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기무사령부가 참여정부 때 노무현 대통령과 당시 윤광웅 국방부 장관의 통화 내용을 감청했다는 시민단체 군인권세터 주장이 나와 파문이 일고 있다. 군인권센터는 지난달 30일 “노 전 대통령과 윤 전 장관이 당시 문재인 민정수석이 맡고 있는 업무에 관해 논의를 했다”며 “장관이 사용하는 군용 유선전화를 통해 감청이 이뤄진 것”이라고 현직 기무사 요원의 제보 내용을 밝혔다.

 

기무사가 대통령과 국방장관 통화 내용을 감청한 것은 불법일까.

우선 기무사 감청이 다 불법은 아니다. 국가 안보에 대한 우려가 있거나 간첩에 대한 수사를 할 때는 고등법원의 감청 영장을 받아 당연히 이뤄진다.

 

수사 목적 외에도 기무사가 군 기관을 무작위 감청한다는 것은 군에서는 하나의 상식처럼 통한다.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른 국가안보 관련 중요사항과 관련한 군내 감청은 법원 영장이 있어야 하는 일반 감청과 다르기 때문이다. 기무사는 4개월마다 한번씩 대통령의 포괄적 승인을 받아 감청을 할 수 있다. 기무사는 이를 빌미로 사실상 무제한 감청을 해왔다.

 

 

국방장관과 국방차관, 합참의장 등 군 고위층 경우에는 24시간 감청 대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대해 기무사는 수사 목적이 아닌 경우 무작위적으로 제한적 감청을 할 뿐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군 고위층이라 하더라도 특정인을 대상으로 지속적인 감청은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믿는 군 인사는 거의 없다.

 

안보문제가 아닌 단순 동향 보고를 위한 영장 없는 감청 혹은 민간인에 대한 정보수집은 불법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무사는 암암리에 군 장성이나 국방부 고위관료 혹은 민간인의 단순 동향 파악도 해왔다는 증언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기무사 감청의 가장 큰 목적은 쿠데타 방지다. 쿠데타(coup d’Etat)는 ‘국가에 대한 일격’이라는 뜻의 프랑스어에서 비롯됐다. 기무사 감청은 쿠데타 가능성을 막기 위한 여러 법적·제도적인 군부 감시 방안 중 하나다.

 

기무사의 쿠데타 방지 임무수행은 징후를 포착해 미리 제거하는 개념에 가깝다. 기무사가 군 주요 지휘관들이 누구를 만나는지, 누구와 통화하는지 등의 동향을 일일이 챙기는 배경으로 내놓는 이유이기도 하다. 군 고위층에 대한 무작위 감청 활동도 여기에 포함된다.

 

그러나 기무사 전신인 보안사 감청은 신군부의 1979년 12·12 군사반란 사태의 빌미를 제공했다. 쿠데타를 막아야 할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쿠데타 수괴로 변신한 것은 보안사 감청의 결과였다. 정승화 당시 육군참모총장이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동해경비사령관으로 내보내려던 계획이 보안사 감청을 통해 새나가면서 위기를 느낀 전두환 사령관이 쿠데타를 주도해 12·12가 일어난 것이다.

 

1993년 3월 취임한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하나회를 정리했다. 취임 11일 만에 육군참모총장과 기무사령관을 전격 경질했다. 12·12 군사반란 연루자의 군복도 벗겼다. 만약 감청 등을 통해 관련 정보가 새나갔다면 군부 쿠데타를 유발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 문민정부 관계자들은 보안사 감청으로 12·12가 일어났던 것을 감안한 전격적인 조치였다고 밝혔다.

 

전화통화하는 송영무 국방장관. 국방부 제공

 

만약 기무사가 노무현 전 대통령과 윤광웅 당시 국방장관 사이의 일상적인 업무 통화를 무작위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감청한 후 내부 이익을 위한 특정 목적에 사용했다면 위법성이 성립될 가능성이 높다게 군 검찰관의 설명이다. 감청 업무 담당자들이 국방장관의 전화 통화를 별도로 감청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면 이 역시 합법이 받아들여지기 힘들다는 게 중론이다. 특히 감청 정보를 보고서로 만들어 문서로 만들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다.

 

기무사는 지난해 11월 말에도 국방부 ‘사이버 댓글사건 조사 태스크 포스(TF)’를 감청해 수사 정보를 미리 파악해 물의를 빚었다. 당시 기무사는 국방부 TF 책임자의 전화 통화를 세차례 감청해 기무사에 압수수색을 나온다는 정보를 미리 파악한 뒤 기무사령관에게 올리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문제는 국방부 TF가 기무사 압수수색을 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업무 수행의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기무사 실무진이 이를 특이동향으로 기무사령관에게 보고해 수사기밀을 누출했다는 점이었다. 당시 군 검찰은 이 사안에 대한 위법사항 조사에 나섰다. 특이사항이 아닌 정상적인 활동내용도 감청 등을 통해 확보한 후 이를 상부에 보고했다면 위법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군 검찰은 한달 후 “(감청 정보를 이용한) 기무사의 추가적인 증거인멸 행위가 확인되지 않았고, 감청 또한 합법적 행위”라는 결론을 내렸다. 기무사가 사이버 댓글공작 TF장의 회선이 아닌 상대방 회선을 합법적으로 감청하던 중 우연히 취득한 정보인 데다 이 같은 정보를 증거인멸이나 수사방해 등에 활용한 정황도 파악되지 않아 문제 삼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도 수사 정보가 기무사 측에 더 많이 새나갔을 가능성과 함께 기무사의 무차별적인 군 전화회선 감청에 대한 통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기무사의 감청 업무가 감청 목적에 부합하게 이뤄지는 지를 지속적으로 감시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였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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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6일 국군기무사령부가 작성한 ‘촛불계엄’(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 관련 문건을 즉각 제출할 것을 국방부에 지시하면서 사건 파장이 커지고 있다. 문 대통령이 지시한 관련 문건에는 기무사 ‘촛불계엄 문건’뿐 아니라 국방부·기무사와 육군본부·수도방위사령부·특전사 등 사이에 오고 간 모든 문서와 보고까지 포함됐다.

