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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이야기

북 장사정포 후방배치, 획기적 전환점인가 ‘독사과’인가

· 북 ‘MDL에서 남북 각각 40㎞ 사격 금지구역, 60㎞까지는 비행금지 구역’ 제안

· 북 제안은 남남 갈등까지 고려한 ‘독이 든 사과?’

· 장사정포 후방 배치와 한·미 화력 후방 배치 맞교환은 남측에 불리

· 장사정포 후방 배치까지는 남북 간 고차원 방정식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을 위협하는 북한군 장사정포의 후방 배치가 가능한가. 이 문제를 놓고 지난달 25일 이낙연 총리는 6·25 기념식 기념사에서 “장사정포의 후방 이전이 논의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총리실은 국방부가 이를 계속 부인해왔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남북 간 논의를 말한 것이 아니라 우리 정부 내부 검토를 했다는 뜻”이라고 한발 물러섰다.

 

그렇다면 북한은 장사정포 후방 배치를 시사한 적이 없는 것인가. 여러 정황을 종합하면 꼭 그렇지도 않다. 북한이 장사정포 후방 배치를 시사한 것‘처럼’ 해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군사분계선(MDL) 인근에 배치된 북한의 장사정포를 후방으로 철수하는 문제는 남측의 훈련장 재배치와 남북 간 전력지수 등과 복잡하게 맞물려 있다. 사진은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2016년 3월 보도한 북한군 훈련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MDL에서 40㎞ 사격 금지’

 

군 안팎에서는 북한이 지난달 14일 제8차 남북 장성급회담에서 남측에 ‘사격 금지와 비행 금지구역 지정’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측이 “남북이 각각 서해 북방한계선(NLL) 20㎞, 군사분계선(MDL) 40㎞씩을 ‘사격 금지구역’으로 정하자”고 제안했다는 것이다. 북측은 또 군사분계선의 경우 60㎞ 이내 지역을 ‘비행 금지구역’으로 두자고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크게 보면 사격 금지구역 설정은 우선 실사격 훈련 중단과 이후 포 후방 배치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먼저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한 ‘사격 금지구역’에서 남북 간 실사격 훈련 중지가 이뤄지면 이후 북의 장사정포 후방 배치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가능하다.

 

문제는 이렇게 될 경우 남북 간 재래식 포병 전력의 균형추가 북측으로 기울어진다는 점이다. 군사분계선에서 40㎞씩 철수하면 남측 화력은 서울까지 밀리는 데 반해 북측 화력은 평양 남쪽으로 100㎞ 떨어진 지점에서 멈추기 때문이다.

 

현재도 평양은 비무장지대(DMZ)에서 180㎞ 거리인 반면 수도권은 60여㎞에 불과해, 남측은 화력을 비무장지대 인접지역에 집중해 놓고 있는 상황이다. 남측이 군사 방어적 측면에서 불리한 현실은 판문점이 서울에서 직선거리로 52㎞, 평양에서 직선거리로 147㎞인 점만 봐도 쉽게 읽을 수 있다.

 

‘비행 금지구역’ 지정도 사실상 공중 감시정찰 자산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남측에만 적용된다고 봐도 무리가 없다. ‘장사정포 후방 배치 미끼’를 내세워 남북 간 전력 균형을 단숨에 뒤집겠다는 북의 전략이라는 의심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국방부는 1일 북측이 ‘사격 금지와 비행 금지구역 지정’을 제안했는지에 대해 공식 확인을 거부하면서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최현수 국방부 대변인은 “남북 장성급회담에서 합의된 사항 이외에 남북이 서로 제안한 의제들에 대해서는 일일이 확인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 다른 국방부 당국자는 “구체적인 협의는 진행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남북 화력 ‘MDL 사이에 두고 맞대결’

 

군사분계선 인근 북측 지역에 배치된 1000여문에 달하는 각종 북한군 포 가운데 장사정포는 핵과 미사일에 이은 3대 위협 전력으로 꼽혀왔다. 장사정포는 40㎞ 이상 사거리를 가진 북한군 야포와 방사포를 의미한다. 이 중 사거리 54㎞의 170㎜ 자주포 6개 대대와 사거리 60㎞의 240㎜ 방사포 10여개 대대 330여문이 수도권을 직접 겨냥하는 것으로 군당국은 평가하고 있다. 장사정포는 갱도 진지 속에 있다가 발사 때만 갱도 밖으로 나온다. 갱도 밖으로 나와 발사하고 들어가는 데 6~15분가량 소요된다.

 

이에 맞서 한국군은 155㎜ K-9 자주포(사거리 40여㎞), 차기 다연장로켓포(MLRS) 천무(사거리 80㎞)를 전방에 배치하고 있다. 경기 연천과 포천 등 휴전선 인근 포병부대는 그동안 K55 자주포와 155㎜ 견인포(KH 179)를 운용하다 지난해 K-9 자주포로 주전력을 전환했다. 군은 서북도서와 전방 지역에 총 900문가량을 배치했다. K-9 포병부대는 비무장지대 이남 5~10㎞ 거리에 집중돼 있다. 북한이 2010년 11월23일 연평도 포격 도발 당시 트집 잡은 것도 K-9 자주포의 실사격 훈련이었다.

