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유엔군사령부(UNC)가 비무장지대(DMZ)에서 발생한 사건에 대한 조사결과 발표를 놓고 ‘이중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보수정권에서 일어난 정전협정 위반 사건에 대한 조사결과는 철저히 숨기고, 진보정권에서 발생한 정전협정 위반 사건은 페이스북을 통해 공식 발표해 파문을 일으켰다. ‘엿장수 맘대로’식 발표다.


유엔사는 지난 3일 발생한 북한군의 비무장지대 내 감시초소(GP) 총격 사건에 대해 남북한 모두 정전협정을 위반했다고 지난 26일 밝혔다. 이는 유엔사가 비무장지대 내 사건에 대한 조사결과를 발표하지 않아온 관행에 크게 어긋난 사례다. 게다가 유엔사는 공보실장인 리 피터스 대령이 조사결과를 발표하는 동영상까지 공개했다. 처음 있는 일이다.


동영상 속에 등장하는 피터스 대령의 왼쪽 가슴에는 ‘U.S. ARMY’라는 군 식별 표지가 선명했다. 그는 주한미군 공보실장을 겸하고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미군 식별 표지를 단 채 유엔사 조사결과를 발표하는 것은 어색하다. 한국군 선수와 미군 선수가 한편을 먹고 북한군을 상대로 축구경기를 하다 북한군의 도발로 주먹다짐이 벌어졌다고 하자. 이때 같이 선수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뛰던 미군이 느닷없이 동료 선수인 한국군과 상대방 선수인 북한군에게 ‘레드카드’를 동시에 들이대는 것과 뭣이 다른가. 미군은 ‘선수가 아닌 심판’이라고 주장한다.


국방부는 즉각 “유감”이라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이 역시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주한미군사령관이 유엔군사령관을 겸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국방부가 동맹군인 주한미군에 유감을 표시했다고 해석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유엔사는 28일 현재까지도 페이스북을 통한 공개 외에는 한국군 측에 조사결과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동맹에 대한 태도가 아니다.


이번 유엔사의 조사결과 발표는 박근혜 정부 시절이던 2015년 8월20일 일어난 국군과 북한군 포격사건에 대한 태도와는 정면 배치된다. 당시에는 언론의 조사결과 발표 요구에도 불구하고 철저히 침묵으로 일관했지만, 이번에는 한국 국방부를 자극하는 내용을 공식 공개했다. 두 사건에는 유엔사 조사결과 ‘한국군의 정전협정 위반’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유엔사의 이례적인 조사결과 발표에 한국군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특히 유엔사는 민감한 대북 기술정보(감청 등 포함)까지 언급하며 북 GP의 총격을 우발적인 상황으로 판단한 한국군의 입장과 배치된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사례와 달리 유엔사는 2015년 8월20일 발생한 ‘포격 사건’에 대해서는 철저히 침묵했다. 당시 합참은 “DMZ 포격은 북한군의 도발로 시작된 것이 확실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유엔사 군사정전위는 북측이 아닌 남측이 정전협정을 위반했다는 조사결과를 내놓고도 내용 공개를 거부했다.


5년 전 사건과 이번 사건 모두 유엔사가 한국군 주장과 다른 결과를 도출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유엔사는 보수정권 때는 침묵했고, 진보정권에서는 이례적 공개를 택했다.


5년 전 사건과 이번 사건은 비슷한 듯하지만 다른 부분이 여럿 있다. 먼저 5년 전에는 남측이 76.2㎜ 북한군 포탄 3발이 떨어졌다는 탄착지점도 확인하지 않고 155㎜ K55A1 자주포 29발을 북쪽으로 발사하는 대응 포격을 실시했다. 북한군 도발원점도 찾지 못했다. 당시 합참은 전군에 최고 수준 경계령을 내렸고, 북한은 전방지역에 ‘준전시상태’를 선포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GP 부대원들이 북한군 14.5㎜ 고사총 탄흔을 확인한 후 절차에 따라 대응 사격했다.


유엔사는 5년 전 남북 간 포격 사건 조사결과를 철저히 ‘비밀’에 부쳤고, 이번에는 GP 총격 사건 조사결과를 대대적으로 공개했다. 특히 5년 전에는 한·미 군 당국이 유엔사 1차 조사결과를 수정한 후 비공개하기로 사전 조율했다는 소위 ‘짬짜미’ 의혹까지 제기됐다. 당시 미 공군 소령을 팀장으로 군사정전위·중립국감독위·연락단으로 구성된 유엔사 특별조사팀(SIT)이 비무장지대 포격 사건에 대해 ‘북한 포격의 명백한 증거가 없다’는 1차 조사결과를 작성했고, 이후 한국군 수뇌부 요구를 반영한 최종 조사결과 보고서를 만들었다는 내용이었다. 합참은 “한국군과 유엔사 군사정전위가 DMZ 포격 사건에 대해 서로가 일치된 결론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유엔사 공보실장 겸 주한미군사령부 공보실장인 로버트 매닝 대령은 “유엔사는 (DMZ 포격 사건과) 관련해 언급하지 않겠다”는 입장만 반복했다.


비무장지대 포격 사건 발생 1년 후 유엔사 중감위 스위스 대표인 우르스 게르브르 육군 소장이 판문점 중감위를 찾은 기자에게 “작년 8월 DMZ 포격 사건 때도 사건을 면밀히 조사하고 보고서를 작성했다”며 “(민감한 문제로) 자세히 말하고 싶지 않지만 (DMZ 포격 사건에 대해) 남측과 미측, 중감위 결론이 동일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군과 유엔사 군정위가 포격 사건에 대해 내린) 결론은 제각각이었고, 그 같은 결론을 내린 이유도 제각각이었다”고 말했다.