특전사 등 관련 부대가 국방부나 기무사와 계엄과 관련해 교신한 흔적이나, 계엄령과 연계해 출동 준비를 했던 사실이 확인될 경우 ‘기무사 문건’ 파장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또 기무사 개혁 현안을 군을 담당하는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아닌 민정수석실이 주도적으로 챙겨왔던 사실도 새로 드러났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기무사 개혁과 관련해 현재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국방부 장관 사이에 이견이 없는 상태”라고 강조했다.

 

이석구 기무사령관, 송영무 국방장관, 조국 민정수석(왼쪽부터)

 

■ ‘왝더독’ 기무사 개혁

 

송영무 장관의 ‘국방개혁 2.0’
기무사 장군 9명→2명 감축
장성 수 줄이기 ‘시범케이스’

 

지난 5일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과 군인권센터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 당시 기무사가 계엄령을 검토한 문건을 공개하면서 기무사 개혁 과제는 사실상 실종됐다. 당초 송영무 국방장관이 계획했던 기무사 개혁안은 특별수사단의 송 장관에 대한 조사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등 계엄령 문건 파문에 묻혀 뒷전으로 밀려난 모양새다. 기무사 개혁이라는 ‘몸통’ 자체가 흔들리는 왝더독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국방부는 당초 국방개혁 2.0의 과제로 2020년까지 군 장성 수를 현재 430여명 중 75명을 줄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면서 국방부 직할부대인 기무사 장성 숫자를 9명에서 2명으로 감축하는 안을 놓고 청와대와 의견 조율을 시도했다.

 

송 장관은 군내 권력기관처럼 돼 있는 기무사의 장군 수 줄이기를 군 장성 숫자 축소의 시범 케이스로 삼으려 한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의 75명 장군 감축계획은 기무사 축소개편과 맞물린 사안이었다.

 

이런 배경에서 송 장관은 기무사의 조직적 반발을 우려해 기무사 개혁안을 후순위로 미루는 듯하면서 단호하게 하겠다는 복안이었다. 국방부 안이 확정될 경우 기무사령관은 소장, 참모장은 준장으로 계급이 한 단계씩 낮아지게 된다. 마찬가지로 육·해·공군 기무부대장과 장성급 기무사 간부들은 계급이 준장에서 대령으로 내려가게 된다.

 

그러나 기무사는 이런 움직임을 일찌감치 간파하고 문재인 대선후보 지지모임을 했던 예비역 등을 앞세워 강력 저지에 나섰던 것으로 알려졌다. 기무사 전·현직 간부 3명 등 군 출신이 12명이나 포함된 기무사 개혁위원회가 지난 5월 출범했다. 위원회는 기무사의 정치개입과 민간인 사찰 등 과거의 잘못된 부분을 제도적으로 막는 게 중요하다는 쪽에 무게를 두면서 사실상 송 장관의 개혁안과는 거리를 뒀다.

 

■ 민정수석실과 기무사

 

민정수석실이 기무개혁 주도
청 “현재 국방부와 이견 없어”

 

기무사 개혁의 청와대 주무부서는 국가안보실이지만, 실제로는 조국 수석이 이끄는 민정수석실이 이를 주도한 것으로 보인다. 민정수석실은 기무사 계엄 문건이 불거진 이후에도 청와대 대응을 주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문 대통령의 계엄 문건과 관련한 두 차례 지시는 모두 민정수석실이 건의한 것”이라며 “조국 수석은 기무사의 계엄령 문건을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기무사 개혁에 누구보다 적극적”이라고 말했다. 육군과 기무사 출신을 배제한 특별수사단도 민정수석실이 문 대통령에게 건의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방부 “지난 4월30일 회의서
임 실장·조 수석에 문건 언급”
청은 “주의 기울일 정도 아냐”

 

국방부는 지난 4월 말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조국 수석 등 청와대 참모진과 기무사 개혁방안을 얘기하는 과정에서 문건의 존재 등을 언급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가안보실에는 개혁방안 등 문건만 보고했다고 설명했다.  

       
국가안보실에는 기무사 개혁방안 문건을 보고만 하고, 실제 난상토론은 민정수석 등과 했다는 것이다.

 

민정수석실에는 군 장교들에 대한 인사검증 등을 이유로 기무사 중령이 근무하고 있다. 그러나 인사검증이 이유라면 인사 전문장교가 파견돼야 마땅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만약 민정수석실이 군 동향 파악을 이유로 기무사 장교를 근무시키고 있다면 전 정권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군 안팎에서는 해·공군 군검사들로 구성돼 이날부터 공식 수사에 들어간 특별수사단이 기무사의 계엄 검토 문건과 관련, 민간인 신분인 송 장관을 참고인으로 조사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특별수사단은 대통령 지시에 의해 만들어진 만큼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수사 상황을 보고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 경우 군 특수단이 국방장관을 건너뛰고 문건 보고의 책임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청와대로 수사 상황을 직보하는 게 맞느냐는 반론이 나온다. 최현수 국방부 대변인은 “특별수사단의 보고체계에 대해서는 마땅한 정보가 없다”고 밝혔다.

 

국방부와 청와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기무사 계엄 문건 보고 여부와 시점을 놓고 여전히 진실게임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해당 문건은 작성된 후 1년 동안 문서철 속에 있다가 지난 3월 기무사 내부 보고를 통해 이석구 기무사령관이 알게 됐다. 3월16일 이 사령관은 송 장관에게 문건의 존재를 보고했다.

 

송 장관이 계엄 문건 공개 등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지 못한 데는 당시 청와대와 정부 내각이 4·27 남북정상회담 준비에 여념이 없었고, 이후에는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어 선거에 영향을 끼칠 것이란 정무적 판단을 했기 때문이라고 국방부는 주장했다.

 

■ 회색지대와 진실게임

 

‘청와대에 보고’ 언론 보도에
이석구 사령관은 강력 부인

 

앞서 청와대는 조국 수석이 해당 문건의 존재를 언론보도를 보고 알았다고 말해 논란을 가중시켰다. 그러나 이날 청와대와 국방부는 기무사 개혁방안을 논의하는 과정에 문건 관련 사항도 있었으나 토론 주제인 기무사 개혁에 집중하느라 주의를 기울일 정도는 아니었다는 결이 다른 해명을 내놓았다.

