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옆 동물원>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서로 대조되는 성격을 가진 두 남녀가 한정된 공간에서 티격태격하다가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을 이루기까지의 과정을 그려낸 영화다. 제목에 등장하는 ‘동물원’이라는 단어 자체가 낭만적이다.



현실의 동물원 역시 놀이문화가 없던 과거에는 그럭저럭 괜찮은 문화공간이었다. 마땅히 갈 곳 없던 가족들의 나들이 장소로 첫손에 꼽혔다. 학교 교사들에게는 쉽게 학생들을 데리고 갈 수 있는 좋은 체험학습장이었다. 그러나 이제 동물원은 논란이 대상이 되고 있다. 인간만을 위한 동물원이 아닌 인간과 동물이 모두 행복한 동물원을 만들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아프리카나 아시아 토착민까지 전시했던 유럽의 초기 동물원을 생각하면 상전벽해다.


서울대공원에서는 최근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2011년 선물한 시베리아 호랑이 ‘로스토프’에 물려 사육사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한 공간에 있어서는 안되는 사람과 맹수가 ‘우리’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만나 발생한 사고였다. 영화에서처럼 한정된 공간에서 만난 두 객체가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했던 것은 물론이다. 유감스럽게도 사고가 난 순간의 동물원은 아이들의 ‘꿈’이나 어른들의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다.


경찰조사에서 사고는 동물원 안전관리가 총체적으로 부실했기 때문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중잠금 장치 등의 안전시설 부재와 사육사에 대한 근무감독과 관련된 규정 위반 등이 복합된 사고였다. 사고는 여우 방사장에 임시로 호랑이를 옮겨둘 때부터 예견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호랑이가 여우가 살던 곳으로 옮기게 된 것은 대공원이 지난 10년간 대규모 투자 계획 논의만 하면서 신규 투자를 외면하다 뒤늦게 땜질식 시설 개선을 하느라 빚어진 일이었다.


서울대공원,호랑이 탈출사건(출처: 연합뉴스)



대공원은 이명박 서울시장 때인 2004년부터 3년간 디즈니사에 매각하는 방안을 추진했다가 백지화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2009년 미국 에이콤사 컨설팅을 통해 1조4000억원을 들여 열대우림과 대초원, 빙하기 등을 보여주는 대규모 테마파크를 세우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역시 재원 마련 부담과 입장료 인상에 따른 공익성 저하 논란 등으로 무산됐다. 그럼에도 서울대공원 동물원 사고에 대해 일부에서는 정치적인 의미를 담으려고 시도했다. 새누리당의 홍문종 사무총장은 동물원 사고의 책임을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돌리려 했고, 박 시장은 이를 반박했다.


제돌이까지 등장했다. 서울대공원에 있던 남방큰돌고래 제돌이를 제주도 앞바다에 방사하는 데 7억5000만원의 예산이 들어간 데 빗대 박 시장이 동물 이벤트하는 데만 신경을 썼다는 비난에 동원된 것이다. 이는 내년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재선에 도전하는 박 시장 흠집내기 시도로 비친다. 오히려 이번 사고를 계기로 동물원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 서울대공원에 무작정 예산을 쏟아붓기는 힘든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시설 개선을 제대로 하려면 아시아열대우림에 서식하는 동물들을 수용하는 동양관은 200억원, 해양관은 600억원가량 필요하다고 한다. 게다가 어린이 1000원, 어른 3000원으로 10년째 묶인 입장료로 에버랜드 수준의 동물 관리는 언감생심이다.


지방의 동물원이나 사설 동물원도 마찬가지다. 대구 달성공원 동물원만 해도 대구시가 12년째 달성공원 이전문제를 풀지 못하면서 최근 1년7개월간 사자와 벵갈 호랑이 등 멸종위기 1·2급 동물 8마리가 폐사했다고 한다. 죽음에 이른 동물 대부분은 열악한 사육환경에 따른 복합적인 질환에 의해 사망했다.


스웨덴의 문호 악셀 문테는 “야만적이고 잔인한 짐승은 창살 뒤에 있지 않고 창살 앞에 있다”고 했다. 동물을 가둬 놓은 우리 앞에서 동물들을 지켜보는 인간을 두고 하는 말이다. 전문가들은 “과거 동물원이 동물을 구경하기 위한 곳이었다면 앞으로는 멸종위기종이나 토종동물을 보존·복원하기 위한 곳으로 가치 정립이 돼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처럼 많은 동물들을 소유하고 보여주려고 한다면 한정된 예산과 인력 속에서 언제든 안전사고가 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동물 종(種)을 증식·보존해 멸종을 막고, 인간이 동물과 교감하는 체험을 제공하는 교육 공간을 우선한다면 해답은 상대적으로 쉽게 나온다. 이 경우 동물들의 수용 공간은 안전성이나 쾌적성을 먼저 따지게 된다. 박 시장도 “옛날 제국주의 시대처럼 신기한 동물을 잡아다가 구경시켜주는 기능의 동물원 시대는 지나갔다”며 “동물을 통해서 인간이 어떻게 세상과 우주와 생명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새로운 비전이 있는 동물원 정책이 나와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박 시장이 앞으로 자신의 시정에 ‘동물원’ 정책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화학적으로 녹일지 궁금하다. 졸지에 살인 호랑이로 낙인 찍힌 로스토프의 운명은 또 어떻게 될 것인가.


박성진 전국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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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경향 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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