이번 조사결과 발표는 미국이 한반도에서 유엔사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소위 ‘유엔사 재활성화’와도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이번 GP 총격 사건 조사결과 발표는 유엔사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데 성공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유엔사는 왜 비무장지대에서 발생한 정전협정 위반사항에 대한 조사결과 공개에 대해 정권에 따라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유엔사는 5년 전 보수정권을 불편하게 할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침묵했고, 이번에는 공개 행보를 통해 진보정권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유엔군사령관은 주한미군사령관이다. 이번 ‘한국군이 정전협정을 위반했다’는 발표는 군사조직인 주한미군이 유엔사를 통해 정치적 행보를 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Posted by 경향 박성진

댓글을 달아 주세요

지난해 5월22일 시민들이 강원도 철원군 ‘비무장지대(DMZ) 평화의 길’ 출입구를 군의 안내를 받으며 지나고 있다. 철원 구간은 15㎞이며, 차량과 도보로 이동하는 데 3시간 정도 걸린다. 현재 DMZ 출입 통제는 6·25전쟁 후 체결된 정전협정에 규정된 유엔사의 고유 권한이다. 이 때문에 남북 간 군사적 합의도 DMZ 관련 부분에서는 유엔사의 승인이 없으면 이행이 불가능하다. 사진공동취재단


유엔군사령부(UNC)의 ‘군사분계선(MDL) 통과 허가권’과 ‘비무장지대(DMZ) 출입 허가권’ 문제 등 유엔사의 관할권이 여전히 한·미 군 당국 간 ‘뜨거운 감자’다. MDL 통과·DMZ 출입 허가권과 관련한 이슈가 잊혀질 만하면 다시 툭툭 불거지고 있어서다. 정부가 남북 협력사업의 하나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북한 개별관광도 제3국을 경유하지 않는 육로 관광일 경우 유엔사 허락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런 가운데 유엔사는 지난달 29일 마치 ‘난수표’를 연상케 하는 입장 자료를 내놓았다. 내용인즉, “유엔군사령관은 정전협정을 관리하고 이행을 감독할 권한과 책임을 다하고 있으며 DMZ 출입에 관한 정책과 규정이 모든 인원에게 적용되고 시행될 수 있도록 DMZ 내 활동에 대해 지상작전사령부(지작사)에 상시 문의를 한다. 그 결과 문제가 발생했을 땐, 보통 낮은 수준에서 원만하게 해결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는 국내 한 언론이 “로버트 에이브럼스 유엔사령관 겸 한미연합사령관이 그동안 유엔사에 별도 사전통보 없이 비무장지대를 출입했던 한국군의 관행에 공식적으로 문제제기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한 보도 내용의 진위를 묻는 질의에 대한 유엔사 답변이었다.


■ UNC 항의 미스터리


유엔사 입장 자료를 보면 도대체 에이브럼스 유엔군사령관이 문제제기를 했다는 것인지, 안 했다는 것인지도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이에 대한 한국군 설명을 들어보면 더욱 헷갈린다. 통상적으로 유엔사는 DMZ 출입 이슈가 있을 경우 한국군 측에 관련 사항을 확인하는데, 이것이 일상업무 차원이라는 것이다.


앞서 지난해 12월5일 남영신 육군 지상작전사령관(대장)은 케네스 윌스백 미 7공군사령관과 함께 강원 철원군 3사단 감시초소(GP) 일대를 방문해 군 대비태세를 점검했다. 백골부대로 불리는 육군 3사단은 지작사 소속인 육군 5군단 예하 최전방 사단이다.


남 사령관 일행이 DMZ에 출입하기 48시간 전 유엔사에 통보하고 유엔군사령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며 에이브럼스 사령관이 한국군에 출입규정 위반을 추후 통보했다는 주장에 대해 한국군 당국은 부인했다. 남 사령관 일행의 DMZ 출입과 관련해 지작사는 미측으로부터 사실 확인만 있었을 뿐, 어떤 항의나 문제제기도 없었다고 3일 밝혔다. 지작사 상급 부대인 합동참모본부 역시 같은 입장이다. 3사단을 관할하는 5군단도 유엔사로부터 어떠한 형태의 항의를 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통상적으로 DMZ 상비사단을 관할하는 군단 사령부는 유엔사로부터 MDL 통과·DMZ 출입 허가를 위임받아 DMZ 내 군사작전을 하고 있다. DMZ 출입과 관련해 유엔사의 소통 통로가 되는 군 당국이 모두 유엔사 측 항의를 받은 적이 없다고 밝힌 것이다. 다만, 에이브럼스 유엔군사령관은 김종문 한미연합사 부참모장 겸 유엔사 군사정전위 수석대표(육군 소장)에게 ‘12월5일 DMZ 무단 출입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6·25 후 정전협정에 권한 규정

합참의장·참모총장 예외 없이

48시간 전 통보·허락받게 해



이와 관련해 한국군 고위 관계자는 “최전방 군단의 작전을 지휘하는 지작사령관은 DMZ 상시 출입이 가능한 직위”라며 “유엔사가 윌스백 미 7공군사령관의 DMZ 출입을 내부적으로 문제 삼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유엔사 규정에 따르면 지작사령관의 동반자가 윌스백 미 7공군사령관이라 하더라도 DMZ 내 GP를 방문하기 위해서는 지작사 측이 DMZ에 출입하기 48시간 전 유엔사에 통보하고 유엔군사령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유엔사가 애매모호한 입장 자료를 낸 것도 규정 위반 대상이 미군 3성 장군인 미 7공군사령관이기 때문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유엔사가 “문제가 발생했을 땐, 보통 낮은 수준에서 원만하게 해결되고 있다”고 밝혔지만, 미 7공군사령관의 출입까지 경위 조사를 지시한 것은 DMZ 관할권에 집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현재 DMZ 출입 통제는 6·25전쟁 후 체결된 정전협정에 규정된 유엔사의 고유 권한이다. 이 때문에 한국군 대장이라도 유엔사에 48시간 전 통보해 승인을 받지 않고는 DMZ 출입이 불가능하다. 육·해·공군 3군 참모총장은 물론 한국군 서열 1위인 합참의장조차도 예외가 아니다. 평시 작전을 책임지고 있는 합참 작전본부장이나 작전부장 모두 마찬가지다.


■ UNC의 ‘딴지걸기’



정전협정 이행·감독 이유로

주요 남북교류 사업 수차례 딴지

지난해부터 JSA 관광도 금지

북한 개별관광·육로관광 추진도

미국 승인 없으면 사실상 불가능


유엔사가 정전협정 서명 당사자로서 정전협정을 이행·감독한다는 이유로 남북 교류와 도로·철도 연결 사업 등에 제동을 걸어왔던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남북 군사적 합의도 DMZ와 관련한 부분에서는 유엔사 승인이 없으면 이행이 불가능하다.


