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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기자수첩

대북 정보의 속살을 들여다 보니

누군가 자신을 속속들이 들여다 보고 있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요. 아마도 오싹한 공포를 느낄 것입니다.

벌써 10년도 넘은 서기 2000년도에 벌어진 일입니다. 휴대전화의 벨이 울려 받았더니 상대방이 다짜고짜 욕설과 협박성 발언을 일방적으로 퍼붓고 전화를 끊어 버리는 황당한 경우를 당했습니다. 당시 보건복지부 출입기자였던 저는 기사를 통해 의약분업을 둘러싸고 집단 휴진에 나선 의사 집단을 비판했습니다. 일방적인 전화 욕설은 이에 대한 일종의 ‘전화 테러’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상대방은 모르는 게 하나 있었습니다. 저의 전화는 당시로서는 상용되지 않은 송신자 확인이 가능했습니다.
 
지금은 누구나 전화를 건 사람의 번호를 확인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통신회사에서 연구원 등을 포함해 극히 소수의 사람에게만 시험용으로 번호확인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게 했습니다.
 
제 휴대전화는 시험용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전화를 건 사람의 번호를 확인한 후 바로 그 번호를 눌러 전화를 걸었습니다. 전화를 받은 사람의 목소리는 지극히 정상적이고 점잖았습니다.
 
바로 전 전화기를 걸어 욕설을 퍼부은 사람의 목소리로는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전화를 걸었을땐 은닉성을 무기로 자신의 평소 모습과 전혀 다른 ‘헐크’로 변했던 것입니다.

저는 “여보세요. 방금 통화했던 아무개 기자입니다. 저에게 협박을 하시던데 한번 만납시다. 언제가 좋을까요”라고 말을 건넸습니다. 즉시 상대방의 떨리는 목소리가 전화기를 통해 전해져 왔습니다.

그는 “어떻게 제 전화번호를 알고 전화했습니까”라면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내친김에 “(사실은 알지도 못하면서) 어디서 개업하고 있는지도 압니다”라고 눙쳐 말하자 그는 전율을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그 뒤의 상황은 자세히 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그는 상대가 자신을 훤히 들여다 보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 전의를 이미 상실하면서 처분만 기다릴 뿐이었습니다.

이 같은 상황을 연출한 힘은 다름 아닌 ‘정보’였습니다. 저는 사소한 것 같은 상대의 전화번호 하나만 알고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정보가 마치 10개 이상 노출된 것 같은 공포를 느꼈던 것입니다.

정보의 힘은 그만큼 레버리지(지렛대) 효과가 큽니다. 국가정보원이 ‘정보는 국력이다’를 원훈(院訓)으로 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남북관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북한은 자신들이 남쪽에 대해 알고 있는 것보다 남측이 훨씬 많이 북쪽을 들여다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 함부로 준동하지 못합니다. 그 힘은 바로 정보자산에서 나옵니다.

하지만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 당시의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우리 정부가 북한 정보에 훤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한·미 간에 이뤄지고 있는 전시 작전통제권 전환 문제의 핵심 역시 정보입니다. 미국은 수많은 군사위성을 통해 북한 내부를 손바닥 들여다 보듯 하고 있습니다.
 
우리 군은 북한 정보의 많은 부분을 미국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MB 정부는 정권 초기에만 해도 과도한 국방비를 투자하기보다 돈독한 한·미관계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주장하면서 미국의 글로벌 호크 판매 제안을 거절했습니다.(노무현 정부 당시에는 미국이 우리측의 글로벌 호크 판매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그러다가 정권 말기에 접어들면서 뒤늦게 고고도 정찰기인 글로벌 호크를 다시 사겠다고 나섰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글로벌호크의 가격이 두배로 껑충 뛰어 방위사업청은 대안으로 팬텀 아이나 글로벌옵저버를 고려하고 있습니다.

MB 정부가 이처럼 고고도 정찰기와 같은 정보 자산을 획득하는 과정에서도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고, 북한에 대한 휴민트(인적정보) 능력도 시원찮은 것 같아 답답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회 일각에서는 GDP가 남한의 42분의 1 수준에 불과한 북한에 대한 과도한 공포를 드러내고 있습니다.(통계청에 따르면 북한 GDP는 남한의 42분의 1 수준인 24조5970억원입니다.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남한이 2만759달러인 데 비해 북한은 1074달러에 불과해 19.3배의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가 북한군의 움직임을 샅샅이 알 수 있고, 북이 어떤 도발을 하더라도 다중의 대비책이 있다면 남북간 교류도 자신있게 흔쾌히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군 수뇌부는 '북한군 특이 동향이 없다'는 말을 반복하면서 연평 포격과 같은 북한군의 기습 도발 후에는 '북한군이 설마 그렇게까지 나올 지 몰랐다'는 대답을 국회에서 했습니다.
(앞서 수년 전 북한이 핵실험을 했던 날 아침에는 군 정보의 최고 책임자인 국방정보본부장(중장)이 군 골프장에 버젓히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북한의 핵실험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거죠. 그는 나중에 별을 하나 더 달고 육군참모총장이 됩니다.)
 
그러면서 군은 북한에 대한 강경한 응징만이 최고의 해결책인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과연 무엇이 바른 해법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