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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이야기

국방부는 지금 몇시인가

 


 <병사들의 유격훈련 모습>

해병대 총기사건의 여파
 
해병대 2사단 강화도 소초 총기 사고의 여파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회적 파장도 파장이지만 당장 장병들이 피곤해질 것 같습니다. 김관진 국방장관이 전군에 내린 부대진단 긴급지시는 병사들에 대한 실태조사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만큼 부대 지휘관들도 새로운 행정 업무가 생겼고, 병사들은 병사들대로 귀찮은 일입니다.

이명박 대통령도 12일 해병대 총기 난사 사건과 관련해 “병영 문화를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고 하네요.

이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제30회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체벌 자체보다도 자유롭게 자란 아이들이 군에 들어가 바뀐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정신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는 것같다”면서 이같이 지시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국방개혁과 더불어 병영생활의 문화를 바꾸는 데 집중적으로 연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답니다.

이제 대통령의 지적까지 나왔으니 과거 사례를 보면 ‘부대 내 가혹행위가 있었느냐’ 등을 묻는 설문조사도 있을 것이고, 부대진단을 이유로 여러가지 조사가 이뤄지겠지요.

이는 결국 김관진 장관이 취임 초기 내걸었던 행정형 군대를 지양하겠다는 정책 방향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부대진단을 이유로 구태의연한 행정 소요가 다시 늘어난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지요.


 

장병들만 피곤하게 하는 부대진단
 
개인적으로는 이 시점에서 장병들만 피곤하게 하는 부대진단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구요. 부대진단을 할 필요도 없이 사고 원인은 이미 진단이 끝난 상태입니다. 대책도 벌써 나와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번 해병 총기사고는 과거에 국방부 스스로 발표했던 정책을 시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입니다. 여기에다 한때 정부가 추진했던 ‘자율형 병영문화’가 정권이 바뀌면서 다시 전투형 부대를 핑계로 과거식 ‘통제형 병영문화’로 회귀하는 조짐을 보이는 것과도 무관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국방부는 2005년 6월 최전방 소초(GP) 총기난사사건 이후 대대적으로 병영문화 개선 운동을 펼치면서 사고 예방책들을 줄줄이 내놓았습니다.

과거 군이 내놓았던 대책들

가장 핵심적인 것들만 몇가지 소개하겠습니다.

첫째가 장병들의 인권을 법적·제도적으로 확고하게 명문화한 ‘군인복무 기본법’의 입법예고였습니다.

군인복무기본법은 제17조에서 ‘군인은 헌법상 권리의 주체이며 헌법과 법률 기타 정당한 사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권리를 제한받지 아니한다’라고 해 군인이 기본권의 주체임을 명시했습니다.

법안 제18조에서는 서신 등의 자유를, 제19조에서 종교 활동 보장을, 제20조에서 의료권, 제21조에서 휴가권 보장을 규정했습니다. 이는 병사가 병원에 가는 것도, 휴가를 가는 것도 당연한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지휘관의 재량에 따라 갈 수 있는 것으로 잘못 인식된 것을 고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습니다.

특히 관심을 끈 부분은 법안 제15조로 정당한 명령은 보장하면서 대신 ‘병은 다른 병에게 어떠한 명령이나 지시 등을 할 수 없고 간섭할 수 없다’고 규정했습니다. 이는 법률로 병사들간 불필요한 사적 명령과 지시·간섭을 원천적으로 억제한 것이었습니다.

이는 당시 부대 자살 사건 중 41%가 선임병의 횡포가 원인으로 조사되는 등 선임병에 의해 조성되는 강압적인 군대 악습을 개선하지 않고는 선진 병영문화 구현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국방부가 군인복무기본법을 만든 가장 큰 이유는 군 지휘관들과 장병들의 잘못된 사고방식을 불식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군 일각에서는 계급과 직책에 의해서 예하부대와 부하에게 행사하는 지휘관의 지휘권을 어떠한 법률상의 제한에도 기속되지 않는 무제한의 권한으로 오해하고,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를 위해서라면 장병 개개인의 인권은 무시해도 정당화될 수 있다고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외국의 선진 군사 강국들의 경우 이미 군인 기본법과, 군인의 신분과 지위에 관한 기본법을 두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당시 군인복무기본법 제정은 우리 군도 전력지수 면에서는 선진 강국과 비견(比肩)되는 상황에서 만시지탄(晩時之歎)이라는 평가까지 받았습니다.