2000년대 들어 남북 화해무드에서 유엔사가 남북 교류에 첫 제동을 건 사례가 발생한 것은 2002년 11월24일이었다. 남북은 DMZ 지뢰 제거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검증단을 교환하기로 했으나, MDL 통과 승인권 고수를 고집한 유엔사 태도로 검증작업이 무산됐다. 당시 판문점 장성급 회담 유엔사 측 대표인 제임스 솔리건 주한미군 부참모장 겸 유엔사 부참모장(미 공군 소장)은 “남북 교류·협력 사업에서 MDL 통과는 정전협정에 따라 민간인도 유엔사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측이 유엔사의 승인을 계속 배제하려 든다면 금강산관광 등 남북 교류·협력 사업이 제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2018년 8월에는 유엔사가 남북 철도 연결을 승인하지 않아 정부 계획보다 석 달 넘게 지난 11월30일에야 가까스로 이뤄졌다. 2019년 6월에는 제9차 한·독 통일자문위원회에 참가한 독일 정부 대표단이 강원도 고성 GP를 방문하려 했지만 유엔사가 ‘안전상 이유’를 내세워 DMZ 출입 허가를 해주지 않아 불발됐다. 정경두 국방장관이 유엔군사령관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 사령관에게 협조 요청까지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난해 8월9일에는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DMZ 내 유일한 민간인 마을인 대성동 마을을 방문하려 했으나 유엔사가 동행 취재진의 방문을 불허하면서 결국 무산됐다. 유엔사가 DMZ 출입을 불허하는 사유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유엔사는 지난해 10월부터 3일 현재까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방문과 관광도 금지하고 있다. 방문 및 관광을 허가할 수 없는 이유로 ‘아프리카돼지열병’을 들고 있다. 유엔사는 한국 정부의 북한 개별관광 추진에 관해서도 개별관광객이 DMZ를 통과해 북으로 갈 경우 정전협정에 따라 유엔사 승인이 필수라고 밝혔다. 주한미군 사령관이 유엔군사령관을 겸하고 있다는 점에서 DMZ 육로를 통과하는 북한 개별관광 역시 미국 승인이 없으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지난해 12월17일에는 유엔사의 DMZ 출입·허가권과 관련한 ‘유엔사 비군사적 출입통제,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가 국회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서 유엔사는 “미국의,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고스트 아미(ghost army)”(이해영 한신대 부총장)라는 발언까지 나왔다. 민변 미군위원회에서 활동하는 김종귀 변호사는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조치는 정전협정 규율 대상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합의 이행을 위해 출입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유엔사가 정전협정에 근거해 출입권을 발동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현행 허가제를 신고제로 바꾸는 등 유엔사 문제 3단계 해법을 제시했다.



“유엔 단체도 기구도 아니다”

유엔사 권한에 끝없는 의문 제기

정부 “제도 보완” 밝혔지만 답보



한국에서는 유엔사의 존재 이유에 대한 의문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 주한 유엔사는 유엔의 ‘활동단체’도 ‘기구’도 아니다. 게다가 유엔의 ‘지휘’나 ‘통제’를 받지 않는 조직이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정전협정에는 허가권이 군사적 성질에 속한 것으로 한정돼 있다”며 “환경 조사, 문화재 조사, 감시초소 방문 등 비군사적 성질에 대한 허가권의 법적 근거가 미흡하다는 지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도적 보완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정부와 유엔사의 DMZ 출입 허가권 문제 협의는 여전히 답보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미군은 유엔사 재활성화에 나서고 있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Posted by 경향 박성진

댓글을 달아 주세요

· 북 ‘MDL에서 남북 각각 40㎞ 사격 금지구역, 60㎞까지는 비행금지 구역’ 제안

· 북 제안은 남남 갈등까지 고려한 ‘독이 든 사과?’

· 장사정포 후방 배치와 한·미 화력 후방 배치 맞교환은 남측에 불리

· 장사정포 후방 배치까지는 남북 간 고차원 방정식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을 위협하는 북한군 장사정포의 후방 배치가 가능한가. 이 문제를 놓고 지난달 25일 이낙연 총리는 6·25 기념식 기념사에서 “장사정포의 후방 이전이 논의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총리실은 국방부가 이를 계속 부인해왔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남북 간 논의를 말한 것이 아니라 우리 정부 내부 검토를 했다는 뜻”이라고 한발 물러섰다.

 

그렇다면 북한은 장사정포 후방 배치를 시사한 적이 없는 것인가. 여러 정황을 종합하면 꼭 그렇지도 않다. 북한이 장사정포 후방 배치를 시사한 것‘처럼’ 해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군사분계선(MDL) 인근에 배치된 북한의 장사정포를 후방으로 철수하는 문제는 남측의 훈련장 재배치와 남북 간 전력지수 등과 복잡하게 맞물려 있다. 사진은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2016년 3월 보도한 북한군 훈련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MDL에서 40㎞ 사격 금지’

 

군 안팎에서는 북한이 지난달 14일 제8차 남북 장성급회담에서 남측에 ‘사격 금지와 비행 금지구역 지정’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측이 “남북이 각각 서해 북방한계선(NLL) 20㎞, 군사분계선(MDL) 40㎞씩을 ‘사격 금지구역’으로 정하자”고 제안했다는 것이다. 북측은 또 군사분계선의 경우 60㎞ 이내 지역을 ‘비행 금지구역’으로 두자고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크게 보면 사격 금지구역 설정은 우선 실사격 훈련 중단과 이후 포 후방 배치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먼저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한 ‘사격 금지구역’에서 남북 간 실사격 훈련 중지가 이뤄지면 이후 북의 장사정포 후방 배치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가능하다.

 

문제는 이렇게 될 경우 남북 간 재래식 포병 전력의 균형추가 북측으로 기울어진다는 점이다. 군사분계선에서 40㎞씩 철수하면 남측 화력은 서울까지 밀리는 데 반해 북측 화력은 평양 남쪽으로 100㎞ 떨어진 지점에서 멈추기 때문이다.

 

현재도 평양은 비무장지대(DMZ)에서 180㎞ 거리인 반면 수도권은 60여㎞에 불과해, 남측은 화력을 비무장지대 인접지역에 집중해 놓고 있는 상황이다. 남측이 군사 방어적 측면에서 불리한 현실은 판문점이 서울에서 직선거리로 52㎞, 평양에서 직선거리로 147㎞인 점만 봐도 쉽게 읽을 수 있다.

 

‘비행 금지구역’ 지정도 사실상 공중 감시정찰 자산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남측에만 적용된다고 봐도 무리가 없다. ‘장사정포 후방 배치 미끼’를 내세워 남북 간 전력 균형을 단숨에 뒤집겠다는 북의 전략이라는 의심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국방부는 1일 북측이 ‘사격 금지와 비행 금지구역 지정’을 제안했는지에 대해 공식 확인을 거부하면서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최현수 국방부 대변인은 “남북 장성급회담에서 합의된 사항 이외에 남북이 서로 제안한 의제들에 대해서는 일일이 확인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 다른 국방부 당국자는 “구체적인 협의는 진행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남북 화력 ‘MDL 사이에 두고 맞대결’

 

군사분계선 인근 북측 지역에 배치된 1000여문에 달하는 각종 북한군 포 가운데 장사정포는 핵과 미사일에 이은 3대 위협 전력으로 꼽혀왔다. 장사정포는 40㎞ 이상 사거리를 가진 북한군 야포와 방사포를 의미한다. 이 중 사거리 54㎞의 170㎜ 자주포 6개 대대와 사거리 60㎞의 240㎜ 방사포 10여개 대대 330여문이 수도권을 직접 겨냥하는 것으로 군당국은 평가하고 있다. 장사정포는 갱도 진지 속에 있다가 발사 때만 갱도 밖으로 나온다. 갱도 밖으로 나와 발사하고 들어가는 데 6~15분가량 소요된다.

