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지난주에 있었던 군 정기인사에 대한 ‘관전평’을 올립니다. 군인들은 명예를 소중히 여긴다는 점에서 인사에 대한 얘기는 자칫 당사자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줄 수도 있기에 되도록이면 피하려 했으나 여기저기서 인사 결과에 대한 분석을 요구하기에 조심스럽게 다뤘습니다.(정부 고위층 한분도 이번 군 인사를 어떻게 평가하느냐고 물어보더군요.)
군은 지난 10일 장성과 대령 등 107명에 대한 진급및 보직 인사를 단행했습니다.
이번 인사는 한마디로 파격 그 자체입니다. 과거 정부에서 잘 나갔다는 이유로 사실상 ‘숙청’당했던 인사들이 부활했고, 5수 끝에 별을 다는 매우 이례적인 사례가 나왔습니다. 또 지금은 없어진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 출신 '3성 장군'이 2명이나 나왔습니다.
이밖에 군 인사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던 청와대 입김도 인사 결과만 놓고 보면 개입 흔적이 별로 없는 모양새입니다. 기무사도 이번 인사에서 영향력이 사실상 ‘제로’였던 것 같습니다. 대신 김관진 국방장관이 거의 전권을 휘둘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국방부를 출입한 지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처럼 국방장관이 원하는 대로, 마음대로 진급시키고 보직을 조정한 경우는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사 잡음은 그 어느때보다 없어 보입니다. 김 장관이 관행을 파괴하고 진급시킨 대부분의 장교들이 능력면에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인물들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한 것 같습니다. 거꾸로 보면 이들이 충분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정권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특정 지역 군맥이 아니라는 이유로 MB 정부에서 진급의 불이익을 받았다는 얘기입니다. 한마디로 이명박 정부 들어선 이후의 군 인사가 상식적이지 못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군 안팎에서는 김 장관의 파격적인 이번 장군인사에는 인사 전문가인 류성식 군사보좌관의 아이디어가 상당히 작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김장수 사단의 부활
이제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살펴보겠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김장수 사단’의 부활입니다. 이번 인사에서 육군 교육사령관(중장)으로 진급해 보직을 받은 황인무 장군(육사35기·55)은 전 국방부장관인 김장수 한나라당 의원의 군사보좌관 출신입니다. 그는 중장급 2차 보직 자리인 교육사령관 자리에 군단장도 거치지 않고 임명됐습니다. 그야말로 파격 인사입니다.
4수 끝에 별을 단 ㅈ 대령도 김 전장관의 측근입니다. 황 장군이나 ㅈ 대령 모두 능력면에서는 출중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만들어진 ‘前 정권 수혜자’ 명부, 소위 ‘살생부’에 포함돼 인사에서 불이익을 받아 왔습니다. 이번에 장군이 된 해군의 ㄱ대령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른바 ‘살생부’에 오른 인사들은 주로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 청와대와 국방장관실, 육군총장실 등 핵심 보직에 있었던 경우입니다.
그러나 국방부는 살생부의 존재를 부인합니다. 이와 관련한 국회에서의 현 장관과 전 장관의 대화를 소개하겠습니다.
지난달 7일 국회에서 열린 국방부 종합국정감사에서 김장수 의원은 “(군내) ‘살생부’가 존재하나, 안 하나. 그에 대해서 불이익 준 적 있나, 없나”라고 물은 뒤 “나중에라도 밝혀지면 장관이나 저나 입장이 난처해진다”고 말했습니다. 김 장관은 이에 대해서도 “근본적으로 군에서 살생부라는 용어는 들어본 적이 없고, 사용도 안 하고 있다”고 답변했습니다.
김 의원은 “육군총장, 국방장관을 해본 제 경험에 비춰보면 장군 인사 과정에서 청와대에서 장관이나 총장 뜻과 상반되는 이야기를 할 경우, 설득하고 이해시켜서 관철시켰다”고 말했습니다.