둘째가 ‘병역심사관리대’를 운영해 복무 부적격자를 분리하겠다고 한 발표입니다. 이는 연천 GP 사고처럼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병사가 최전방 부대에 근무하면서 총기를 다룬 것을 일찌감치 차단하겠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셋째가 철저한 총기 관리의 지시입니다. 총기 보관함의 열쇠는 반드시 2개로 분리해 상황 부사관과 상황병이 별도로 보관하고 있다가 총기 반·출입시에만 같이 사용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기타 다른 것도 많지만 여기서는 크게 3가지만 소개했습니다.
(참고로 군 당국이 해병대 2사단 총기사고를 계기로 내놓은 병영문화 혁신 대토론회, 제대별 정신교육, 국방부와 합참의 합동 실태점검, 예비역 포함한 각계각층 의견 수렴, 인성 결함자 입영 차단 등 각종 대책은 모두 과거 연천 GP 총기난사 사건 이후 국방부가 발표했던 것들과 같은 내용입니다. 한마디로 군의 이번 대책 발표는 과거 발표의 판박이 재탕에 불과합니다)


내팽개쳐진 군인복무기본법


자! 이제 위에서 소개한 과거 국방부의 대책 발표가 이후에 어떤 식으로 진행됐는 지를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병사들간 사적 제재나 간섭을 금지한 군인복무기본법만 제도로 만들어졌어도 해병 총기 사고 방지에 큰 도움이 됐을 것입니다. 왜냐구요. 법안에 따라 사적 제재를 한 병사는 영창에 갔을 것이고, 관리 감독을 제대로 하지 못한 지휘관은 징계를 받을 것이 뻔했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군인복무기본법안은 MB 정부로 넘어오면서 국방부의 소극적인 태도로 국회에서 심의가 이뤄지지 못해 2008년 5월 17대 국회 임기만료로 자동폐기됐습니다.

국방부는 해병 총기 사고가 일어나자 과거 정책의 재탕 대책을 발표하면서도 핵심인 군인복무기본법안의 재입법은 내놓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병사들의 권리를 법으로 규정하는 것 자체를 지휘권에 대한 침범이나 부담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군은 병역심사관리대를 2005년 연천 GP 사건 이후 육군 4곳, 공군 1곳 등 5곳을 설치했습니다. 그러나 해군과 해병대는 지원병들에 대해 자체평가기준을 적용해 선발한다는 이유로 그동안 설치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국방부가 약속한대로 해병대까지 포함해 전군에 병역심사관리대를 설치했으면 이번 사고가 일어났을까요. ‘만약’이라는 말이 어떤 의미에서 참으로 책임없는 말이기도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정신분열증세까지 있다고 한 사고자 김 상병은 병역심사관리대를 거치지 않았고, 총기까지 다루면서 사고를 일으켰습니다. 국방부의 과거 대책 발표가 구두선에 그친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사고 부대에서는 국방부가 약속한 엄격한 총기관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이미 나와있는 총기사고의 근본 원인과 해답

이것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정답은 장관의 지시에 따른 전군의 부대 진단을 하지 않더라도 원인은 분명히 나와 있고, 그 해결책까지 제시돼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김관진 국방장관이 선배 국방장관들이 내놓았던 대책들만 충실히 지키도록 부하들을 관리·감독했으면 이번 해병 총기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또 한가지 있습니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이곳저곳 군 부대들을 취재해 봤습니다. 그랬더니 군 분위기는 정권이 바뀌면서 많이 바뀌어 있었습니다.



위기의 자율 병영문화

밝은 병영문화를 위한 간부들의 의식 전환 교육들은 상당부분 사라졌습니다. 아마도 김관진 국방장관이 취임하자마자 “각종 (군내) 사고에 대한 시각도 바뀌어야 한다”며 “단순히 사고의 유무(有無)와 건수로 지휘관과 부대를 평가하는 관행을 없애겠다”고 밝힌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국방부가 통제형이었던 군대의 생활방식을 자율형으로 바꾸겠다면서 일과 시간 이후 적극적인 이용을 권장했던 병영도서관·사이버 지식정보방·체력단련실 등의 이용률은 상당히 떨어져 있었습니다. 특히 일선 부대에 마련된 PC방은 사실상 개점 휴업상태인 곳이 많았습니다.

