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워싱턴함은 왜 다시 등장했나
28일부터는 미 항모 조지워싱턴함을 중심으로 한 미국의 항모강습단이 한국군과 함께 연합군사훈련을 벌입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조지워싱턴함은 FA-18 호넷 등 전투기 80여대를 비롯, 조기경보가 5~6대, 순항미사일 토마호크 등을 보유하고 있어 가공할만한 화력을 적에게 퍼부을 수 있습니다.
중국 국방대 교수인 장자오중(張召忠) 해군 소장이 지난 26일 인민일보 자매지 환구시보의 전문가 지상 토론에서 “북한군이 이번 훈련에 대해 반응을 보이면 한·미 양국 군은 북한 목표물을 공격하고 작전을 완수하는 데 20분이면 된다”고 밝혔을 정도입니다. 조지워싱턴함을 염두에 둔 발언이지요.
그렇다면 조지워싱턴함은 왜 한반도 해역으로 긴급하게 왔을까요. 한·미 군당국은 원래 예정된 훈련이었다고 주장하지만 당초 조지워싱턴함은 중국의 반발 때문에 이번에 올 예정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북한군의 연평 도발이 발생하자 오게 된 것이지요.
개인적으로 조지워싱턴함의 한반도 전개에서는 두가지 시그널을 읽을 수 있다고 봅니다. 첫째가 북한에 대해 추가 도발을 하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둘째는 한국군의 보복 공격을 자제시키는 효과입니다.(물론 북한에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경고를 보내도록 중국을 압박하려는 의도도 있습니다)
만약 북한이 추가 도발을 할 경우 한국군은 격한 국민 여론을 등에 업고 F-15K의 북한군 해안포 기지 등에 대한 폭격까지 나설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럴 경우 한반도는 격랑에 휘말리게 됩니다. 경제적 문제를 안고 있는 미국으로서도 크게 부담스러운 상황이지요.
조지워싱턴함이 등장하면서 이럴 가능성은 매우 약해집니다. 북한으로선 추가 도발이 자칫 자멸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지요.
한국군도 미 핵 항모까지 한반도에 온 상황에서 독자적인 군사행동을 할 가능성은 그만큼 줄어들게 됩니다.
그러나 미 항모가 자신의 기지로 복귀하면 북한군은 언제 또 도발할 지 모릅니다. 그것은 이번 연평 도발이 벌써 증명했습니다.
천안함 침몰사건 이후 지난 7월 미국은 '다시는 도발할 엄두를 내지 말라"는 강력한 대북 경고 차원에서 조지워싱턴함 항모강습단을 한반도 해역으로 보내 한국 해군과 함께 무력시위를 벌였습니다.
이후 돌아온 것은 불과 4개월도 채 안된 시점에서 연평도에 대한 북한군 방사포와 해안포의 무자비한 포격이었습니다.
그 이전에도 그랬습니다. 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이전에도 그랬고 그 이후에도 그랬습니다. 마치 '다람쥐 채바퀴 돌 듯' 북한이 도발하면 미 항모가 한반도에 나타났고, 돌아가면 다시 도발이 일어났습니다. 그렇다고 미 항모를 '다람쥐'로, 한반도 해역을 '채바퀴'로 비유하고 싶지는 않지만 말이죠..
#샤프 주한미군사령관은 왜 연평도를 방문했나
월터 샤프 주한미군 사령관(미 육군대장)은 지난 26일 연평도를 방문, 한국군 지휘관들로부터 피폭 당시의 상황을 청취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주한미군사령부의 보도자료 내용을 한번 살펴 볼까요.
“유엔군 사령관은 오늘 연평도를 방문하여 군 지휘관들로부터 상황 보고를 받고 정전협정을 위반한 북한군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지역을 둘러봤다. 유엔군 사령부는 정전협정의 이행 여부를 감독할 책임이 있다.”
눈치 빠르신 분은 벌써 알아채셨겠지만 샤프 미 육군 대장은 한·미연합사령관의 자격이 아닌 유엔군 사령관 자격으로 연평도를 방문했습니다. 주한미군도 이같은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걸까요. 간단합니다. 샤프 사령관은 한·미연합군 사령관의 신분으로 “북한을 강력하게 응징하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러 연평도에 간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한반도 정전상황을 관리하는 유엔군 사령관 자격으로 이번 연평 도발로 인한 한반도에서의 확전을 막기 위해 현지 상황을 청취하러 간 것입니다.
한마디로 미국은 북한군의 추가도발도 막고, 우리 군의 보복 응징 시도도 저지하겠다는 겁니다.
