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경비정이 지난 14일 하루 동안 두 차례에 걸쳐 국제상선 공용통신망을 통해 남측 선박이 ‘(북이 일방적으로 설정한) 경비계선을 침범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군 관계자는 15일 “북 경비정이 10월 들어 북방한계선(NLL)을 무시하는 태도를 단 한번도 보이지 않다가 갑자기 어제 하루 동안에만 2차례나 남측 선박의 경비계선 침범을 주장했다”고 밝혔다.
북한 경비정은 지난 7월5일부터 9월28일까지 나흘에 한 번꼴로 총 21회에 걸쳐 함정 간 국제상선 공통망으로 ‘남측 선박이 경비계선을 침범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후 보름 동안 NLL에 대해 일절 언급을 하지 않다가 지난 12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북의 NLL 불인정’ 주장을 놓고 여야가 갈등을 빚은 이후 이례적으로 하루에 두 차례나 NLL을 무시하는 통신을 시도한 것이다.
남북은 정상회담과 군사분야 합의서를 통해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들어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고 시범적 공동어로구역을 설정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평화수역, 공동어로구역의 기준선은 합의되지 않았다. NLL 일대는 여전히 분쟁지역인 셈이다. 사진은 한 시민이 인천 옹진군 연평면 망향전망대에서 NLL 일대와 북녘을 망원경으로 보는 모습이다. 연합뉴스
노재천 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남한 선박이 경비계선을 침범했다고 하는 북 경비정의 주장은 (행동이 따르지 않는) 수사에 불과할 뿐”이라고 밝혔다. 군 당국은 보름 동안 잠잠하던 북측이 경비계선 침범을 다시 주장한 것은 남남 갈등을 유발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합참은 이날 “남북관계가 크게 개선된 올해 들어 NLL을 침범한 북한 선박이 없었다”고 밝혔다. 북한이 NLL을 준수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북한 선박의 NLL 침범 건수는 2014년 30건, 2015년 15건, 2016년 5건, 2017년 1건으로 지속해서 감소세를 보였다. 이 가운데 북한 경비정의 NLL 침범이 29건으로 가장 많았으나 올해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는 것이다.
북한군의 서해 NLL 일대 무력시위도 지난해 이후 사라졌다. 합참에 따르면 북한의 서해 NLL 일대 해상 포사격은 2014년 4회, 2015년 2회, 2016년 1회로 감소세를 보이다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이후로는 15일 현재 0건이다.
■ ‘부당통신’에 과민반응
NLL 표현은 과거 남북 군사회담에서 얘기만 꺼내도 북측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금기어’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4·27 판문점선언 2조 2항엔 ‘남과 북은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들어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고…’라고 되어 있다. 평양 공동선언 부속합의서로 채택된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 3조에도 ‘서해 북방한계선’이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2일 “서해 NLL은 피로써 지켜온 해상경계선으로, 우리 장병들이 계속 피로써 지킬 수는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피를 흘리지 않고도 지킬 수 있다면 더더욱 가치 있는 일”이라며 “판문점(선언)부터 이번(9월 평양 공동선언 군사 합의)까지 일관되게 북한이 NLL을 인정하면서 NLL을 중심으로 평화수역을 설정하고 공동어로구역을 만들기로 한 것”이라고 밝혔다.
합참은 ‘북한이 (서해 남북 해상통신망을 통해) NLL을 부정하고 있다’는 야당의 주장에 대해 “(NLL을 인정한) 군사분야 합의서 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최소한 북한 함대사령부급 성명도 아닌 경비정에서 떠드는 수준인 ‘부당통신’을 놓고 북이 NLL을 전제로 한 남북 정상 간 합의를 불인정한다고 단정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부당통신은 정전협정 위반이나 NLL 무실화를 목적으로 하는 유무선 통신이다.
■ NLL은 현재 분쟁지역
서해 NLL은 정전협정 합의로 그어진 선이 아니다. 북한은 남북 군사합의서에서 잠정적으로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아직까지도 구체적으로는 인정하지 않았다. 여전히 서해 NLL 일대는 분쟁지역인 것이다.
남북은 군사분야 합의서 3조에 ‘남북이 서해 NLL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들어 우발적인 군사충돌을 방지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서해 해상에서의 평화수역과 시범적 공동어로구역 범위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남북은 서해 평화수역 조성에 필요한 해상기준선을 군사공동위원회에서 협의해야 한다.