과거 육군이 모범사례로 홍보했던 ‘신병 세족식’(전입축하와 소속감을 갖도록 소대장이나 선임병 등이 신병의 발을 씻어주는 행사)도 사라진 지 오래였습니다. 병사들 간의 자율점호도 없어졌고, 병영이 과거의 통제형으로 회귀하는 조짐이 보였습니다.

게다가 관심사병이 대부분인 복무부적합 조기전역자는 정권이 바뀌면서 급증했습니다.
(여기에는 병역자원 부족을 이유로 과거에는 공익이나 면제자가 됐을 신체검사 대상자에 대해서도 징병검사 기준을 완화해 현역으로 보낸 병무청의 역할도 크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야전 지휘관들의 말을 빌자면 도저히 군복무가 힘든 자원이 배치돼 애를 먹이다가 결국 현역복무부적합 판정을 받고 ‘고향 앞으로 가’ 하는 사례가 늘었다고 합니다.
 현역병 복무부적합 조기전역자는 2006년 382명, 2007년 453명, 2008년 472명으로 큰 차이는 없다가 2009년에는 894명으로 두배 가까이 증가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953명으로 늘었습니다. 올 5월까지는 385명이 조기전역했습니다)

전투형 부대의 그늘

MB 정부가 들어서면서 나온 군의 화두는 ‘전투형 부대’였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첫 국방장관인 이상희 장관은 ‘파이트 투나잇’(Fight Tonight)과 재조형(Reshaping)을 통해 군이 기존의 ‘사고 예방 중심의 관리형 부대’에서 과감히 탈피해 ‘실전적 전투형 부대’로 과감히 전환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파이트 투나잇’ 정신에도 불구하고 천안함 사고는 일어났습니다.

전군의 ‘팀워크’ 혹은 ‘사기’를 증진시키던 ‘전투체육의 날’도 이상희 전 장관 시절 주말로 돌려 버렸다가 군내 반발이 커지자 수요일 오후 2시간으로 축소 운영하고 있습니다.(이에 대한 현장 지휘관들의 불만은 상상 이상입니다. 과거에는 수요일 오전에는 정신교육, 오후에는 전투체육을 실시해 사실상 일주일을 수요일 기준으로 이분화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유가 있는 ‘전투체육의 날’을 통해 부대 관리에 대한 전반적인 그림도 그릴 수 있었는 데 지금은 연중 적도발대비태세 유지를 한다면서 하루하루 때우기 식으로 일주일을 보내다 보니 피로도가 높아졌다는 겁니다)

물론 ‘전투형 부대’가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전투형 부대는 일선 지휘관들로 하여금 틈만 나면 공용화기 분해·조립도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 과학화훈련장에서 배운 교훈을 부대 내 훈련에서 원용하기도 합니다. 가령 박격포 설치도 과거 훈련 때는 평사면에 했던 것을, 전투을 가상한 경사면에 설치해 발사하는 훈련을 하는 것도 사소하지만 중요한 변화 중의 하나라고 합니다.(어떤 의미에서 전투형 부대는 군이 가야 하는 당연한 방향입니다. 구호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내실있게 실행해야 하는 이정표나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전투형 부대를 핑계로 한 보여주기식, 몸으로 때우기 식 전투형 부대는 장병들의 피로도만 가중시키면서 밝은 병영문화 발전을 막는 걸림돌이라는 것입니다.

온고지신이 필요한 국방부

‘온고지신’이라고 했습니다. 과거 정부에서 했던 것이니까, 과거 장관들이 했던 것이니까로 폄하하지 말고 계승해야 할 것이라면 보다 발전시켜야 하지 않겠습니까.(솔직히 대통령이 “병영생활의 문화를 바꾸는 데 집중적으로 연구를 해야 한다”고 하고, 국방장관은 부대진단을 지시했지만 이제 더 이상 나올 대책도 없습니다.
이제 국방부가 앞서 수년 전 발표했던 것이나 잘 지키도록 노력하는 게 어떨까요. 연구 또는 부대진단을 핑계로 더 이상 장병들을 귀찮게 하지 말고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