#왜 한국군은 당해도 백배 천배 보복이 불가능한가
청와대는 김태영 국방장관을 경질하고 김관진 전 합참의장을 신임 장관으로 내정했습니다. 여기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확전되지 않도록 관리를 잘하라”는 말을 했느냐의 진위 논란에 김태영 장관이 휩쓸린 탓도 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도 “첫째, 북방한계선(NLL)을 지켜라. 둘째, 먼저 발포하지 말라. 셋째, 상대가 발사하면 교전규칙을 준수해 격퇴하라, 넷째, 전쟁으로 확대되도록 하지 말라”는 4대 지침을 군에 내렸다고 해서 보수 우익의 강력한 비난에 임기 내내 시달렸습니다.
당시 예비역 장성들도 “NLL을 지키라고 해놓고 확전시키지 말라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지시이고, 현장의 군 지휘관들을 무력하게 하는 지시”라고 비판했습니다.
사실 제가 봐도 우리 군에 적용되고 있는 교전규칙은 우리의 전·평시 작전의 여러 분야에서 작전 행동의 기준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 군의 작전 행동에 많은 제약을 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의 4대 지침 내용은 바로 유엔군사령부가 만든 ‘정전시 교전규칙’(AROE)의 원칙이었습니다. 즉 김 전 대통령은 교전규칙을 요약해서 다시 한번 군에 주지시킨 것 뿐이었습니다.
이는 당시 이준 국방장관이 국회에서 한 발언에서도 확인이 됩니다.
“합참의 작전예규는 유엔사에 작성된 정전 시 교전규칙이 개념적으로 작성되었기 때문에 예하부대가 적용할 작전지침을 구체적으로 제공하기 위해 합참에서 작성하는 문서입니다.
1997년도에 작성된 작전예규에 1999년 연평해전 중에 하달된 (김대중) 대통령님의 지침과 유사한 내용이 기술된 이유는 연평해전 당시 정전 시 교전규칙과 합참 예규의 기본개념을 대통령님이 요약하여 강조하였기 때문에 유사할 뿐이며 정전 시 교전규칙과 합참 작전예규는 햇볕정책이나 대통령님의 지침 때문에 추가되거나 수정된 것이 아님을 말씀드립니다.”
(2002년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이준 국방장관이 답변한 속기록 내용)
그러니까 이명박 대통령이 했던지, 안했던지에 관계없이 ‘확전 방지’ 발언도 바로 교전규칙의 원칙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대통령이 군 최고통수권자로서 군에 교전규칙을 준수하라고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발언입니다.
자 이제 문제의 교전규칙을 살펴볼까요.
한국군의 무력사용에 관한 행정명령인 교전규칙은 한국군이 만든게 아닙니다. 정전교전규칙(AROE)은 ‘유엔사·연합사규정 525-4’로 정해져 있고, 전시교전규칙(WROE)은 ‘연합사 작계 5027’ 부록에 수록돼 있습니다. 두가지 모두 2급 비밀입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한국군은 자체적인 교전규칙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다만 미군이 주관해 만든 교전규칙을 실천하기 위한 합참 작전예규를 만들어 운용하고 있을 뿐입니다.
게다가 교전규칙의 개정 권한도 없습니다. 그 권한이 한·미연합권한위임사항(CODA) 합의 ‘제1항’의 규정에 따라 유엔사·연합사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한국군이 교전규칙을 개정하려면 한·미연합사의 예하 구성군으로써 의견을 제시할 수 있을 뿐입니다.
이는 한·미연합사령관을 겸임하고 있는 주한미군사령관이 한국군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개정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샤프 사령관은 교전규칙의 개정 협의 요청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과연 우리 군이 원하는 수준으로까지 고쳐줄 지 여부는 미지수입니다.
자칫하면 정전교전규칙을 만든 목적이 훼손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전교전규칙의 목적은 ‘정전협정을 유지하고 북한의 침략을 저지하는 임무를 지원하기 위함에 있다’로 돼 있습니다. ‘정전협정의 유지’라는 뜻은 한마디로 ‘확전 방지의 원칙’과도 통하는 것입니다.
