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기무사령부 5층 복도에는 역대 사령관의 사진이 줄줄이 걸려 있다. 기무사가 과천으로 이전하기 전 서울 소격동 청사 본관 1층 회의실에 있던 사진들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여기에 과천으로 옮긴 후 취임한 사령관들 사진이 더해졌다.

 

역대 사령관 사진 중 제16대 보안사령관을 지낸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것은 없다. 비록 독재자였지만 군 통수권자였던 박정희 전 대통령을 시해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대법원이 반란수괴, 내란 목적 살인 등을 저지른 것으로 판결한 전두환(20대 사령관)·노태우(21대) 전 대통령의 사진은 나란히 걸려 있다. 기무사의 부대 이념인 ‘자유 대한민국 수호’와는 거리가 멀었던 사령관들을 지금도 예우하고 있는 것이다.

 

1979년 등장한 신군부의 쿠데타는 보안사령부를 주축으로 이뤄졌다. 1980년대 말 민주화 이후엔 불법 정치사찰 파문 등으로 나라를 뒤흔들었다. 군사정부 시절 보안사가 절대권력이자 공포와 억압 정치의 상징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일반 국민들의 눈에는 이 쿠데타 주역들의 사진이 정상적으로 보이기 힘들다. 과거 영화를 그리워하는 게 아니냐는 불편한 시선도 있는 것이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역대 사령관 사진에서는 부부 사기사건으로 물의를 빚은 장영자씨의 남편 이철희씨(11대 사령관·육군방첩부대장), 전역 후 사학비리를 일삼다 구속된 백인엽씨(2대 사령관·특무부대장) 등은 물론 일본군 헌병 오장 출신으로 김구 선생 암살범 안두희의 배후로 거론되는 친일파 김창룡씨(5대 사령관·특무부대장) 등도 볼 수 있다. 심지어 김창룡씨 시신은 ‘1998년 특무부대의 후신인 국군기무사령부의 노력으로 대전 국립묘지로 이장되었다’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밝히고 있다.

 

기무사는 일반 시민들이 보는 사진도 아니고 부대원들이 보는 것인데 왜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느냐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기무사의 역사인식은 조직의 논리가 우선한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일선 야전부대 사령부 복도에 걸린 역대 부대장 사진도 기무사령부와 마찬가지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거쳐간 부대의 역대 부대장 사진들 속에서는 봉황 문양이 붙은 이들의 사진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들과 함께 쿠데타를 주도했던 멤버들의 사진도 다 걸려 있다.

 

반면 육군 6사단장과 3군단장을 지냈던 김재규 전 중정 부장은 그가 거쳤던 부대의 역대 부대장 사진에서 빠져 있다. 3군단장으로 취임한 한 3성 장군이 “김재규 전 군단장의 사진도 걸어야 하지 않느냐”고 했다가 요주의 인물로 상부에 보고됐다는 말도 있다.

과거 국가반란과 각종 비리 등으로 물의를 빚었던 자들이라면 추앙의 의미가 있는 사진을 빼고 그 자리에 이름과 재임 시기만 적어 놓으면 될 것이다. 잘못된 과거사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는 의미에서도 그렇다. 그렇지 않고 단순한 기록의 의미라면 군은 김 전 중정 부장의 사진도 걸어야 할 것이다.

 

두 전직 대통령의 사진은 걸리고, 김 전 중정 부장이 빠진 이유를 알아보려 했지만, 구체적으로는 잘 모른다는 대답들이 돌아왔다. 그러면서도 그 배경에는 과거 보안사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얘기하는 군인들이 꽤 많다. 막연한 추측이지만 과거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던 보안사를 들먹이는 것이 가장 비슷한 대답일 수 있다고 여기는 듯했다.

 

기무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개혁의 대상으로 입방아에 오르내린다. 어찌 보면 거의 ‘동네북’ 수준이다.

 

정권 입장에서도 기무사는 개혁성을 강조하는 카드로 활용하기에 최상이다. 국민들에게는 아직도 과거의 부정적인 인식이 큰 데다, 군 내부에서도 군림하는 기관이라는 인식이 크기 때문이다. 그만큼 개혁 이미지를 홍보하는 데 ‘가성비’가 높은 조직이 기무사다.

