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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 코멘터리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국방의무

‘병력 50만명 시대’가 불과 3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정부는 지난 18일 인구감소에 따른 ‘군인력 획득체계’에 대한 개선 방침으로 ‘첨단 과학기술 중심 전력구조로 개편’ ‘병역자원의 효율적 활용을 위한 전환복무(의경·해경·소방 등) 및 대체복무(전문연구요원·산업기능요원 등) 적정수준 검토’ 등을 내놓았다. 여군 활용 확대 방안 모색, 부사관 임용제도 개편 및 귀화자 병역 의무화 검토도 포함시켰다.


수년 전부터 나온 대책의 재탕이다. 이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국방의무 방안을 찾아야 할 때인데도, 병역자원 숫자에 집착하는 과거 인식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반증이다. 시대에 맞게 병과제도를 혁신하는 군 내부의 소프트웨어 변화도 보이지 않는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현역자원 부족현상은 이미 시작됐다. 국방부와 병무청이 현역자원 부족을 막기 위해 무리한 현역 판정을 하고 있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국방부 등은 적정한 현역 판정률을 평균 83%로 잡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그 부작용으로 매년 현역병 복무 부적합 판정을 받아 조기 전역하거나 자살 예방을 위한 관리 프로그램인 그린캠프 입소자가 급증했다는 점이다. 정의당 김종대 의원이 지난해 국감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높은 현역 판정률에 의한 병역 약자들의 군 입대로 병역 부적합자의 조기전역이 연간 7000명, 그린캠프 입소자가 4000명, 입실자가 3만명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김 의원은 “복무기간을 21개월로 가정해도 오는 2020년 군의 규모를 52만명으로 유지하려면 현역 판정률은 92.4%까지 높아지게 된다”며 “복무기간이 18개월로 감소한다면 상황은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실 현역 판정률이 90%를 넘는다는 것은 외형적으로 장애를 갖고 있지 않다면 대부분 군 입대를 해야 한다는 거나 마찬가지다. 이는 현역 판정을 할 때 병력이 모자라면 신체 기준을 낮추고, 여유가 있으면 높이는 것으로 그리스 신화의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와 크게 다를 바 없다. 프로크루스테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나그네를 붙잡아 자신의 침대에 눕혀 놓고 키가 침대보다 길면 그만큼 잘라내고, 키가 침대보다 짧으면 억지로 침대 길이에 맞춰 늘여서 죽였다.


이제는 국방부와 병무청도 상상력을 발휘해 발상의 전환을 할 때가 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북·미 정상의 판문점 회동도 기존 외교 문법의 틀을 벗어난 상상력이 만든 세계적 사건이었다”고 말했듯이 병무행정도 상상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누구는 군대 가고 누구는 안 가는 시스템이 아니라 누구라도 군 복무를 기꺼이 할 수 있도록 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빅 데이터를 활용한 징집이 가능하다. 다양한 방식으로 모집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근무할 수 있는 맞춤형 군대를 만들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난수표 컴퓨터 배치와 같은 산술적 평등에서 벗어나 적재적소 배치가 이뤄져야 한다. 병역자원을 컴퓨터 무작위 배치가 아닌 적재적소에 배치하도록 병역자원 관리개념을 바꿔야 한다. 병역자원 배치도 국가와 군이 필요로 하는 인재 양성과 맞물려 이뤄질 수 있다. 가령 군에서 컴퓨터 운용과 사이버전을 수행하는 인력이 필요하다면, 컴퓨터와 소프트웨어 전공자를 선발해 실무 훈련을 시켜 활용해야 한다. 병사들은 전역 후에도 관련 기업에서 일할 수 있다. 물론 병사 모두에게 전문성을 부여할 수는 없지만 군대가 비전과 목표를 가지고 본인의 역량을 키우는 시간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제는 굳이 28세로 군대 징집 연령을 제한할 필요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이스라엘군의 ‘9900부대’는 정보국 산하 리얼타임 인텔리전스 센터의 영상정보관리조직이다. 이곳에서는 30여명의 병사가 위성 사진 판독 등 업무를 하고 있는데, 이들의 업무집중도와 전문성은 최고 수준이다. 그 배경에는 18~22세 고졸 인터넷 및 게임 마니아들이 배치된 데 있다. 자폐증세가 심한 ‘서번트 지니어스’도 포함돼 있다. 이처럼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군대에서는 장애인이라도 얼마든지 근무할 수 있는 보직을 만들 수 있다.


이스라엘군은 여러모로 한국군의 벤치마킹 대상이다. 이스라엘군은 우수한 인재가 군복무 기간 동안 과학기술 분야에서 연구할 수 있도록 한 제도인 탈피오트 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있다. 한국군도 이를 벤치마킹해 과학기술전문사관제도를 도입했지만, 최상위 고교 졸업생 50명을 뽑아 양성한 후 국가 핵심 두뇌로 양성하는 탈피오트 프로그램과는 사뭇 다르다.


이스라엘은 엘리트 음악인을 위한 ‘아웃스탠딩 뮤지션 프로그램’도 운용하고 있다. 일부 소수 인원에게만 혜택을 주는 한국의 병역특례제도와는 다르다. 해당 병역자원들은 5주 기초군사훈련 후 하루 6시간을 근무한다. 이들은 퇴근 후 레슨 및 개인연습을 할 수 있고 90일간 출국도 가능하다. 대신 출국기간만큼 복무기간이 연장된다. 그룹 방탄소년단(BTS)에도 적용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한국군 병과제도는 원정군 개념의 미군을 본떠 만든 6·25 당시 시스템이 4차 혁명시대인 지금까지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발전적 재편이 필요하다. 한반도가 전장인 한국군은 독일군처럼 재정과 군종, 법무 등 민간위임이 가능한 분야는 민간인이 임무를 수행하도록 하는 것도 병력 수를 줄이는 하나의 방안이다.


인구절벽으로 모자라는 자원을 모병제로 충원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일종의 징병제와 모병제의 혼용이다. 필요하다면 남녀평등 차원에서 여성자원도 병사로 모집할 수 있어야 한다. 


병역자원을 모병하는 데 대한 막연한 거부감을 극복해야 한다. 군대도 하나의 직장이다. 입대부터 적정 보수를 받으며 장기 복무할 전문 병사가 필요하다. 모병 자원은 숙련도와 동기부여가 높아 군 전력 강화에도 도움이 된다. 저소득층만 주로 지원할 거라는 우려에 대해선 군대를 어엿한 일자리로 자리매김해주고, 장기 복무에 대한 사회적 혜택을 주는 방향으로 가면 된다. 대학 특별전형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지금이라도 징병·모병 혼합제로 전환할 경우 북한과의 전력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병력구조는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 필요한 예산은 어느 정도인지 등 복합적이고 종합적인 검토를 시작해야 한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