 

청와대와 국방부에 따르면, 지난 4월30일 임종석 실장, 조국 수석 등이 참여하는 기무사 개혁과 관련한 회의가 있었다. 이날 회의 석상에서 계엄령 문건과 관련된 질의나 토의는 없었다. 다만 국방부는 기무사의 정치개입 사례 중 하나로 ‘촛불계엄’ 검토 문건의 문제점을 언급해 청와대에 설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청와대는 참모진이 문건을 받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방장관이 생각하는 만큼 그 문제를 설명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부분에서 소위 두부 자르듯 할 수 없는 ‘회색지대’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기무사령관이 ‘촛불계엄’ 문건을 청와대에 보고했는지도 논란거리다. 당초 군에서는 이 사령관이 3월16일 오전 송 장관에게 문건을 언급하면서 “청와대 민정에도 보고하겠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기무사는 관련 보도가 나가자 지난 13일 “기무사가 작성한 계엄령 문건은 장관 외에는 보고한 사실이 없다”며 “청와대에 보고하지 않았고 민정수석실에 보고하겠다는 발언을 한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다. 이 부분도 특수단의 수사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사드 보고 누락 사건 떠올라”
군 안팎선 ‘꼬리자르기’ 우려

 

군 안팎에선 벌써부터 “이번 수사도 전 국방장관과 전 기무사령관 등이 꼬리자르기를 한다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고 누락 사건 때처럼 유야무야 처리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군 고위 관계자는 “기무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환골탈태해 방첩·보안기관으로 거듭나겠다고 선언했지만 나중에 보면 조직을 더 탄탄하게 키우며 군내 권력기관으로 살아남았음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기무사가 권력기관으로 행동하지 않는 게 기무개혁인데 청와대가 여전히 기무사를 대통령의 군 통치에 필요한 기관으로 인식해버리면 거기서 기무개혁은 끝나버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Posted by 경향 박성진

# 장면 1

2018년 1월18일 국방부 브리핑룸에서는 출입기자들이 언론보도에 대한 국군기무사령부 조사를 성토하는 일이 벌어졌다. 언론에 보도된 ‘청(靑), 차관과 주요 현안 협의, 송 장관 조기 경질설 파다’ ‘한·미간 키리졸브·독수리 훈련 일정 확정’ ‘한미 연합사령부의 국방부 영내 이전’ 등 3가지 기사에 대한 기무사의 출처 조사에 항의한 것이다.

 

국방부는 이 기사들이 보도됐을 당시 그 내용을 모두 부인했다. 그러나 나중에 청와대가 송영무 장관을 불신한다는 기사는 국방부의 공식 부인으로 봉합됐지만, 한·미 연합훈련 일정과 연합사 이전 기사는 모두 사실로 확인됐다. 기무사가 국방부 출입기자들의 기사 취재 과정을 조사한 사실도 드러났다. “청와대가 차관과 주요 현안을 협의한다”는 언론보도의 경우 서주석 국방차관의 명령으로, 한·미 연합훈련 일정과 연합사의 국방부 영내 이전 보도는 청와대 지시를 받은 국방부 고위간부 명령으로 조사가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에 대해 최현수 국방부 대변인은 “혹시 조율되지 않은 의견들이 나갈 경우 국익을 해치거나 또는 불편한 사항을 만들 경우도 있기 때문에 보도된 내용이 비밀에 해당되지 않더라도 보안성 검토 등과 같은 관련 절차나 승인 없이 무분별하게 보도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군사보안업무 훈령에도 이 부분이 적시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 차원에서 조사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요지는 국방부가 제공하는 보도자료만 보도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국방부의 이 같은 해명과 태도에 대해 기자들은 동의하지 않았다. 보도 내용들이 군사비밀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군 내부에서도 정부가 정치적 부담을 느끼는 사안들에 대해서 기무사를 동원해 취재 경위를 조사하여 언론에 무리하게 재갈을 물리려 한다는 비판이 나올 정도였다. 한·미 연합훈련 일정은 평창 동계올림픽과, 연합사 이전은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의 언급과 관련이 있는 보도들이었다.

 

국방부는 이전에도 정부가 공식 발표하지 않은 사안이 언론에 한 줄이라도 보도되면 기무사를 ‘조자룡 헌 칼 쓰듯’ 여러 차례 동원했다. 그러면서 대변인실을 통하지 않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는 국장급 이상만 가능하다는 국방부 훈령을 근거로 들었다. 취재 자유를 제한하는 이 훈령의 문제점은 10년 넘게 지적돼 오고 있다.

 

# 장면 2

25일 이석구 기무사령관(육군 중장) 등 기무사 간부 600여명은 국립서울현충원 등에서 ‘정치적 중립’ 선포식을 가졌다. 기무사령관 등 장군단은 물에 손을 씻고 자필로 작성한 정치적 중립 준수 서약서에 손을 얹은 뒤 ‘잘못된 관행 개선’ ‘정치적 중립 준수’ ‘오직 국가와 국민에게만 충성하겠다’ 등 기무사의 다짐을 읽어 내려갔다. 전국의 모든 기무부대도 지역 충혼탑 등지에서 같은 시간대 동시에 행사를 진행했다. 기무사 본부와 예하 부대가 동시에 참가해 정치적 중립을 다짐하는 행사를 연 것은 기무사 창설 이후 처음이다.

 

앞서 기무사 출신 장군·대령 22명은 지난해 4월10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대선후보를 지지한다”고 공개선언을 했다. 이들은 회견문에서 “군 최고의 강한 보수 이미지를 가진 국군기무사 지휘관 출신들이 민주진보 진영 대선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건국 이래 최초 사례일 것”이라며 지지 선언의 의미를 설명했다.

 

당시 군 간부들은 이들의 성명 내용에 대해 상당히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서도 이들이 기무사 출신이라는 점에서는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군 정보기관인 기무사의 주요 역할 중 하나가 군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도록 내부를 감시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예비역이라는 이유로 정치권 줄서기에 나섰다는 것이다. 당시 기자회견을 주도한 기무사 출신 예비역 장성은 그 공로로 문재인 정부의 고위직에 취임했다.

