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병과 배지들
내년 1월부터는 ‘헌병’이 ‘군사경찰’로 바뀌는 등 군의 5개 병과 명칭이 변경될 예정이다. 국방부가 지난달 ‘군인사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데 따른 것이다. 일부 개정안은 오는 24일까지 입법예고된 후 법제처 심사,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내년 1월 중 입법이 완료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입법예고에 따라 육·해·공군의 ‘헌병’은 ‘군사경찰’로, ‘정훈’은 ‘공보정훈’으로, ‘인사행정’은 ‘인사’로 병과 명칭이 바뀌게 된다. 해·공군의 ‘시설’은 ‘공병’으로, 육군 ‘화학’은 ‘화생방’으로 병과 명칭이 변경된다.
이를 놓고 군 내부에서는 병과 명칭 변경뿐만이 아니라 병과 통폐합 등 거시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국군 병과 대부분이 6·25전쟁 전후에 만들어져 70년 가까이 혁신적 변화가 한번도 이뤄지지 못한 데 따른 것이다. 이는 병과 역사에 집착하는 군 분위기와도 연관이 있다.
■ 명칭 논란
정훈 병과는 육군의 경우 1966년 10월4일 창설됐다. 정훈은 정치훈련(政治訓練)의 줄임말로, 사상과 이념 무장을 강조했던 시절 군인의 정신력과 신념, 충성심을 강화시키기 위한 병과로 만들어졌다. 국군의 정훈장교는 북한군의 정치장교와 같은 개념으로 출발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런 배경에서 2002년 당시 조성태 국방장관이 정훈 병과와 기무사의 통합을 지시하기도 했으나, 그의 퇴임 이후 유야무야됐다.
정훈 병과 명칭이 ‘공보정훈(公報精訓)’으로 바뀐 데는 ‘정훈’이란 용어를 버릴 수 없다는 예비역들의 압력이 상당히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훈’ 용어를 지키기 위해 ‘정치’를 떠올리게 하는 정(政)자를 정신을 뜻하는 정(精)자로 교체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사실 자유주의 국가 군대에서 정훈 병과는 찾아보기 힘들다.
‘헌병’ 병과는 창설 70년 만에 군의 경찰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기 위한 차원에서 ‘군사경찰’로 개명된다. 일제강점기 일본군 헌병으로 인해 부정적인 인식이 남아 있던 것을 해소하는 차원이기도 하다. 일부 헌병 예비역들은 “고종황제 때 설치된 일본식 헌병사령부는 1907년 일본의 군대 강제해산 때 폐지됐다”며 “광복 후 미국식 헌병(MP)으로 거듭났는데 일제 잔재를 이유로 명칭을 바꾸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역 헌병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헌병 병과 내부에서는 ‘군사경찰’보다는 차라리 ‘군 검찰’처럼 ‘군 경찰’로 명칭을 바꾸는 게 합리적이라는 의견이 대세다. ‘군사경찰’이라는 용어 자체도 여전히 ‘헌병’ 이미지와 겹친다는 것이다. ‘군사경찰’ 명칭은 군 수뇌부에서 고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 병과와 전장 환경
군대의 병과는 군인이 수행하는 주요 임무를 분류한 것이다. 한국 육군은 24개 병과와 28개 직능특기를 운용하고 있다.
24개 병과는 8개 전투(보병·기갑·포병·방공·정보·공병·정보통신·항공), 5개 기술(화학·병기·병참·수송·군수), 4개 행정(인사행정·헌병·재정·정훈), 7개 특수(군의·치의·수의·의정·간호·법무·군종) 등으로 구성돼 있다.
28개 직능특기는 14개 부특기(인사관리·인력획득·인사근무복지·조직편성·교육훈련·연합합동작전·교리연구·특수전·군수관리·군수지원·동원관리·정책기획·군사전략·전력)와 4개 전문(정보전문·항공군수·군악·기무), 4개 직무(목사·신부·법사·교무), 6개 특수(교수·연구개발·획득전문·국방관리·정책·국제) 등으로 이뤄져 있다. 직능특기는 원래 병과를 유지하면서 특별한 전문성을 반영하는 체계를 말한다.
