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7 판문점선언'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9.03.05 군 스스로 관성을 깨기 어렵다면…
  2. 2018.05.23 판문점선언 이후, 휴전선 155마일을 가다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적 환경이 녹록지 않다. 지난해 남북 정상의 4·27 판문점선언 이후 국민들이 체감하는 남북 군사적 긴장은 줄어들었다. 하지만 일본과 중국의 군사력은 한반도를 에워싸면서 한국 해군과 공군의 작전환경을 위협하고 있다. 마치 우리 군의 전력을 ‘가두리 양식장’ 속 물고기처럼 일본과 중국이 일방적으로 설정한 울타리 안에 가두어 두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본이 촉발한 ‘초계기 위협’과 중국의 반복되는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카디즈) 무단진입과 ‘서해의 내해화(內海化)’ 움직임이 그 방증이다.

 

일본 해상자위대 P-1 초계기가 지난해 말부터 1월까지 수차례 한국 해군 함정을 위협하는 저공비행을 한 배경에는 한국 해군으로 하여금 카디즈 바깥 해역으로 나오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이 숨어 있다. 군사적으로 분쟁지역을 확대해 자위대 존재감을 부각시키려는 표면적인 정치·군사적 목적 외에, 토끼몰이 하듯 한국 해군을 카디즈 안쪽으로 밀어붙이겠다는 실질적인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사건의 발단은 일본 초계기가 카디즈 바깥쪽에서 조난당한 북한 어선 구조작전을 실시하던 광개토대왕함의 추적레이더(STIR-180)로부터 조사(겨냥해 비춤)를 받았다는 주장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일본 자위대는 사태를 봉합하기보다는 한국 해군의 율곡이이함과 노적봉함에까지 저공 위협비행을 실시했다. 그 이면에는 한국 해군이 굳이 카디즈를 벗어나 작전을 하지 말라는 경고가 숨어 있다고 해군 장교들은 지적한다.

 

중국 군용기의 카디즈 진입은 한 수 더 뜬다. 전자전 정찰기를 중심으로 한 중국 군용기는 아예 카디즈를 무시하고 있다. 중국 군용기가 불과 2년 사이에 카디즈를 무단진입한 횟수는 2.8배나 늘어났다. 무단진입 범위는 더 깊어지고 있다.

 

중국 정찰기는 카디즈나 일본방공식별구역(JADIZ·자디즈)에 무단진입할 때 중국 군함과 함께 움직이는 입체작전을 펼치고 있다. 중국은 카디즈를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자국 방공식별구역(CADIZ)에 진입하는 외국 항공기에 경고 메시지를 보내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군사 패권주의’나 다름없다.

 

한·중·일 방공식별구역이 겹치는 공역인 제주와 이어도 공역에서도 중국 군용기가 사전 통보 없이 그들의 앞마당인 양 지나다니고 있다. 중국 해군 함정도 수시로 출몰하고 있다. 이어도 해역에 대한 실질적 영유권 주장을 강화하기 위한 차원이라는 게 군당국의 분석이다. 

 

중국은 서해와 이어도 근해에 ‘중국해양관측부표’나 ‘중화인민공화국’이라고 표시한 부표 8개를 설치했다. 이 부표들 가운데 4개는 한국 해군의 공해상 작전구역에 설치했다. 중국이 한·미·일 잠수함과 함정에 대한 감시·경계 목적으로 부표를 설치했을 것이라고 의심받는 이유다. 해군은 중국이 남중국해 문제가 어느 정도 정리되면 유엔 해양법을 무시하고 이어도 문제를 영토분쟁화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서해를 내해화하기 위한 중국의 기도는 124도 E선을 군사활동 경계선으로 하려는 시도로 이어지고 있다. 중국은 틈만 나면 이곳 해역에서 매년 대규모 해군 연습을 정례화하고 있다. 그러면서 한국 해군에 124도 E선을 넘지 말 것을 노골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124도 E선이 군사활동 경계선으로 굳어지면 서해 대부분은 중국 바다가 된다.

