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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 코멘터리

‘운장’도 모자라 ‘묵장’까지 등장한 군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 서해 행담도 휴게소 인근 해상에서 ‘잠수함 잠망경 추정 물체를 발견했다’는 신고를 받고 지난 17일 군이 보인 태도가 딱 그짝이다. 잠망경 추정 물체 신고는 5시간 만에 신고자의 착각으로 결론이 났다. 이 과정에서 합동참모본부는 언론에 두 차례 문자 공지를 하고 상황 종료 후 작전상황 백브리핑까지 실시했다. 이는 과거 사례와 견줘 매우 이례적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합참은 5시간 동안 벌어진 해프닝에 대해 마치 중계하듯 브리핑했다. 고속도로 순찰대원의 신고 순간부터 해당 지역을 관할하는 32사단에 전달된 과정, 신고 내용이 다시 고속상황전파체계를 통해 합참에 전파돼 박한기 합참의장과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관련 상황을 보고받고 위기조치반을 가동한 과정을 소상하게 설명했다. 장관과 합참의장 주관의 상황평가회가 열렸던 사실도 전달했다. 그러면서 현장 해역 수심 등을 고려할 때 오인 신고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지만, 해상과 육지에서 수중 침투 상황 등에 대비한 다중 수색·차단 작전을 펼쳤다고 했다. 수로 집중탐색 작전과 대잠초계 작전을 실시하고, 침투자의 이동속도를 고려한 차단 작전도 전개했다는 것이다.


합참은 오인 신고 가능성이 큼에도 관련 상황을 언론에 적극적으로 공개한 배경에 대해 “병력이 현장에 출동하면 외부에서도 알게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며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군의 정상적인 노력으로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관광객들이 달빛이나 등대에 비친 물체를 보고 신고하고 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북한 목선의 삼척항 입항사건’ 등을 계기로 불거진 은폐·축소 논란을 고려한 조치라는 점도 밝혔다. 그러면서 출동한 장병들이 다 휴대폰을 쓰고 있고 이후에라도 알려질 부분이라서 설명한 거라고 했다. 최근 북한 소형 목선 사건과 해군 2함대사령부 거짓 자백 등 잇단 은폐·조작 의혹으로 홍역을 치른 군이 혹시라도 모를 논란을 피하기 위한 행위라는 점을 스스로 밝힌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면 상세하게 브리핑할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구체적인 답변을 피했다.


군 당국의 이례적인 ‘친절’은 잇단 경계작전 실패와 은폐·조작 의혹으로 인해 정경두 국방부 장관에 대한 해임안이 국회에 제출되고, 이달 말이나 다음달 초로 예상되는 개각에서 정 장관이 교체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대신 대공 수색·탐지 작전 상황을 공개하는 합참 장성들의 표정에는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군 당국의 이 같은 대언론 브리핑은 군의 ‘전략적 소통’, 즉 전략 커뮤니케이션(Strategic Communication)에 따라 이뤄진다. SC는 9·11 테러 이후 미군의 전략목표 달성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강화·유지하기 위한 개념으로 만들어졌다. 한국군은 미군을 모방해 ‘핵심 대상’에게 영향을 극대화하기 위한 메시지를 전달한다며 SC를 활용하고 있다.


군이 규정하는 SC는 “전·평시 국가의 전략목표 달성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대상의 인식, 신념, 행동의 변화를 유도하는 정부 차원의 통합된 체계와 과정”이다. 문제는 군이 국민을 상대로 SC를 적용하면서 정확한 상황을 전달하기보다는 기만하는 경우가 잦다는 점이다. 한·미 국방장관은 지난해 6월 제17차 아시아안보회의에서 한반도 연합훈련을 ‘로키(low-key)’로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이를 놓고 국방부는 “연합훈련을 진행하되, 전략적 소통 차원에서 과다한 홍보를 안 할 수도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일반 국민 입장에서는 헷갈리는 발언이다.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한·미 연합훈련을 약하게 하겠다는 것인지, 훈련은 과거처럼 고강도로 하지만 국민들에게 알리는 것만 자제하겠다는 건지 모호했다. 과거 정부에서는 안보 무능을 숨기기 위한 의도로 필요하다면 연합훈련에 참가하는 미군 병력을 부풀리는 것도 SC에 포함했다. 


이런 사례는 약과다. 북한 소형 목선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불리한 건 숨기고, 변명거리는 장황하게 늘어놓는 게 요새 군의 SC다. 과거 정부와 다를 바 없는 ‘이기적 소통(Selfish Communication)’이다. 박근혜 정부 당시 탄핵정국 때는 군사뉴스 자료를 집중적으로 뿌려 이른바 ‘시국 물타기’를 시도하기도 했다. 군사뉴스를 양산해 탄핵뉴스 꼭지를 조금이라도 줄이고, 대선정국에서는 안보 위기감을 키우려 했다는 의혹을 샀다. 실제로 탄핵정국 당시 각군 총장들과 해병대사령관의 훈련 지도 보도자료는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급증했다.


심지어 댓글 공작까지 SC 일환으로 여겼다. 이명박 정부 때 군의 댓글 공작을 주도한 이태하 전 사이버사 530단장(심리전 단장)은 “한국 대·총선, 미 대선, 러 대선 등 과도기를 이용한 북한·종북(세력의) 활개가 예상된다”며 “전략적 커뮤니케이션(SC)에 따라 국가·국방정책 홍보에 주력해야 한다”고 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북한 소형 목선 사건에서 보여준 군의 ‘SC 메시지 관리’는 대실패작이었다. 군 수뇌부는 잘못된 SC로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책임을 야전군 지휘관에게 떠넘겼다. 윗선이 두리뭉실하게 또는 딴 얘기를 하면 부하가 책임을 안고 가는 꼴이었다. 이 과정에서 지장·용장·덕장은 없었다. 다만 운으로 진급하고 영전했다는 ‘운장(運將)’과 책임을 피하기 위해 침묵하는 ‘묵장(默將)’만 있었다. 국방부가 주요한 언론 관련 대응 상황을 청와대에 보고하고 ‘가이드라인(PG)’을 작성한다는 것을 알 만한 군 간부는 다 알고 있던 터다.


국방 역시 공공재다. 최근 군에 대한 불신은 공공재 정보를 선택적으로 알리고 수위를 조절해 여론을 관리하려는 SC에서 비롯됐다. 군 고위층을 두고 책임에서 빠져나가는 자신들을 위한 SC만 잘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입맛에 따라 팩트도 무시하고 여론을 관리할 수 있다는 이른바 SC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고치지 않는 한 이런 일은 반복된다. 군이 국민의 알권리가 뭔지를 모르는 철학의 빈곤에서 벗어나길 바라지만, 호들갑스러운 잠수함 ‘오인 신고’ 브리핑을 보면 아직 먼 길이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