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온라인 기자수첩

늙은 전투기의 노래

 

나 태어나 이강산에 비행을 한지
 꽃피고 눈내리기 어언 44년
 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
 나죽어 이흙속에 묻히면 그만이지

 아 ~ 다시못올 흘러간 비행기
 푸른옷에 실려간 꽃다운 조종사여”

                   조종사 나이보다 13살이나 많은 사고 정찰기 나이, 무려 44년간 운용

 가슴아픈 소식이 들려 왔다. 김모 대위 등 하늘의 보라매 2명이 오늘 비행 도중 사고로 순직했다. 그들의 나이 이제 겨우 ‘서른 하나’와 ‘스물 일곱’이었다. 빨간 마후라의 청춘을 푸른 창공에 묻은 것이다.

 이들이 탑승했던 항공기는 F-4를 개조한 RF-4C 정찰기다. 미국 맥도널 더글러스사에서 1966년 11월 생산됐다. 생산업체인 맥도널 더글러스사는 이 기종의 생산을 1973년 종료했다. 그러나 우리 공군은 미 공군이 운용하던 RF-4C 정찰기를 1990년 9월 15억4000만원을 주고 구매한 후 군사분계선(MDL) 남쪽 상공에 띄워 북한지역 정보 수집에 적극 활용해 왔다.

 12일 추락으로 수명을 다한 RF-4C의 나이는 ‘44세’였다. 31세의 주조종사 나이보다 무려 13살이 많다.

 이번 추락 사고의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공군이 조사중이다. 이와 관련해 기종의 노후화가 사고 원인과 어떤 연관성이 있다는 증거는 없다. 하지만 항공기를 40년 넘게 작전에 투입한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RF-4C를 운용하는 나라는 지구상에서 대한민국이 유일

 RF-4C의 오리지널 버전은 F-4다. 지구상에서 F-4 계열 전투기를 운용하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우리 공군은 F-4의 초기 모델인 F-4D 팬텀을 41년간 운용하다 지난 6월 모두 퇴역시켰다. 그래도 F-4D의 개량형으로 AIM-7 스패로우 공대공 미사일 등을 장착한 F-4E 팬텀Ⅱ 기종은 여전히 한반도 상공을 비행중이다.

 이제 하늘에서 사라졌지만 F-4D는 ‘미그기 킬러’, ‘하늘의 도깨비’ 등으로 불렸다. 우리 공군은 1969년 8월 F-4D를 도입했다. 당시 F-4D 팬텀 1차 도입분 6대는 태평양 상공에서 미 공군 KC-135 공중급유기의 공중급유를 받고 주일 미 공군 오키나와 기지를 경유하여 1969년 8월 29일 오전 대구기지에 도착했다.

 F-4D의 생산 당시 설계 수명은 4000시간이었다. 미 공군은 1974년부터 1983년까지 항공기 동체와 날개 등 18개 부위를 보강하는 항공기 기골보전 프로그램을 통해 수명을 8000시간 연장했다.

 우리 공군도 1979년부터 1989년까지 이를 동일하게 적용해 수명을 연장했다. 이후 이것도 모자라 공군은 F-4D의 경제수명을 9600시간으로 추가 적용했다. 이를 위해 F-4D가 퇴역하기 전까지 40년 운용 노하우를 100% 발휘해 온 정비사들의 노력은 눈물겨울 정도였다.

                         결코 자랑스러울 수 없는 전투기 최장수 운용 기록

 그 결과 우리 공군은 지난해 8월 F-4D의 40년 운용이라는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제 수명을 다한 F-4D는 대전 현충원과 가평군청 등 7곳의 지상 전시대에서 모습을 지키고 있다.

 퇴역한 F-4D 가운데 일부의 엔진은 RF-4C 정찰기의 예비엔진으로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 나가고 있다.

 그러나 전투기의 장수(長壽)를 자랑거리라고 하기에는 뭔가 찝찝한 것은 왜일까.

 노후 기종을 신기종으로 교체하는 공군의 전투기도입 사업은 갈수록 늦춰지고 있다. 그러는 사이 장수(長壽)하는 비행기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이는 공군 파일럿이 자신보다 연상의 전투기를 타야 하는 경우가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창공의 사나이들에게는 젊은 ‘애기’(愛機)가 더 어울리는 것 같은데.

 아뭏든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온라인 기자수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교전규칙의 진실  (0) 2010.11.24
군사고는 세트메뉴?  (19) 2010.11.18
황의돈 육군총장이 천안함 징계위원장  (1) 2010.11.12
오바마 용산기지 방문  (1) 2010.11.11
신형 전투복의 로열티  (11) 2010.1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