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강원 철원에서 20대 청춘의 목숨을 앗아간 사건은 예고된 인재(人災)였다는 게 군 특별조사 결과 밝혀졌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9일 “육군 6사단 병사의 총기사망 사고 원인은 병력인솔부대, 사격훈련부대, 사격장관리부대의 안전조치 및 사격통제 미흡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했다”며 “숨진 이모 상병은 전투진지 공사를 마치고 부대로 복귀하다 도비탄(跳飛彈)이 아닌 사격장에서 직접 날아온 유탄에 희생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사격장 전경. 육군 제공
■도비탄이냐, 유탄이냐
군 수사기관의 이같은 발표를 놓고 일부 언론에서는 의혹을 제기했다. 군 당국이 당초 사고가 탄알이 돌과 나무 등 지형·지물과 충돌해 엉뚱한 방향으로 튀는 도비탄으로 추정했던 것이 책임 회피를 위한 시도였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태명 수사단장(육군대령)은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먼저 “사망자가 쓰러지고 나서 같이 있던 부소대장인 중사가 ‘탄이 튄 것 같다’고 표현하면서 도비탄 추정으로 연대보고가 됐고, 이후 계속 그 용어가 사용된 것”이라면서 “군은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검토하고 조치했다”고 해명했다.
이 단장은 “처음부터 도비탄과 직접 조준사격, 유탄 등 3가지 가능성에 대해 집중 수사해 유탄에 의한 사망이라고 결론 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이 사건 발생 다음날인 지난달 27일 철원군청에서 도비탄 가능성을 언급한 것 자체가 불가항력적인 측면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였다는 지적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사건 초기 군이 면피성 발표에 급급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이에 대해 육군 관계자는 “도비탄 사고이든 유탄 사고이든 간부들이 본인의 해당업무를 제대로 이행못했다면 처벌을 받는것은 똑같다”며 “유탄 사고를 고의적으로 도비탄 사고인 것처럼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도비탄은 총을 누가 쐈는지 알 수 없어 사망 사고의 책임소재를 가릴 수 없다는 주장 자체가 말이 안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군은 유탄을 발사한 총기 소유자가 누군지를 가려내진 못했지만 사고 유발에 관련있는 간부들에게 모두 책임을 물었다.
그는 “사고 현장에 있던 부소대장의 진술에 따른 1차 추정보고를 바탕으로 ‘도비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내용을 국민들의 알권리 충족 차원에서 전달한 게 오히려 문제가 된 것 같다”며 “그렇다고 공식 수사결과가 나올때까지 언론에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으면 오히려 의혹을 키우는 측면도 있다”고 답답해 했다.
육군은 사고 이틀후인 지난달 28일 국방부 정례브리핑에서는 “직접사격 또는 유탄 가능성, 도비탄 가능성까지 모든 것을 염두에 두고 수사가 현재 진행 중”이라며 “탄이 날아온 이동 경로를 확인하기 위해서 사고 시간대에 사격했던 12명 병사들의 총기를 회수해서 채증했다”고 추가적인 내용을 발표했다.
■과거 왜곡발표가 발목잡았나
군 당국이 이번 사건에서 나름 적극적이고 솔직한 설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과거 전력 때문으로 보인다. 그동안 군 당국은 인명 사고 후 말을 바꾸거나 사건을 축소·은폐한 전례가 여러차례 있다.
국방부 ‘사이버사 댓글사건 재조사 TF’ 중간 조사 결과 발표에서는 박근혜 정부 당시 군 수사당국이 사이버사 댓글 수사를 축소·왜곡한 사실이 밝혀졌다. 국군사이버사령부의 총선·대선 개입은 없었고, 김관진 국방장관에게 보고된 바 없으며, 국정원과도 무관하다는 과거 수사결과가 거짓인 게 드러난 것이다. 이 수사를 담당했던 곳이 바로 철원 사격장 사고에 대한 특별수사결과를 발표한 국방부 조사본부였다.
같은 군 수사기관에서 지난 정부에서는 축소·왜곡 수사결과를 내놓았고, 이번 정부에서는 나름 명쾌한 결론을 내놓은 것이다. 이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이 송영무 국방부 장관에게 특별수사를 지시하지 않았으면 국방부 조사본부가 이처럼 빠른 시간 내에 정확한 진상을 규명했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되는 것도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군 인사가 오랜 기간동안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못한 것이 이번 사격장 사고의 원인 중 하나라는 시각도 있다. 군 지휘관들이 자신들의 인사에만 신경쓰느라 부대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매 분기마다 해온 사격장 안전점검이 요식행위로 이뤄진 것을 그 예로 들고 있다. 또 경계병들이 사격장에서 경계를 서면서 통제할 지 말 지를 망설인 것 자체가 상부의 명확한 업무 지시·통제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박성진 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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