이런 배경에서 문 대통령이 말한 ‘북한의 NLL 인정’ 발언은 북측이 100% 공식 인정했다는 차원이라기보다는 군사공동위에서도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사항이라는 원칙을 일찌감치 시사한 것으로 해석된다. 서해 NLL은 남북 정상 간 합의조차도 블랙홀에 빠뜨릴 수 있는 ‘국민 감정선’이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과거 서해상에서 제1연평해전(1999년 6월15일), 제2연평해전(2002년 6월29일), 대청해전(2009년 11월10일), 천안함 피격사건(2010년 3월26일), 연평도 포격 도발(2010년 11월23일) 등이 발생해 총 54명의 군 전사자가 발생한 것을 잊지 않고 있다.
국방부 고위 관계자도 “NLL을 기준으로 일상적인 경계작전과 어로 보호는 현행대로 유지된다”며 “우리 원칙은 NLL을 준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도발하면 이번 합의는 제로”라며 “우리는 (기존) 대응 절차대로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정인 대통령 외교안보특별보좌관은 “NLL의 경우 북이 많이 양보해 군부의 불만이 있을 수도 있다”고 밝힌 바 있다.
■ MB 정부도 추진
그동안 서해 NLL 지역은 남북 간 군사충돌의 ‘화약고’였다. 남북 간 9·19 군사합의는 이 지역에서의 우발 충돌 방지를 포함하고 있다. 대규모 전술훈련이나 포병 실사격 훈련 등을 자제해 군사충돌로 확대될 가능성을 막자는 것이다.
국방부는 “이번에 합의된 내용 상당수는 1953년 정전협정과 1992년 남북 기본합의를 큰 틀로 삼아 이미 과거 정부에서 검토를 마친 사항”이라고 밝혔다.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군 당국은 이명박 정부에서도 2011년 ‘군비통제추진계획서’를 만들어 이번 협정과 사실상 동일한 협정을 추진했음을 설명했다. 2011년은 천안함 사건 1년 뒤로 남북 사이의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로 높아진 시기였다.
정경두 국방장관은 최근 국회에서 “(MB 정부 군비통제추진계획서에) 군사분계선(MDL)과 NLL로부터 일정 거리의 훈련 및 이동 금지구역을 설정했느냐”는 질문에 “있었다”고 답변했다.
군사 전문가들은 우발적 무력충돌 발생을 막기 위한 남북의 ‘공동 작전수행 절차’ 적용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달부터 남북은 해상에서도 ‘경고방송→2차 경고방송→경고사격→2차 경고사격→군사적 조치’를 취하는 5단계 작전수행 절차를 공동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사실상 남북이 ‘공동 교전규칙’을 행사하는 것으로, 그만큼 상대방 의도를 예측하는 게 가능해 우발충돌 가능성을 줄여준다.
논쟁거리는 역시 서해 평화수역 조성과 공동어로구역 설정에 필요한 해상기준선이다. NLL이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남북이 해주 직항로를 열고 5·24 조치로 차단된 북한 선박의 제주해협 통과를 허용하는 방안과 패키지로 논의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하지만 NLL 부분은 북한이 형식상으로는 인정한 듯하지만 쉽게 공식화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이는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10여년간 끌어온 문제이기도 하다. 이번에도 남북은 9·19 군사합의에서 합의 이행을 위한 강력한 의지를 담았을 뿐 완전한 합의를 이룬 것은 아니다.
남북은 우선적으로 다음달 1일부터 해상에서의 포사격 및 해상 기동훈련 중지와 포문 폐쇄 조치 등으로 우발충돌을 방지하기로 했다. 이는 NLL을 기준으로 한 평화수역·공동어로구역 논의를 장기 과제로 넘겼다는 의미다. 국방부 고위 관계자도 해상 적대행위 중단과 NLL 논의, 평화수역 및 공동어로구역은 동시에 논의되는 것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지난달 13~14일 남북 군사실무회담 대표단이었던 안상민 해군 대령은 지난 12일 국감에서 “북이 군사합의 NLL을 단언컨대 인정했다고 말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박한기 합참의장은 “(북한이 NLL) 용어 사용을 인정한 것”이지만 군사적으로 인정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앞으로 평화수역과 공동어로구역이 협의돼 가는 과정을 보면서 (판단해야 한다)”고 답했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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