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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 코멘터리

기무사령부 김재규·전두환·노태우의 사진

국군기무사령부 5층 복도에는 역대 사령관의 사진이 줄줄이 걸려 있다. 기무사가 과천으로 이전하기 전 서울 소격동 청사 본관 1층 회의실에 있던 사진들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여기에 과천으로 옮긴 후 취임한 사령관들 사진이 더해졌다.

 

역대 사령관 사진 중 제16대 보안사령관을 지낸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것은 없다. 비록 독재자였지만 군 통수권자였던 박정희 전 대통령을 시해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대법원이 반란수괴, 내란 목적 살인 등을 저지른 것으로 판결한 전두환(20대 사령관)·노태우(21대) 전 대통령의 사진은 나란히 걸려 있다. 기무사의 부대 이념인 ‘자유 대한민국 수호’와는 거리가 멀었던 사령관들을 지금도 예우하고 있는 것이다.

 

1979년 등장한 신군부의 쿠데타는 보안사령부를 주축으로 이뤄졌다. 1980년대 말 민주화 이후엔 불법 정치사찰 파문 등으로 나라를 뒤흔들었다. 군사정부 시절 보안사가 절대권력이자 공포와 억압 정치의 상징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일반 국민들의 눈에는 이 쿠데타 주역들의 사진이 정상적으로 보이기 힘들다. 과거 영화를 그리워하는 게 아니냐는 불편한 시선도 있는 것이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역대 사령관 사진에서는 부부 사기사건으로 물의를 빚은 장영자씨의 남편 이철희씨(11대 사령관·육군방첩부대장), 전역 후 사학비리를 일삼다 구속된 백인엽씨(2대 사령관·특무부대장) 등은 물론 일본군 헌병 오장 출신으로 김구 선생 암살범 안두희의 배후로 거론되는 친일파 김창룡씨(5대 사령관·특무부대장) 등도 볼 수 있다. 심지어 김창룡씨 시신은 ‘1998년 특무부대의 후신인 국군기무사령부의 노력으로 대전 국립묘지로 이장되었다’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밝히고 있다.

 

기무사는 일반 시민들이 보는 사진도 아니고 부대원들이 보는 것인데 왜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느냐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기무사의 역사인식은 조직의 논리가 우선한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일선 야전부대 사령부 복도에 걸린 역대 부대장 사진도 기무사령부와 마찬가지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거쳐간 부대의 역대 부대장 사진들 속에서는 봉황 문양이 붙은 이들의 사진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들과 함께 쿠데타를 주도했던 멤버들의 사진도 다 걸려 있다.

 

반면 육군 6사단장과 3군단장을 지냈던 김재규 전 중정 부장은 그가 거쳤던 부대의 역대 부대장 사진에서 빠져 있다. 3군단장으로 취임한 한 3성 장군이 “김재규 전 군단장의 사진도 걸어야 하지 않느냐”고 했다가 요주의 인물로 상부에 보고됐다는 말도 있다.


과거 국가반란과 각종 비리 등으로 물의를 빚었던 자들이라면 추앙의 의미가 있는 사진을 빼고 그 자리에 이름과 재임 시기만 적어 놓으면 될 것이다. 잘못된 과거사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는 의미에서도 그렇다. 그렇지 않고 단순한 기록의 의미라면 군은 김 전 중정 부장의 사진도 걸어야 할 것이다.

 

두 전직 대통령의 사진은 걸리고, 김 전 중정 부장이 빠진 이유를 알아보려 했지만, 구체적으로는 잘 모른다는 대답들이 돌아왔다. 그러면서도 그 배경에는 과거 보안사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얘기하는 군인들이 꽤 많다. 막연한 추측이지만 과거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던 보안사를 들먹이는 것이 가장 비슷한 대답일 수 있다고 여기는 듯했다.

 

기무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개혁의 대상으로 입방아에 오르내린다. 어찌 보면 거의 ‘동네북’ 수준이다.

 

정권 입장에서도 기무사는 개혁성을 강조하는 카드로 활용하기에 최상이다. 국민들에게는 아직도 과거의 부정적인 인식이 큰 데다, 군 내부에서도 군림하는 기관이라는 인식이 크기 때문이다. 그만큼 개혁 이미지를 홍보하는 데 ‘가성비’가 높은 조직이 기무사다.

 

이에 부응이라도 하듯 기무사는 여러 정권을 거치면서 ‘어깨 힘’을 상당히 빼낸 것도 사실이다. 바뀌는 시대환경에 맞춰 스스로 자정의 노력을 해왔고, 부정적 시각을 털어내려고 꾸준히 애써 왔다는 평가도 받았다. 그런데도 기무사에 대한 시각은 여전히 우호적이지는 않다. 왜일까.

 

기무사의 법적 근거는 “군사상 필요할 때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부 장관의 지휘·감독하에 합동부대와 기타 필요한 기관을 둘 수 있다”고 규정한 국군조직법 제2조 제3항이다. 이는 대통령령으로 폐지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대통령이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문을 닫게 할 수 있는 취약한 구조라는 뜻이기도 하다. 반면 대통령이 군 통수권자로서 기무사를 친위부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애초부터 관계 법령을 만들었다는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기무사 전신인 1950~1960년대 육군 특무부대 및 방첩 부대원들은 조선시대 암행어사가 차던 마패와 유사한 공무집행 메달을 지니고 다녔다. 이 메달에는 ‘본 메달 소지자는 시기, 장소를 불문하고 행동의 제한을 받지 않음’이란 문구가 적혀 있었으니 그 위상을 짐작할 만하다.

 

군내 기무사의 위상은 대통령 독대 보고를 하게 되면 급상승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사라졌던 기무사령관 대통령 독대는 이명박 정부에서 부활했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후반기에는 기무사령관의 독대가 이뤄졌다.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 독대를 없애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기무사의 활동 범위를 재조정하는 조직 개편이 이뤄질 것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기무사 위상이 낮아질 것이라고 보는 군 간부들은 많지 않다. 당장 국방부 청사를 들어서면 VIP층이라고 할 수 있는 2층에는 국방장관실과 국방차관실, 그리고 국방부를 담당하는 기무사 100부대장실이 있다. 부대장 계급은 준장이지만, 그 위치만으로 국방부 내에서의 위상을 읽을 수 있다. 국방부 공무원들이 한때 정부 행정부처인 국방부 청사 내에서 군 부대인 기무부대가 철수할 것을 요청하기도 했지만 요지부동이다. 쿠데타 주도자들의 사진을 여전히 걸어놓고 정보·보안 부대답지 않게 사무실 위치부터 군림하는 모습으로 비치는 한 기무사 개혁은 요원하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