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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이야기

판문점 재발견···비밀정원과 액션무대가 공존

동화 속 ‘비밀의 정원’과 총탄이 난무하는 ‘액션 극장’, 국제뉴스의 초점이 되는 ‘외교 무대’가 공존하는 곳. ‘대결·분단의 상징’과 ‘화해·평화의 장’이란 두얼굴을 하고 있는 곳.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Joint Security Area)이다. JSA는 지역 이름인 판문점의 공식 정치·군사적 명칭이다. 공동경비 의미는 한국군과 미군이 공동으로 경비한다는 게 아니다. 유엔(UN)과 북한측이 공동으로 경비하는 구역이라는 뜻이다. 1958년 이전까지는 중국군(중공군)도 함께 경비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7일 공동 식수를 마친 후 군사분계선 표식물이 있는 ‘도보다리’까지 산책을 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2018.04.27 판문점 _ 한국공동사진기자단 경향신문 서성일 기자

 

 

판문점은 연간 관광객 15만명이 거쳐 갈만큼 명소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7일 판문점 군사분계선(MDL)을 걸어서 넘어 문재인 대통령과 두손을 맞잡은 이후 그 내면의 모습에 대한 궁금증은 더욱 커지고 있다. 두 정상이 단독 면담을 한 장소인 도보다리 일대는 그동안 JSA를 방문했던 일반인들의 눈에는 숨겨져 있던 ‘시크릿 가든’이었다.

 

■영화는 영화일뿐

 

판문점(JSA)은 서울에서 서북방으로 62㎞, 평양에서 남쪽으로 215㎞, 개성시로부터는 10㎞ 떨어져 있다. 6·25 전에는 널문(板門)이라는 지명으로, 초가집 몇 채만 있던 외딴 마을이었다. 남한 행정구역상으로는 경기도 파주시 진서명 어룡리(또는 군내면 조산리), 북측 행정구역으로는 개성특급시 판문군 판문점리이지만 남북한의 행정 관할권에 속하지 않는 특수한 지역이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은 유엔사 측과 공산 측(북한·중국)이 군사정전위원회 회의를 원만히 운영하기 위해 1953년 10월 군사정전위원회 본부구역 군사분계선상에 설치한 동서 800m, 남북 600m 장방형 지대다.

 

판문점 구조.

 

비무장지대(DMZ) 안에 있는 판문점을 지키는 가장 가까운 군사시설은 캠프 보니파스다. 비무장지대 400m 남쪽에 있다. 1976년 8월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으로 숨진 아더 G 보니파스 대위의 이름을 땄다. 기지 내에 있는 한 홀짜리 파3(195야드) 골프 코스는 지뢰로 둘러싸여 있고, 공이 일단 러프로 들어가면 찾을 수도 없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코스’라고 미 군사전문지 <성조>가 보도한 이후 잊혀질만 하면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트> 등 외국 언론이 한번씩 다시 소개해 유명해졌다. 손에서 벗어난 골프채가 러프에 빠지는 바람에 400달러짜리 새 장비를 포기해야 했던 미군도 있었다.

 

실제 지뢰 폭발도 한차례 있었다. 주한 미군 일부 요원과 중립국 감시단이 주둔했던 캠프 보니파스에는 이제 한국군 JSA 경비대대가 미군이 같이 근무하고 있고, 한국군이 경비책임을 지고 있다. 한국군이 책임지게 된 이후 한홀짜리 골프 코스를 폐쇄하지는 않았지만 운용은 중단했다. 비무장지대가 평화지대로 바뀌면 이 골프 코스는 다시 문을 열고 세계적 명소가 될 가능성이 높다.

 

1976년 도끼만행사건 이후 JSA에도 군사분계선이 생겼다. JSA경비대대 부대원은 영화에서처럼 판문점에서 북한군과 마주보고 근무하지 않는다. 북측은 경비병 2명이 마주보고, 남측 경비병은 북쪽을 향한 자세를 취하기 때문이다. 남북한군이 동시 배치되는 경우에는 영화에서처럼 지근거리가 아니라 통상 약 10m 정도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JSA 내에서는 수색정찰을 실시하지 않고 있어, 이 지역에서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 나오는 것과 같은 장면은 볼 수 없다.

 

미군이 보니파스 기지를 책임지고 있을 당시 원홀 골프장 표지

 

 

■48시간 건물과 72시간 다리

 

판문점에는 10여 동의 건물이 있다. 군사분계선 위에 걸쳐진 단층건물은 총 7개 동이다. 유엔군사령부가 관리하는 파란색 건물은 남측에서 봤을 때 왼쪽부터 T1(중립국감독위 회의실), T2(군사정전위 본회의실), T3(군사정전위 실무장교 소회의실)로 사용되고 있다. T는 ‘임시(Temporary)’의 첫 글자를 딴 붙인 것이다. 이 건물들은 정전협정을 위해 당시 48시간 만에 지어져 ‘48시간 건물’로 불린다. 정전 상황이 길어지면서 조립식 건물이 무려 65년째 사용되고 있다. 회의실 내부는 ‘중립지역’으로, 정전협정이 체결장소인 T2는 남측과 북측 관광객들 모두에게 공개하고 있다. 관광객들끼리는 남북이 서로 마주치지 않도록 ‘선착순’을 지켜주는 게 불문율이다.