 

이에 맞서 한국군은 155㎜ K-9 자주포(사거리 40여㎞), 차기 다연장로켓포(MLRS) 천무(사거리 80㎞)를 전방에 배치하고 있다. 경기 연천과 포천 등 휴전선 인근 포병부대는 그동안 K55 자주포와 155㎜ 견인포(KH 179)를 운용하다 지난해 K-9 자주포로 주전력을 전환했다. 군은 서북도서와 전방 지역에 총 900문가량을 배치했다. K-9 포병부대는 비무장지대 이남 5~10㎞ 거리에 집중돼 있다. 북한이 2010년 11월23일 연평도 포격 도발 당시 트집 잡은 것도 K-9 자주포의 실사격 훈련이었다.

 

경기 동두천에 주둔하고 있는 주한 미2사단 예하 210화력여단의 다연장로켓포와 전술지대지 미사일(ATACMS), 신형 다연장로켓 발사기(M270A1), 장사거리 유도형 다연장로켓(G-MLRS) 탄약 등도 북 장사정포 대응 전력이다. 장사정포 후방 배치 논의를 본격화할 경우 K-9, K-55 등의 포병 전력 철수와 함께 미 210화력여단 전력도 협상 테이블에 오를 수밖에 없는 구조다.

 

북 장사정포가 위협적이기는 하지만 남북 화력이 맞붙을 경우 남측 전력이 압도적이다. 합참은 워게임을 통해 240㎜ 방사포는 6분 이내, 170㎜ 자주포는 11분 이내 파괴가 가능할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한반도 유사시 수일 이내에 장사정포 전력을 괴멸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북 제안은 ‘남남 갈등’ 유발

 

남북 간 군사분계선을 기준으로 ‘40㎞ 이내 사격 금지’와 ‘60㎞ 이내 비행 금지’ 구역이 정해진다면, 이는 사실상 남측 전방지역의 포사격 훈련장 무력화를 의미한다. 군 주요 포사격 훈련장이 군사분계선에서 40㎞ 이내 지역에 있기 때문이다.

 

경기 포천과 연천, 강원 철원 등 지방자치단체들은 소음과 도비탄 피해 등을 이유로 군 사격장 이전이나 폐쇄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이 때문에 북측이 40㎞ 사격 금지를 제안해 군사적 목적뿐만 아니라 군·보수층과 지자체 사이의 ‘남남 갈등’을 유발시키는 ‘일석이조’ 효과를 노린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게다가 남북 긴장 완화와 적대행위 중지라는 대의명분 아래 군이 사격훈련장 이전이나 폐쇄를 반대하기란 쉽지 않다.

 

포천만 해도 영평사격장, 바이오넷, 다락대, 도마치사격장, 아시아 최대의 승진사격장 등 총 1억평 규모의 한·미 군 사격장 9개가 자리 잡고 있다. 연천지역의 경우 군부대 87곳과 포사격 등 훈련장 39곳이 있어 전국 최대 규모다. 포천과 연천 훈련장은 지역 주둔 부대만 이용하는 게 아니다. 다른 지역 군부대도 들어와 훈련을 하기 때문에 주민들은 피해와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후방지역 훈련장들이 도시화 등으로 인해 5년 전부터 연천 훈련장으로 통합된 이후에는 전차와 자주포 등의 훈련 횟수가 늘어났다. 한·미 연합훈련 때는 일본 오키나와에 주둔하고 있는 미 해병부대까지 날아와 이곳에서 훈련을 실시한다.

 

연천군 신답리와 장탄리 훈련장에서 포를 쏘면 3~5㎞ 거리의 연천읍 부곡리 ‘다락대훈련장’ 탄착지로 포탄이 떨어진다. 다락대훈련장은 전차사격장과 공병훈련장을 갖춘 800여만평 규모의 동양 최대 종합사격훈련장이다. 다락대훈련장은 국방연구소(ADD)의 신무기 시험장이기도 하다. 현궁 대전차미사일 최종 시험 발사도 이곳에서 실시된 바 있다. 다락대사격장은 군사분계선에서 20㎞ 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철원군 갈말읍에 있는 문혜리 포사격장은 군사분계선까지 거리가 15㎞로, 다락대사격장보다도 가깝다.

 

남측이 강원 고성군 야촌리와 송지호 해변 일대, 백령도 등 3곳에서 실시하는 장거리 포병 사격도 금지 대상이 될 수 있다. 육군과 해병대가 130㎜ 다연장 로켓탄과 K-9 자주포를 20㎞ 이상 발사할 수 있는 곳은 군의 30여개 포사격장 가운데 이 3곳뿐이다. 장거리 포병 사격은 사격하는 진지와 포탄이 떨어지는 표적 지역까지의 거리가 20~30㎞는 돼야 제대로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군사분계선 60㎞ 비행 금지구역을 설정하면 포천 승진훈련장도 무용지물이 된다. 이곳은 육군 보병과 포병, 기갑 부대들이 한꺼번에 참여하고 공군 전력의 실사격까지 가능한 유일한 공지합동훈련장이다.

