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수호를 위한 선배들의 투혼, 우리가 이어갑니다.

- 한․미 장병, 6․25전사자 유해 함께 찾아 나서 -

6․25전쟁 당시 이 땅의 자유수호를 위해 싸우다 산화한 선배들의 유해를 찾기

위해 한․미 장병들이 함께 나섰다.

어제(13일)부터 경북 칠곡의 작오산, 유학산 일대에서 실시되고 있는 국방부유

해발굴감식단과 육군 50사단 장병들의 전사자 유해발굴 현장에 백안의 미군들

이 동참하여 굳건한 한․미동맹의 의미를 함께 나누고 있다.

이들은 왜관에 있는 미 501여단 소속 장병들로 20여명 모두가 스스로 자원하

여 참여한 것으로,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장병들이 한국군의 전사자 유해

발굴에 동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이곳은 6․25전쟁 당시 미 1기병사단과 국군 1사단이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파

죽지세와도 같은 북한군 1, 3, 13사단 등과 맞서 고지의 주인이 하루에도 몇 번

씩 바뀌고 피․아 1만여 명의 전사
자가 발생할 정도로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진

곳이다.

(이 일대를 다부동 전투라 함)

유해발굴에 참가한 한․미 장병들은 '50년 8월 작오산 전투에서 북한군이 미군

포로 46명을 전화줄로 묶어 놓은채 집단 총살했다는
발굴통제 장교의 설명에

숙연해 했으며, 간간히 나오는 당시 M1 소총
탄피를 들고 선배들의 치열했던

전투상황에 대해 대화하는 등 시종
진지하게 발굴에 임했다.

한국에 10년째 근무하고 있으면서 이번 발굴에 미군 선임자로 참가한 부대대장 리스 소령(40세, 유타주 출신)은 “60년 전 이곳에서 자유수호를 위해 숨져간 수많은 한․미 장병들의 고귀한 희생의 의미를 직접 느낄 수 있는 매우 소중한 기회였으며, 내년에는 더 많은 부대원들이 참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한국전쟁 당시 조종사로 참전한 외할아버지에게 이 소식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이와 병행하여 강원도 양구에서도 지난 4월 11일부터 6월말까지 미 JPAC(합동 전쟁포로/실종자 확인 사령부) 소속 발굴팀과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이 육군 2사단 장병 지원하에 '51년 추락한 F-4U(일명 콜세어) 전투기의 조종사 유해를 찾기 위한 한․미 합동발굴을 진행하고 있다.

한편, 지난 3월 초 시작된 금년도 전사자 유해발굴이 현재 9개 지역에서 9백여명의 장병들이 참여하여 활발히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대학생들의 나라사랑 함양과 호국보훈의식 고취를 위한 유해발굴 참여 프로그램 일환으로 오늘(14일) 칠곡 유학산 발굴현장에 계명대 사학과 학생 40여명이 유해발굴 체험을 실시할 예정이다. <끝>

붙 임 : 참고자료

<작오산 전투의 비극>

◦작오산은 왜관 북쪽에 위치한 해발 303m의 고지로 바로 전방에 낙동강이 위치하고 있으며, 경부국도와 경부선 철도 및 왜관지역을 관측하고 통제할 수 있는 전술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다.

다부동 전투가 치열했던 '50. 8. 15일 작오산에 배치된 미 1기병사단 5기병연대 2대대는 북한군의 기습을 받게 되었다. 특히 작오산 우측에 배치된 4.2인치 중박격포중대의 1개 소대(2대대 배속)는 전원이 포로가 되었고, 방어중이던 G중대는 적에게 포위되고 말았다.

G중대를 구출하기 위한 역습을 통해 작오산을 탈취하였으나, 정상에 널부러진 200여구의 시체와 함께 눈앞에 펼쳐진 참담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8. 17일 미군의 역습이 개시되자 북한군은 군관의 명령에 따라 휴식을 취하고 있던 포로들에게 기관총을 난사하여 집단학살을 자행하였다. 전화선으로 손이 묶인 채 처형된 중박격포 소대원 46명의 시신이 골짜기에서 발견되었으며, 대부분 신발이 없고 발에 심한 상처가 있는 상태였다. 북한군이 자신들이 신기 위해 포로들의 신발을 벗기고 밤낮으로 정상과 계곡을 맨발로 끌고 다녔기 때문이다.

