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은 2010년 5월19일자에 민·군 천안함합동조사단이 백령도 해상에서 수거한 어뢰 파편에 ‘1번’이라는 한글이 쓰여 있었다고 특종 보도했습니다. 이 보도가 나가자 국방부 기자실은 뒤집어졌습니다. '‘1번 어뢰"는 조사단의 핵심적인 조사 결과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연히 기자들은 경향신문 보도의 진위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습니다. 그러나 조사단은 물론 군 고위층들도 철저하게 입을 다물었습니다. 그도 그럴수밖에 없었던 것이 한글이 쓰여진 어뢰 파편이 발견됐다는 사실에 대해 군 고위층들도 극히 일부 인사를 제외하고는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던중 국방부 출입기자들은 조사단의 조사상황에 대해 정통한 군 고위 인사 ㅈ씨를 용산 국방부 청사 현관에서 만났습니다. 기자들은 우르르 몰려가 “한글이 쓰여있는 어뢰 파편을 발견한게 맞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ㅈ씨 역시 함구로 일관했습니다. 그러면서 국방부 청사를 빠져나가 승용차에 오르려 했습니다.
당시 5월 19일자 경향신문 기사.
이때도 기자의 집요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한글 맞아요?” “몇글자입니까?” 어떤 의미에서 넘겨짚기식 질문이었죠. 그러자 ㅈ씨는 딱 한마디만 남기고 승용차를 타고 떠납니다. 그가 남긴 한마디가 “한자야~”입니다. ㅈ씨가 말한 ‘한자’의 의미는 한글이 어뢰에 한글자 표기돼 있다는 의미였습니다.
그것은 정확한 대답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어뢰추진체에는 아라비아 숫자 ‘1’과 한글 ‘번’이 쓰여져 있었기 때문이죠. 아라비아 숫자도 한개, 한글도 한개 있었던 것입니다.
중국 어뢰
그러나 모 언론사의 국방부 출입기자는 ㅈ씨의 대답을 한글 ‘한자’(one word)가 아닌 중국 ‘한자’(漢字)로 잘못 알아듣습니다. 그리고는 잘못된 기사를 봇물처럼 쏟아냅니다. “민·군 합동조사단은 지난주 백령도 해상에서 수거한 어뢰 파편에 (중국) ’한자‘가 표기된 사실을 근거로 이 어뢰가 중국제 ’어(魚)-3G‘ 음향어뢰로 사실상 결론낸 것으로 알려졌다”고 말이죠.(‘魚’는 중국 해군이 보유한 대표적인 어뢰 종류의 명칭입니다)
또 “군 고위 관계자는 어뢰 파편에 한글이 적혀 있다는 일부 언론 보도(경향신문 보도)에 대해 "어뢰 파편에 한글은 적혀 있지 않다"면서 "나머지는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고 보도합니다.
한발 더 나아가 오보는 중국제 ‘어’(魚) 어뢰 시리즈 보도로 이어집니다. 중국은 러시아제인 ’ET-80A‘를 토대로 ’어-3G‘를 개발한 것으로 군과 방산업계는 분석했다는 기사도 나옵니다. 상당수 언론사들은 이 보도를 받아서 오보를 재생산했습니다.(문제는 이런 기사는 자칫 외교문제화될 수 있는 소지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북한 잠수함이 중국어뢰를 사용했다는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는 중국 잠수함에서 중국어뢰를 쏴 천안함을 침몰시켰을 가능성이 있다는 확대 해석으로 연결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죠. 중국 정부의 강력한 항의로 이어질 개연성이 있었던 것입니다)
경향신문 보도를 확인하는데 실패한 모 언론매체는 다음날 아침신문 1면 톱기사로 오보를 내기도 합니다. 그래픽 컬러사진까지 곁들여서 일번은 어뢰의 제조내역을 추정할 수 있는 고유의 ‘일련번호’라고 말이죠. 한마디로 ‘1번’이 일련번호의 약자인 ‘일번’으로 둔갑한 것입니다.
민·군 합동조사단이 공개한 어뢰 뒷부분 동체의 모습. | 경향신문 자료사진
또다른 매체는 천안함 합동조사단이 어뢰 파편에서 발견된 ‘일번’, 즉 ‘일련번호’를 북한의 글씨체와 동일하다고 판단하고 북한의 어뢰에 의해 천안함이 침몰했다는 결론을 도출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하기도 합니다. 거기에는 “북한군이 창정비 차원에서 프로펠러 부분에 생산연도와 일련번호 또는 해당국의 고유표식을 한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했다”는 친절한 안내가 곁들여집니다.
이 과정에서 보다 못한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한밤중에 특정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서 일부 언론의 오보를 잡아주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이상이 천안함 뒷담화 2편 ‘(천안함을 침몰시킨 범인으로) 중국어뢰는 왜 등장했나’였습니다. 3편으로는 ‘함장은 왜 OO을 지웠나’를 준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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