 

■장사정포 후방 배치는 고차원 방정식

 

북한 장사정포가 후방으로 빠진다면 한반도 군사적 긴장 완화와 신뢰 구축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 분명하다. 비무장지대의 비무장화와 함께 장사정포의 후방 철수는 전쟁 위험의 실질적인 해소 대책으로 꼽혀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측이 북의 화력 전력 후방 배치 제안을 수락하기 위해서는 훈련장 재배치와 남북 간 전력지수 등 여러 가지 함수를 고려한 고차원적 방정식 해법이 요구된다. 국방부가 “장사정포 후방 배치 등 군사적으로 매우 첨예한 사안까지 논의하기엔 남북 군당국 간에 아직 신뢰가 구축되지 않았다”고 강조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Posted by 경향 박성진

댓글을 달아 주세요

| 철책 건너 평화로 가는 길, 도보다리 새소리는 여전했다

 

남북 정상이 한반도 미래를 놓고 대화를 나눴던 판문점 도보다리 위 원형 탁자와 벤치가 판문점선언 이후 처음으로 지난 18일 공개됐다. 탁자와 벤치는 그동안 유엔을 상징하는 파란색 포장으로 가려져 있다가 이날 공동경비구역(JSA) 경비대원들의 삼엄한 경계 속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에서 북한 초소까지는 40m에 불과하다. 판문점 _ 박성진 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판문점 회담장에서 중립국감독위원회 캠프로 이어지는 도보다리는 푸른빛 그대로였다. 지난달 27일 남북 정상이 군사분계선(MDL) 101번째 푯말 앞에 앉아 한반도 미래를 놓고 희망의 대화를 나눈 곳이다. 둥근 탁자와 야외 벤치는 재떨이만 치워졌을 뿐 두 정상의 대화 도중 간간이 들리던 새소리도 여전했다.

 

4·27 판문점선언 이후 기자로는 내외신을 통틀어 처음으로 지난 18일 이곳을 찾았다. 한국군 당국과 유엔사 협조를 얻어 지난 13일 동부~중부~서부 전선으로 이어지는 한반도 횡단 5박6일 취재를 시작했다. 율곡부대(육군 22사단)가 지키는 동해 지역 휴전선 철책에서 출발해 육군 1사단이 통제하는 서부전선 휴전선 철책에서 끝났다. 하루에도 민간인통제구역(민통선)을 대여섯 차례 들락날락하며 분단 현장을 맨눈으로 살피고 한반도의 미래 희망을 찾아보려 나선 길이었다. 판문점 도보다리는 휴전선 155마일(248㎞) 답사의 사실상 마지막 목적지였다. 남북 정상 간 만남 이후 남북한군이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최전방에는 ‘무슨 변화가 있을까’ ‘비무장지대(DMZ)는 어떤 미래유산으로 남아야 할까’ 하는 성급한 생각으로 발을 뗀 여정이었다.

 

지난 14일 산악지대 일반전초(GOP) 휴전선 철책선을 따라 건봉산 전술도로를 달렸다. GOP는 남방한계선 철책선에서 장병들이 24시간 적 침입에 대비한 경계근무를 하며 적의 움직임을 살피는 곳이다.

 

백두대간의 큰 줄기이자 향로봉 산맥 봉우리인 건봉산의 험한 길은 배우 송중기씨가 근무했다는 독도중대로 이어졌다. “준비는 강력하게, 응징은 철저하게”라는 구호가 쓰인 초소들을 지나다보니 44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근무했다는 건봉산대대 전방관측소(OP)에 도착했다. 건봉산 정상(911m)에 ‘노무현 벙커’ 기념비가 서 있는 이 OP에서 노 전 대통령은 1968년 3월부터 1971년 1월까지 상황병으로 근무했다. 밤새 뜬눈으로 전방 경계근무 중 발생한 소·중대 상황들을 파악한 후 상급부대와 대대장 등에게 보고하고 조치를 취하는 게 당시 군번 51053545였던 병사 노무현의 임무였다.

 

군 관계자는 그때만 해도 북한군이 한국군 초병 귀를 베어가는 일도 종종 발생했다고 전했다.

 

육군 12사단 향로봉중대원들이 떠오르는 태양을 등진 채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향로봉중대는 비무장지대(DMZ) 부대는 아니지만 육군에서 가장 높은 1293m 고지에 있어 폭설과 강풍이 잦기로 유명하다. 겨울철 체감온도는 영하 40도까지 내려가고 11월에 눈이 오기 시작해 5월 초까지 내린다. 육군 제공

 

 

확성기 철거되자 자연의 소리 돌아왔지만…북측엔, 통신 감청·전파 방해용 새 철탑들이 들어섰다
녹슨 탱크가 지키는 ‘노무현 벙커’를 지나
북 GP와 580m 떨어진 ‘최북단 관측소’에 오르니 해금강 말무리반도가 손에 닿을 듯
병사들이 직접 돌던 2000개 넘는 철책 순찰로는 과학화경계시스템이 도입되며 무인감시 가능해져

 

■ 노무현 벙커와 유엔사 관할 OP

 

노후화와 작전상 이유로 비어있는 노무현 벙커.

 

노무현 벙커는 비어 있었다. 대대 주지휘소가 2016년 7월19일 다른 곳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벙커 노후화가 심한 데다 작전적 이유에서였다고 사단 측은 설명했다. 노무현 벙커 앞은 녹슨 미제 셔먼 탱크가 지키고 있다. 셔먼 탱크가 6·25전쟁 때 900m가 넘는 이 험한 산을 어떻게 올라왔는지, 또 왜 이곳에 방치됐는지는 미스터리다.

 

노무현 벙커를 벗어나 다시 철책선을 따라 ‘금강산 전망대’로 불리는 717 OP로 향했다. 군의 최북단 관측소다. 고성 통일전망대보다 2㎞ 정도 북쪽에 있다.

 

717 OP에 도착하자 유엔사 군사정전위원회에서 나온 미군이 기다리고 있었다. 기자의 취재 목적 등을 묻기 위해서였다. 717 OP는 유엔사 관할구역이다. 전망대가 MDL을 중심으로 남측과 북측으로 각각 2㎞ 물러나 이어진 최초 DMZ 안쪽으로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DMZ를 관할하는 유엔사 허가가 있어야 출입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관광객들이 최전방 북한 땅굴을 관람하면서 사진을 찍지 못하는 것도 그곳이 유엔사 관할구역인 탓이다. 717 OP는 1983년까지 DMZ 안쪽 최전방 경계초소(GP)였다.

 

강원 건봉산 정상의 ‘노무현 벙커’ 앞에 있는 셔먼 탱크.

 

155마일 남방한계선 철책이 북쪽으로 500m 정도, 길게는 1㎞ 안팎까지 북상한 것은 북한이 1968년 북방한계선 철책을 남쪽으로 1.2~1.8㎞ 내린 것에 대한 대응책이었다. 717 OP 지역의 경우 북한이 1983년 북방한계선을 1.71㎞나 남쪽으로 내렸다. 그러다보니 한국군 GP와 북한군 GP 사이 거리는 580m에 불과했다. 이곳은 휴전선 155마일 전선에서 남북이 가장 가깝게 대치하는 현장이다.