 

지난 12일 이 기무사령관은 영화 <신과 함께-죄와 벌>의 김용화 감독과 배우 하정우씨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이 영화에서 저승 삼차사의 리더로 출연한 하정우씨는 군에서 억울한 죽음을 당한 원귀의 한을 풀어주는 연기도 했다. 기무사가 하씨에게 감사패를 준 이유는 그가 영화에서 군대 의문사를 수사하는 과정을 통해 기무사를 빛내고 홍보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무사는 군 의문사 조사와는 관련이 없는 기관이다. 이래저래 현충원 ‘세심 의식’과 함께 과도한 퍼포먼스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기무사는 과거의 과오를 반면교사로 삼아 낡은 관행과 적폐를 청산한다며 조직개편 등을 통해 리모델링에 나섰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기무사는 대부분 국방부 직할부대에서 장군 지휘관이 무더기로 없어진 가운데 유일하게 3성 장군이 지휘관인 부대로 남았다.

 

문재인 정부는 기무사 개혁안의 하나로 기무사의 동향보고를 금지시켰다고 했다. 그러나 기자의 취재원에 대한 과도한 추적은 넓은 의미의 동향보고로 볼 수 있는 사안이다. 기무사는 군사기밀 누출과 관련이 없는 기자의 취재원 조사는 기무사 본연의 업무를 왜곡시킬 수 있다며 ‘수명’(명령을 받아들인다는 기무사 용어)하지 말았어야 했다. 결국 기자들의 항의가 잇따르자 국방부는 기무사의 조사를 중단시켰다. 늦었지만 당연한 조치다.

 

정부는 국가 이익을 위해 비밀리에 조율한다는 핑계로 특정 사안을 정권 편의주의적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잦다. 박근혜 정부가 일본 정부와 맺어 후유증이 심각한 위안부 합의가 대표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 사안을 취재·보도해 국민들에게 전달하는 것은 사회의 ‘감시견’인 기자의 역할이다. 기무사 역시 스스로의 역할이 오지랖 넓게 이것저것 다 들여다보는 게 아님을 알아야 한다. 군사기밀 보호와 방첩 등 본연의 업무가 아닌 상부의 명령이라면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국민을 명령권자로 섬기는 진정한 ‘기무사의 다짐’, 즉 ‘DSC(기무사령부 영문 약자) Promise’는 멀리 있는 게 아니다. 국민은 충신을 토사구팽하지 않는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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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정국이 혼란스러워지면 시사잡지에 군부 동향에 대한 기사가 곧잘 오르내렸다. 야당 등 정치권에서 정세 분석을 할 때도 군부 동향을 눈여겨봤다. 군사독재정권이 종지부를 찍은 이후에도 상당 기간은 군부가 한국 정치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집단으로 꼽혔다. 그랬던 한국 군부는 이제 쿠데타와는 거리가 멀고 군 본연의 임무에만 전념하는 안보 전문가 집단으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쿠데타(coup d’Etat)는 ‘국가에 대한 일격’이라는 뜻의 프랑스어에서 비롯됐다. 당연히 국민에게 주권이 있는 민주군대와 쿠데타는 양립할 수 없는 개념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한국군에는 쿠데타를 막기 위한 장치가 여러겹 있다.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 대통령은 쿠데타 가능성을 막기 위해 일찌감치 법적·제도적으로 군부에 대한 감시 울타리를 여러겹 쳐놓았다. 국군기무사령부의 감청도 이 중 하나다.

 

기무사의 핵심 임무는 대전복(對顚覆) 활동이다. 쿠데타 방지 활동이라는 의미다. 기무사의 대전복 임무수행은 전복 위협을 찾아서 제거하는 차원보다는 전복 징후를 포착해 미리 제거하는 개념에 가깝다. 미리 관리해 전복 위협요소가 발생할 수 있는 환경 자체가 만들어질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기무사가 군 주요 지휘관들이 누구를 만나는지, 누구와 통화하는지 등의 동향을 일일이 챙기는 배경으로 내놓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기무사 전신인 보안사의 감청은 신군부의 1979년 12·12 군사반란 사태의 빌미를 제공했다. 쿠데타를 막아야 할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쿠데타 수괴로 변신한 것은 보안사 감청의 결과였다. 정승화 당시 육군참모총장이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동해경비사령관으로 내보내려던 계획이 보안사 감청을 통해 새나가면서 위기를 느낀 전두환 사령관이 쿠데타를 주도해 12·12가 일어난 것이다.

 

1993년 3월 취임한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하나회를 정리했다. 취임 11일 만에 육군참모총장과 기무사령관을 전격 경질했다. 12·12 군사반란 연루자의 군복도 벗겼다. 만약 감청 등을 통해 관련 정보가 새나갔다면 군부 쿠데타를 유발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 문민정부 관계자들은 보안사 감청으로 12·12가 일어났던 것을 감안한 전격적인 조치였다고 밝혔다. 이후 한국 군부의 쿠데타는 과거완료형 상태다.

 

최근 기무사가 국방부 ‘사이버 댓글사건 조사 태스크 포스(TF)’를 감청해 수사 정보를 미리 파악한 사실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기무사는 지난 11월 말 TF의 유선전화를 감청해 국방부 TF가 기무사에 압수수색을 나온다는 정보를 미리 파악한 뒤 기무사령관에게 올리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기무사는 국방부 TF가 압수수색을 위해 수사관들을 여러 곳에서 차출하는 과정에서 이뤄진 전화를 감청했다고 한다. 기무사가 군 기관 여기저기를 무작위로 감청한다는 것은 군에서는 하나의 상식처럼 통한다. 군내 감청은 법원 영장이 있어야 하는 일반 감청과 달리 4개월마다 한번씩 대통령의 포괄적 승인을 받아 이뤄질 수 있는 것을 빌미로 기무사가 사실상 무제한 감청을 해왔기 때문이다. 이는 기무사의 국방부 TF 감청 역시 일상적 업무로 볼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배경에서 수사팀이 기무사 압수수색과 관련한 사항을 유선전화로 논의했다는 것 자체가 스스로 수사 기밀을 노출시킨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일각에서는 비판한다. 한마디로 아마추어 수사라는 것이다.

