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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 코멘터리

한민구 장관의 ‘알박기’ 국방

· 사드·심일 신화·지소미아 알박기···‘소신’과 ‘무소신’ 평가 엇갈려

· 북의 연평도 포격 때는 소신 없이 ‘머뭇거리다’ 보복 타격 시기 놓쳐

 

주한미군이 대선을 불과 13일 남긴 지난 26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를 전격 배치했다. 차기 정부에서 뒤집을 수 없도록 하는 일종의 ‘알박기’ 성격이었다.

 

이를 놓고 한 신문은 국민의 알권리나 정치적 합의보다도 안보가 더 중요하다는 한민구 국방장관(66·육사31기)의 소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그러나 국방부가 잇따른 ‘말바꾸기’를 해왔던 과정을 보면 한 장관의 소신이 작용했다기 보다는 미국 측의 일방적인 통보를 수용해 수동적으로 따른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또 김관진 전 국방장관이 실장으로 있는 청와대 국가안보실의 지시에 충실히 따른 것이다.

국방부는 사드 배치 시기를 놓고 지난해부터 춤추듯이 여러차례 입장을 바꿔 왔다. 지난 16일에는 미 백악관 외교정책 참모가 사드 배치가 한국 차기 정부의 몫임을 시사하면서 미국이 중국의 대북 압박을 이끌어내는 대가로 사드 배치를 연기하거나 취소하는 빅딜 가능성까지 제기했다. 그러자 “대선 전 사드배치 마무리는 물리적으로 어렵다”고 맞장구쳤던 곳이 한국 국방부였다.

 

한민구 국방장관이 연평도 해병대 부대에서 북한군 동향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한장관의 대선 전 ‘국방 알박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5일에는 ‘가짜 신화’ 논란을 빚은 심일 소령(1923~1951년)의 북한군 자주포 파괴 전공이 사실이라고 기정사실화했다. 이 역시 심일 소령 논란이 군 역사 바로잡기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새 정부 출범 전에 ’대못박기‘를 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군 안팎에서는 1949년 개성 송악산 전투의 ‘육탄 10용사’와 월남전 앙케패스 전투의 태극무공훈장 조작 의혹등 ‘가짜 영웅’ 논란이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고려대 최호근 사학과 교수는 “심일 소령 신화는 지금까지 나온 증거만으로도 사실이라고 결론내는 것은 무리”라며 “게다가 차후에 배치되는 문건 하나라도 등장하면 쉽게 깨지는 사안으로 국방부가 서둘러 결론내리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한국 정부의 승인 없이 일본 자위대가 한반도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줬다는 평가를 받는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IA) 체결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1월 23일 전격적으로 체결된 한일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은 한국 정부가 광복 후 최초로 일본과 맺은 군사협정이었다. 이 역시 국정 공백 상황에서 졸속으로 추진·결정된 사안이었다. 국방부는 졸속 협정이라는 비난이 들끓자 서명식 자체의 공개를 거부했다.

 

게다가 한일 양국은 군사기밀 등급 분류 방식이 달라서 교환할 정보의 수준이 다르다는 게 군사전문가들의 의견이었다. 일본이 제공할 군사 비밀정보는 한국군의 대외비 정도 수준의 저급인데 반해 한국군이 일본 자위대에 제공할 정보는 고급 정보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은 이명박 정부가 2016년 10월 27일 정부 내부 논의 과정인 차관회의를 거치지 않은 채 국무회의에서 비공개로 처리했다가 비난여론이 끓어오르자 서명식 50분을 남겨놓고 무산시킨 사안이었다.

 

F-15K 무장.

 

한 장관의 이같은 ‘국방 알박기’ 결정은 안보와 군심을 앞세우며 국민 의사를 무시한 일방적인 결론 내리기란 공통점이 있다. 그러면서 본인의 결단 보다는 미국과 청와대 국가안보실 눈치보기나 부하들의 건의를 받아들이는 모양새를 취한다는 점이다. 군 관계자는 “한 장관이 부하들의 의견을 두루 경청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민주적인 리더십으로 비쳐질 수 있으나, 이를 뒤집어 보면 나중에 책임 논란이 될 경우를 대비하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민구 국방장관은 2010년 11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때 합참의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당시 그는 상황조치를 적시에 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다가 보복 타격 시기를 놓쳤다. 이때문에 한 장관은 본인의 소신과 결단을 보이지 못해 상황관리에 실패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한 장관측은 나중 청문회 등에서 초계 비행중이던 F-15K가 슬램 이알(SLAM-ER) 공대지 미사일을 장착하지 못한 상태여서 즉각적인 보복을 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합참의장이었던 한 장관의 결심만 있었으면 슬램 이알이 아니더라도 공군 전투기가 장착한 JDAM (Joint Direct Attack Munition·합동정밀직격탄) 공격이 얼마든지 가능했다고 군 관계자들은 증언하고 있다.

 

당시 한민구 합참의장과 군 수뇌부들이 전투통제실에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사이 북한군 방공시스템이 작동해 JDAM 폭격은 수포로 돌아갔다는 게 중론이다. 이후 군은 원거리에서 공격이 가능한 슬램 이알을 장착한 F-15K를 띄웠으나 ‘사후 약방문’이었다.

 

이처럼 한 장관은 좋게 말하면 신중함이지만, 본인이 결단하지 못하고 주로 부하들이 모아준 의견이나 상부의 지시에 따르는 모습을 보여 왔다. 한 장관의 이같은 스타일을 놓고 그의 측근으로 꼽히는 한 고위 장성은 “그래도 무난하지 않습니까”라고 반문했다.

 

박성진 기자 longriv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