 

717 OP에서는 동해선 철도와 도로가 지나가는 구서 통문이 훤히 보였다. 북한이 동부전선 최전방의 영웅고지로 부르는 351고지와 레이더기지가 있는 국지봉도 한눈에 들어왔다. 351고지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4년 7월14일 관망대에서 북한군 방사포 발사를 관람한 곳이다. 망원경을 통해서는 구선봉을 비롯해 감호와 금강산 끝자락인 해금강 말무리반도가 손에 닿을 듯했다. 관측장교인 이모 중위는 “삼일포 인근에는 집단농장이 있고, 말무리반도에는 북한군 고위층 휴양시설이 자리 잡고 있다”고 소개했다.

 

■ 다리가 GOP 철책

 

휴전선 일대에는 남방한계선 철책 역할을 하는 다리가 여러 곳 있다. 신필승교와 오작교가 대표적이다. 경기 연천군 남방한계선에 있는 신필승교는 필승교 옆 북쪽으로 새로 만든 다리로 길이가 300m에 달한다. 과거 배터거리로 불리던 옛 나루터 자리에 있다. 군 당국은 이곳을 지난 18일 언론에 최초 공개했다.

 

신필승교를 지키는 장병들의 경계 수준은 임진강 수위에 따라 달라진다고 했다. 이곳을 지키는 장병들은 지난 18일 수도권과 강원 등 중부 지역에 3일간 최대 190㎜가 넘는 폭우가 내리자 긴장한 표정으로 황토색으로 변한 임진강을 뚫어져라 지켜보고 있었다. 다리 위 초소는 레이더와 유속계까지 갖추고 있었다. 과거 이곳은 북한군이 불어난 임진강 물을 이용해 여러 차례 침투를 시도했던 곳이다. 또 수위가 높아지면 북한 쪽에서 일상용품은 물론 물에 빠진 시신까지 떠내려온다. 촘촘한 망으로 스크린이라 불리는 시설물을 신필승교 아래쪽에 설치한 것도 북쪽에서 떠내려오는 것들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수위가 높아지면 수문과 함께 스크린도 들어 올려야 한다. 이는 이곳을 지키는 장병들에게는 GOP 철책을 들어 올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만큼 경계가 힘들어지는 것이다.

북한강은 DMZ부터 남방한계선이 지나는 오작교를 거쳐 ‘평화의 댐’까지 흐르고 있었다. 오작교는 강원 화천과 양구 사이를 흐르는 북한강 위에 세워진 다리다. 남한 영토로서는 북한강 최북단으로 GOP 철책 역할을 하는 셈이다. 북한강 수계 최북단을 지키는 오작교는 북한강 수위 급변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일상적인 장마철 방류 외에 북한의 수위조절을 가장한 대량 방류나 유사시 펼칠 가능성이 있는 수공을 포착해 조기 경보체계를 구축하려는 목적에서다.

 

오작교 일대는 멸종위기 1급인 산양이 전국에서 가장 많은 곳이다. 초소 열영상감시장비(TOD)에 전국에 900여마리밖에 없다는 산양이 12~15마리 몰려다니다 한꺼번에 찍히기도 했다는 게 안내 장교의 설명이었다. 오작교 가는 길에도 너구리와 꿩, 까투리 등이 갑작스럽게 취재차량 앞으로 뛰어들어 당황하게 만들었다. 이곳은 2000개가 넘는 철책 순찰로가 있어 2016년 과학화경계시스템이 본격 도입되기 전에는 경계 병사들이 순찰을 위해 오르락내리락해야 했다.

 

■ 북한군 GP와 전자전

 

지난 14일 동해안 남측 통문 앞에 휴전선 최북단 기념비가 서 있다.

 

휴전선 155마일 취재를 하면서 군 관측소와 전망대 10여곳에서 북쪽을 바라봤다. 가장 큰 변화는 확성기 철거였다. 남북 모두 웬만한 OP는 서로가 대북·대남 확성기 방송으로 ‘소음 전쟁’을 벌이는 ‘전투장’이었다. 남북이 확성기를 철수하자 그 자리에는 자연의 소리와 바람의 소리가 다시 돌아왔음이 느껴졌다.

 

북한군의 지뢰 매설 작업과 관련한 동향도 식별되지 않았다. 북한군은 매년 5월 초부터 DMZ 내에서 수풀과 잡목이 우거지는 녹음을 이용해 지뢰 지대 보강과 추가적인 대인·대전차 지뢰 매설을 해왔다. 이는 MDL 일대에서 모든 적대 행위들을 중지하기로 한 남북 정상 간 판문점선언의 영향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남측을 위협하는 북 GP의 적대적인 총안구 개방도 관측되지 않았다. 북한군은 최근 GP 아래쪽이나 지하로 연결된 주변 은폐물에 숨긴 총안구를 환기 목적 등으로 개방할 뿐 전투준비를 위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155마일 전역에서 소리 없는 전쟁은 계속되고 있었다. 전자전이다. 북한군 OP 여러 곳에서 과거 왔을 때 없었던 철탑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한국군 통신을 감청하고 북쪽에서 남쪽으로 가는 전파를 방해하려는 목적에서 세운 시설물이다. 과거 남측보다 열세였던 전자전 지원장비(ES)를 대폭 보강한 것으로 보였다.

 

GP는 MDL 너머를 바라보면서 적이 넘어오는지 감시하고 관찰하는 시설이다. 망원경으로 살펴본 북한군 GP 모습과 분위기는 인민군 사단마다 제각각이었다. 산악지대인 동부전선의 북한군 GP는 DMZ 안쪽에 요새처럼 점점이 자리 잡고 있었다. 반면 평야지대가 많은 서부전선 쪽으로 갈수록 북한군 GP는 민경대대가 관할하는 휴전선 철책선과 거의 붙은 채 일정한 간격으로 줄줄이 있었다. 경기 연천군 열쇠 OP에서는 북한군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GP 후방에서 하얀 마대자루를 들고 농사짓는 모습이 관측됐다.

북한군 GP는 인민군 최고사령관기와 인공기를 게양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곳도 있었다. 한국군 GP는 유엔 협정을 준수하는 감시초소라는 상징으로 유엔 깃발을 상시 내걸고 있다.

 

중동부전선의 북한군 GP에서는 비가 내린 후 초소 정비 작업이 한창이었다. 북한군이 나와 방충망을 설치하고 있는 모습이 망원경에 고스란히 들어왔다.

 

북한의 휴전선 철책은 2000년대 초반까지는 북한군이나 주민 탈북을 방지하기 위한 고압 전기 철책이었다. 지금은 전력난으로 전기가 흐르지 않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북한군이 철책을 만지는 모습도 관측된다는 게 군 관계자의 말이다.