 

여하튼 문제는 국방부 TF가 기무사 압수수색을 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업무 수행의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기무사 실무진이 이를 특이동향으로 기무사령관에게 보고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TF 관계자는 “우리도 이 문제에 대해 부적절하다고 보는데 위법사항이 있는지 조사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조사과정에서 기무사령관에게 보내는 보고서 외에 국방부 TF의 다른 정상적인 활동내용도 감청 등을 통해 확보한 후 이를 상부에 보고했다면 파장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기무사의 국방부 TF 감청은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와 비교했을 때 군 댓글 공작에 대한 군의 수사가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한 채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터졌다. 2008년 창설된 기무사 스파르타 부대는 사이버사 창설 전 댓글부대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국방부 TF의 중간 수사결과 발표는 언론에서 이미 보도한 사안들을 확인하는 정도였다.

 

군 외부에서는 국방부가 지금껏 자체조사를 통해 검찰 등에 제대로 된 수사의뢰를 한 적도 없고,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는 의심을 하고 있던 터였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23일 국회에서 김관진 전 장관의 석방에 대해 “참 다행이다”라고 말한 것을 놓고도 송 장관이 사실상 부하들에게 김관진 전 장관의 연루에 대한 수사는 하지 말라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사안이라고 성토했다. 이에 대해 송 장관 측은 “단지 인간적인 소회를 얘기한 것으로 국방부 TF에도 누구 눈치볼 것 없이 적폐청산 수사를 소신껏 할 것을 지시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군 외부에서는 군이 정치개입 의혹 규명에 여전히 미온적이라는 비판을 거두지 않고 있다.

 

국방부 TF 구성원들이 과거 동료들을 조사하는 것에 부담을 느껴 소극적인 게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이에 대해 국방부 TF의 한 관계자는 “과거에 덮었던 사건을 포렌식을 통해 일일이 복원해 확인하는 것은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며 “외부의 수사미진 운운은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고 하소연했다. 나아가서 관련 PC를 폐기처분했으면 국방부 TF의 수사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말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김관진 전 장관이 구속적부심을 통해 풀려나자 외부에서 엉뚱하게 군에 화살을 돌리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실제로 군 댓글사건 수사가 결정적인 ‘한방’이 나오지 않자 수사 물꼬를 엉뚱한 쪽으로 돌리는 게 아니냐는 경고음도 나오고 있다. 자칫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왝더독’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국방부는 이 같은 논란 속에서 TF 활동 기간을 3개월 연장했다. 수사결과가 왝더독이 될지 본질의 핵심을 꿰뚫을지 두고 볼 일이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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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기무사령부 5층 복도에는 역대 사령관의 사진이 줄줄이 걸려 있다. 기무사가 과천으로 이전하기 전 서울 소격동 청사 본관 1층 회의실에 있던 사진들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여기에 과천으로 옮긴 후 취임한 사령관들 사진이 더해졌다.

 

역대 사령관 사진 중 제16대 보안사령관을 지낸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것은 없다. 비록 독재자였지만 군 통수권자였던 박정희 전 대통령을 시해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대법원이 반란수괴, 내란 목적 살인 등을 저지른 것으로 판결한 전두환(20대 사령관)·노태우(21대) 전 대통령의 사진은 나란히 걸려 있다. 기무사의 부대 이념인 ‘자유 대한민국 수호’와는 거리가 멀었던 사령관들을 지금도 예우하고 있는 것이다.

 

1979년 등장한 신군부의 쿠데타는 보안사령부를 주축으로 이뤄졌다. 1980년대 말 민주화 이후엔 불법 정치사찰 파문 등으로 나라를 뒤흔들었다. 군사정부 시절 보안사가 절대권력이자 공포와 억압 정치의 상징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일반 국민들의 눈에는 이 쿠데타 주역들의 사진이 정상적으로 보이기 힘들다. 과거 영화를 그리워하는 게 아니냐는 불편한 시선도 있는 것이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역대 사령관 사진에서는 부부 사기사건으로 물의를 빚은 장영자씨의 남편 이철희씨(11대 사령관·육군방첩부대장), 전역 후 사학비리를 일삼다 구속된 백인엽씨(2대 사령관·특무부대장) 등은 물론 일본군 헌병 오장 출신으로 김구 선생 암살범 안두희의 배후로 거론되는 친일파 김창룡씨(5대 사령관·특무부대장) 등도 볼 수 있다. 심지어 김창룡씨 시신은 ‘1998년 특무부대의 후신인 국군기무사령부의 노력으로 대전 국립묘지로 이장되었다’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밝히고 있다.

 

기무사는 일반 시민들이 보는 사진도 아니고 부대원들이 보는 것인데 왜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느냐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기무사의 역사인식은 조직의 논리가 우선한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일선 야전부대 사령부 복도에 걸린 역대 부대장 사진도 기무사령부와 마찬가지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거쳐간 부대의 역대 부대장 사진들 속에서는 봉황 문양이 붙은 이들의 사진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들과 함께 쿠데타를 주도했던 멤버들의 사진도 다 걸려 있다.

 

반면 육군 6사단장과 3군단장을 지냈던 김재규 전 중정 부장은 그가 거쳤던 부대의 역대 부대장 사진에서 빠져 있다. 3군단장으로 취임한 한 3성 장군이 “김재규 전 군단장의 사진도 걸어야 하지 않느냐”고 했다가 요주의 인물로 상부에 보고됐다는 말도 있다.

과거 국가반란과 각종 비리 등으로 물의를 빚었던 자들이라면 추앙의 의미가 있는 사진을 빼고 그 자리에 이름과 재임 시기만 적어 놓으면 될 것이다. 잘못된 과거사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는 의미에서도 그렇다. 그렇지 않고 단순한 기록의 의미라면 군은 김 전 중정 부장의 사진도 걸어야 할 것이다.

