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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 코멘터리

기무사 장군들의 ‘어처구니 없는’ 변신

전직 국군기무사령부 간부 22명이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를 지지한다고 공개 선언한 것을 놓고 뒷말이 무성하다.

 

장경욱 전 기무사령관(예비역 소장)과 기찬수 전 기무사령부 참모장(예비역 소장) 등 기무사 출신 장군·대령 22명은 지난 10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문 후보가 우리 대한민국의 안보와 통일을 책임질 최고의 적임자임을 확인했다”며 “문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장 전 사령관은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 군맥 문제에 대해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보고했다가 강제 전역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회견문에서 “군 최고의 강한 보수 이미지를 가진 국군 기무사 지휘관 출신들이 민주진보 진영 대선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건국 이래 최초 사례일 것”이라며 이번 지지 선언의 의미를 설명했다.

 

이들은 “지난 9년간 MB(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안보무능의 극치를 보였다. 보수라는 가짜 탈을 쓰고 ‘안보는 문제없다’는 오만한 행태를 보였고, 북한 핵·미사일 도발을 방치하고 국민 안보불안 심리를 정권유지에 활용했다”고 비판했다.

 

■정치권 줄서기로 비춰지는 지지 선언

 

군 간부들은 이들의 성명 내용에 대해서는 상당 부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을 내놓은 이들이 기무사 출신이라는 점에서는 부정적이다. 군 정보기관인 기무사의 주요 역할 중 하나가 군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도록 내부를 감시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예비역이라는 이유로 정치권 줄서기에 나섰다는 것이다.

 

한 기무사 예비역 간부는 “군 간부들의 정치적 중립 위반이나 정치권 줄서기를 감시하는 기관이 기무사”라며 “앞으로 일선 야전 지휘관들이 기무사 직원들에게 ‘니들이나 잘하라’고 하면 할 말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다른 대선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기무사를 없애겠다고 해도 “예비역들의 문제였다”는 식으로 피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까지 경고했다.

이에 대해 기무사가 말로만 정치적 중립을 내세우며 사실상 정권의 입맛에 맞춰왔다는 점에서 그리 놀랄 일도 아니라는 냉소적 시각도 있다. 한 기무사 직원은 “DJ 정부 시절 ‘우리 기무사도 이제는 햇볕 정책을 바로 알고 지원해야 한다’고 했던 간부가 MB 정부가 들어서자 장군으로 진급한 후 ‘햇볕 정책 운운하는 종북 세력을 군내에서 척결하는 데 기무사가 앞장서야 한다’고 해 아연실색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캠프의 김진표 공동선거대책위원장(오른쪽 두번째)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문 후보 지지를 선언한 기찬수 예비역 소장 등 국군기무사령부 출신 예비역 장군·대령들을 소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반면 기무사 출신 예비역 대령·장군들이 집단으로 지지 선언을 한 것은 문 후보가 ‘빨갱이 논란’에 시달릴 때마다 방패막이로 나서면서 문 캠프에 ‘전가의 보도’ 역할을 할 것으로 평가하는 군 관계자도 있었다.

 

이번에 문 대선후보 지지를 선언한 기무사 예비역 장군 중에는 ‘새누리당 국회의원 후보 공천에 나섰다가 떨어진 전력자’ ‘대통령 자문기관 유력자의 도움을 받아 장군으로 진급한 것으로 기무사 내에서 알려진 전력자’ ‘정권이 바뀌자 호남 군맥 숙청에 깊숙히 개입한 전력자’들도 포함돼 있다. 또 본인의 능력 보다는 시류를 타 진급했던 간부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는 게 기무사 안팎의 평가다.

 

■정치권 대선 캠프의 ‘적폐’ 예비역들

 

현역 군 간부들은 군 선배들이 정권 교체기마다 대선 후보에게 줄서는 것에 대해서는 대개가 부정적이다. MB 정부와 박근혜 정부 출범 후 ‘OO 포럼’ ‘XX 포럼’ 등 소위 포럼 출신 예비역 장군들이 장관이나 처장 등에 임명되고, 그 연줄이 현역 장성들 인사로 이어지면서 군 인사가 파행적으로 이뤄진 것을 목격해 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쪽 대선 캠프에서 ‘팽’ 당하면 다른 캠프로 옮겨가는 철새 예비역 장군들까지 등장하기에 이른 것이 현실이다. 비리 방위사업체 연루 의혹으로 모 캠프에서 쫓겨한 후 지금은 다른 캠프에 가 있는 한 예비역 고위 장성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는 현역 시절에도 지역 차별 등 인사전횡으로 비판을 받았던 인사였다.

 

심지어 군 내에서는 차기 정부의 첫 안보부처 수장으로 내정됐다며, 특정 대선 캠프 참여자들의 이름까지 거론되는 판이다. ㄱ 예비역 대장이 국방장관, ㄴ 예비역 대장이 국정원장, ㄷ 예비역 영관 장교가 신설되는 청와대 방위산업 비서관으로 임명될 예정이라는 것이다. 이 캠프에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통해 마녀 사냥식 방산비리 수사를 부추겨 황기철 전 해군참모총장의 무리한 구속을 이끌었던 것으로 알려진 예비역 장교까지 가세해 무분별한 군부 인사 영입이라고 현역들은 비판하고 있다.

 

한 현역 장성은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이 미 대통령 후보에게 줄서서 됐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며 “미 의회가 ‘군인은 전역 후 7년이 경과해야 국방장관이 될 수 있다’는 규정을 면제하는 법안까지 만들어 매티스가 국방장관이 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을 반면교사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성진 기자 longriv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