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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기자수첩

기무사와 국정원의 애증




과거가 화려했던 사람일수록 과거에 집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무소불위 조직의 ‘단 맛’을 봤던 일부 구성원들도 마찬가지인 것같다.

국정원이 내곡동으로 이사가지 않고 남산에 있었던 국가안전기획부 시절, 근처의 단골 음식점에서 술 한잔 마시고 과거 중앙정보부 시절 ‘무용담’을 늘어 놓는 나이먹은 직원들을 목격한 적이 있다.
그들은 과거 힘쎘던 시절의 행위를 그리워 했지만 대신 당했던 사람 입장에서는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악몽’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20년 전 안기부 사람들 얘기를 꺼낸 것은 최근 인도네시아 특사 사건을 놓고 국가정보원과 국군기무사령부의 알력이 사건 표면화에 한 원인일 것이라는 추측 보도들이 나오는 것을 보고 여러 생각이 떠올라서다.

10여년 전 국방부에 처음 출입했을 때 우연히 알게 된 보안사 출신이 있었다. 그는 가끔 옛날 얘기를 하면서 권총 한자루 허리에 차고 정부 청사의 한 부처를 ‘접수’했던 무용담을 소개하기도 했다. 또 한 간부는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를 ‘접수’했던 시절의 경험담를 전했다.(이는 기무사 간부에게는 무용담이지만 국정원 직원들 입장에서는 총구 앞에서 무릎을 꿇었던 치욕일 수밖에 없다)

국정원과 기무사, 참 묘한 관계인 것 같다. 기무사도 한때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정권을 창출했던 조직이어서 더욱 그렇다.

1979년 10·26 이후 보안사(현 기무사)가 중앙정보부(현 국정원)를 접수하면서 많은 중정요원들이 수모를 당했던 과거의 아픈 기억은 꽤 많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두 기관 사이 관계에 알게 모르게 상당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과 기무사는 2000~2001년에 기무사 이전을 놓고 힘겨루기를 펼쳤다. 기무사가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정원 인근으로 사령부를 이전하려고 하자 국정원이 결사 반대했다.

결국 이 힘겨루기는 기무사가 현재 사령부가 있는 과천쪽으로 이전을 결정하면서 국정원의 승리로 결판이 났지만 그 과정에서 에피소드가 꽤 있었다.

발단은 기무사가 1999년 서울 종로구 경복궁 맞은편에 위치한 사령부(옛 보안사령부)의 낡은 건물을 헐고 내곡동 국정원에서 직선거리로 12.5㎞떨어진 부지로 이전키로 결정하면서 시작됐다.

그러자 국정원은 “정보기관의 밀집은 적의 공격에 취약해지는 등 안보상문제가 있다”는 논리로 기무사의 이전을 끈질기게 반대했고, 기무사는 정보기관끼리 같이 있으면 “‘시너지 효과’가 있다”는 논리 등을 내세웠다.

당시 국정원의 반대 이면에는 또다른 이유가 있었다. 기무사가 이웃이 될 경우 고도가 더 높아 국정원의 원장공관과 주요시설을 파악당할수 있다는 점과 과거 기무사의 전신인 보안사에 접수당했던 ‘피해의식’이 함께 얽힌 감정적 측면이 작용했다는 게 정설이다.

이 과정에서 국정원 고위 관계자는 기무사가 사령부 부지를 확보하기 위해 땅을 팔기를 꺼려하는 지주들을 회유하는 수법을 소개하면서 기무사를 비난했다.

당시 이 고위 관계자는 “기무사 직원들이 땅 주인들을 찾아다니면서 군에 복무중인 자식들이나 친인척들까지 들먹이며 회유했다”고 전했다. 즉 “00 부대에 근무중인 아드님이 군복무 잘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는 “아드님이 0월에 군 입대한다죠”라고 넌지시 말하는 식으로 땅 주인들을 압박했다는 것이다.(기무사는 국정원 고위 간부의 주장을 부인했지만 일부 땅 주인은 처음에 땅 팔기를 강력히 거부했다가 나중에 기무사의 제의를 받아 들였다) 

결국 기무사가 내곡동 인근이 아닌 과천 이전을 결정하면서 양측의 갈등은 봉합됐다. 하지만 두 기관 모두 ‘한때 정권을 좌지우지했다’는 자존심이 묘한 방식으로 표출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현재 두 기관의 위상으로 따지자면 기무사는 제도적으로 국정원에 예속돼 있다고 볼 수 있다.