 

두 전직 대통령의 사진은 걸리고, 김 전 중정 부장이 빠진 이유를 알아보려 했지만, 구체적으로는 잘 모른다는 대답들이 돌아왔다. 그러면서도 그 배경에는 과거 보안사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얘기하는 군인들이 꽤 많다. 막연한 추측이지만 과거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던 보안사를 들먹이는 것이 가장 비슷한 대답일 수 있다고 여기는 듯했다.

 

기무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개혁의 대상으로 입방아에 오르내린다. 어찌 보면 거의 ‘동네북’ 수준이다.

 

정권 입장에서도 기무사는 개혁성을 강조하는 카드로 활용하기에 최상이다. 국민들에게는 아직도 과거의 부정적인 인식이 큰 데다, 군 내부에서도 군림하는 기관이라는 인식이 크기 때문이다. 그만큼 개혁 이미지를 홍보하는 데 ‘가성비’가 높은 조직이 기무사다.

 

이에 부응이라도 하듯 기무사는 여러 정권을 거치면서 ‘어깨 힘’을 상당히 빼낸 것도 사실이다. 바뀌는 시대환경에 맞춰 스스로 자정의 노력을 해왔고, 부정적 시각을 털어내려고 꾸준히 애써 왔다는 평가도 받았다. 그런데도 기무사에 대한 시각은 여전히 우호적이지는 않다. 왜일까.

 

기무사의 법적 근거는 “군사상 필요할 때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부 장관의 지휘·감독하에 합동부대와 기타 필요한 기관을 둘 수 있다”고 규정한 국군조직법 제2조 제3항이다. 이는 대통령령으로 폐지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대통령이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문을 닫게 할 수 있는 취약한 구조라는 뜻이기도 하다. 반면 대통령이 군 통수권자로서 기무사를 친위부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애초부터 관계 법령을 만들었다는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기무사 전신인 1950~1960년대 육군 특무부대 및 방첩 부대원들은 조선시대 암행어사가 차던 마패와 유사한 공무집행 메달을 지니고 다녔다. 이 메달에는 ‘본 메달 소지자는 시기, 장소를 불문하고 행동의 제한을 받지 않음’이란 문구가 적혀 있었으니 그 위상을 짐작할 만하다.

 

군내 기무사의 위상은 대통령 독대 보고를 하게 되면 급상승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사라졌던 기무사령관 대통령 독대는 이명박 정부에서 부활했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후반기에는 기무사령관의 독대가 이뤄졌다.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 독대를 없애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기무사의 활동 범위를 재조정하는 조직 개편이 이뤄질 것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기무사 위상이 낮아질 것이라고 보는 군 간부들은 많지 않다. 당장 국방부 청사를 들어서면 VIP층이라고 할 수 있는 2층에는 국방장관실과 국방차관실, 그리고 국방부를 담당하는 기무사 100부대장실이 있다. 부대장 계급은 준장이지만, 그 위치만으로 국방부 내에서의 위상을 읽을 수 있다. 국방부 공무원들이 한때 정부 행정부처인 국방부 청사 내에서 군 부대인 기무부대가 철수할 것을 요청하기도 했지만 요지부동이다. 쿠데타 주도자들의 사진을 여전히 걸어놓고 정보·보안 부대답지 않게 사무실 위치부터 군림하는 모습으로 비치는 한 기무사 개혁은 요원하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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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가 국군기무사령부의 기능을 대폭 조정하는 고강도 개혁안을 마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기무사 구성원들은 의외로 담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 반복되는 일이라 새삼스럽지 않다는 식이다. ‘동네북 신세’라는 불만도 없지는 않다.

 

사실 정권 입장에서 기무사는 개혁성을 강조하는 카드로 활용하기에 최상이다. 국민들에게는 아직도 과거의 부정적인 인식이 큰데다, 군 내부에서도 군림하는 기관이라는 인식이 크기 때문이다. 그만큼 개혁 이미지를 홍보하는데 ‘가성비’가 높은 조직이 기무사다.

 

1950~1960년대 기무부대 전신인 특무부대 및 방첩부대원들이 사용했던 ‘공무집행 메달’. ‘본 메달 소지자는 시기 장소를 불문하고 행동의 제한을 받지 않음’이란 문구가 적혀 있다. 왼쪽 2개는 1950년대 사용하던 공무집행 메달, 오른쪽 2개는 무장간첩 일당의 위조품.

기무사의 법적 근거는 국군조직법 제2조 제3항 “군사상 필요할 때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부장관의 지휘·감독하에 합동부대와 기타 필요한 기관을 둘 수 있다”로 돼 있다. 이는 대통령령으로 폐지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대통령이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문을 닫게 할 수 있는 취약한 구조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만큼 기무사는 여러 정권을 거치면서 ‘어깨 힘’을 상당히 빼낸 것은 사실이다. 바뀌는 시대환경에 맞춰 스스로 자정의 노력을 해왔고, 부정적 시각을 털어내려고 꾸준히 애써 왔다는 평가도 받았다. 또 군 간부들에 대한 동향 보고는 지휘관들의 전횡을 막는 안전 장치 역할의 순기능도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그런데도 기무사에 대한 시각은 여전히 우호적이지는 않다. 왜일까.

 

과거 국군기무사령부의 전신인 국군보안사령부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다. 군사 쿠테타로 정권을 잡은 대통령 2명이 보안사령관 출신이다. 이후 문민정부가 출범하자 기무사는 과거의 반성 위해 새로운 기무를 건설하겠다고 나섰다. 문제는 아직도 진정성을 의심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데 있다.

 

한 사례를 보자. 기무사가 과천으로 이전하기 전 소격동 청사 본관 1층 대회의실에는 역대 기무사령관의 사진이 줄줄이 걸려 있었다. 대회의실 벽에 걸린 사진 배열은 기무사가 과천 청사로 이전한 이후에도 여전하다.

 

이들 역대 사령관 사진 속에서 제16대 보안사령관을 지내고 박정희 전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은 없다. 비록 독재자였지만 군 통수권자였던 박 대통령을 살해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대법원이 반란 수괴, 내란 목적 살인 등을 저지른 것으로 판결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20대 사령관)과 노태우 전 대통령(21대 사령관)의 사진은 나란히 걸려 있다. 기무사의 부대이념인 ‘자유 대한민국 수호’와는 거리가 먼 사령관을 지금도 예우하고 있는 것이다.

