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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기자수첩

전쟁과 트로트

피카소의 게르니카처럼 상당수 예술 작품이 전쟁을 다루고 있다. 전쟁은 '전쟁문학'이라는 장르를 낳기도 한다.
전쟁의 유산 가운데는 노래도 포함된다. 많은 미군이 참전했던 만큼 미국의 컨트리 음악에는 6·25 한국 전쟁의 흔적이 남아 있다.

당시 컨트리 음악은 한국전에 참전했던 시골 출신 미군들의 감성을 대변하는 측면이 있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전쟁 막바지인 1953년에 발표된 ‘미싱 인 액션’(Missing in Action)이라는 컨트리 송이 있다.


 



‘미싱 인 액션’은 전쟁에서 가족에게 전달하는 ‘실종 통고’를 말한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겠지만 이 노래는 한국전쟁에서 적군의 포로가 돼 잡혀갔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고향에 돌아왔으나 크나큰 아픔을 겪게 되는 한 미군병사에 관한 것이다.

고향으로 돌아온 이 병사는 부인이 다른 남자와 살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충격을 받는다. 부인은 남편이 전쟁에서 실종됐다는 통고를 받고 한참을 슬퍼하다 결국 재혼을 한 것이다. 남편은 끝내 자신의 생존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고향을 떠난다.

‘미싱 인 액션’은 시대는 다르지만 쿠어트 바일(Kurt Weil)의 반전 노래 ‘병사의 아내’(Soldier’s Wife)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집에서 전쟁터에 나간 남편을 기다리고 있는 아내에게 남편의 귀환 소식 대신 과부가 쓰는 검은 베일이 전해진다는 내용 부분이 그렇다.

고향의 여자친구에게서 편지가 오기만을 학수고대하는 미군병사의 이야기를 그린 노래도 있었다. 어니스트 텁(Ernest Tubb)이 1951년에 부른 ‘A  Heartstick on Heartbreak Ridge’이 그것이다. 이 노래는 서글픈 기타 반주와 함께 불려지면서 미군 병사들의 심금을 울렸다.

물론 전쟁의 당사자이면서 피해자였던 우리 국민들의 심금을 울렸던 노래가 없었을 리 없다.

한 병사가 전쟁터에서 고향의 부모님을 애닯게 그리워하는 내용의 ‘전선야곡’(1952년), 전사한 전우들을 애써 모른 채 하고 눈물을 감추며 다시 전쟁터를 향해 전진해야 하는 병사들이 부르는 ‘전우야 잘자라’(1950년) 등이 대표적이다.

 



또 전쟁터에 나간 남편이 돌아오기만을 고대하는 아내의 마음을 읊은 ‘아내의 노래’(1952년), 발을 절며 인민군에 끌려가는 가족의 모습을 그저 바라 볼수밖에 없었던 창자가 끊어질 것 같은 아픔을 회상하는 ‘단장의 미아리고개’(1956년) 등은 민초들의 아픔을 대변했다.

흥미로운 것은 6·25 전쟁을 주제로 한 씩씩하고 우렁찬 노래들은 생명력이 짧았다. 대신 고향과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는 애잔한 곡조의 노래가 사랑을 받았다. 뒤집어 보면 전쟁 노래는 반전의 성격이 짙었다.



1953년 영국군 장교 키스 글래니-스미스가 촬영한 당시 미아리.


현인이 절제미 넘치는 스타카토 창법으로 부른 ‘굳세어라 금순아’(1953년)는 그런 면에서 색다른 노래였다. ‘굳세어라 금순아’는 잿더미 속에서도 피난민들의 희망과 삶의 의지를 심어준 노래였다.

노래에는 역사의 한토막이 녹아 있다. 그러나 전쟁을 노래한 가사가 듣는 사람의 심금을 아무리 울려도 전쟁 자체의 비극과 상처는 너무나 크다. 예년과 달리 신년 댓바람부터 군사관련 뉴스가 자주 등장하는 등 올해도 한반도의 긴장은 높아질 전망이다.

이제 이 땅에서 더 이상의 전쟁 노래는 없어야 한다는 데는 누구라도 공감할 것이다. 전쟁노래는 기성세대의 노래방 마이크에서 나오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보슬비가 소리도 없이 이별 슬픈 부산 정거장. 잘 가세요 잘 있어요 눈물의 기적이 운다. 한 많은 피난살이 설움도 많이 그래도 잊지 못할 판잣집이여. 경상도 사투리의 아가씨가 슬피 우네. 이별의 부산 정거장.”
(남인수의 이별의 부산정거장/195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