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에서 ‘신앙’은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는 효과적인 정신전력이다. 유사시 생사를 넘나들어야 하는 군인에게 종교는 ‘생사관’과도 연관돼 있어 종교활동을 권장받는다. 하지만 군 인사철이 되면 인사권자가 다니는 종교시설 주차장이 갑자기 붐빈다는 얘기는 다음달 하순으로 예정된 군 장성 정기인사를 앞두고 여전히 유효하다.
■ 인사 논란과 반박
육군은 4연속으로 개신교를 믿는 참모총장을 배출했다. 최근에는 ‘육군본부 실·부장급 7명이 개신교’라는 지적이 나오는 등 특정 종교를 둘러싼 말이 유난히 많아졌다. 이에 대해 육군은 “전체 실·부장 참모 14명 가운데 절반인 것은 맞다”면서 “이는 육군 내 개신교(기독교) 신자인 장군 비율과 어긋나지 않는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육군 내 장군 가운데 기독교가 49%, 천주교와 불교가 각각 21%, 무교가 9%라는 것이다.
군내 종교활동이 개인의 종교활동 보장 차원을 넘어 선교나 포교 차원으로 확장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설문조사 결과 응답 병사 중 17%는 특정 종교를 강요받은 적이 있고, 40%는 종교행사에 의무적으로 참여하도록 강요받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지난 5월 단행된 육군 군단장·사단장 인사에서 진급자 12명 가운데 9명이 개신교였던 것에 대해서는 “종교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그러면서 “지난해 12월 육군 준장 진급자 52명 가운데 불자가 전투병과 여군장군 2명을 포함해 18명이었다”며 “보통 10명 안팎이었던 평년보다 2배 가까이 늘어났다”고 밝혔다.
육군은 한 훈련기관 지휘관의 임기를 이례적으로 연장한 것이 ‘군 선교를 염두에 둔 게 아니냐’는 군내 의혹에 대해 “전문성을 고려한 것으로,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다른 종교를 믿는 장군의 임기가 연장된 사례를 들며 “인사철을 앞두고 진급이 어려워진 인사 불만자들의 음해”라고 했다.
한국기독군인연합회(KMCF) 소속 장교들이 종교시설이 아닌 육군본부 회의실에 모여 성경 공부를 하는 것에 대해서는 “일과시간 이외 시간에 하는 것이어서 문제 삼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나 비개신교 장교들은 대체로 ‘수긍하기 어렵다’며 “장교들의 군 근무시설 내 종교활동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수개월 전에는 예비역 장성이 영내 생활 중인 육사 기독교 생도들을 따로 불러내 종교모임을 가져 물의를 빚기도 했다. 김용우 참모총장이 지난 6월 6·25구국성회 행사 인사말에서 “우리 군이 ‘하나님이 지키시는 군대’가 되었으면 한다”고 한 언급이 장군 인사철을 앞두고 다시 나돌고 있다. 이에 대해 육군은 “이 발언의 취지는 개인 종교를 떠나 각 종파별 행사가 군의 신앙전력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당부하는 차원이었다”며 “김 총장이 취임 때부터 출신지역, 성별, 종교에 의해 차별받지 않는 군의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밝혔다. 군사안보지원사령부는 육군 내부에서 종교적으로 편향된 부분이 있는지를 살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 군내 선교·포교의 명암
군내 종교활동은 장병들에게 정신적·영적 자양분을 공급해 줌으로써 신앙을 통한 전력 강화에 기여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군내 종교활동이 개인의 종교활동 보장 차원을 넘어 선교나 포교 차원으로 무한 확장되고 있다. 이는 개신교와 천주교, 불교, 원불교 등 가릴 것 없이 다 마찬가지다.
군종장교 스스로 “군대는 ‘선교의 가두리양식장’” “포교의 황금어장”이라는 표현을 써 가면서 주변에 신자와 신도 확장을 독려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병사들에게 매주 종교시설을 찾을 때마다 찍어준 도장이 10개가 되면 1일 외박을 주는 부대도 생겨났다. 훈련소에서는 훈련병들이 간식으로 종교를 결정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군내에서 가장 종교적으로 영향력이 큰 군 교회에서는 ‘선 세례, 후 교육’을 앞세워 5주 신병훈련기간 동안 5차례 예배와 함께 세례식을 열고 있다. 그 결과 1년에 15만명이 세례를 받고 있다.