동해는 각국이 군사정보를 수집하는 치열한 각축장이다. 공중에서는 미국의 RC-135 정찰기·MC-12W 정찰기·RQ-4 글로벌호크 무인정찰기 등이 날아다닌다. 일본은 EP-3, YS-11 전자정보 수집기를, 중국은 Y-8·Y-9 정찰기를, 러시아는 IL-20·Tu-214R 신호정보 수집기를 운용하고 있다.

 

바다에서는 일본의 정보수집함은 물론 중국의 동디다오급(815식) 정보수집함과 러시아의 발잠급 정보수집함 등이 활동하고 있다. 동해를 자신들의 작전 영역으로 여기는 주변국들은 한·미 연합훈련은 물론 한국 해군 자체 훈련도 감시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일본과 중국, 러시아의 정보수집함이 몰려드는 바람에 해군이 훈련을 잠정적으로 중단하고 연기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에 대한 한국군의 전력은 언감생심이다. 금강 정찰기는 대북 정보 전용이다. 정보수집함은 속도가 느려서 기동훈련에서도 소외되고 있다.

 

한국군이 대북 정보 외에 주변국 군사동향을 탐색하고 정보를 얻으려는 시도라도 하는지 모르겠다. 그럴 능력도, 의지도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미군이 관련 정보를 주는 것도 아니다. 이어도 해역에는 중국과 일본 해군의 움직임을 감시하기 위한 해상 레이더조차 없다. 그나마 공중급유기를 들여와 장시간·장거리 작전능력을 어느 정도 갖춘 것이 위안거리다.

 

일본 초계기의 위협비행이나 중국 군용기의 카디즈 무단진입은 단순한 일회성 무력시위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군이 구체적 대응전략을 세웠다는 말은 들리지 않는다. 대북 상황에만 몰입하던 관성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국방부나 합동참모본부에서 일본, 중국, 러시아 전문가는 찾기 힘들다. 사실상 없다시피 하다. 그동안 인재를 키우지 않은 탓이다.

 

주변국의 위협은 지금까지의 우리 안보 프레임을 근본적으로 다시 짜야 한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안보 패러다임이 바뀌는 과정에서 군사 전략이나 정책의 변화는 필수적이다. 우리 군은 한반도 주변의 바다와 하늘이 중국이나 일본의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일깨워줘야 하는 책임이 있다.

 

주변국의 살라미식 도발이라 하더라도 안보 상황은 한번 밀리면 계속해서 소용돌이에 말려들게 된다.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은 이에 대한 군의 대응이 무엇인지를 물어야 한다. 주변국 위협에 대응해 카디즈 전 공역에서의 정례 훈련이 가능한지도 보고받아야 한다. 필요하다면 국가 의지가 반영된 ‘톱다운’ 방식의 전략지침이라도 군에 내려야 한다. 군 스스로 관성을 깨기는 어려워 보인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Posted by 경향 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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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책 건너 평화로 가는 길, 도보다리 새소리는 여전했다

 

남북 정상이 한반도 미래를 놓고 대화를 나눴던 판문점 도보다리 위 원형 탁자와 벤치가 판문점선언 이후 처음으로 지난 18일 공개됐다. 탁자와 벤치는 그동안 유엔을 상징하는 파란색 포장으로 가려져 있다가 이날 공동경비구역(JSA) 경비대원들의 삼엄한 경계 속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에서 북한 초소까지는 40m에 불과하다. 판문점 _ 박성진 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판문점 회담장에서 중립국감독위원회 캠프로 이어지는 도보다리는 푸른빛 그대로였다. 지난달 27일 남북 정상이 군사분계선(MDL) 101번째 푯말 앞에 앉아 한반도 미래를 놓고 희망의 대화를 나눈 곳이다. 둥근 탁자와 야외 벤치는 재떨이만 치워졌을 뿐 두 정상의 대화 도중 간간이 들리던 새소리도 여전했다.

