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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기자수첩

영웅의 속살을 들여다보니

 경찰이 지난해 여름 수해현장에서 주민을 구하다 숨진 조민수 수경의 사연 조작 의혹과 관련해 10일 전면 재조사에 착수했다고 합니다.

 경찰은 원점에서 재조사해 문제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책임을 묻겠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조 수경의 옛 상관들인 의경 중대장과 경찰서장은 “사연을 조작하지 않았다”고 부인하고 있다고 하네요.

 경찰이나 군인, 소방관 등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일에 뛰어드는 직업군이 사망하면 곧잘 ‘영웅담’이 등장하곤 합니다.
 
 전투기나 헬기 추락사고가 발생하면 신문과 방송 등 언론매체에서 흔히 나오는 제목이 ‘살신성인’입니다. 기체가 추락하는 와중에도 민가쪽이 아닌 야산으로 기수를 돌리려 조종사들이 안간힘을 썼다는 것죠.

 그런데 사실 조종사들이 실제로 기수를 민가가 아닌 쪽으로 돌리려고 했는지는 100% 확인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조종사가 끝까지 조종간을 놓지 않고 있는 경우 민간인의 희생을 피하려고 애쓴 정황이 추정되지만 그렇다고 100% 확실한 증거라고 말하기는 힘듭니다.

 그래도 통상적으로 기자들은 “조종사가 죽는 순간까지 조종간을 놓지 않고 민가를 피했다”고 보도하면서 ‘살신성인’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인색하지 않습니다.

 기자들도 살아 있는 사람들한테는 냉정한 잣대를 들이대지만, 임무 수행 도중 순직한 이들에 대해서는 명예를 높여주는 게 도리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영웅 만들기’의 부작용도 있습니다. 언젠가 본인의 과실로 사고가 일어났지만 부하들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중대장(대위)에 대해서도 기자들은 ‘살신성인’의 표상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이 중대장이 만약 그 사고에서 살아 남았다면 지휘책임을 면치 못하는 것은 물론 부하들을 사망하거나 크게 다치게 한 과실 치사상 혐의로 사법처리됐을 것입니다.(이 중대장의 유족은 언론 보도 내용 등을 거론하면서 군에 상당한 보상을 요구했습니다. 그러자 군 당국은 사건의 실체를 밝히면서 그의 책임 문제를 거론했고, 유족은 발길을 돌렸습니다.)

 또 다른 사례를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꽤 된 얘기지만 해안가 군 휴양소에서 안전관리요원 병사가 수영객을 구하려다 물에 빠젼 숨진 적이 있습니다. 군에서는 이 병사를 일계급 특진 시키고 국립묘지에 안장한 것은 물론 그의 ‘살신성인’을 기리는 기념비까지 사고 현장에 세웠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함정이 하나 숨어 있습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군 당국이 이 병사의 죽음에 책임이 있습니다. 이 병사는 나름대로 수영은 꽤 했지만 인명구호 자격증이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수영객이 물에 빠지자 어떻게 구조해야 하는 지 절차를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채 마음만 급한 상태에서 바다에 뛰어 들었다가 사고를 당했던 것입니다.(한마디로 군에서 “수영 잘하는 병사 손들어 봐” 한 후 주먹구구식으로 안전관리 요원을 뽑았던 것입니다)

 훈련중 병사들이 사망하는 경우도 통상 지휘관이 매뉴얼을 지키지 않아 일어납니다.

 사고가 나면 군 당국이 ‘전가의 보도’처럼 쓰는 것이 사망자의 국립묘지 안장입니다. 유족들도 왠만한 보상과 함께 국립묘지 안장을 보장하면 대부분 군 당국의 제안을 받아 들이곤 합니다.

 기자들도 ‘좋은 게 좋은 거’ 또는 괜히 ‘망자의 명예에 누가 될 수 있다’며 비판적으로 접근하기를 꺼려 했던 것이 이런 사례의 발생에 일조한 게 아니냐는 자책감을 갖기도 합니다.

 이번 의경의 사연 조작 논란을 계기로 언론도 이런 문제에 대한 자성과 성찰이 필요하다고 여겨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