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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 코멘터리

미 전략무기 ‘B-1B’ 등 뒤에 숨은 안보 무능

문정인 통일외교안보 대통령 특별보좌관이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우드로윌슨센터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발언한 ‘북한의 핵·미사일 활동 중단시 한미연합군사훈련 및 미 전략자산 한반도 전개 축소’ 여파가 계속되고 있다. 청와대는 ‘개인 의견’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야당은 청와대까지 싸잡아 비판하고 있다.

 

문 특보는 지난 19일 한 매체를 통해 “내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 협상은 주고받는 것이지 일방적 요구만으로는 진전을 이루기 어렵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발언을 거둬들이지 않았다.

 

한국군 지휘부가 한미연합훈련장을 방문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문 특보가 언급한 한미연합군사훈련은 매년 상반기에 실시하는 키 리졸브(Key Resolve)와 독수리(Foal Eagle) 연습, 하반기에 실시하는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훈련을 말한다.

 

■북한은 ‘키 리졸브’ 훈련에 알러지 반응

 

한미 양국군이 함께 하는 키 리졸브(Key Resolve) 훈련은 매년 4월 2주간 일정으로 진행된다. 전쟁 시나리오별 시뮬레이션 위주로 진행하는 지휘소연습(Command Post Exercise)이다.

 

키 리졸브 훈련은 한미연합군이 실제 투입되는 합동 야외기동훈련(FTX)인 독수리(Foal Eagle) 연습과 함께 실시된다. 8주간 진행되는 독수리연습은 키 리졸브 훈련이 끝난 뒤에도 계속된다.

 

한·미연합군이 한반도에서 훈련을 시작하면 북한군의 ‘스트레스 지수’는 급상승한다. 한·미연합군의 전력 수준에 맞춰 대응 훈련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 핵항모에서 작전을 준비중인 함재기들

 

올해 한미연합사는 빈센트 브룩스 사령관의 지시로 매년 해오던 훈련 시작을 북한측에 통보하지도 않았다. 북한 입장에서는 훈련 시작을 알리지 않는 행위 그 자체를 기습공격도 가능하다는 메시지로 확대 해석해 받아들일 수 있는 조치였다.

 

북한은 1990년대 초까지 매년 실시됐던 팀스피리트 훈련 시기만 되면 사실상 준전시 상태로 돌입, 주민들이 비상식량을 챙겨 지하갱도에 들어가는 대응훈련을 하기도 했다.

 

그때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나 지금도 한반도에서 한·미 연합 훈련 상황이 생기면 북한은 맞대응을 해야 하는 입장이다. 이로 인해 막대한 인원과 물자를 동원하는 ‘소모전’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북한 관영매체들은 “평양 타격을 노리는 전쟁연습을 어떻게 방어적 성격이라고 하느냐”면서 맹비난을 퍼붓고 있다.

 

북한에서는 군이 건설·어업·무역 등 다양한 경제적 역할까지 하고 있다. 그런 만큼 키 리졸브와 같은 한·미 군사훈련이 벌어지면 그 기간 중 북한군이 경제적 부문을 포기할 수밖에 없어 군사적으로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심대한 타격을 받게 된다. 북한이 “지금까지 북남관계는 남조선에서 해마다 거듭되는 전쟁연습 때문에 막대한 피해를 받아 왔다”고 밝히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B1B 폭격기가 한반도 상공을 비행하고 있다.

북한도 한·미가 연합훈련의 강도를 낮추면 이 과정을 통해 긴장 완화를 모색한 후 나름대로 경제 건설에 집중하려는 속내가 있다.

 

이때문에 군 당국은 “한·미 합동군사훈련이 북한에 가장 커다란 고통을 줄 수 있는 제재 방법”으로 간주한다. 북한의 도발적 행동이 있을 때마다 한·미가 이를 응징하는 조치로 합동군사훈련 카드를 꺼내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략무기 뒤에 숨은 안보 무능

 

한·미는 북한에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면 참가 전력을 대대적으로 공개하는 등의 ‘하이키’(high-key)로 훈련을 진행한다. 이때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것이 막강한 공격력을 자랑하는 핵추진 항공모함과 B-2 또는 B-52 전략폭격기 등 전략무기 공개다. 특히 B-52 폭격기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이 탑재된 핵추진잠수함,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과 함께 미국의 3대 핵우산 전력의 하나다.