 

4·27 판문점선언 이후 기자로는 내외신을 통틀어 처음으로 지난 18일 이곳을 찾았다. 한국군 당국과 유엔사 협조를 얻어 지난 13일 동부~중부~서부 전선으로 이어지는 한반도 횡단 5박6일 취재를 시작했다. 율곡부대(육군 22사단)가 지키는 동해 지역 휴전선 철책에서 출발해 육군 1사단이 통제하는 서부전선 휴전선 철책에서 끝났다. 하루에도 민간인통제구역(민통선)을 대여섯 차례 들락날락하며 분단 현장을 맨눈으로 살피고 한반도의 미래 희망을 찾아보려 나선 길이었다. 판문점 도보다리는 휴전선 155마일(248㎞) 답사의 사실상 마지막 목적지였다. 남북 정상 간 만남 이후 남북한군이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최전방에는 ‘무슨 변화가 있을까’ ‘비무장지대(DMZ)는 어떤 미래유산으로 남아야 할까’ 하는 성급한 생각으로 발을 뗀 여정이었다.

 

지난 14일 산악지대 일반전초(GOP) 휴전선 철책선을 따라 건봉산 전술도로를 달렸다. GOP는 남방한계선 철책선에서 장병들이 24시간 적 침입에 대비한 경계근무를 하며 적의 움직임을 살피는 곳이다.

 

백두대간의 큰 줄기이자 향로봉 산맥 봉우리인 건봉산의 험한 길은 배우 송중기씨가 근무했다는 독도중대로 이어졌다. “준비는 강력하게, 응징은 철저하게”라는 구호가 쓰인 초소들을 지나다보니 44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근무했다는 건봉산대대 전방관측소(OP)에 도착했다. 건봉산 정상(911m)에 ‘노무현 벙커’ 기념비가 서 있는 이 OP에서 노 전 대통령은 1968년 3월부터 1971년 1월까지 상황병으로 근무했다. 밤새 뜬눈으로 전방 경계근무 중 발생한 소·중대 상황들을 파악한 후 상급부대와 대대장 등에게 보고하고 조치를 취하는 게 당시 군번 51053545였던 병사 노무현의 임무였다.

 

군 관계자는 그때만 해도 북한군이 한국군 초병 귀를 베어가는 일도 종종 발생했다고 전했다.

 

육군 12사단 향로봉중대원들이 떠오르는 태양을 등진 채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향로봉중대는 비무장지대(DMZ) 부대는 아니지만 육군에서 가장 높은 1293m 고지에 있어 폭설과 강풍이 잦기로 유명하다. 겨울철 체감온도는 영하 40도까지 내려가고 11월에 눈이 오기 시작해 5월 초까지 내린다. 육군 제공

 

 

확성기 철거되자 자연의 소리 돌아왔지만…북측엔, 통신 감청·전파 방해용 새 철탑들이 들어섰다
녹슨 탱크가 지키는 ‘노무현 벙커’를 지나
북 GP와 580m 떨어진 ‘최북단 관측소’에 오르니 해금강 말무리반도가 손에 닿을 듯
병사들이 직접 돌던 2000개 넘는 철책 순찰로는 과학화경계시스템이 도입되며 무인감시 가능해져

 

■ 노무현 벙커와 유엔사 관할 OP

 

노후화와 작전상 이유로 비어있는 노무현 벙커.

 

노무현 벙커는 비어 있었다. 대대 주지휘소가 2016년 7월19일 다른 곳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벙커 노후화가 심한 데다 작전적 이유에서였다고 사단 측은 설명했다. 노무현 벙커 앞은 녹슨 미제 셔먼 탱크가 지키고 있다. 셔먼 탱크가 6·25전쟁 때 900m가 넘는 이 험한 산을 어떻게 올라왔는지, 또 왜 이곳에 방치됐는지는 미스터리다.

 

노무현 벙커를 벗어나 다시 철책선을 따라 ‘금강산 전망대’로 불리는 717 OP로 향했다. 군의 최북단 관측소다. 고성 통일전망대보다 2㎞ 정도 북쪽에 있다.

 

717 OP에 도착하자 유엔사 군사정전위원회에서 나온 미군이 기다리고 있었다. 기자의 취재 목적 등을 묻기 위해서였다. 717 OP는 유엔사 관할구역이다. 전망대가 MDL을 중심으로 남측과 북측으로 각각 2㎞ 물러나 이어진 최초 DMZ 안쪽으로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DMZ를 관할하는 유엔사 허가가 있어야 출입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관광객들이 최전방 북한 땅굴을 관람하면서 사진을 찍지 못하는 것도 그곳이 유엔사 관할구역인 탓이다. 717 OP는 1983년까지 DMZ 안쪽 최전방 경계초소(GP)였다.