 

판문점 인근에는 3개의 다리가 있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와 ‘72시간 다리’는 잘 알려져 있었지만, 이번 정상회담으로 ‘도보다리’(Foot Bridge)가 유명세를 탔다. 도보다리는 정전협정 직후 중립국감독위원회가 비가 많이 올 땐 물골이 형성돼 판문점으로 멀리 돌아가는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판문점 습지 위에 만든 것이다.

 

남북간에는 공동경비구역 내 남북연락사무소간 2회선, 남북적십자연락사무소간 3회선의 연락채널이 있다. 유엔사와 북한군간에도 공동일직실을 통한 통신채널이 구성되어 있으나, 2013년 3월 이후 북한이 연락채널을 차단했다. 이때문에 유엔사는 한·미연합훈련 일정을 군사분계선상에서 확성기나 육성으로 통보해 왔다. 심지어 군사분계선 위에 북측에 보내는 메모 쪽지를 놓고 그위에 돌멩이를 얹는 경우도 있었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연락채널이 재가동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판문점 내에 있는 중감위 스위스 캠프.

 

 

■비밀의 정원

 

JSA에는 ‘비밀의 정원’이 있다. 중립국 캠프다. 이곳에는 중감위 스위스와 스웨덴 대표단이 각각 5명씩 10명이 근무하고 있다. 중감위 스위스 군인들의 빨간색을 칠한 나무집 숙소는 새소리만 가득한 가운데 동화 속 풍경을 연상시킨다. 안으로 들어가면 스위스에서 공수된 과자와 초콜릿, 커피 등이 가득하다. 한국인 주방장도 근무하고, 선물용 스위스 나이프 등 상품도 판매한다.

 

이곳에서는 2010년 당시 스위스 대표단 위원장인 장 자크 요스 장군이 만 57세 나이로 늦둥이 딸을 얻어 화제가 됐다. 유럽 지역 언론에서는 ‘평화의 아이’, ‘장군의 딸’ 등으로 소개했다. DMZ의 맑은 공기와 물,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득녀 비결이었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본래 중감위는 스위스와 스웨덴,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4개국으로 구성돼 있었다. 그러나 체코슬로바키아가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된 뒤 중립국 승계를 하지 않기로 했고, 폴란드는 대표단이 철수 후 비정기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중감위 대표단은 정전협정문 41조에 따라 매일 24시간 교대 근무하며 한반도로 증원되는 병력과 무기 반입 감독 기능을 수행하는 등 양측 군사 동향 등을 유엔군 사령부에 보고한다. 탈북 북한군 면담도 업무의 하나다. 북한 측과는 서류로 소통을 시도하지만 반응이 없다. 그래도 매주 화요일이면 오전 10시 중감위 보고서를 북한 측 우편함에 넣어둔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이영애가 연기한 소피 장은 중감위가 파견한 스위스 국적의 책임수사관 여군장교다. 북한이 1990년대 초부터 중감위 활동을 인정하지 않고 있어 소피 장이 현실에서 판문점 남측과 북측 지역을 자유롭게 통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난 18일 경기 파주 판문점 평화의집에 미국 헌병이 서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정상회담 세팅도 미군이 허락해야

 

이번 남북 정상회담의 숨은 공신은 JSA를 관할하는 유군사였다. 유엔사 승인이 없었다면 회담장 바닥 카펫을 교체하고, 벽지와 전등도 새로 하는 회담장 내부 공사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유엔사는 민간인의 JSA 입출입 승인권한과 정전협정 1조 8항에 따라 군사분계선 월선 승인권도 가지고 있다. 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남북 관계자들의 일시 월선은 유엔사와 북한군의 동시 승인을 받아야 했다.

 

JSA 내 구조물 변경은 유엔사 허가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도보다리 단독 벤치회담’을 위한 T자형 곁가지 다리 만들기와 테이블 놓기도 마찬가지였다. 유엔군사령관을 겸하고 있는 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군사령관의 결심이 없었다면 도보다리 회담은 이뤄지지 못했다는 의미다.

 

유엔사는 이번 회담 기간 내에 관할구역인 JSA 내에서 한국측 요구를 받아 들여 무장병력을 회담장 부근에서 모두 빼냈다. 북한 측도 수용해 회담 내내 두 정상의 동선 주변에는 판문점 근무 무장병력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남북 정상이 남측 군사분계선 인근 ‘소떼 길’에 1953년생 반송을 심고, ‘평화와 번영을 심다’는 기념석을 설치한 것 모두 유엔사 허가가 필요한 사안이었다. 심지어 환송행사에서 평화의 집 외벽 전면을 스크린으로 활용하는 레이저 영상 쇼도 마찬가지였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longriv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