◦이 사체더미 속에서 다행히 양쪽다리와 한쪽 팔에 관통상을 입은 맨링 로이 이병과 라이언 이병 등 생존자 6명을 구출하여 학살 당시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다부동 지역 전투의 참상

(다부동 구국전투사 중 참전용사 증언)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무명용사가 발생한 이시기 다부동 일대의 참상은, 참전용사들이 '생지옥'이라 말 할 만큼 그 증언만으로 몸서리가 쳐지게 한다.

연일 계속되는 피․아간의 공방전으로 전사자의 사체가 쌓여 산을 이루고 있었고, 돌산(유학산 등)으로 된 지역에서는 사체를 매장할 수도 없었으며, 그 사체를 이용하여 참호를 만들어 싸웠다. 섭씨 37도를 오르내리는 8월의 숨막히는 더위와 사체들에 들끓는 파리떼, 적의 수류탄과 포격을 맞으면 형체를 알아볼 수도 없게 되는 사체들은 말 그대로 지옥의 모습이었다.

◦빨래는 커녕 마실 물이 없어 타는 갈증을 참아야 했고, 배고픔을 못이겨 건빵을 먹게되면 찾아 오는 갈증은 고통 중에 고통이었다. 가끔 노무자가 추진해주는 주먹밥을 건네 받으면 손에 쥐는 찰나 까맣게 변색되었다. 사체에 붙어있던 파리떼가 옮겨 붙은 것이다. 파리떼로 뒤덮힌 주먹밥을 피와 먼지로 범벅이 된 손이지만 먹어야만 했다.

◦불과 2㎢도 채 되지 않는 지역에 2,000여구가 넘는 사체들이 즐비했지만, 곳곳에서 피와 땀으로 얼룩이 진 누더기 같은 전투복을 걸친 병사들이 살기에 찬 두 눈을 번뜩이며, 먼저 간 전우의 사체를 찾아다녔다. 영혼들의 넋이라도 위로해주고, 유해만이라도 편히 눕혀 주려는 마음에서 우러난 것이다.

□ 한․미 장병 유해발굴 관련 사진

한․미 양국의 장병들이 6․25 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현장인 경북 칠곡 작오산에서

이 땅의 자유를 수호하다 산화한 선배 전사자의 유해를 찾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미 501여단 본부대대

부대대장 RIX 소령

(40세, 유타주 출신)

□ F-4U(일명 Corsair, 해적선)

◦단발 프로펠러 공격전투기(1인승 함재기, 해군, 해병대에서 주로 운용)

* 제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운용

◦제 작 : 미 보우트사(1943년 개발)

◦최고 속도 : 시속 670km

◦무 장 : 12.7미리 중기관총(6정), 20미리 기관포(4문), 폭탄 900kg, 로켓탄 8발

[ F-4U 공격전투기 ]

□ 한․미 전사자 유해발굴 조직

구 분

한 국(국유단)

미 국(JPAC)

인 원

179명(대령 지휘)

444명(소장 지휘)

편 성

5개과

6처 17개과

발굴팀

8개팀(팀당 8명)

* 군단 잠정발굴팀(21개팀)

18개팀(팀당 10∼14명)

조사팀

3개반(반당 2명)

*전문탐사관 운용(10명)

6개팀(팀당 4∼9명)

감식인력

8명(박사, 석사급)

40명(박사 30명)

활동영역

자국내 국한

전 세계 대상 임무수행

* JPAC : Joint POW/MIA Accounting Command

□ 한국전쟁시 미군 미수습 전사자 : 8,100명

* 한국 : 2,000여명, DMZ : 2,000여명, 북한 : 4,100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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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경향 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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