 

경기 동두천에 주둔하고 있는 주한 미2사단 예하 210화력여단의 다연장로켓포와 전술지대지 미사일(ATACMS), 신형 다연장로켓 발사기(M270A1), 장사거리 유도형 다연장로켓(G-MLRS) 탄약 등도 북 장사정포 대응 전력이다. 장사정포 후방 배치 논의를 본격화할 경우 K-9, K-55 등의 포병 전력 철수와 함께 미 210화력여단 전력도 협상 테이블에 오를 수밖에 없는 구조다.

 

북 장사정포가 위협적이기는 하지만 남북 화력이 맞붙을 경우 남측 전력이 압도적이다. 합참은 워게임을 통해 240㎜ 방사포는 6분 이내, 170㎜ 자주포는 11분 이내 파괴가 가능할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한반도 유사시 수일 이내에 장사정포 전력을 괴멸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북 제안은 ‘남남 갈등’ 유발

 

남북 간 군사분계선을 기준으로 ‘40㎞ 이내 사격 금지’와 ‘60㎞ 이내 비행 금지’ 구역이 정해진다면, 이는 사실상 남측 전방지역의 포사격 훈련장 무력화를 의미한다. 군 주요 포사격 훈련장이 군사분계선에서 40㎞ 이내 지역에 있기 때문이다.

 

경기 포천과 연천, 강원 철원 등 지방자치단체들은 소음과 도비탄 피해 등을 이유로 군 사격장 이전이나 폐쇄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이 때문에 북측이 40㎞ 사격 금지를 제안해 군사적 목적뿐만 아니라 군·보수층과 지자체 사이의 ‘남남 갈등’을 유발시키는 ‘일석이조’ 효과를 노린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게다가 남북 긴장 완화와 적대행위 중지라는 대의명분 아래 군이 사격훈련장 이전이나 폐쇄를 반대하기란 쉽지 않다.

 

포천만 해도 영평사격장, 바이오넷, 다락대, 도마치사격장, 아시아 최대의 승진사격장 등 총 1억평 규모의 한·미 군 사격장 9개가 자리 잡고 있다. 연천지역의 경우 군부대 87곳과 포사격 등 훈련장 39곳이 있어 전국 최대 규모다. 포천과 연천 훈련장은 지역 주둔 부대만 이용하는 게 아니다. 다른 지역 군부대도 들어와 훈련을 하기 때문에 주민들은 피해와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후방지역 훈련장들이 도시화 등으로 인해 5년 전부터 연천 훈련장으로 통합된 이후에는 전차와 자주포 등의 훈련 횟수가 늘어났다. 한·미 연합훈련 때는 일본 오키나와에 주둔하고 있는 미 해병부대까지 날아와 이곳에서 훈련을 실시한다.

 

연천군 신답리와 장탄리 훈련장에서 포를 쏘면 3~5㎞ 거리의 연천읍 부곡리 ‘다락대훈련장’ 탄착지로 포탄이 떨어진다. 다락대훈련장은 전차사격장과 공병훈련장을 갖춘 800여만평 규모의 동양 최대 종합사격훈련장이다. 다락대훈련장은 국방연구소(ADD)의 신무기 시험장이기도 하다. 현궁 대전차미사일 최종 시험 발사도 이곳에서 실시된 바 있다. 다락대사격장은 군사분계선에서 20㎞ 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철원군 갈말읍에 있는 문혜리 포사격장은 군사분계선까지 거리가 15㎞로, 다락대사격장보다도 가깝다.

 

남측이 강원 고성군 야촌리와 송지호 해변 일대, 백령도 등 3곳에서 실시하는 장거리 포병 사격도 금지 대상이 될 수 있다. 육군과 해병대가 130㎜ 다연장 로켓탄과 K-9 자주포를 20㎞ 이상 발사할 수 있는 곳은 군의 30여개 포사격장 가운데 이 3곳뿐이다. 장거리 포병 사격은 사격하는 진지와 포탄이 떨어지는 표적 지역까지의 거리가 20~30㎞는 돼야 제대로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군사분계선 60㎞ 비행 금지구역을 설정하면 포천 승진훈련장도 무용지물이 된다. 이곳은 육군 보병과 포병, 기갑 부대들이 한꺼번에 참여하고 공군 전력의 실사격까지 가능한 유일한 공지합동훈련장이다.

 

■장사정포 후방 배치는 고차원 방정식

 

북한 장사정포가 후방으로 빠진다면 한반도 군사적 긴장 완화와 신뢰 구축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 분명하다. 비무장지대의 비무장화와 함께 장사정포의 후방 철수는 전쟁 위험의 실질적인 해소 대책으로 꼽혀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측이 북의 화력 전력 후방 배치 제안을 수락하기 위해서는 훈련장 재배치와 남북 간 전력지수 등 여러 가지 함수를 고려한 고차원적 방정식 해법이 요구된다. 국방부가 “장사정포 후방 배치 등 군사적으로 매우 첨예한 사안까지 논의하기엔 남북 군당국 간에 아직 신뢰가 구축되지 않았다”고 강조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longriv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