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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이야기

군대와 돼지

그동안 풀어놨던 ‘군 이야기’가 블로그 주제로는 다소 무거웠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번에는 가벼운 이야기를 전할까 한다. 하지만 생각하기에 따라 ‘생명’과 관련된 얘기라 무거운 얘기로 여길 수도 있겠다.

 

사회 어느 집단보다 군 만큼 에피소드가 많은 곳은 드물 듯하다. 국방부 출입을 꽤 하다 보니 장교들로부터 이와 관련해 들은 풍월도 많다. 그가운데 ‘돼지’ 얘기가 있다. 주로 야전 지휘관 시절 돼지와 얽힌 경험담이다.

군대에서 돼지는 상품으로 많이 나왔다. 일선 부대별 체육대회가 열릴 때 등에 ‘1등’이라고 쓰여진 돼지는 꿀꿀거리는 것도 잠시, 대회가 끝나면 1등을 차지한 부대원들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문제는 격려품이나 상품으로 지급받은 돼지의 처분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돼지를 ‘분해’해 부대원들에게 먹이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던 것 같다. 

80년대 초 육군 전방부대에서 중대장직을 수행했던 한 간부는 “부대원 중 ‘해체 전문가’(?)가 있어 도루코 칼 하나로 돼지를 잡는 것은 물론 껍질까지 손질을 마무리했다”고 경험담을 늘어났다.

(실제 목격한 바가 없어 약간은 과장된 듯 하지만 워낙 진지하게 얘기해 믿을 수밖에 없었다. 아뭏든 없어서 못먹었지 돼지를 주기만 하면 부대원들이 무지하게 잘 먹었다는 것은 분명했다)

 

심지어 ‘돼지 서리’ 무용담도 있다. 부하들이 한밤중에 민가에 잠입해 돼지를 ‘보쌈’해 먹은 것이 나중에 들통나 주인에게 사과와 함께 돼지값을 물어줬다는 내용이다. 돼지 ‘납치’의 주동자는 톱밥을 반쯤 채워 넣은 모래주머니를 돼지 머리에 씌워 돼지의 숨통을 끊었다고 한다.(놀란 돼지가 크게 호흡하다 돼지코로 톱밥이 한꺼번에 들어가는 바람에 숨이 막혀 세상을 하직했다는 것)
또 전방부대에서 잔반을 미끼로 한 덫을 놔 멧돼지를 잡은 이야기 등이 있다.(구체적인 설명은 잔인한 부분이 있어 생략하겠음)

그러나 세월이 흘러 2000년대를 넘어서면 상황이 달라진다. 돼지를 위문품이나 상품으로 받은 부대 지휘관들은 돼지를 처분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한 해병대 대령이 소개하는 에피소드 하나. 그가 대대장 시절 “돼지를 잡으라”고 명령해 놓고 잠시 후에 가서 보니 돼지가 부대 건물 밑에서 거품을 물며 소리지르고 있더라는 것이다.

사연을 알아보던 그는 어처구니없는 사실을 확인하곤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부대원 그 누구도 돼지를 잡아본 경험이 없는지라 돼지를 건물 옥상으로 끌고 올라가서 건물 밑으로 밀어 떨어뜨렸다는 보고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살이 많은 돼지는 죽지는 않고 추락의 고통에 몸부림칠 뿐이었다. 그는 “빨리 도축장으로 가져 가라”고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군에서도 1970년대에는 돼지를 키웠다. 정부가 새마을운동이 한창일 때 군에서 가축을 키우는 것을
장려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일선 부대에서는 병영 한편에 축사를 마련해 닭과 돼지 등을 키웠다.
군에서는 키운 가축의 일부는 급식으로, 일부는 내다 팔았다.      사진/국방일보

 

다른 돼지 에피소드 하나. 수송부대에 돼지 한마리가 ‘격려용’으로 내려오자 소동이 벌어졌다. 당장 돼지를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부대원들 간에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그러다 누군가가 “차로 밀어버리자”고 제안했고, 이는 실제 상황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돼지는 차량이 그다지 빠르지 않은 적당한 속도로 달려오는 바람에 치이고도 살아 남았다. 앞의 경우처럼 소리만 꽥꽥지르면서. 결국 이 돼지도 급하게 도축장으로 후송됐다.

현행법상 도축장 외에서 소나 돼지를 잡는 것은 불법이다. 하지만 대부분 군 부대에서 도축장까지는 꽤 먼 거리다. 멀리 있는 도축장까지 돼지를 차량에 싣고 가는 것도 문제인데다, 비록 몇만원이지만 도축비까지 내야하기 때문에 요즘 군 부대에서 돼지는 ‘노 땡큐!’다.

이제는 군대에서도 장병들의 격려 차원에서 무엇인가를 보내고 싶다면 ‘돼지’보다는 ‘현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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