 

강원 화천군 칠성 OP에서는 금성천 줄기가 북한강 상류로 흘러들고 있었다. 금성천 자체가 MDL이다. 영화 &lt;고지전&gt;의 모티브가 된 425고지도 보였다. 전국 도로 가운데 유일하게 남과 북을 거쳐 다시 남쪽으로 이어진 후 7번 도로와 연결되는 4301번 도로는 ‘평화의 도로’로 불린다.

 

북한군은 DMZ 내에 박격포 진지 234개소, 고사포 진지 92개소, 대전차포 진지 28개소 등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GP와 OP는 282개소를 설치해놓고 있다. 이에 대응해 남측은 GP 및 OP 100여개소를 운용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판문점선언을 통해 DMZ를 완전히 비무장화함으로써 실질적인 평화지대로 만들어 나가자는 데 합의한 바 있다.

 

 

 

■ 스마트 철책의 적

 

이제는 휴전선에서 윤형 철조망이 뚫리지나 않았는지 Y자 막대기로 찔러보는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철조망을 흔들어 침입 흔적을 찾지도 않는다. 2016년부터 GOP 과학화경계시스템이 본격 도입되면서 24시간 주간-전반야-후반야 3교대로 이뤄지던 경계근무가 사라졌다. 과거 1개 소대가 맡은 구간은 1.5~3㎞. 소초 간 거리가 300m를 넘는 곳도 있었다. 지형이 험준한 곳에서는 GOP 부대 병사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수백개의 계단을 오르내려야 했다. 이제는 감시·감지·통제시스템으로 철책에 광그물을 씌우고, 감시카메라와 열영상감시장비 등으로 낮엔 1~2㎞, 야간엔 200~400m 경계가 가능하다. 광그물망에 침입 움직임이 감지되면 신호가 울리고 카메라가 촬영해 영상을 지휘 통제실과 소초로 보내는 방식이다. 소위 스마트 철책이다.

 

그러나 광그물망은 짐승을 따로 구분하지 못해 감지되면 경계음이 울리고 통제실이 파악해 5분 대기조를 보내야 한다. 안개나 바람에 영향을 받는 것도 감수해야 한다.

최전방 병사들에게는 너구리와 토끼가 가장 기피하는 동물이다. 광그물망을 갉아먹기 때문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철책 아래쪽에는 동물들이 싫어하는 성분을 담은 봉지나 통들을 달아놓고 있다. 철책을 넘으려는 고라니도 골칫거리다.

 

과거 GOP 부대에서 멧돼지에게 주던 잔반은 전문 처리회사가 수거하고 있었다. 멧돼지 스스로 자연환경에서 먹이를 찾도록 해야 한다는 환경단체 조언에 따른 것이라는 게 안내 장교의 설명이다. 멧돼지의 철책선 접근을 막기 위한 목적도 있다고 했다.

 

철책의 스마트화로 과자·음료수·라면·담배 등 100여가지 물품을 트럭에 싣고 다니는 이동식 PX인 ‘황금마차’도 몇 년 후면 일부만 남고 대부분 퇴역할 것으로 전망된다. 소초들을 마트 PX가 있는 중대 이상 단위로 통폐합하면서 황금마차의 효용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안보관광에서 평화관광으로…‘전쟁 통로’를 ‘남북 번영로’로

 

지난 14일 동부전선 717 OP에서 바라본 북쪽 동해안 쪽에 감호와 금강산 끝자락인 해금강 말무리반도가 손에 닿을 듯 펼쳐져 있다.

 

 

정상회담 후 판문점 견학 급증
내국인 2배·외국인 2.5배 늘어

DMZ 내 산림·초지 면적 95%
산불 나면 남북 공동대응 필요

철원 OP 앞 궁예도성 터 조사
남북 문화사업 첫 과제로 꼽혀

 

■ DMZ의 남북 교류

 

DMZ에서는 산림이 75%를 차지한다. 초지가 20%, 농지와 습지가 각각 3%, 1% 정도다. 동부전선은 장엄한 산세와 함께 수목들이 바다를 이루고, 서부전선으로 갈수록 초지가 넓게 펼쳐지고 관목은 거대한 파도처럼 출렁거렸다.

 

강원 동부전선 GOP 전술도로를 따라 이동하면서는 나무들이 불에 타 넘어지거나 탄 흔적을 여기저기서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GOP 앞부분을 불모지화해 철책 앞에서 가까스로 불길을 막은 곳도 있었다. GOP 철책 앞 시야 확보를 위해 전방 100~200m 나무와 수풀을 제거해 만들어진 불모지는 방화지대를 형성해 산불이 철책을 넘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환경단체는 ‘불모지 작전’을 생태계를 교란하는 하나의 요인으로 지목한다.

 

이달 초 발생한 산불로 강원 동부전선 북쪽에서 축구장 1000개 면적이 탔다. 산불은 지난 2일 발생해 11일 만에 꺼졌다. 이렇듯 산불은 남북의 경계인 MDL은 물론 DMZ까지 무시하고 넘나든다. 산불은 지뢰와 함께 DMZ를 위협하는 남북 공동의 적이다. 산불에 대한 남북의 공동 대응이 필요한 이유다.

 

최전방 산불은 북한 지역에서 발화돼 남쪽으로까지 확산되는 경우가 많다. 북한군이 농사를 짓기 위해 야초와 잡목을 태운 불씨가 북서풍에 날려 DMZ를 넘는 사례도 있었다. 남과 북을 연결하는 동해안 군 통신선도 산불에 타버려 끊겨 있는 상태다. 정부는 남북 고위급회담이 열리면 남북 산불 및 홍수 방지 대책 등도 논의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산림청 헬기가 DMZ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다면 산불 진압을 훨씬 수월하게 할 수 있다.

 

철원 평화 OP에서는 태봉국 도성도 모형을 볼 수 있었다. 평화전망대 앞이 바로 궁예도성 터다. 1100여년 전 철원 벌판에 궁예가 세운 ‘태봉국 도성’ 터는 철원 지역 남북을 합친 DMZ 4㎞ 안에 오른쪽으로 약간 기울어진 직사각형 형태로 꽉 낀 듯 들어가 있다. MDL은 궁예도성을 가로로 나누고, 6·25전쟁 이전까지 서울과 원산을 잇던 경원선 철도는 궁예도성 터를 세로로 지나간다. 본래 월정사역도 궁예도성 터 안에 있었다고 한다. 현재 궁예도성 흔적이 약간은 있다고 하지만, 전망대에서 바라봤을 때는 수풀만 보였다. 궁예도성 조사 연구는 남북 공동 문화사업의 첫번째 과제로 꼽히고 있다.

