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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기자수첩

엄동설한에 '파리' 날리는 엄사리

우리나라에서는 무슨 일이 터지면 풍수와 연결시키는 것을 좋아한다. 꼭 풍수가 아니더라도 무엇인가와 연계해 해석하고 싶은 속성이 있다.

지난해 3월 천안함 사건이 일어나자 천안함 소속 부대로 평택 원정리에 자리 잡고 있는 해군2함대사령부의 터를 놓고 사람들은 입방아를 찧었다. 일부 동네 주민들은 지금의 부대 자리에 공동묘지가 있었던 것이 마음에 거슬린다며 천안함 침몰과 무슨 연관이 있지 않겠느냐는 식이다.

해군2함대는 1990년대 들어 인천에서 원정리로 이사오면서 연고지 없는 묘지의 유골들은 다 화장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걸 보면 이름 없는 묘지의 주인들이 고마워할 일이지 해코지 할 일이 아니다.
(학창 시절 다니던 학교가 공동묘지 터였다는 얘기 안 들어본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게다가 집 지을 자리가 줄어들면서 서울 시내 한복판에도 화장터에 아파트를 지은 곳도 있다.)

2005년에 연천 총기 난동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28사단 사령부가 경사진 곳으로 이사했기 때문이라고 일부 군인들은 수근거렸다.

심지어 28사단이 ‘태풍 부대’인데 전시가 아닌 평시에는 엉뚱한 태풍이 불었다는 견강부회식 얘기도 나왔다. 결과를 보고 그 원인으로 그럴듯한 무엇인가를 꿰맞추는 식이다.

(지명 이름도 이와 유사하다. 대표적인 곳이 영종도다. 영종(永宗)을 한자로 풀어보면 ‘긴 마루’다. 활주로를 ‘길다란 마루’로 해석하기에 적격이다. 게다가 영종도의 옛 이름은 자연도(紫燕島)다. 제비섬이라는 뜻이다. 영종도 공항을 오르내리는 항공기들을 제비로 해석하면 더더욱 그럴듯하다.

양양공항이 있는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 학포리(鶴浦里)와 호남권 신공항이 자리 잡은 전남 무안군 망운면(望雲面)도 그럴듯하다. 학이 드나드는 항구와 구름을 바라보는 곳이니 공항을 연상시키기에 제격이다.

심지어는 우주발사체를 쏘아 올리는 고흥(高興) 나로우주센터에도 이를 적용한다. 높을 고, 흥할 흥이니 우주발사체가 높은 곳으로 발사된다면 높은 곳에서 흥하는 게 아니냐는 식이다.)

계룡대 3군 본부가 있는 엄사리도 원래는 ‘도깨비 터’로 알려져 있다. 엄사(奄寺)라는 지명도 과거 음절마을을 한자로 바꾼 것이다. 이런 영향 때문인지 엄사리 주변에는 종교 관련 건물들이 유난히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도깨비도 무인(武人)의 기를 당해내지는 못한다. 그런 면에서 계룡대 터는 도깨비까지 제압하는 군인들이 생활하기에 제격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 엄사리에 있는 음식점들이 요즘 엄동설한에 ‘파리’를 날린다고 한다. 김정일 사망으로 사실상 군내 ‘회식 금지’가 이뤄진 탓이다. 예년같으면 송년회다 환송회다 해서 북적북적해야 할 텐데 주요 단골들인 군인 손님들이 발길을 딱 끊었다.(군에서는 ‘대북 경계태세 강화’ 내지는 ‘대비태세 강화’ 얘기만 나오면 일단 회식 금지령으로 받아들인다.)

육·해·공군이 모여있는 계룡대에서는 연말 회식에 쓰려고 아끼고 아껴 모아둔 업무추진비를 반납할 처지에 놓여 있는 부서까지 있는 모양이다. 연말에 근무지를 옮기는 간부들을 위한 환송회식도 취소되고 근무하는 사무실에서 ‘환송 다과’ 행사로 갈음하는 사례도 많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도깨비 터’ 엄사리 음식점들의 매출은 무슨 사건만 터졌다 하면 마치 도깨비 장난처럼 들쭉날쭉이다.(지방 소도시에 가보면 ‘도깨비 시장’이라는 게 있다. 수시간 동안 북적북적한 장터처럼 장사를 하다가 어느 시간이 지나면 순식간에 시장이 문을 닫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아뭏든 상부에서 내려간 경계태세 강화는 역설적으로 군이 ‘김정일 애도기간’이라는 이유로 음주가무를 중단한 꼴이 됐다.
 
이는 엄사리 뿐만 아니라 군부대 주변 상인들의 피해로 고스란히 이어졌다.(일부 군인들은 ‘김정일 사망’을 축하하는 회식자리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상인들 입장에서는 ‘도깨비 놀음’을 빌려서라도 손님들이 북적거리기를 바랄 것이다. 지금 엄사리에는 송구영신을 위한 숨통이 필요한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