국정원은 기무사의 정보 활동비를 일부 지원하고 있기 때문에 보안 감사 등의 명분으로 정보를 요구할 수도 있다. 정보예산은 국정원법 제3조2항(기획·조정 업무의 범위·대상·절차)과 대통령령인 ‘정보 및 보안업무 기획조정 규정’에 따라, 국정원장이 편성·감사 권한을 갖고 있는 예산이다.

국정원은 이처럼 모든 정보 예산을 통제하고 있다. 이때문에 기무사가 공작사업을 위해 하는 것 역시 세목별로 국정원에 신청해야 한다. 이는 사실상 국정원이 기무사 예산 승인권을 갖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기무사는 예산을 타서 쓰기 때문에 국정원의 감사도 받아야 한다. 그런만큼 국정원은 기무사 정기 사업예산 감사를 통해 기무사가 하는 일을 속속들이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번 인도네시아 특사 숙소 침입사건이 벌어진 이유 중 하나로 국정원과 국방부간의 불신과 반목이 꼽힌다고 일부 언론들이 보도하고 있다.

국방부와 기무사가 T-50 등 방산물자 수출에 대한 정보를 국정원과 제대로 공유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국정원이 정보 획득을 위해 독자적으로 ‘잠입 작전’을 벌이는 강수를 뒀을 가능성이 크다는 식의 보도다.

국정원도 사건을 무마할 수 있었으나 “국방부 소속 대령이 경찰에 신고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고 국방부에 책임을 돌렸다는 보도도 나왔다.

그러나 MB정부가 들어선 이후 이번 사건 뿐만이 아니라 국정원 요원들의 행위는 엉성하기 짝이 없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국정원 소속 직원의 ‘기무사 직원 사칭 사건’은 대표적 사례 중 하나다.

2009년 9월 국정원 직원은 일본 간사이 국제공항에서 진보 성향의 민간 문화단체인 ‘5인조 노래패’를 사찰하면서 정체가 드러나자 국군기무사령부 요원을 사칭했다. 사진촬영을 하다 붙잡힌 그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내사 중인 노래패 ‘우리나라’의 일본 체류 일정과 동향을 파악하라”는 지시 내용이 담긴 ‘3급 비밀문서’(2장)를 소지하고 있던 사실도 들통냈다.

하지만 당시 실상을 몰랐던 민주노동당과 진보단체 등에서는 기무사를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해 기무사는 난처한 입장에 빠졌다. 그러자 기무사는 “억울하다”며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 등에게 ‘노래패 사건은 기무사와 전혀 상관없다’는 내용 증명을 보내면서 명예훼손 등 법적 대응 방침을 밝히기도 했지만 이후 유야무야됐다.
 
법적 대응을 하다보면 정보기관의 ‘아우’격인 기무사가 ‘형님’격인 국정원을 곤란한 지경에 빠뜨리게 하는 것은 물론 국정원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국정원이 지난해 12월 초 국회 정보위에서 ‘북측이 서해 5도에 대한 공격 명령을 내렸다는 내용을 8월 감청을 통해 파악했다’고 밝힌 것에 대해서도 국정원의 면피성 행위라는 게 국방부와 합참의 시각이다. 당시 ‘SI 첩보’(감청정보)의 해석을 놓고 국정원이 자신들의 입맛대로 사실을 왜곡했다고 국방부와 합참의 고위 간부들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아뭏든 진실 여부를 떠나 기무사 요원들이었다면 어떻게 했을 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한 것은 과거 사례의 예를 보면 멀쩡한 신사복 차림으로 호텔 방을 들어가지는 않았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