 

그러면 북한은 “핵 전면 대결전의 선전포고”라면서 용수철 튀어오르듯 발끈하는 것이 공식처럼 이어져 왔다. 과거 2009년에는 훈련을 빌미로 개성공단을 차단했고, 2011년에는 ‘서울 불바다’를 거론하며 남측을 협박했다. 2013년에는 키 리졸브 훈련 하루 전날 정전협정 무효를 선언했다. 이후에도 “거족적인 성전에 진입할 것” 등을 운운하며 한반도에서 긴장도를 높였다.

 

북한은 키 리졸브 훈련을 꼬투리 삼아 남북간 전화선을 단절했고, 개성공단을 잠정 폐쇄하기도 했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이고 싶으면 키리졸브·독수리훈련 기간 동안 다른 유형의 훈련을 끼워 넣는다. 지난 4월 주일 미 제3해병원정군 소속 F-35B 스텔스기 6~8가 대한미 해병대 교환프로그램인 케이멥(KMEP) 훈련 일환으로 한반도에 전개된 것이 대표적 사례다. 괌에서 날아온 장거리 폭격기 B-1B 랜서의 한반도 출격도 마찬가지다.

 

수년 전부터는 북한의 핵·대량살상무기(WMD) 위협에 대응한 ‘맞춤형 억제전략’의 숙달 차원에서 미국의 전략 무기 전개가 잦아지고 있다. 한·미의 ‘맞춤형 억제전략’은 전시와 평시 북한이 핵과 WMD 사용을 위협하는 단계에서부터 직접 사용하는 단계까지를 포함한 대응방안이다. B-52 한반도 비행도 한·미동맹 항공전력의 확장억제 임무수행 차원으로 이뤄지고 있다.

 

미군도 훈련 장면을 이례적으로 잇따라 공개하면서 마치 키리졸브·독수리훈련에 엄청난 미 전력이 투입되고 여차하면 미 특수부대가 북한 수뇌부를 제거할 듯 시사한다.

 

그러나 한·미는 북한 자극을 피하고자 할 때는 한반도에 전개되는 미군의 전력 공개를 피하거나 아예 항모나 전략폭격기를 보내지 않는 ‘로 키’(low-key)로 훈련을 진행한다. 이산가족 상봉 등을 포함해 남북간 접촉이 있으면 훈련에 참가하는 미군의 전력을 공개하지 않는 식이다.

 

최근 한미연합훈련에서 미군과 함께 훈련하는 한국군의 존재감은 찾기 힘들다. 한미연합훈련이 아니라 마치 미군이 한반도에서 무력시위를 하는 양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는 한미 군당국이 순수한 방어적 목적의 훈련이라고 밝혀온 키리졸브·독수리훈련에 북한의 미사일 도발 및 핵실험 시도에 대한 강력한 경고·응징·보복 목적의 다른 훈련을 겹쳐 실시하면서 벌어진 결과다. 또 툭하면 “전략자산을 한반도로 보내 달라”는 한국군의 요구에 편승해 미 본토까지 위협하는 북한을 겁박하기 위한 미군의 무력시위가 빚은 현주소이기도 하다.

 

문제는 전쟁이 나기 전에는 쉽게 모일 수 없는 어마어마한 무기와 특수부대들이 한반도에 수시로 출몰하는데 익숙해지면서 국민들이 전쟁 위기에 둔감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한반도 전쟁의 트리거(방아쇠)는 북한 뿐만이 아니라 미국도 당길 수 있다는 점을 외면한 채 미군 전략무기의 등장에 환호하는 팬덤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 한국군은 미국에 전략무기의 상시 배치 요구를 요구했다가 거절당했다. 하지만 상시 배치가 아니더라도 미 전략무기는 한반도 등장 횟수가 잦아지면서 마치 ‘단골손님’처럼 인식되고 있다.

 

문제는 B-52나 핵항모 등과 같은 미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는 사후약방문식 무력시위로 그치면서 한반도 긴장도를 높이고 중국의 반발만 샀을 뿐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점이다. 과거 10년 보수정권이 미국의 전략 무기 뒤에서 ‘안보 무능’을 숨겨온 측면이 있는 것이다.

 

문 특보는 자신의 발언에 대해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축소하는 건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 이후 전개되고 있는 미국의 전략무기를 이전 수준으로 돌리자는 것”이라며 “이는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조건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부분”이라고 앞서 했던 자신의 발언에 대해 부언 설명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현 시점은 북한과 대화할 수없는 상태라는 점에서 그 돌파를 역발상적으로 뚫어보겠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박성진 기자 longriv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