 

강원 건봉산 정상의 ‘노무현 벙커’ 앞에 있는 셔먼 탱크.

 

155마일 남방한계선 철책이 북쪽으로 500m 정도, 길게는 1㎞ 안팎까지 북상한 것은 북한이 1968년 북방한계선 철책을 남쪽으로 1.2~1.8㎞ 내린 것에 대한 대응책이었다. 717 OP 지역의 경우 북한이 1983년 북방한계선을 1.71㎞나 남쪽으로 내렸다. 그러다보니 한국군 GP와 북한군 GP 사이 거리는 580m에 불과했다. 이곳은 휴전선 155마일 전선에서 남북이 가장 가깝게 대치하는 현장이다.

 

717 OP에서는 동해선 철도와 도로가 지나가는 구서 통문이 훤히 보였다. 북한이 동부전선 최전방의 영웅고지로 부르는 351고지와 레이더기지가 있는 국지봉도 한눈에 들어왔다. 351고지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4년 7월14일 관망대에서 북한군 방사포 발사를 관람한 곳이다. 망원경을 통해서는 구선봉을 비롯해 감호와 금강산 끝자락인 해금강 말무리반도가 손에 닿을 듯했다. 관측장교인 이모 중위는 “삼일포 인근에는 집단농장이 있고, 말무리반도에는 북한군 고위층 휴양시설이 자리 잡고 있다”고 소개했다.

 

■ 다리가 GOP 철책

 

휴전선 일대에는 남방한계선 철책 역할을 하는 다리가 여러 곳 있다. 신필승교와 오작교가 대표적이다. 경기 연천군 남방한계선에 있는 신필승교는 필승교 옆 북쪽으로 새로 만든 다리로 길이가 300m에 달한다. 과거 배터거리로 불리던 옛 나루터 자리에 있다. 군 당국은 이곳을 지난 18일 언론에 최초 공개했다.

 

신필승교를 지키는 장병들의 경계 수준은 임진강 수위에 따라 달라진다고 했다. 이곳을 지키는 장병들은 지난 18일 수도권과 강원 등 중부 지역에 3일간 최대 190㎜가 넘는 폭우가 내리자 긴장한 표정으로 황토색으로 변한 임진강을 뚫어져라 지켜보고 있었다. 다리 위 초소는 레이더와 유속계까지 갖추고 있었다. 과거 이곳은 북한군이 불어난 임진강 물을 이용해 여러 차례 침투를 시도했던 곳이다. 또 수위가 높아지면 북한 쪽에서 일상용품은 물론 물에 빠진 시신까지 떠내려온다. 촘촘한 망으로 스크린이라 불리는 시설물을 신필승교 아래쪽에 설치한 것도 북쪽에서 떠내려오는 것들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수위가 높아지면 수문과 함께 스크린도 들어 올려야 한다. 이는 이곳을 지키는 장병들에게는 GOP 철책을 들어 올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만큼 경계가 힘들어지는 것이다.

북한강은 DMZ부터 남방한계선이 지나는 오작교를 거쳐 ‘평화의 댐’까지 흐르고 있었다. 오작교는 강원 화천과 양구 사이를 흐르는 북한강 위에 세워진 다리다. 남한 영토로서는 북한강 최북단으로 GOP 철책 역할을 하는 셈이다. 북한강 수계 최북단을 지키는 오작교는 북한강 수위 급변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일상적인 장마철 방류 외에 북한의 수위조절을 가장한 대량 방류나 유사시 펼칠 가능성이 있는 수공을 포착해 조기 경보체계를 구축하려는 목적에서다.

 

오작교 일대는 멸종위기 1급인 산양이 전국에서 가장 많은 곳이다. 초소 열영상감시장비(TOD)에 전국에 900여마리밖에 없다는 산양이 12~15마리 몰려다니다 한꺼번에 찍히기도 했다는 게 안내 장교의 설명이었다. 오작교 가는 길에도 너구리와 꿩, 까투리 등이 갑작스럽게 취재차량 앞으로 뛰어들어 당황하게 만들었다. 이곳은 2000개가 넘는 철책 순찰로가 있어 2016년 과학화경계시스템이 본격 도입되기 전에는 경계 병사들이 순찰을 위해 오르락내리락해야 했다.