김 의원 발언의 뉘앙스를 보면 살생부가 있을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살생부나 외부의 입김에 흔들리지 말라는 주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김장수 전 장관의 측근들이 기사회생한 것을 놓고 일각에서는 김관진 장관이 국방개혁 국회통과의 가장 큰 ‘장벽’인 김 전 장관에게 ‘잘 도와달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고 있습니다.(속되게 말해 과거 아꼈던 부하들이 당하는 모습을 보고 심기가 크게 상했던 김 전 장관을 이번 인사를 통해 달래려 했다는거죠)
5차 진급자 탄생
4전5기의 주인공도 2명이나 탄생했습니다. 5차로 ‘별’을 단 육사 38기생인 ㅇ대령과 ㅈ대령이 그들입니다. 후배기수인 육사 39기생이 소장으로 진급하면서 사단장으로 진출한 것과 비교하면 이들의 진급이 매우 이례적인 일임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능력으로 보면 진작에 별을 달았어야 했을 ㅇ대령은 MB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도 계속 ‘물’을 먹었고, ㅈ대령은 이상희 전 국방장관과 국회 국방위원들과의 자존심 싸움에 ‘새우등’ 터진 케이스였습니다.
(2008년 11월 국방부의 국회연락단장이었던 ㅈ대령이 장성 진급에서 탈락하자 국회 국방위는 과거 45년간 유지됐던 국방부 국회연락단의 철수를 요구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때까지 국회 예우 차원에서 국회연락단장 자리는 통상 진급하는 자리로 통했고, 국방부도 진급이 될만한 대령을 파견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그런데 이 전 장관이 ㅈ대령을 진급에서 탈락시키자 평소 이 전장관의 고압적인 태도에 불만이 많았던 국방위원들의 감정이 폭발했던 것이었죠.)
(*미국 대통령을 지낸 아이젠하워 장군은 나이 47세가 될때까지 소령 생활만 16년을 하고 나중에 원수까지 됐다는 점에서 4전5기는 별거 아닐 수 있습니다. ‘먀셜 플랜’으로 유명한 미국의 조지 마셜 장군도 소위 임관 14년 뒤에야 소령 진급을 했고, 중위 계급장만 9년을 달았습니다. 그런면에서 진급 적기가 지났다는 이유로 진급 대상자에서 배제시키는 한국군의 관행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는 게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하나회 출신 군단장
김영삼 정부 때 해체된 하나회 출신 3성장군이 2명이나 나온 것은 이번 인사에서 특이하게 눈에 띄는 대목입니다. 이미 지난 인사에서 하나회 출신 인사가 군단장으로 진출한 것을 감안하면 군단장급(3성)에 하나회 출신이 3명이나 포진하게 된 셈입니다.(이들은 사실상 군에 남은 마지막 하나회 출신들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하나회 출신을 굳이 언급하는 것 자체가 의미없을 듯 싶습니다. 조직은 이미 존재하지 않고 당사자들은 과거 인사에서 하나회 출신이란 이유로 인사상 불이익을 한번 이상씩은 당했기 때문입니다. 알자회 출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군내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별을 달고 요직에 중용됐습니다. 이제는 하나회 출신 육군 대장의 탄생도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합니다.
이번 인사에서는 청와대의 입김이 강하지 않았습니다. 이를 놓고 육군 대장 출신인 김인종 전 경호처장(육사24기)의 퇴장과 연결시키는 시각도 있습니다. 대신 지난해 천안함 사건 당시 역할 수행 능력을 놓고 뒷말이 무성했던 모 소장이 군단장으로 진출한 것에 대해서는 임태희 대통령 비서실장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고교 동기생입니다.
또 MB 정권 출범 이후 군 인사를 좌지우지해온 '상주 군맥'의 영향력은 정권 초기에 비해 약해지기는 했어도 준장에서 소장으로 진급한 ㄱ 장군의 예에서 보듯이 여전히 유효했습니다. 육군의 핵심 직능인 소위 '530 작전'에서의 호남 출신 육사 기수의 배제 현상도 여전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국군기무사령부는 과거와 달리 이번 인사에서 크게 역할을 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민간인 사찰 후유증으로 장관에게 인사와 관련한 주장이나 목소리를 내기에는 역부족이 아니었나 싶습니다.(기무사 자체 인사에서는 3명이 대령에서 준장으로 진급했는데 이가운데 2명이나 같은 학교인 경기고 출신인 점이 눈에 띕니다.)