 

이에 부응이라도 하듯 기무사는 여러 정권을 거치면서 ‘어깨 힘’을 상당히 빼낸 것도 사실이다. 바뀌는 시대환경에 맞춰 스스로 자정의 노력을 해왔고, 부정적 시각을 털어내려고 꾸준히 애써 왔다는 평가도 받았다. 그런데도 기무사에 대한 시각은 여전히 우호적이지는 않다. 왜일까.

 

기무사의 법적 근거는 “군사상 필요할 때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부 장관의 지휘·감독하에 합동부대와 기타 필요한 기관을 둘 수 있다”고 규정한 국군조직법 제2조 제3항이다. 이는 대통령령으로 폐지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대통령이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문을 닫게 할 수 있는 취약한 구조라는 뜻이기도 하다. 반면 대통령이 군 통수권자로서 기무사를 친위부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애초부터 관계 법령을 만들었다는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기무사 전신인 1950~1960년대 육군 특무부대 및 방첩 부대원들은 조선시대 암행어사가 차던 마패와 유사한 공무집행 메달을 지니고 다녔다. 이 메달에는 ‘본 메달 소지자는 시기, 장소를 불문하고 행동의 제한을 받지 않음’이란 문구가 적혀 있었으니 그 위상을 짐작할 만하다.

 

군내 기무사의 위상은 대통령 독대 보고를 하게 되면 급상승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사라졌던 기무사령관 대통령 독대는 이명박 정부에서 부활했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후반기에는 기무사령관의 독대가 이뤄졌다.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 독대를 없애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기무사의 활동 범위를 재조정하는 조직 개편이 이뤄질 것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기무사 위상이 낮아질 것이라고 보는 군 간부들은 많지 않다. 당장 국방부 청사를 들어서면 VIP층이라고 할 수 있는 2층에는 국방장관실과 국방차관실, 그리고 국방부를 담당하는 기무사 100부대장실이 있다. 부대장 계급은 준장이지만, 그 위치만으로 국방부 내에서의 위상을 읽을 수 있다. 국방부 공무원들이 한때 정부 행정부처인 국방부 청사 내에서 군 부대인 기무부대가 철수할 것을 요청하기도 했지만 요지부동이다. 쿠데타 주도자들의 사진을 여전히 걸어놓고 정보·보안 부대답지 않게 사무실 위치부터 군림하는 모습으로 비치는 한 기무사 개혁은 요원하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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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무사에선 무슨 일이?(기무사령관은 왜 짤렸나)

 

 

 국군 기무사령부 사령관이 6개월만에 전격 교체되고 참모장 등 주요 간부도 경질되는 등 대대적인 인사이동이 이뤄진 데 대해 뒷말이 여전히 무성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씨와 절친한 고교·육사 동기인 이재수 중장(육사37기)이 군 정보기관의 수장 자리인 기무사령관으로 오면서 장경욱 전임 사령관(육사36기)은 취임 6개월만에 이임식도 갖지 못하고 짐을 꾸려 사무실을 떠났습니다.

 

 

 

 

 

 장 전 사령관은 인사 제청이 이뤄질 때까지도 본인의 경질을 에상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기무사령부 직원들은 장군 인사 발표날 사령관과 참모장이 직무대리 꼬리표를 떼면서 별 하나씩을 더 달게 될 것으로 예상하고 축하 꽃다발과 함께 다과회까지 준비했다가 모두가 황망해 했다고 합니다.

