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실 책꽂이를 정리하다 국방부가 지난달 발행한 ‘천안함 백서’를 다시 한번 보게 됐다. 천안함 백서는 군이 반성문 성격으로 발간했다는 점에서 무척 이례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백서의 내용 가운데 군 공보 활동의 적절성 부문에 대한 반성과 대안을 제시하는 대목도 눈에 띄었다.
합동참모본부는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공보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번 인식하고 지난해 9월 공보 워크숍을 연 적도 있다.
당시 합참은 필자에게 하나의 요청을 했다. 합참이 공보 워크숍을 하는데 국방부 기자단의 일원으로서 군에 하고 싶은 말을 한꼭지 해달라는 것이었다.
군은 공보 활동도 전투 개념으로 보는 시각이 강하기에 거두절미하고 한가지만 말했다. “대 언론 작전의 최고 무기는 ‘진실’입니다”라고. 이처럼 말한 까닭은 ‘대 언론 (공보)작전’은 바로 ‘대 국민 (공보)작전’이기 때문이었다.
(참고로, 한때 국방부 공보실에는 ‘공보는 전투’라는 글씨를 적은 액자가 걸린 적도 있다)
군은 전쟁의 승리를 추구하는 집단이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온갖 수단이 동원된다. 적을 상대로 한 선무공작, 흑색선전, 역 정보전 등도 전쟁 승리를 위한 하나의 도구이다. 어리석은 대의명분을 내세우다 참패한 소위 중국 고전에 나오는 ‘송양지인’(宋襄之仁)을 찾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하지만 각종 공작 수단을 자국의 국민들을 상대로 행사하는 것은 ‘송양지인’ 보다 훨씬 더 어리석은 일이다. 당장은 통할 지 모르나 국민을 속이는 것은 종국에 가서는 ‘부메랑’을 맞는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국방부를 출입하면서 “결과만 좋으면 과정이 무슨 상관이냐”며 군 당국이 사실과 다른 발표를 하는 경우를 여러차례 목격했다. 그런 경우 의도했던 것과는 달리 결과가 대체로 좋지 않았다. 지난해 벌어진 천안함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였다. 게다가 상당수 발표는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위한 선의의 거짓말도 아닌 자신들의 잘못을 은폐하기 위한 고의적인 거짓말이었다.(오죽하면 대통령까지 역정을 냈겠는가)
군도 이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반성문 성격의 백서를 출간한 것이다.(그런면에서 천안함 사건과 관련한 공보 전투는 사실상 작전 실패에 따른 완전한 패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 관련 사건이 발생할 때 툭하면 “언론이 도와주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언론 탓을 하는 관계자들이 있다. 그러면서 혹자는 소위 ‘애국 전쟁’까지 거론한다.
전면전과 같은 ‘애국 전쟁’이 벌어지면 총 동원된 국민들이 언론의 자유를 포함한 모든 권리를 일시적으로 포기 내지는 유보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즉 ‘진실의 보도원칙’ 보다는 국가적 차원에서 보도하고 언론은 군과 정부의 통제에 협조해야 한다는 맥락이다.
천안함 사건의 경우도 전면적인 전쟁위기 상황이었으면 비판적 보도가 나오기 힘들었을텐데, 전시가 아니어서 언론이 군의 통제를 벗어나 비판 보도를 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현실을 보자. 신문과 방송 뿐 아니라 인터넷을 포함한 온갖 다양한 매체가 존재하는 현대 사회에서는 소위 ‘애국전쟁’에서도 정확하고 진실된 정보가 전달되지 않으면 그 부작용이 너무나 크다.
설사 언론이 정부와 군의 통제를 따르며 사실 보도를 유보한다 하더라도 인터넷이나 트위터가 과거의 사발통문과 같은 역할을 한다.
게다가 진실의 전달 통로가 막히면 정보의 ‘동맥경화’가 일어나고 이는 유언비어 형태로 터져 걷잡을 수 없이 퍼지게 마련이다. 이는 정부나 군의 발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애국전쟁’을 패전으로 이끌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다.
한마디로 애국전쟁 운운하는 언론관은 역사 속에서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기는 커녕 은폐하려는 궤변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천안함 백서를 읽다가 국군 장병 여러분이 이런 궤변에 속지 않기를 바라면서 두서없이 이것저것을 생각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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