸한 청취율이나 효과 검증이 불가능한 게 현실이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통신병과 출신 예비역 장성 ㄱ씨는 “남쪽에서 북한군이 맞대응 방송을 하는 실제 환경처럼 만든 후 일정 거리(10㎞ 정도)가 떨어진 곳에서 보내는 방송의 소리가 어떤 식으로 들리는지를 검증하면 된다”고 지적했다. 현장의 실제 작전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군 당국의 대북방송 시험 평가는 10㎞ 떨어진 지점에서 북의 제압방송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이뤄졌다. 여기에다 소음이 많은 한낮에는 하지 않고, 주간은 오전 6시~6시20분, 야간은 오후 9시50분~10시30분에 실시했다. 이동식 확성기의 경우 차량에 탑재한 게 아니라 아예 땅에다 두고 테스트를 했다. 소리는 바람, 습도, 주변 소음 등 주변의 변수에 따라 들리는 거리가 달라지는데 이러한 매개변수는 아예 입찰제안서에조차 반영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합참은 2016년 1월 소리공학 전문가에게 ‘사운드 마스킹’ 효과에 대해 문의하고도 이를 심리전 작전에 적극 반영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군은 신형 확성기 방송출력을 최대로 하면 낮에는 방송이 10㎞로 개성공단 이상, 밤에는 24㎞로 황해북도 금천군까지 퍼져나가 가까운 북한 군부대는 물론 DMZ 북쪽 민간인 거주지에서까지 들을 수 있다고 내세웠다. 현실에서는 지형적 조건과 기상 환경이 나쁘면 10㎞ 도달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불량 확성기는 최적의 환경에서도 도달 범위가 3㎞에 불과했다. 대북방송은 DMZ 고라니들만 감동시킨다는 비아냥이 나왔던 이유다. 전문가들은 확성기 방송은 대략 4~6㎞ 범위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이 폐쇄적이긴 해도 외부 정보가 아예 차단돼 있지는 않고 있다고 군 정보당국은 판단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보다 오히려 풍선에 담겨 넘어오거나 중국에서 몰래 들여오는 USB 메모리가 더 효과적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남북 간 확성기 방송 전쟁’으로 인한 피해도 적지 않다. 최전방의 군 장병과 접경지 주민들은 밤낮으로 계속되는 확성기 방송 소음공해에 시달리고 있다. 북측은 남측보다 송출력이 약한 약점을 심야 방송으로 메우고 있다. 접경지 주민들은 “확성기를 통한 남북한 소음전쟁이 2년 가까이 지속되는 동안 정부는 접경지 거주민을 방치해왔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7월에는 민통선 지역의 시민·종교단체가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Posted by 경향 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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