 

 장 전 사령은 후임 보직도 받지 못해 전역하게 됐습니다. 김선일 전 참모장(육사40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재수 신임 사령관은 주말인 26일 취임식을 마치자마자 참모장과 국방부 기무부대장 등 주요 간부 인사 조치도 단행했습니다. 기무사의 기존 주요 간부 대부분은 이제 전역하거나 한직인 야전사단 다른 부대로 옮기게 됩니다. 기무사 부장 중 한명은 사단 부사단장으로 전출되는데 대해 반발해 전역하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장 전 사령관이 경질된 데는 김관진 국방장관 등 군 수뇌부와 인사에서 이견을 보인 것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고 대다수 언론이 보도하고 있습니다. 최근 문제가 확대되는 군 사이버사령부 댓글 사건과 관련해 기무사령부 대처가 미흡했기 때문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설도 나오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번 ‘인사 태풍’은 기무사 개혁의 신호탄이라는 분석까지 나돌고 있습니다. 기무사가 방첩 임무는 물론, 군내 정보를 수집하는 핵심 정보 기관이라는 점에서 박 대통령이 그동안 손대지 않았던 기무사를 다잡으면서 군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할 것이란 해석도 등장했습니다. 기무사가 군 보안과 방첩(防諜) 관련 군내 정보를 수집하고, 내란·외환(外患)·반란죄에 대한 수사 권한도 갖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물론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정부가 출범한 지 8개월이나 지난 다음에 현 정부에서 임명한 기무사령관을 돌연 경질하고 간부들까지 대거 교체한 ‘인사 태풍’은 다분히 ‘꽤씸죄’ 성격이 있는 것 같습니다. 기무사령관이 취임 6개월 만에 이임식도 갖지 못하고 교체된 경우는 1993년 3월 서완수 기무사령관이 회의 중 전화로 교체를 통보받는 형태로 전격 경질된 뒤 처음이라고 합니다.

 

 장 전 사령관은 중·대장급 인사를 앞두고 청와대에 군내 여론 동향을 보고하면서 “지난 정권에 이뤄졌던 군인사의 난맥상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내용을 전달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청와대의 코드와는 별로 맞지 않았다고 합니다.

 

 김관진 국방장관에 대해서는 측근들을 중용한다는 식으로 인사를 잘못하고 있다는 내용도 전달해 장관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장 전 사령관은 역풍을 맞고 군복을 벗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장 전 사령관이 경질되자 과거 ‘찌라시’에서 언급됐던 기무사와 국방부 기자단과의 간담회까지 도마에 올랐습니다. 장 전 사령관이 기자들과의 저녁 자리에서 여성 비하적 발언을 했다느니, 구태스러운 모습을 보였다느니 하는 내용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참석 기자들의 전언에 따르면 찌라시의 내용은 상당부분이 부풀려지고 왜곡된 내용이 많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심지어는 기무사령관이 국회 국방위원들에게 추석 선물을 보낸 것이 방송 뉴스로 보도된 것도 부적절한 처신이라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기무사령관이 국회 국방위원들에게 명절 선물을 보내는 것은 오랜 관례입니다. 다만 집으로 보내지 않고 국회로 보내 TV 카메라에 찍혔던 것이 비판의 빌미를 제공했던 것 같습니다.

 

 군 인사에 정통한 인사는 위의 모든 것들이 기무사령관을 경질하는데 쪼잔한 일부분으로 작용했을 수 있지만 가장 큰 핵심적인 사안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즉 가장 핵심적인 경질 사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알려지겠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국방부를 10년 이상 출입한 경험을 종합해 보면 기무사령관이 경질된 이유는 청와대와 군 수뇌부에 ‘지휘 부담’을 준 탓이 큰 것 같습니다. 청와대가 기무사령관의 보고를 긍정적으로 접수하고, 이를 군 인사에 반영하려면 국방장관부터 시작해 상당수 실세 장군들을 숙청해야 합니다.

 

 청와대가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기무사령관을 짤라야 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청와대는 기무사령관과 기무사령관이 비판한 군 수뇌부 가운데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데, 청와대는 후자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입니다. 기무사령관 경질을 놓고 “힘쎈 놈이 이기는 거죠”라고 한 군 관계자의 말이 와닫는 대목입니다.