국방부는 이번 인사를 놓고 “기존 3차까지만 진급 심사를 받게 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자유경쟁의 틀 내에서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한 우수한 인재를 선발했다”며 “야전성과 능력이 우수한 야전부대 근무자를 다수 발탁했다”고 설명했습니다.(뒤집어 해석하면 과거 인사에서 ‘물’먹고 국방부나 합참에서 야전부대로 방출됐던 인사들을 대거 구제했다는 말이 됩니다.)
국방부가 이처럼 나름대로 우수 인재들이 재기할 수 있도록 할 수 있었던 것은 육사 42기의 장성 진급을 1년 늦췄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국방부가 대령의 준장 진급을 위한 복무기간을 1년 늦추기로 함에 따라 올해 첫 장성 진급자가 나올 예정이었던 육사 42기는 1년을 더 기다려야 합니다.(국방부는 대령에서 준장으로 진급하기 위한 육·해·공군 장교들의 최저복무기간을 4년에서 5년으로 늘리는 인사안을 올해 초 일찌감치 확정했습니다. 이에 따라 올해부터 대령은 5년을 복무해야 장성진급의 자격이 생기게 됐습니다.)
국방부는 이같은 결정을 한 데는 “현재 준장 진급심사를 위한 대령 계급의 복무기간이 짧다”며 “현재와 같이 지휘관과 참모를 한번씩만 거친 뒤 업무평가를 해서 별을 달도록 하는 시스템으로는 객관적인 능력평가를 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430여명에 이르는 장성 숫자를 줄이는 국방개혁의 효과도 부수적으로 거둘수 있다고 설명해 왔습니다.
국방부의 설명대로 장성 숫자를 줄이는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장성 진급자가 과거보다 적게 나왔어야 했습니다. 인사 전까지만 해도 육사 42기 몫 6명을 포함해 모두 10명 정도가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 유력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크게 차이가 없었습니다. 이는 앞으로 육사 42기 이하는 장군이 되기가 선배들보다 훨씬 힘들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때문에 육사 42기 일각에서는 “결국 진급 적기를 놓친 선배들을 구제해 주기 위해 우리들의 진급을 1년 늦춘 것 아니냐”는 불만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즉 육사 42기생 선두주자들이 차지할 몫으로 장관이 ‘구제 잔치’ 벌인 것 아니냐는거죠.(어찌 보면 인사권자 입장에서는 진급 시스템 개혁을 명목으로 내세우면서 진급시키고자 하는 대상자들을 무리없이 진급시키는 ‘꿩 먹고, 알 먹고’식 효과를 거둔셈입니다.)
이번 인사에서 김 장관의 최측근인 류성식 군사보좌관(육군 준장)은 준장 진급 1년 만에 소장으로 진급해 수도권 전략부대인 00사단장으로 진출했습니다. 인사직능 출신 장군이 준장 진급 1년만에 작전직능을 제치고 00사단장으로 나간 것은 이례적인 일입니다.
성실하고 아이디어가 많은 지략가인 류 장군은 과거 노무현 정부 시절 육군본부 진급계장으로 있으면서 ‘장군진급 비리’ 의혹에 연루됐다는 혐의를 받았고, 의혹이 실체가 없는 것으로 결론났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차례 진급에서 탈락하는 등 불이익을 받은 바 있습니다.
한편 당초 공군 몫이었던 합참 차장에는 원태호 해군 중장(해사 32기)이 임명됐습니다. 이는 공군측이 ‘실속’ 없는 합참 차장 보다는 ‘영양가’ 있는 정보본부장 자리를 공군몫으로 지금처럼 유지하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는 후문입니다.
그나저나 앞으로는 군 인사에서 ‘이전 정부 사람’ ‘전직 장관 사람’ ‘전직 총장 사람’ 등이란 표현이 다시는 나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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