 

1979년 등장한 신군부의 쿠데타는 보안사를 주축으로 이뤄졌다. 1980년대 말 민주화 이후엔 불법 정치사찰 파문 등으로 온 나라를 뒤흔들었다. 이처럼 군사정부 시절 보안사령부가 ‘절대권력’이자 공포와 억압정치의 상징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일반 국민들의 눈에는 이들의 사진이 정상적으로 비춰지기 힘들다. 이들의 사진에서 과거의 영화를 그리워하는게 아니냐는 불편한 시선도 있는 것이다.

 

이밖에 부부사기 사건으로 물의를 빚은 장영자씨의 남편 이철희씨(11대 사령관·육군방첩부대장), 전역후 사학비리를 일삼다 구속된 백인엽씨(2대 사령관·특무부대장) 등은 물론 일본군 헌병 오장 출신으로 김구 선생 암살범 안두희의 배후로 거론되는 친일파 김창룡씨(5대 사령관·특무부대장) 등의 사진도 걸려 있다. 심지어 김창룡씨 시신은 ‘1998년 특무부대의 후신인 국군기무사령부의 노력으로 대전 국립묘지로 이장되었다’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밝히고 있다.

 

역대 사령관 사진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기무사의 역사인식은 조직의 논리가 우선한다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만약 기무사가 부끄러운 역사도 역사로서 의미가 있다는 논리를 펴겠다면 김재규 전 사령관의 사진도 함께 내걸어야 하는 게 사리에 맞다.

 

기무 부대가

일반인에겐 낯선 ‘기무’라는 명칭은 조선말기 고종이 국정을 총괄하기 위해 설치한 ‘통리기무아문’(通理機務衙門)과 갑오개혁(1894) 당시 정치·군사에 관한 일체의 사무를 맡아보던 ‘군국기무처’(軍國機務處)에서 가져온 용어다. 기무사는 “국가안보와 군의 발전을 위해 중요하고 기밀한 업무를 행하는 부대고유의 임무·기능의 함축성 있는 표현”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기무사 홈페이지에서 밝히고 있는 ‘중요하고도 기밀한 정무(政務) 등의 의미’라는 기무의 영역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쉽게 알기 어렵다. 자칫 뭐든지 가능하다는 의미로도 읽힐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기무사의 상징도 아전인수격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기무사의 상징은 호랑이다. 기무사는 호랑이가 산중의 왕으로서 용맹과 위엄을 갖추고 있으며, 수호신의 의미와 함께 ‘절대충성의 정신을 상징’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군림과 공포의 이미지도 함께 갖고 있는 호랑이가 정보기관의 상징에 맞는지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기무사의 위상은 대통령 독대 보고를 할 수 있는 지 여부에 달려 있다. 노무현 정부에서 사라졌던 기무사령관 대통령 독대는 이명박 정부에서 부활했다. 군 당국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전 정권 수혜자 명부’와 같은 살생부를 만든 기무사에 의한 군 간부 숙청설이 나도는 등 그만큼 부작용은 많았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후반기에는 기무사령관의 독대가 이뤄졌다. 기무사가 고위 장성 인사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고, 여기에는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지만, 기무사는 “사실이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 독대를 없앴다.

 

기무사도 고민이 많다. 위상이 예전만 못해지면서 엄격한 테스트를 거쳐 선발했던 우수 자원 확보가 예전과 달리 쉽지 않아졌다. 과거 기무사(보안사)는 우수한 장교들이 많았던 만큼 이들이 영관장교 시절 기무사를 떠난 이후에도 실력을 발휘해 군 고위층으로 진출한 사례가 많았다. 김장수 주 중국대사(전 국방장관·청와대 안보실장)와 신현돈 전 육군대장 등이 대표적 사례다. 이들 외에도 군단장이나 사단장으로 진출한 장군들이 다수 있다. 그러나 기무사령관이나 기무사 장군 출신의 정치권 진출에는 부정적 시각이 다수다. 기무사 조직 자체가 군의 정치적 중립 위반 사례를 감시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기무사의 주특기는 역시 간첩 검거다. 기무사는 건국 이래 붙잡힌 간첩 4500여 명 가운데 43%를 검거했다. 첨단 방산기술의 유출과 사이버 테러 등 국익과 직결되는 안보위협에도 주력하고 있다.

 

박성진 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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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가 화려했던 사람일수록 과거에 집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무소불위 조직의 ‘단 맛’을 봤던 일부 구성원들도 마찬가지인 것같다.

국정원이 내곡동으로 이사가지 않고 남산에 있었던 국가안전기획부 시절, 근처의 단골 음식점에서 술 한잔 마시고 과거 중앙정보부 시절 ‘무용담’을 늘어 놓는 나이먹은 직원들을 목격한 적이 있다.
그들은 과거 힘쎘던 시절의 행위를 그리워 했지만 대신 당했던 사람 입장에서는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악몽’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20년 전 안기부 사람들 얘기를 꺼낸 것은 최근 인도네시아 특사 사건을 놓고 국가정보원과 국군기무사령부의 알력이 사건 표면화에 한 원인일 것이라는 추측 보도들이 나오는 것을 보고 여러 생각이 떠올라서다.

10여년 전 국방부에 처음 출입했을 때 우연히 알게 된 보안사 출신이 있었다. 그는 가끔 옛날 얘기를 하면서 권총 한자루 허리에 차고 정부 청사의 한 부처를 ‘접수’했던 무용담을 소개하기도 했다. 또 한 간부는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를 ‘접수’했던 시절의 경험담를 전했다.(이는 기무사 간부에게는 무용담이지만 국정원 직원들 입장에서는 총구 앞에서 무릎을 꿇었던 치욕일 수밖에 없다)

국정원과 기무사, 참 묘한 관계인 것 같다. 기무사도 한때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정권을 창출했던 조직이어서 더욱 그렇다.

1979년 10·26 이후 보안사(현 기무사)가 중앙정보부(현 국정원)를 접수하면서 많은 중정요원들이 수모를 당했던 과거의 아픈 기억은 꽤 많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두 기관 사이 관계에 알게 모르게 상당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과 기무사는 2000~2001년에 기무사 이전을 놓고 힘겨루기를 펼쳤다. 기무사가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정원 인근으로 사령부를 이전하려고 하자 국정원이 결사 반대했다.