 

 결국 기무사 지휘부가 적절치 못한 판단으로 청와대와 군 수뇌부에 지휘부담을 줬다는 이유로 청와대가 기무사 지휘부 간부들에게 ‘공동 책임’을 물었다고 해석이 됩니다. 마침 '예정된 기무사령관' 이재수 장군의 존재도 장경욱 건 사령관의 경질에 영향을 끼쳤을 것입니다. 예정보다 일찍 임명되기는 했지만 어차피 이재수 장군이 기무사령관을 거칠 것이라는 예상은 대부분이 하고 있던 터였습니다.

 

 물론 장경욱 전 기무사령관은 결정적인 문제가 드러나 경질됐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이 역시 기무사 지휘부가 모두 물갈이된 것으로 봐서는 그 가능성이 희박해 보입니다. 즉 청와대와 국방장관이 기무사 지휘부 모두의 책임을 물었기 때문이지요.

 

 장경욱 전 기무사령관과 김선일 전 기무사 참모장은 두사람 다 ‘튀는’ 스타일이라기 보다는 조용히 업무를 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새롭게 기무사 수뇌부 라인업을 짠 이재수 신임 사령관과 김대열 신임 참모장(육사40기)은 색깔이 분명한 편입니다.

 

 이 대목에서 신임 참모장으로 부임한 김대열 장군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 대열 장군은 전임자인 김선일 준장과 경기고 동문인데다 육사 40기 동기생입니다. 김선일 준장이 재수해 육사를 들어가 고교는 1년 선배입니다.

 

 김대열 장군은 MB정권 초기에 청와대 근무를 하는 등 승승장구하다가 정권이 바뀌면서 김선일 준장이 기무사령부 참모장으로 치고 나오는 바람에 인사에서 ‘물’을 먹은 셈이 됐습니다. 그러다 이번 인사에서 ‘역전’에 성공했습니다.

 

 신임 사령관이 기무사 경험이 없다는 점에서 기무사에서 뼈가 굵은 신임 참모장의 역할은 매우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참모장의 결재가 없다면 주요 보고 사안은 기무사령관에게 전달될 수도 없습니다.

Posted by 경향 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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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11.04 12: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퍼런 칼날을 휘두르시는건 간만이네요. 잘 보았습니다

  2. 흠.. 2014.12.13 13: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으나, '와닫는 대목'이 아니라 '와닿는 대목'이라고 쓰셔야 맞습니다. 기자 분이신 것 같은데, 기본적인 맞춤법이 아쉽네요.




과거가 화려했던 사람일수록 과거에 집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무소불위 조직의 ‘단 맛’을 봤던 일부 구성원들도 마찬가지인 것같다.

국정원이 내곡동으로 이사가지 않고 남산에 있었던 국가안전기획부 시절, 근처의 단골 음식점에서 술 한잔 마시고 과거 중앙정보부 시절 ‘무용담’을 늘어 놓는 나이먹은 직원들을 목격한 적이 있다.
그들은 과거 힘쎘던 시절의 행위를 그리워 했지만 대신 당했던 사람 입장에서는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악몽’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20년 전 안기부 사람들 얘기를 꺼낸 것은 최근 인도네시아 특사 사건을 놓고 국가정보원과 국군기무사령부의 알력이 사건 표면화에 한 원인일 것이라는 추측 보도들이 나오는 것을 보고 여러 생각이 떠올라서다.

10여년 전 국방부에 처음 출입했을 때 우연히 알게 된 보안사 출신이 있었다. 그는 가끔 옛날 얘기를 하면서 권총 한자루 허리에 차고 정부 청사의 한 부처를 ‘접수’했던 무용담을 소개하기도 했다. 또 한 간부는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를 ‘접수’했던 시절의 경험담를 전했다.(이는 기무사 간부에게는 무용담이지만 국정원 직원들 입장에서는 총구 앞에서 무릎을 꿇었던 치욕일 수밖에 없다)

국정원과 기무사, 참 묘한 관계인 것 같다. 기무사도 한때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정권을 창출했던 조직이어서 더욱 그렇다.

