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군 이야기

못 잡나, 안 잡나…‘촛불 계엄’ 몸통 의혹 조현천 행적 미스터리

국군기무사령부의 계엄령 문건 작성 의혹 사건의 실체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이 사건을 수사한 민·군 합동수사단은 지난 7일 문건 작성의 실행계획 여부 등을 밝히지 못하고 104일 만에 수사를 잠정 중단했다. 합수단은 그 이유로 사건의 ‘키맨’인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의 미국 도피를 들었다. 합수단은 조 전 사령관 신병이 확보되면 수사를 재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수사가 조 전 사령관을 조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용두사미’ 격으로 사실상 끝나면서 그의 행적을 둘러싼 의혹이 확산되고 있다.

 

■ 조현천 미스터리

 

기무사령부의 계엄령 문건 작성 혐의를 받고 있는 조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13일 미국으로 출국한 이후 행적이 묘연한 상태다. 미국에는 조 전 사령관의 형들이 거주하고 있다. 그는 또 영관장교 시절 육군 종합행정학교 군사영어반 교관을 지냈을 만큼 영어 실력이 뛰어나 미국에서 생활하는 데 언어적 어려움이 없다.

 

출처: 경향신문DB

 

합수단은 지난 7월23일 수사 착수 이후 5개월에 가깝도록 조 전 사령관의 소재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간간이 해오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도 이미 합수단 수사 착수 열흘 전인 7월12일부터 모두 끊은 상태다.

 

합수단이 조 전 사령관의 여권 무효화 조치나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적색수배 요청도 통상 사례보다 뒤늦게 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합수단은 출범한 지 두 달이나 지난 9월20일에야 조 전 사령관의 체포영장을 발부받았다. 그것도 조 전 사령관이 혹시나 추석에 귀국할 경우 신병확보를 위해 발부받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를 통한 ‘여권 반납 명령’과 같은 여권 무효화 조치는 10월2일에야 이뤄졌다. 인터폴에 수배를 요청하는 자료 송달은 이보다 더 늦은 10월16일이었다. 통상적인 특수수사와는 거리가 멀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에 대해 합수단은 “강제귀국 절차를 밟더라도 최소 수개월이 걸리기 때문에 수사 기간이 한정된 합수단으로선 강제 신병확보 방안에 최대한 신중을 기했다”고 밝혔다. 노만석 합수단장은 “체포영장에 담을 범죄혐의 소명 작업과 자진 귀국 설득 작업을 병행했다”고 말했다. 합수단은 지난 7월 군 검사 8명, 민간 검사 7명, 수사관 12명 등 총 37명으로 수사단을 꾸려 관련 사건을 수사했다.

 

합수단은 또 조 전 사령관이 청와대를 방문한 사실은 확인했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이나 황교안 전 대통령권한대행을 직접 대면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합수단은 박 전 대통령과 황 전 권한대행을 상대로 그를 만난 적이 있는지 질의도 하지 못했다. 조 전 사령관을 먼저 조사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조 전 사령관은 대구·경북(TK) 인맥이다. 경북 예천에서 태어나 대구고와 육군사관학교(38기)를 졸업했다. ‘친박’ 실세였던 최경환 전 부총리(구속)의 대구고 후배다. 조 전 사령관의 군 생활은 부침의 연속이었다. 군내 사조직 ‘알자회’ 출신이라는 이유로 영관장교 시절까지는 진급에서 번번이 누락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초기에도 군을 장악하고 있던 같은 TK였던 상주·김천 라인 실세들로부터 홀대를 받았다.

 

그가 군 실세로 부각한 것은 박근혜 정부 때였다. 조 전 사령관은 재직 시절 대부분 오후 10시 이전이면 종로구 청운동 기무사령관 공관으로 복귀했다. 술자리 2차를 가지 않는 그의 성격 때문이기도 했지만, 당시 기무사 안팎에서는 조 전 사령관이 청와대를 의식해 조심스럽게 행동한 때문이라는 말이 나왔다.

