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조선중앙TV가 지난 4일 동해 해상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참관 아래 진행한 화력타격훈련 사진을 5일 방영했다. 김 위원장이 훈련 상황이 나온 모니터를 가리키자 수행 간부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이 지난 4일 발사한 단거리 발사체 10여발 가운데는 북한이 ‘전술유도무기’라고 밝힌 기종이 포함됐다. 이를 놓고 군사 전문가들은 ‘단거리 미사일’로 평가했지만, 한·미 당국은 6일에도 여전히 미사일로 공식 규정하지 않는 태도를 유지했다. 북한은 이번 단거리 발사체 발사로 ‘일석삼조’ 효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에 대한 압박’과 ‘한·미 연합훈련에 대한 경고’, ‘신형 탄도미사일 시험과 장사정포 혼용 발사를 겸한 복합 전술훈련’ 등이 그것이다.
■ 도발 VS 맞대응
주변국 반응 ‘조용’한 건
“남측 서해 5도 점령 목표”
2년 전 직접 위협과 달리
이번엔 ‘자주적 훈련’ 강조
폼페이오 “선 지켰다” 평가
한·미는 북한의 단거리 발사체 발사에 대해 ‘심각한’ 도발로 간주하지 않는 분위기다. 미국 측의 비핵화 협상 사령탑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5일(현지시간) TV 시사프로에서 북한이 ‘선’을 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했다. 한·미 정부 당국이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배경에는 북측의 이번 단거리 발사체 발사가 ‘남측 서해 5도 일부의 점령을 목표로 실시했다’고 직접적으로 위협했던 2년 전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단거리 발사체 발사가 ‘자위권 차원의 화력타격훈련’ 성격임을 시사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5일 “김정은 동지(국무위원장)께서 5월4일 조선 동해 해상에서 진행된 전연(전방) 및 동부전선 방어 부대들의 화력타격훈련을 지도하셨다”고 밝혔다. 또 김정은 위원장이 “그 어떤 세력들의 위협과 침략으로부터도 나라의 정치적 자주권과 경제적 자립을 고수하고 혁명의 전취물과 인민의 안전을 보위할 수 있게 고도의 격동 상태를 유지하면서 전투력 강화를 위한 투쟁을 더욱 줄기차게 벌여 나가야 한다”고 한 발언을 전했다.
이 같은 보도는 북한이 2017년 8월26일 강원도 깃대령 일대에서 동북 방향 김책 남단 연안의 동해상으로 단거리 발사체 3발을 발사했을 당시와는 결이 완전히 다르다. 북한은 당시 한·미 연합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에 대한 반발 차원에서 도발했다.
당시 북한 조선중앙TV는 “김정은 동지가 섬 점령을 위한 조선인민군 특수작전부대들의 대상물 타격경기를 지도하셨다”면서 “이번 대상물 타격경기는 비행대와 포병, 특수작전부대들의 긴밀한 협동 밑에 백령도와 대연평도를 점령하기 위한 작전계획의 현실성을 확정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백령도와 연평도를 ‘타격 및 점령’ 목표로 하는 작전지도까지 TV 화면에 노출시켰다.
남측은 최근 미 공군과 함께 기존 ‘맥스선더’(Max Thunder)를 대체한 ‘연합편대군 종합훈련’을 실시했다. 이에 대해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지난달 25일 “4·27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에 대한 공공연한 도전”이라며 “그에 상응하는 우리 군대의 대응도 불가피하게 될 수 있다”고 무력시위를 경고한 바 있다. 그 경고가 지난 4일 단거리 발사체 발사로 이어진 것이다.
북한의 이 같은 반발 배경에는 세부사항에서 불완전한 9·19 군사합의에서 비롯된다. 남북은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으로 되는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 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쌍방은 상대방을 겨냥한 대규모 군사훈련 및 무력증강 문제, 다양한 형태의 봉쇄 차단 및 항행 방해 문제, 상대방에 대한 정찰 행위 중지 문제 등에 대해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가동해 협의해 나가기로 했지만, 북·미 정상회담 결렬로 더 이상 진전이 없는 상태다. 현 상황에서는 서로의 대규모 군사훈련에 대한 구체적 가이드라인이 없는 상태여서 남북 모두 ‘장군 멍군’을 교환한 셈이다. 여기에다 북한은 ‘탄도미사일’이라는 예민한 변수를 하나 더 추가해 상대 반응을 떠보고 있는 것이다.