1979년 10·26 이후 보안사(현 기무사)가 중앙정보부(현 국정원)를 접수하면서 많은 중정요원들이 수모를 당했던 과거의 아픈 기억은 꽤 많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두 기관 사이 관계에 알게 모르게 상당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과 기무사는 2000~2001년에 기무사 이전을 놓고 힘겨루기를 펼쳤다. 기무사가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정원 인근으로 사령부를 이전하려고 하자 국정원이 결사 반대했다.

결국 이 힘겨루기는 기무사가 현재 사령부가 있는 과천쪽으로 이전을 결정하면서 국정원의 승리로 결판이 났지만 그 과정에서 에피소드가 꽤 있었다.

발단은 기무사가 1999년 서울 종로구 경복궁 맞은편에 위치한 사령부(옛 보안사령부)의 낡은 건물을 헐고 내곡동 국정원에서 직선거리로 12.5㎞떨어진 부지로 이전키로 결정하면서 시작됐다.

그러자 국정원은 “정보기관의 밀집은 적의 공격에 취약해지는 등 안보상문제가 있다”는 논리로 기무사의 이전을 끈질기게 반대했고, 기무사는 정보기관끼리 같이 있으면 “‘시너지 효과’가 있다”는 논리 등을 내세웠다.

당시 국정원의 반대 이면에는 또다른 이유가 있었다. 기무사가 이웃이 될 경우 고도가 더 높아 국정원의 원장공관과 주요시설을 파악당할수 있다는 점과 과거 기무사의 전신인 보안사에 접수당했던 ‘피해의식’이 함께 얽힌 감정적 측면이 작용했다는 게 정설이다.

이 과정에서 국정원 고위 관계자는 기무사가 사령부 부지를 확보하기 위해 땅을 팔기를 꺼려하는 지주들을 회유하는 수법을 소개하면서 기무사를 비난했다.

당시 이 고위 관계자는 “기무사 직원들이 땅 주인들을 찾아다니면서 군에 복무중인 자식들이나 친인척들까지 들먹이며 회유했다”고 전했다. 즉 “00 부대에 근무중인 아드님이 군복무 잘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는 “아드님이 0월에 군 입대한다죠”라고 넌지시 말하는 식으로 땅 주인들을 압박했다는 것이다.(기무사는 국정원 고위 간부의 주장을 부인했지만 일부 땅 주인은 처음에 땅 팔기를 강력히 거부했다가 나중에 기무사의 제의를 받아 들였다) 

결국 기무사가 내곡동 인근이 아닌 과천 이전을 결정하면서 양측의 갈등은 봉합됐다. 하지만 두 기관 모두 ‘한때 정권을 좌지우지했다’는 자존심이 묘한 방식으로 표출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현재 두 기관의 위상으로 따지자면 기무사는 제도적으로 국정원에 예속돼 있다고 볼 수 있다.

국정원은 기무사의 정보 활동비를 일부 지원하고 있기 때문에 보안 감사 등의 명분으로 정보를 요구할 수도 있다. 정보예산은 국정원법 제3조2항(기획·조정 업무의 범위·대상·절차)과 대통령령인 ‘정보 및 보안업무 기획조정 규정’에 따라, 국정원장이 편성·감사 권한을 갖고 있는 예산이다.

국정원은 이처럼 모든 정보 예산을 통제하고 있다. 이때문에 기무사가 공작사업을 위해 하는 것 역시 세목별로 국정원에 신청해야 한다. 이는 사실상 국정원이 기무사 예산 승인권을 갖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기무사는 예산을 타서 쓰기 때문에 국정원의 감사도 받아야 한다. 그런만큼 국정원은 기무사 정기 사업예산 감사를 통해 기무사가 하는 일을 속속들이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번 인도네시아 특사 숙소 침입사건이 벌어진 이유 중 하나로 국정원과 국방부간의 불신과 반목이 꼽힌다고 일부 언론들이 보도하고 있다.

국방부와 기무사가 T-50 등 방산물자 수출에 대한 정보를 국정원과 제대로 공유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국정원이 정보 획득을 위해 독자적으로 ‘잠입 작전’을 벌이는 강수를 뒀을 가능성이 크다는 식의 보도다.