(군내 강경파였던 이상희 전 국방장관이 합참 작전본부장 시절인 2002년 7월 2일에 했던 “유엔사 교전규칙은 확전을 방지해 정전 상태를 유지하는 게 주목적”이라고 한 발언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연평도 도발과 주한미군
그렇다면 주한미군이란 과연 우리에게 어떤 존재일까요. 북한의 침략을 저지하는 매우 훌륭한 군사 파트너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한국군의 행동을 제약하는 ‘제어자’ 역할도 하고 있는 것도 현실입니다. 주한미군사령관은 동맹군 사령관이기도 하지만 정전상황을 관리하는 막중한 책무를 맡고 있는 유엔군사령관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실례를 들어보겠습니다. 우리 군은 88올림픽 직전 군사적 목적과 함께 북한의 올림픽 방해 책동에 대한 으름장도 될 겸 해서 백령도에 평양을 타킷으로 한 지대지 미사일 기지를 배치하는 계획을 포함해 서해 5도를 공격 전진기지로 활용할 계획을 세운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방어용 무기가 아닌 공격용 무기의 배치는 동의할 수 없다”는 미측의 반대에 부딛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지금도 일각에서는 “서해5도를 요새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도 “서해 5도에 세계 최고 장비를 갖추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세계 최고의 방어무기는 몰라도 미사일과 같은 공격무기 배치 시도가 될 경우 미측은 강력 저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과연 중국과 미국은 한반도 전면전을 막는 방패인가
군의 장성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상당수가 “한반도에서 국지전은 가능하지만 전면전 발생은 힘들다”고 말들 합니다.
그 이유로는 미국과 중국의 존재를 듭니다. 먼저 강력한 한·미동맹이 있기 때문에 북한이 자멸할 수 있는 전면 전쟁을 일으킬 수 없다는 겁니다.
사실 전면전이 벌어질 경우 시뮬레이션 상에도 남한 역시 많은 피해가 있겠지만 결국에는 한·미연합군에 의해 북한군이 괴멸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그러니 김정일과 같은 독재자가 ‘자살 행위’를 할 리가 없다는거죠.
또 중국이 한반도에서 전면전이 일어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중국의 경제성장과 안정에 걸림돌이 되는 한반도의 전쟁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거죠.
그래서 일부 장군들은 국지전 정도는 감수하고 북한에 대해 강력한 군사적 응징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역시 미국입니다. 미국이 ‘만의 하나’라도 전면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국지전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거죠.
과거에도 미국은 “힘센 너희들이 조금 더 참아라”는 식으로 한국군을 달래 왔습니다.(참고로 샤프 주한미군사령관이 연평도에서 북한군에 대한 강력한 응징 발언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면 그것은 오산이었습니다. 위에서 언급했지만 미군은 그의 자격이 한·미연합군사령관이 아닌 유엔군사령관임을 강조했습니다)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이 북한군입니다. 북한군이 아무리 남한을 때려도 적당히 치고 빠지기만 하면 오히려 미군이 한국군의 보복을 막아줄 것을 말입니다. 한마디로 역설적인 얘기입니다.
오히려 북한군이 두려워하는 것은 미군의 기습 공격입니다.(이미 미국은 1994년 북한 핵위기 때 한국 정부의 의지와 관계없이 북한 영변 핵시설을 폭격하려 한 적이 있습니다. 이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남북간 충돌 보다는 미국의 의지가 더 크게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현 시점에서 샤프 주한미군사령관의 역할은 연평도 포격 도발에 대해 한국군을 도와 북한군을 응징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그의 역할은 유엔군사령관으로서 한반도 정전상황을 관리, 이번 사태가 확전으로 가는 것을 막는데 있습니다.
(우리 군은 말로만 떠들 수 있을 뿐, 북한군에 대해 보복은 힘들수밖에 없겠지요. 과거 사례도 이를 증명합니다. 해군참모총장이 “적이 우리의 손 끝 하나라도 건드리면 적의 손목을 자르겠습니다”라고 말했지만 이후 천안함 침몰사고가 일어났습니다)
만약 한국군이 자체적인 교전규칙과 온전한 작전통제권을 갖고 있다면 어땠을까요.(지금은 비록 평시작전통제권이 우리군에 있다고는 해도 위에서 언급한 CODA로 인해 완전한 것이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북한군은 오히려 우리 군의 몇배, 몇십배 보복을 우려해 함부로 경거망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집니다.
오늘은 얘기가 주절주절 길어졌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하나 있습니다. 우리도 우리군의 교전규칙을 제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권국가로써 당연히 자국군의 교전규칙을 가져야 합니다.
한국군이 도발에 대해 충분히 보복할 수 있지만 더 큰 평화를 위해 적당한 선에서 응징하는 것과 남이 만들어놓은 교전규칙 때문에 적당한 선에서 멈출 수밖에 없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그런 면에서 미국 정부가 아닌 우리 정부의 국방정책에 부합하고 전쟁을 억제하며, 위기를 관리할 수 있고, 부여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국군 기본 교전규칙을 제정하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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