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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기자수첩

해적과 장군의 위장발언


지난 24일 KTX편으로 지방에서 서울로 상경하던 중 조간신문 하나를 펼쳐 들었다. 흥미로운 기사가 실려 있었다. 삼호주얼리호 구출작전인 ‘아덴만 여명작전’ 책임자인 군 고위 장성과의 인터뷰 기사였다.

재미있게 읽어 내려 나갔다. 그러다가 한 곳에서 막혔다. 고위 장성은 1차 구출작전에 관해 설명하면서 “접근하지 말고 돌아가라는 선원들의 신호를 투항으로 잘못 이해하고 다가가다 요원 3명이 다쳤다”고 말한 부분이었다.

그것은 군이 애초에 소개했던 내용과 달랐다. 당초 ‘팩트’는 최영함의 링스 헬기가 해적선 자선에 탑승하고 있던 해적들을 향해 사격을 하자 해적 4명은 바다에 뛰어들었다.(합참은 당초 바다에 뛰어든 4명이 사살된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이들은 나중에 물에서 나와 삼호주얼리호로 다시 올라갔다)

이와 동시에 고속단정에 탑승한 검문검색팀은 구출작전을 준비했다. 그때 해적들이 투항하는 것처럼 백기를 들었고, 고속단정 2척이 삼호주얼리호로 접근하자 태도를 바꿔 기습공격을 했다. 이로 인해 검문검색대장을 포함한 대원 3명이 다쳤다. 엄밀히 말해 해적들의 유인작전에 결과적으로 당한 것이다.

해적들의 백기에 속은 것과 선원들의 신호를 잘못 해석한 것은 분명히 다른 '팩트'다.

사실 국방부가 지난 18일 1차 인질구출 작전이 수포로 돌아간 후 출입기자들에게 엠바고(보도시점 유예)의 계속 유지 요청을 할 때도 뒷맛이 영 개운치 않았다.

당시 국방부 고위 간부가 엠바고 유지를 요청하기 전에 기자는 두가지 얘기를 들었다. 하나는 ‘제 3국 선박의 등장으로 작전이 엉켰다’것과 다른 하나는 ‘청해부대 작전팀이 해적들에게 당해 부상했다’는 것이었다.(결과적으로 제3국 선박인 몽골 선박의 등장과 청해부대원 작전팀의 부상은 시차별로 벌어진 사건이었다)

이 고위 간부는 “엠바고 유지를 전제로 청해부대의 우발 상황에 대해 설명하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기자는 “대원들이 다치고 초기 작전이 실패해 나중 작전을 펼칠 때까지 시간벌기에 기자들이 동참하라는 것 아닌가”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그는 “그런 것 아니다. 그런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결국 국방부 출입기자들은 엠바고 유지를 수용키로 결정했다.

그리고 난 후 이 간부는 3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1차 구출작전에 대해 설명했다. 기자가 물었던 것처럼 대원들이 다치고 1차 작전이 실패한 게 맞았다.(하지만 이 간부는 1차 작전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 구출 작전이 잠정 중단된 것으로 여길 뿐이기 때문에 기자의 질문 내용이 사실이 아니고 자신의 답변이 틀린 게 아닌 것이라고 여기는 듯 했다)

아뭏든 기자는 사람 목숨과 관련된 사안이기 때문에 삼호주얼리호의 선원들을 구할 수 있는 확률을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는 데 보탬이 된다면 엠바고 유지를 수용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언론의 경쟁적 보도는 작전 상황 노출 등 해적들에게 유리한 정보 제공으로 이어지는 것은 분명하다. 또 은밀한 1차 구출작전이 실패해 해적들과 청해부대가 대치상태라 하더라도 이런 상황이 보도되면 해적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인질들에게 보다 강한 물리적 위협을 가할 가능성이 높다)

국방부 출입기자를 포함한 국민들의 바람대로 삼호주얼리호 구출작전은 성공했다.

하지만 이후 보여준 정부와 군의 태도는 실망스러웠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에서 “저는 어제 오후 5시 12분 국방부 장관에게 인질구출작전을 명령했습니다”라고 밝혔다.

마치 대통령이 인질들을 구출한 것처럼 국민들에게 말하는 이 부분은 없는 게 나았다. 차라리 인질 구출작전의 주역인 청해부대원들을 자랑스러워하고, 부상당한 석해균 선장과 안병주 소령, 김원인 상사, 강준 하사의 이름을 차례로 부르며 빠른 쾌유를 빌었어야 했다.

하긴 ‘해적들과 무선 교신을 할 때 영어 대화 가운데 한국어를 암호처럼 섞어 쓴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낸 아이디어’였다는 '작전 뒷얘기' 보도까지 나왔으니 말 다했다.(5공시절 축구광인 전두환 대통령이 국가대표 축구팀의 국제경기 하프 타임 때 감독에게 작전 지시를 했다는 ‘경기 뒷얘기’가 생각났다)

앞서 청와대는 작전 성공을 이명박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에서 ‘1보’를 하겠다며 엠바고 해제 시점까지 조절하려고 시도해 빈축을 샀다.(이 과정에서 청와대가 예정과 달리 대통령의 담화 발표 시간를 앞당기는 바람에 일부 방송사는 큰 곤욕을 치렀다)

군도 ‘아덴만 여명작전’과 관련한 각종 자료를 봇물처럼 쏟아냈다. 군 고위 장성이 TV에 출현해 상당 시간 동안 작전을 설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과하면 넘치는 법’. 홍보 과잉은 국회에서 군 작전의 과다 노출이라는 비판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정치권에서 제기한 비판의 화살은 엉뚱한 데로 꽂혔다. 보도자료를 만들어 배포한 해군 공보장교들이 줄줄이 국군기무사령부의 조사를 받게 된 것이다.

이것을 보면서 ‘만만한게 홍어X’라는 말이 떠올랐다. 넘치기는 했지만 해군이 내놓은 자료 중에 군사기밀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보장교들의 잘못이라면 ‘이번 작전의 성공을 적극 홍보하라’는 상부의 지시를 너무 적극적으로 따른 것 뿐이 아닌가 싶다.

기자는 이같은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착잡한 심정이 들었다. 국방부의 뭔가 ‘화장실 갈 때 틀리고, 나올 때 틀린’ 것 같은 분위기도 그렇고, 기자가 마치 앞장서서 청와대와 군의 생색내기에 ‘들러리’를 선 것 같은 기분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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