 

■ 남침·북진로는 번영로

 

도보다리 옆 101번째 MDL 푯말 판문점 도보다리 옆에 녹슬어 글자가 없어진 군사분계선(MDL) 101번째 푯말이 서 있다.

 

한반도를 남북으로 갈라놓고 있는 MDL은 철조망이 아니다. 300~500m 간격으로 박혀 있는 푯말 1292개다. 서쪽 끝인 경기 파주시 장단면 정도리 임진강변(1번)부터 동쪽 끝인 강원 고성군 간성읍 동호리 동해안 해변(1292번)까지 이어지는 총 248㎞ 구간에 똑같은 모양의 푯말이 세워졌다. 어렵게 찾은 MDL 푯말은 모두 시멘트 기둥에 녹슨 철판이 붙어 있는 형태로 남아 있었다. ‘군사분계선’이 남쪽 방향 앞면에는 한글과 영어로, 북쪽 방향 뒷면에는 한글과 한자(중국어)로 철판에 적혀 있어야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글씨를 알아볼 만한 노란 철판은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의 90번 푯말과 도보다리 끝의 101번째 푯말에서도 글씨는 확인할 수 없었다.

 

MDL을 관통하는 도로는 6·25 당시 남침로였다. 현재는 끊겼지만 육상에서 금강산까지 가장 가깝게 연결하고 있는 31번 도로가 대표적이다. 가칠봉 OP에서 금강산까지는 31번 국도로 달리면 37㎞ 거리다.

 

15사단 승리 OP에서 바라본 남쪽 광삼역과 내금강은 과거 전기철도로 연결됐던 곳이다. 철원 지역의 멸공 OP에서는 남측 가늘골 통문을 지나 북상하면 북측 서방산 통문으로 나갈 수 있다. 이 길들은 남침로이기도 했지만 전쟁이 일어나면 국군의 북진로다. 그러나 남북은 이제 끊긴 도로를 연결해 남북 경제교류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전쟁 통로’를 ‘남북 번영로’로 탈바꿈시키려는 것이다.

 

금강산 관광객들이 이용하던 동해선 육로는 7번 국도의 연장선으로 DMZ를 관통해 금강산 삼일포로 이어진다. 하지만 2008년 7월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으로 중단된 금강산 관광이 올해로 중단 10년째다. 고성군은 금강산 관광 중단 피해액이 33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경기 파주의 도라 OP에는 단체관광객을 실은 관광버스가 줄을 이었다. 북쪽으로 가는 경의선 도로와 전력 전신탑, 문산과 개성을 잇는 철도가 한눈에 들어왔다. 안내 장교는 “남북정상회담 이후 관광객이 2배 이상 늘었다”며 “외국인 관광객은 2.5배 증가했다”고 전했다. OP에서 남과 북이 틀어대던 확성기 소리로 한반도 긴장을 느꼈던 ‘안보관광’은 이제 ‘평화관광’으로 바뀌고 있었다. 남북의 대표적 접경지역인 강원도에서는 평화특별자치도 지정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25사단 상승 OP에는 프랑스 조형작가 장 미셸 후비오가 2012년 설치한 ‘평화의 손’이 휴전선 북쪽을 향해 우뚝 서 있었다. 손가락 두 개로 철책선을 집어 들어올리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남북이 서로 교통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 부시 벙커

 

마지막 일정으로 DMZ에 위치한 판문점을 찾았다. 판문점을 들어가려면 캠프 보니파스와 과거 ‘인계철선’으로 불리던 콜리어 GP와 오울렛 GP를 지나야 했다. 캠프 보니파스는 1976년 북한군에게 ‘도끼 만행’ 사건으로 살해당한 보니파스 대위 이름에서 따왔다. 이전까지 명칭은 캠프 키티호크였다.

 

콜리어 GP와 오울렛 GP가 인계철선이었던 것은 북한군이 침공하면서 이곳 2개 GP를 공격하면 미군이 전쟁에 자동개입한다는 의미였다. 콜리어(미 육군 40사단)와 오울렛(미 육군 9사단)은 6·25 때 훈장을 받은 미군 병사들 이름에서 비롯됐다. 콜리오 GP는 미 2사단에서 운영하다 한국군 1사단에 넘겼다. OP를 겸하고 있는 오울렛 GP는 한국군이 공동경비구역(JSA) 경비 임무를 맡게 되면서 한국군 경비대대 책임지역이 됐다.

 

오울렛 OP는 MDL에서 가장 가까운 GP 겸 OP로, MDL과 불과 25m 거리에 있다. 부시 전 대통령이 2002년 2월 오울렛 OP를 방문해 북쪽을 망원경으로 관찰했다. 이후 그가 북쪽을 살폈던 벙커는 미군들에게 ‘부시 벙커’로 불리고 있다. 2012년 3월에는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이 오울렛 OP를 다녀갔다. 이곳에서는 남한 대성동 마을과 북한 기장 마을이 동시에 보였다. 오울렛 OP를 나서 판문점 자유의집을 통과한 후 도보다리로 다가갔다. 유엔사는 ‘풋 브리지(Foot Bridge)’라고 부르지만, 중감위에서는 다리가 푸른색이라고 해서 ‘블루 브리지’로 부르는 곳이다. 중감위 외국군 장교들은 습지 위에 만들어진 도보다리를 통해 하루 두 차례씩 판문점 사이를 오가고 있다.

 

지난 4월27일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면서 원래 약 70m 일자형이던 도보다리는 T자형으로 바뀌었다. 두 정상이 산책을 한 후 남북 분단의 상징이었던 MDL 101번째 푯말 앞에 배석자 없이 앉아 함께 담소를 나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기자는 두 정상이 ‘평화, 새로운 시작’의 대화를 나눴던 벤치에 조심스럽게 앉아 보았다. 두 정상이 나눴던 ‘평화, 새로운 시작’의 대화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느끼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JSA 경비대원들의 삼엄한 경호 속에 북쪽의 감시카메라까지 의식하다보니 두 정상 대화 사이에 간간이 들렸던 새소리마저 부담스러웠다. 앞서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북한 초소의 감시카메라 앵글이 함께 따라서 움직이는 것을 느끼며 걸어온 터였다. 도보다리에서 북한 초소까지는 40m 거리가 채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53년 정전협정의 산물인, 낡아빠진 분계선 푯말을 뽑아내는 날을 위해 두 정상이 미래를 기약했던 역사적 현장에서 느끼는 감동은 표현하기가 어려울 만큼 컸다.

 

<글 ·사진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Posted by 경향 박성진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