한국군의 병과와 직능특기 구분을 미군과 독일군 등 외국군과 견줘보면 현대 전장 환경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미 육군의 경우 병과를 28개로 구분하고 있다. 미군은 한국군에 없는 특수전, 심리전, 민사, 사이버(2014년 창설), 특수의무 병과를 운용하고 있다. 특수전·심리전·민사 병과는 장교 임관 후 특수전 부대에서 3년 이상 복무한 대위 가운데서 선발한다. 또 군사정보 병과 장교의 60%는 보병, 기갑, 포병, 방공, 화학 병과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어 제병협동에 관한 이해도가 높은 것이 특징이다.
미 육군에는 정훈 병과가 없다. 대신 군의 ‘공보’ 파트를 병과가 아닌 직능분야로 관리한다. 빈센트 브룩스 전 주한미군 사령관도 2003년 이라크전 당시 미 중부군사령부 부사령관이면서 공보관을 겸했다. 미 해·공군은 육군과 다르게 ‘공보’를 직능이 아닌 병과로 분류한 게 특이하다. 이 밖에 미군은 한국군에 없는 ‘우주작전’ ‘전자전’ ‘전력운영’ 직능을 운용하고 있다.
독일 육군은 2010년 합동지원군이 창설되면서 20개 병과를 14개 병과로 축소·통합했다. 독일군은 병과를 축소하면서 전자전 병과와 민사심리전 병과를 합동지원군 예하에 새로 만들었다. 독일군 병과의 가장 큰 특징은 민간 위임이 가능한 분야는 군인이 아닌 민간인이 임무를 수행한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독일군은 경리와 군종 분야를 민간에 위임해 운용하고 있다. 한국군 일각에서도 군종 병과를 민간에 위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한국군은 특히 4개 특정 종단만으로 군종장교 제도를 운용하고 있어 다종교 사회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독일군에는 법무 병과도 없다. 독일군은 평시에 특별군사법원 설치를 금지하고, 전시나 해외 주둔인 경우에 특별군사법원을 설치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독립된 군 검찰 조직이 없고 군인 범죄 및 군 관련 범죄에 대한 수사 및 기소는 일반 검사가 담당한다. 프랑스군도 민간법원에 37개의 특별부를 설치해 군형법을 위반한 군인에 대한 재판을 담당하게 하고 있다.
■ 한국군 병과는 ‘골품제’
한국군 장교의 진급은 기본적으로 전투 병과 우선이다. 여기서도 보병이 가장 최우선이다. 같은 보병이라도 계급이 높아질수록 합동작전 등 특정 직능특기 장교가 통상 먼저 선발된다.
문제는 전문성을 요하는 각 군 사령부의 사령관을 각 군의 특정 병과 장군이 독식하는 사례가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육군 항공작전사령부다. 항공작전사령관에는 허건영 소장이 지난해 9월 부임하기 전까지 4년5개월 동안 조종사 자격증도 없는 보병 출신 장군이 줄줄이 임명됐다. 수년 전에는 특수전사령부 근무 경험이 없는 보병 장군이 특전사령관을 맡기도 했다. 이런 배경에서 한국군은 자신이 지휘하는 부대의 임무 특성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장군을 각 군 사령관으로 보임해 임무수행 능력을 제고하는 게 아니라, 특정 군·특정 병과·특정 출신을 발탁하는 데 더 신경을 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 밖에 인사사령부와 교육사령부, 군수사령부, 군수지원사령부, 방공관제사령부 등 전문성을 요하는 각 군 사령부 사령관에도 육군 보병·해군 항해·공군 조종 병과 출신 장군이 임명되는 사례가 잦다. 인사철만 되면 국방부는 “장군은 병과 구분이 없다”며 “지휘관의 지휘통솔 능력을 고려한 인사”라고 설명하지만, 군맥과 정치적 고려에 따른 선발 인사의 후유증이라는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각 사령부의 임무 특성을 고려해 전문성을 겸비한 장군이 사령관에 보임되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기행(기술행정) 병과 장교들은 장군 되기가 상대적으로 훨씬 힘들다. 특히 해·공군은 ‘별’ 달기가 더 힘들다. 이 때문에 해·공군 기행 병과에서는 “차라리 병과를 세세하게 나누지 말고 ‘대병과제’로 운영해 장교들이 역량을 두루 발휘할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전력 전문가인 육군 ㄱ소장은 “한국군은 미군을 벤치마킹하고 있는 데다 그것마저 70년 가까이 큰 변화가 없다”며 “국방개혁 2.0 못지않게 한국군의 병과를 발전적으로 재편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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