■ 진화하는 북 SRBM
북한이 얻은 ‘일석삼조’
미에 제재 완화 압력 넣고
한·미 연합훈련에는 ‘경고’
‘복합 전술’ 첫 시험해보면서
진화한 단거리 미사일 과시
군사 전문가들은 북한이 지난 4일 발사한 신형 전술유도무기를 작년 2월8일 북한군 창설 7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처음 등장한 ‘북한판 이스칸데르’ 미사일(지대지 탄도미사일)로 분석하고 있다. 외형이 러시아의 SS-26 ‘이스칸데르’를 빼닮았다는 평가에서다.
이는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SRBM)이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는 의미다. 북한은 과거 액체연료를 사용하는 스커드 계열 단거리 미사일을 주력으로 하다가 고체연료형 이동식 단거리 미사일인 KN-02 ‘독사’ 미사일을 개발해 2004년부터 2007년까지 시험발사했다. 북한은 시리아에서 러시아판 랜스 미사일인 SS-21 스캐럽을 들여와 KN-02 미사일을 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이스칸데르급 미사일을 발사하기에 이른 것이다. 북한 단거리 미사일이 액체연료형에서 고체연료형으로, 다시 다단계 비행기종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스칸데르는 하강하는 과정에서 급강하한 후 수평비행을 하고, 이후 목표물 상공에서 수직으로 낙하하는 복잡한 비행 궤적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술적 측면에서 기존 발사체보다 훨씬 유용하다. 러시아식 GPS인 글로나스와 광학탐색기 등을 이용한 종말 단계에서의 회피기동도 가능하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최대 사거리 40여㎞의 패트리엇(PAC-3) 미사일로는 요격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국방부는 “한·미 정보당국이 구체적인 제원과 타격 능력, 더 나아가 탄도미사일로 규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분석이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북한이 발사한 단거리 발사체의 불꽃 색깔과 형상, 관성항법, 비행거리, 발사각도, 비행고도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통상 북한이 발사체를 발사한 후 한·미는 서로의 감시자산에서 획득한 정보를 바탕으로 발사체 성격을 각각 잠정 평가한다. 그런 후 한·미가 발사 정보를 교환하고 정밀 분석한 다음 발사체가 어떤 종류이고, 어떤 궤도와 고도로 비행했는지를 종합평가하는 절차를 거치게 된다. 한국군의 추적자산은 주로 이지스함과 공중조기경보통제기, 그린파인 레이더 등이다. 이 장비들을 통해 북한 발사체의 초기 발사부터 마지막 낙하 지점까지 레이더로 추적한다. 미국은 고해상도 정찰위성으로 북한 발사체의 발사 준비와 발사 과정 등을 영상으로 관측한다.
과거 사례를 보면 북한 단거리 발사체의 최대 고도와 비행거리, 발사각도 등 제원은 이미 분석이 끝나야 맞다. 이런 정황 등을 감안할 때 한·미 정보당국은 북한의 신형 전술유도무기의 정체에 대해 최종 분석이 마무리된 후에도 결과를 내놓지 않을 개연성이 크다. 정보의 키를 쥐고 있는 미국 측으로서는 굳이 괌이나 미 본토는 물론 일본에도 위협이 되지 않는 발사체에 집착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 포병·방공작전 혼선 초래
북한은 이번 전술유도무기에 대해 “각이한 목표에 따르는 여러가지 사격 방식으로 진행한 사격시험과 특수한 비행유도 방식과 위력한 전투부 장착”이라고 표현했다. 이는 사격 방식에 따라 지상, 해상, 공중 등 다양한 목표물에 대해 발사가 가능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즉 타격 목표에 따라 탄두 중량을 달리할 수 있고, 비행경로를 다르게 발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또 이번 단거리 발사체 발사에 240·300㎜ 방사포와 전술유도무기(탄도미사일)를 섞어서 실시했다. 실전이라면 우리 군은 대응 작전에 혼선을 빚을 수밖에 없어 대응책이 절실하게 됐다. 방사포와 탄도미사일은 완전히 다른 무기체계로 대응 작전 개념 역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방사포와 단거리 탄도미사일은 사거리가 비슷할 수 있지만 탄두 무게와 속도, 비행궤적, 파괴력 등에서 차이가 난다. 통상 방사포는 표적에 떨어질 때까지 엔진 추진제가 연소하기 때문에 비행고도가 탄도미사일보다 낮다.
방사포는 탄두가 작고 비행궤적도 저고도이기 때문에 요격이 사실상 불가능해 포병작전으로 대응한다. 탄도미사일일 경우에는 방공작전이 이뤄진다. 탄도탄 조기경보레이더 등을 통해 비행궤적을 탐지·추적해 패트리엇 등 무기체계로 요격에 나서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이번처럼 탄도미사일 발사 차량과 방사포 발사 차량을 동시에 끌고 나와 다양한 방식으로 사거리와 비행고도를 조절해 기만 발사할 경우 대응체계에 혼선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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