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마와 숙녀’의 시인 박인환은 사흘간 폭음하다 귀가한 뒤 1956년 3월 20일 저녁 “가슴이 답답하다. 생명수를 다오”라고 외치며 죽어갔다.
박인환 시인이 찾은 생명수의 의미는 무엇이었나. 왠지 멋져 보인 ‘생명수’의 진실은 당시 많은 사람이 애용하던 소화제의 상표 이름이었다. 과음에 시달렸던 시인은 답답한 속을 풀어 줄 약을 찾았던 것이다.
청소년 시절 ‘생명수’라는 표현에 막연히 감동했던 나는 20여 년이 지난 뒤에야 ‘박인환 평전’을 읽고 그것이 상표 이름이라는 것을 알고 난 후 약간은 당황했다.
시인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무조건 멋있을 것이라고 어설프게 생각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에 빠지기 쉬운 것 같다.
한때 세간에 화제가 됐던 ‘린다 김’이라는 여성이 있다. 장삼이사(張三李四)들에게는 국방부장관을 비롯한 군의 고위 간부들을 쥐락펴락했던 여성 로비스트로 각인돼 있다. 검은 선글라스의 강인해 보이는 미모가 그런 인식에 한몫했을 것이다.
당시 언론 보도도 그랬지만 사회의 시각은 군의 전력사업과 관련해 터진 사건을 여성 로비스트 스캔들로 포장한 측면이 다분히 있었다. 그를 로비스트로 부르기 보다 나름대로 능력 있는 무기중개업자로 보는 것이 타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가 남성이었다면 사건은 그토록 확산되지 않았을 것이다.
나중에 저녁 자리에서 그가 털어놓은 에피소드를 듣고 폭소를 터뜨렸다. 당시 한 일간지 1면에 커튼을 살짝 열어보고 있는 자신의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실리자 그와 가족들은 창문 쪽을 지나칠 때면 모두가 ‘낮은 포복’을 한 채 무릎으로 이동했다고 했다.
기자들은 특수 장비를 사용해 커튼 뒤의 사람도 찍을 수 있다고 순진하게 생각했다는 것이다.(커튼 뒤에 있는 그들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힐 리가 없다)
린다 김의 가족은 또 집 앞에서 낮이고 밤이고 가리지 않고 자신들을 일주일 넘게 지키고 있던 젊은 기자들을 오히려 안쓰럽게 여기고 이불과 간식을 전달하기도 했다.
다른 사례를 들어보자. 10년 전 기자를 끔찍이 싫어한 여성이 있었다. 남편이 한국 사회를 흔들었던 게이트에 연루돼 기자들에게 엄청나게 시달린 탓이었다. 심지어 둘째 아이를 출산하기 위해 분만실로 들어가는 그에게 “지금 심정이 어떠냐”고 묻는 기자가 좋게 보일리 만무했다.
나중에 그 여성은 그 기자를 이해했다. 우연한 기회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기자 세계의 애환을 알고 나서였다.
군을 출입하고 나서 한결같이 느끼는 것이 있다. 상당수 군인들의 ‘기자 기피증’이다.
기자들도 군인 못지않게 국가 안보를 걱정하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기자는 군인의 ‘전략적 파트너’다.
그런면에서 누구든지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을 버리고 기자들을 만나보라고 권하고 싶다.(군사기밀도 아닌데 언론에 보도됐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기사의 출처를 조사해 유출자를 처벌하라고 지시하는 수뇌부가 가끔 있다. 참으로 옹졸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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