국방부 신앙전력과도 매년 9월이면 육·해·공군에 ‘장병 종교 신자 현황 입력 지시’ 공문을 내려보내고 있다. 국방통계연보 및 군종정책 입안 자료로 활용한다는 게 이유다. 국방부는 이를 통해 확보한 군내 신자 수를 토대로 군종장교 공석을 각 종교별로 할당하고 있다.
군대에서 선교나 포교 등을 할 수 있는 국가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유럽 국가는 물론 미국에서도 군종장교의 종교 강요나 선교·포교가 금지돼 있다. 대신 개인의 종교활동은 철저히 보장되고, 군종장교는 이를 돕는 역할을 한다.
■ 종교 강요 금지
현행법은 군인들에게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대 내 지휘관들이 지위를 이용해 종교를 강요하는 행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 헌법 제20조가 보장하고 있는 종교의 자유는 ‘종교를 믿거나, 믿지 않을 자유’다. 유럽 국가 일부에서는 ‘인본주의’ 자체를 종교 차원으로 간주해 ‘무종교’ 군종장교를 운영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장병들의 정서 안정 및 인성 함양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1인 1종교 갖기 운동의 대대적 전개’ ‘지휘관의 개인 철학에 따라 무조건적인 종교 선택을 강요하는 신앙전력화 운동’ ‘이등병들을 대상으로 정서 안정을 위한다는 이유로 종교활동 참석 강제 교육’ ‘생도들의 올바른 가치관과 도덕적 품성 함양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수요일 종교교육 참석 강제’ 등을 종교의 자유 보장을 침해하는 대표적 사례로 들고 있다.
인권위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한 병사들 중 17%는 특정 종교를 강요받은 적이 있고, 40%는 종교행사에 의무적으로 참여하도록 강요받았던 것으로 나와 있다. 인권위는 종교행사에 불참할 경우 TV 시청을 금지하거나 청소 및 작업을 시켜 휴식권을 침해한 사례도 지적했다. 이런 배경에서 바른미래당 김중로 의원은 지난 6월 말 “현역 장병에게 종교활동 참여를 강요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고 밝혔다.
■ 종교의 다양화
군내 종교활동을 담당하는 군종장교들은 군복 입은 성직자로 불린다. 이들은 종교활동뿐 아니라 사고 예방을 하는 군내 상담사와 정신전력 교육, 전장 스트레스·공포증 해소 역할까지 1인 다역을 하고 있다. 군 내부에서는 성직자인 군종을 굳이 계급장을 단 군인으로 임명할 필요가 있느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한국군 군종제도가 시작됐을 당시 군종은 민간인이었다. 군종제도는 6·25전쟁 중이던 1951년 2월 당시 이승만 대통령 지시에 따라 육군에서 시작됐다. 교계에서는 이 대통령에게 6·25전쟁이 반공사상전이므로 국군 장병에게도 유엔군처럼 신앙무장을 위해 군종활동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군 당국도 ‘반공사상 계몽 및 신앙무장’을 통해 전쟁에 이기겠다는 목적으로 이에 공감했다. 이에 따라 민간인 목사 28명과 신부 11명이 군종으로 임명됐다.
초기 군종들은 ‘무보수 촉탁’이었다가 1952년 6월 유급 문관으로 신분이 전환됐다. 이후 군종 성직자들의 계급사회 적응을 위해 1954년 12월 현역으로 신분을 바꿨다. 하지만 이제는 다시 교계나 종단 지원을 받는 민간인 또는 군무원 성직자로 군종을 임명할 때가 됐다는 논의가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군종장교를 둘 수 있는 종교가 개신교와 천주교, 불교, 원불교 등 4개뿐인 것도 논란거리다. 당장 군에서는 다문화 자녀들의 입대가 늘어나 지난 5년 동안 4000명 가까운 장병이 다문화가정 출신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슬람교도 등도 상당수이며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한국군에서는 신자나 신도가 일정 비율 이하면 군종장교를 둘 수 없지만, 외국군의 경우에는 종교나 종파 비율을 크게 따지지 않는 편이다. 미군에는 개신교, 천주교, 유대교는 물론 불교와 이슬람교, 힌두교 군종도 있다. 국내 개신교계에서 이단으로 분류하고 있는 모르몬교 군종도 포함된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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