국정원도 사건을 무마할 수 있었으나 “국방부 소속 대령이 경찰에 신고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고 국방부에 책임을 돌렸다는 보도도 나왔다.

그러나 MB정부가 들어선 이후 이번 사건 뿐만이 아니라 국정원 요원들의 행위는 엉성하기 짝이 없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국정원 소속 직원의 ‘기무사 직원 사칭 사건’은 대표적 사례 중 하나다.

2009년 9월 국정원 직원은 일본 간사이 국제공항에서 진보 성향의 민간 문화단체인 ‘5인조 노래패’를 사찰하면서 정체가 드러나자 국군기무사령부 요원을 사칭했다. 사진촬영을 하다 붙잡힌 그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내사 중인 노래패 ‘우리나라’의 일본 체류 일정과 동향을 파악하라”는 지시 내용이 담긴 ‘3급 비밀문서’(2장)를 소지하고 있던 사실도 들통냈다.

하지만 당시 실상을 몰랐던 민주노동당과 진보단체 등에서는 기무사를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해 기무사는 난처한 입장에 빠졌다. 그러자 기무사는 “억울하다”며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 등에게 ‘노래패 사건은 기무사와 전혀 상관없다’는 내용 증명을 보내면서 명예훼손 등 법적 대응 방침을 밝히기도 했지만 이후 유야무야됐다.
 
법적 대응을 하다보면 정보기관의 ‘아우’격인 기무사가 ‘형님’격인 국정원을 곤란한 지경에 빠뜨리게 하는 것은 물론 국정원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국정원이 지난해 12월 초 국회 정보위에서 ‘북측이 서해 5도에 대한 공격 명령을 내렸다는 내용을 8월 감청을 통해 파악했다’고 밝힌 것에 대해서도 국정원의 면피성 행위라는 게 국방부와 합참의 시각이다. 당시 ‘SI 첩보’(감청정보)의 해석을 놓고 국정원이 자신들의 입맛대로 사실을 왜곡했다고 국방부와 합참의 고위 간부들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아뭏든 진실 여부를 떠나 기무사 요원들이었다면 어떻게 했을 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한 것은 과거 사례의 예를 보면 멀쩡한 신사복 차림으로 호텔 방을 들어가지는 않았을 것 같다.

Posted by 경향 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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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기러기 2011.02.24 09: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주 흥미롭게 읽고 갑니다.

  2. 황보경 2011.02.24 22: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용이 재미있네요. '증'은 있는데 '애'는 전혀 없네요??? 직원의 평균적 질은 그래도 국정원이 한수 위 아닐런지.
    국정원을 소재로 한 영화들은 있는데 기무사에 관한 영화가 없음은?
    기무사 직원의 국정원 사칭은 마치 우리가 해외에서 X팔리는 짓 하고 '스미마셍'하는 것 같지 않나요?

    친구 남편이 그 옛날에 외시 출신으로 보안사에서 노 아무개의 테니스 파트너였다가 덕을 많이 봤죠.
    작년까지 기세등등하더니 꺾입디다. 이혼하라고 등을 떠밀 정도로 형편무인지경의 인간이었는데...

    봄색 완연한데 스테미너 좋아지는 맛있는 것 많이 들고 건필!

  3. 이정용 2011.02.27 02: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보기관 국정원과 기무사에 대한 기사가 왜이렇게 과거를 되집게하는지 과거 그러니까 1968년경 보아사시절 보안사 정보요원으로 그때 오직국가에 대한 충성심에서 활동했든 사실의 이간적으로는 도저히 해서는 않될 여러가지 사실때문에 지금은 죄책감에 사료잡혀 ....오직 지금까지 한세상을 살아오면서 보안사요원으로 있으면서 죄없는 민간인들을 그토록 권력을 남용해서 그들에게 하엿든행위에 대한 용서는 구할길없이 그냥가슴에 품고세상을 하직할것같네요 그당시에 저질렸든 죄악은 글로서는도저히 표현할수가 멊겠네요 참으로 씻을수 없는 악당행위를 하였다고 항상마음에 새기고 살고있네요 참권력남용 상상할수없을 정도였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