 

조 전 사령관은 문재인 정부 출범 후에도 계속 재직해 기무사령관 임기 후반의 4개월가량은 현 정부 시기와 겹친다. 군 수뇌부 인사가 새 정부 출범 이후 바로 단행되지 못하고 8월 말에서야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사이 국방부 안팎에서는 “조현천 기무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진정한 국방개혁”이라는 말이 나돌았다. 어찌 보면 참신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는 이런 역설적인 발상의 발원지는 ‘여의도’였다. 당시 기무사 관계자들은 ‘헛소문’이라고 일축했지만, 기무사 측에서 분위기를 띄웠다는 말이 파다했다.

 

조 전 사령관의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행적도 논란거리다. 군 안팎에서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조 전 사령관의 청와대 출입기록을 조사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예비역 장성 ㄱ씨는 “군 내부뿐만이 아니라 예비역들 사이에서도 조 전 사령관을 ‘못 잡는 게 아니라 안 잡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파다하다”고 말했다. ‘지금 정부에서 조 전 사령관을 잡을 의지가 없다’는 소문을 일축시키기 위해서라도 조 전 사령관의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행적에 대해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가 청와대에 출입한 기록이 나온다면 ‘누구를’ ‘무슨 목적으로’ 만났는지에 대해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합수단은 조 전 사령관의 청와대 출입·행적 기록을 2016년 10월부터 대선 때인 지난해 5월 초까지만 조사했을 뿐,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부분은 하지 않고 있다.

 

조 전 사령관의 미국 도피 중에도 매달 450만원에 달하는 그의 군인연금은 계속 지급되고 있다. 이 때문에 군인연금이 도피자금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국방부는 조 전 사령관에 대한 군인연금 지급을 제한할 법적 근거가 없고, 기소중지자에 대한 연금제한을 위한 법 개정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미국 교민들이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을 현상수배한 전단. 북미민주포럼 트위터 캡처

 

■ 소강원 미스터리

 

합수단은 소강원 전 기무사 참모장에 대해 ‘계엄령 검토 사실을 숨기기 위해 위장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허위로 연구계획서를 작성한 혐의’(허위공문서 작성)로 불구속 기소했다.

 

사실 기무사의 계엄령 문건 작성 의혹 사건은 소 전 참모장으로부터 비롯됐다. 군 간부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소 전 참모장이 지난 3월 초 “이런 게 있습니다”라며 이석구 전 기무사령관에게 용도폐기된 계엄령 문건이 담긴 이동식저장장치(USB)를 내놓았다는 것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지난해 말 기무사 댓글사건 조사 TF가 기무사 서버를 조사하면서 찾아낸 것 가운데 계엄 문건도 포함됐다고 보도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소 전 참모장의 USB 자진 제출은 당시 군인권센터가 수방사의 위수령 관련 문건을 거론하면서 국방부에서 면밀히 조사하라는 지시가 전 군에 내려진 상태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우리(기무사)도 과거 이런 것을 검토했다’는 사항으로 이 전 사령관에게 보고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USB의 자진 제출은 자신의 ‘목줄’을 스스로 조인 결과로 이어졌다. 전 기무사 간부는 “소 전 참모장이 USB를 폐기처분했으면 계엄령 문건 사건은 영원히 미궁에 빠지면서 절대 수면 위로 나올 수 없었다”며 “그가 문재인 정부에 대한 자신의 충성심을 보이기 위한 차원에서 제출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소강원 전 기무사 참모장이 지난 7월26일 계엄령 문건 작성 관련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용산구 국방부 특별수사단에 출석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일각에서는 “계엄령 문건이 실행의지가 있는 것이었다면 소 전 참모장이 USB를 내놓았겠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합수단 조사결과 발표를 보면 문건 제출의 동기 부분에 대한 조사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잘 알려졌다시피 이 전 사령관은 송영무 당시 국방장관에게 어떻게 이 사안을 보고했는지를 놓고 국회에서 송 장관과 ‘진실게임’ 설전을 벌이기에 이르렀다.

 

여야는 지난 8일 기무사 계엄령 문건과 관련해 국회 국방위원회 차원의 청문회를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군에서는 합수단의 계엄령 문건 수사가 잠정 중단된 상태에서 청문회가 열리면 여야의 정치공세와 증인으로 나선 군 선후배들의 ‘진실공방 싸움’으로 진실규명은 더 오리무중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스러운 전망이 대세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longriv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