결국 이 힘겨루기는 기무사가 현재 사령부가 있는 과천쪽으로 이전을 결정하면서 국정원의 승리로 결판이 났지만 그 과정에서 에피소드가 꽤 있었다.

발단은 기무사가 1999년 서울 종로구 경복궁 맞은편에 위치한 사령부(옛 보안사령부)의 낡은 건물을 헐고 내곡동 국정원에서 직선거리로 12.5㎞떨어진 부지로 이전키로 결정하면서 시작됐다.

그러자 국정원은 “정보기관의 밀집은 적의 공격에 취약해지는 등 안보상문제가 있다”는 논리로 기무사의 이전을 끈질기게 반대했고, 기무사는 정보기관끼리 같이 있으면 “‘시너지 효과’가 있다”는 논리 등을 내세웠다.

당시 국정원의 반대 이면에는 또다른 이유가 있었다. 기무사가 이웃이 될 경우 고도가 더 높아 국정원의 원장공관과 주요시설을 파악당할수 있다는 점과 과거 기무사의 전신인 보안사에 접수당했던 ‘피해의식’이 함께 얽힌 감정적 측면이 작용했다는 게 정설이다.

이 과정에서 국정원 고위 관계자는 기무사가 사령부 부지를 확보하기 위해 땅을 팔기를 꺼려하는 지주들을 회유하는 수법을 소개하면서 기무사를 비난했다.

당시 이 고위 관계자는 “기무사 직원들이 땅 주인들을 찾아다니면서 군에 복무중인 자식들이나 친인척들까지 들먹이며 회유했다”고 전했다. 즉 “00 부대에 근무중인 아드님이 군복무 잘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는 “아드님이 0월에 군 입대한다죠”라고 넌지시 말하는 식으로 땅 주인들을 압박했다는 것이다.(기무사는 국정원 고위 간부의 주장을 부인했지만 일부 땅 주인은 처음에 땅 팔기를 강력히 거부했다가 나중에 기무사의 제의를 받아 들였다) 

결국 기무사가 내곡동 인근이 아닌 과천 이전을 결정하면서 양측의 갈등은 봉합됐다. 하지만 두 기관 모두 ‘한때 정권을 좌지우지했다’는 자존심이 묘한 방식으로 표출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현재 두 기관의 위상으로 따지자면 기무사는 제도적으로 국정원에 예속돼 있다고 볼 수 있다.

국정원은 기무사의 정보 활동비를 일부 지원하고 있기 때문에 보안 감사 등의 명분으로 정보를 요구할 수도 있다. 정보예산은 국정원법 제3조2항(기획·조정 업무의 범위·대상·절차)과 대통령령인 ‘정보 및 보안업무 기획조정 규정’에 따라, 국정원장이 편성·감사 권한을 갖고 있는 예산이다.

국정원은 이처럼 모든 정보 예산을 통제하고 있다. 이때문에 기무사가 공작사업을 위해 하는 것 역시 세목별로 국정원에 신청해야 한다. 이는 사실상 국정원이 기무사 예산 승인권을 갖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기무사는 예산을 타서 쓰기 때문에 국정원의 감사도 받아야 한다. 그런만큼 국정원은 기무사 정기 사업예산 감사를 통해 기무사가 하는 일을 속속들이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번 인도네시아 특사 숙소 침입사건이 벌어진 이유 중 하나로 국정원과 국방부간의 불신과 반목이 꼽힌다고 일부 언론들이 보도하고 있다.

국방부와 기무사가 T-50 등 방산물자 수출에 대한 정보를 국정원과 제대로 공유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국정원이 정보 획득을 위해 독자적으로 ‘잠입 작전’을 벌이는 강수를 뒀을 가능성이 크다는 식의 보도다.

국정원도 사건을 무마할 수 있었으나 “국방부 소속 대령이 경찰에 신고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고 국방부에 책임을 돌렸다는 보도도 나왔다.

그러나 MB정부가 들어선 이후 이번 사건 뿐만이 아니라 국정원 요원들의 행위는 엉성하기 짝이 없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국정원 소속 직원의 ‘기무사 직원 사칭 사건’은 대표적 사례 중 하나다.

2009년 9월 국정원 직원은 일본 간사이 국제공항에서 진보 성향의 민간 문화단체인 ‘5인조 노래패’를 사찰하면서 정체가 드러나자 국군기무사령부 요원을 사칭했다. 사진촬영을 하다 붙잡힌 그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내사 중인 노래패 ‘우리나라’의 일본 체류 일정과 동향을 파악하라”는 지시 내용이 담긴 ‘3급 비밀문서’(2장)를 소지하고 있던 사실도 들통냈다.

하지만 당시 실상을 몰랐던 민주노동당과 진보단체 등에서는 기무사를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해 기무사는 난처한 입장에 빠졌다. 그러자 기무사는 “억울하다”며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 등에게 ‘노래패 사건은 기무사와 전혀 상관없다’는 내용 증명을 보내면서 명예훼손 등 법적 대응 방침을 밝히기도 했지만 이후 유야무야됐다.
 
법적 대응을 하다보면 정보기관의 ‘아우’격인 기무사가 ‘형님’격인 국정원을 곤란한 지경에 빠뜨리게 하는 것은 물론 국정원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국정원이 지난해 12월 초 국회 정보위에서 ‘북측이 서해 5도에 대한 공격 명령을 내렸다는 내용을 8월 감청을 통해 파악했다’고 밝힌 것에 대해서도 국정원의 면피성 행위라는 게 국방부와 합참의 시각이다. 당시 ‘SI 첩보’(감청정보)의 해석을 놓고 국정원이 자신들의 입맛대로 사실을 왜곡했다고 국방부와 합참의 고위 간부들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아뭏든 진실 여부를 떠나 기무사 요원들이었다면 어떻게 했을 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한 것은 과거 사례의 예를 보면 멀쩡한 신사복 차림으로 호텔 방을 들어가지는 않았을 것 같다.

Posted by 경향 박성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