 

■ 북한군 GP와 전자전

 

지난 14일 동해안 남측 통문 앞에 휴전선 최북단 기념비가 서 있다.

 

휴전선 155마일 취재를 하면서 군 관측소와 전망대 10여곳에서 북쪽을 바라봤다. 가장 큰 변화는 확성기 철거였다. 남북 모두 웬만한 OP는 서로가 대북·대남 확성기 방송으로 ‘소음 전쟁’을 벌이는 ‘전투장’이었다. 남북이 확성기를 철수하자 그 자리에는 자연의 소리와 바람의 소리가 다시 돌아왔음이 느껴졌다.

 

북한군의 지뢰 매설 작업과 관련한 동향도 식별되지 않았다. 북한군은 매년 5월 초부터 DMZ 내에서 수풀과 잡목이 우거지는 녹음을 이용해 지뢰 지대 보강과 추가적인 대인·대전차 지뢰 매설을 해왔다. 이는 MDL 일대에서 모든 적대 행위들을 중지하기로 한 남북 정상 간 판문점선언의 영향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남측을 위협하는 북 GP의 적대적인 총안구 개방도 관측되지 않았다. 북한군은 최근 GP 아래쪽이나 지하로 연결된 주변 은폐물에 숨긴 총안구를 환기 목적 등으로 개방할 뿐 전투준비를 위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155마일 전역에서 소리 없는 전쟁은 계속되고 있었다. 전자전이다. 북한군 OP 여러 곳에서 과거 왔을 때 없었던 철탑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한국군 통신을 감청하고 북쪽에서 남쪽으로 가는 전파를 방해하려는 목적에서 세운 시설물이다. 과거 남측보다 열세였던 전자전 지원장비(ES)를 대폭 보강한 것으로 보였다.

 

GP는 MDL 너머를 바라보면서 적이 넘어오는지 감시하고 관찰하는 시설이다. 망원경으로 살펴본 북한군 GP 모습과 분위기는 인민군 사단마다 제각각이었다. 산악지대인 동부전선의 북한군 GP는 DMZ 안쪽에 요새처럼 점점이 자리 잡고 있었다. 반면 평야지대가 많은 서부전선 쪽으로 갈수록 북한군 GP는 민경대대가 관할하는 휴전선 철책선과 거의 붙은 채 일정한 간격으로 줄줄이 있었다. 경기 연천군 열쇠 OP에서는 북한군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GP 후방에서 하얀 마대자루를 들고 농사짓는 모습이 관측됐다.

북한군 GP는 인민군 최고사령관기와 인공기를 게양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곳도 있었다. 한국군 GP는 유엔 협정을 준수하는 감시초소라는 상징으로 유엔 깃발을 상시 내걸고 있다.

 

중동부전선의 북한군 GP에서는 비가 내린 후 초소 정비 작업이 한창이었다. 북한군이 나와 방충망을 설치하고 있는 모습이 망원경에 고스란히 들어왔다.

 

북한의 휴전선 철책은 2000년대 초반까지는 북한군이나 주민 탈북을 방지하기 위한 고압 전기 철책이었다. 지금은 전력난으로 전기가 흐르지 않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북한군이 철책을 만지는 모습도 관측된다는 게 군 관계자의 말이다.

 

강원 화천군 칠성 OP에서는 금성천 줄기가 북한강 상류로 흘러들고 있었다. 금성천 자체가 MDL이다. 영화 &lt;고지전&gt;의 모티브가 된 425고지도 보였다. 전국 도로 가운데 유일하게 남과 북을 거쳐 다시 남쪽으로 이어진 후 7번 도로와 연결되는 4301번 도로는 ‘평화의 도로’로 불린다.

 

북한군은 DMZ 내에 박격포 진지 234개소, 고사포 진지 92개소, 대전차포 진지 28개소 등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GP와 OP는 282개소를 설치해놓고 있다. 이에 대응해 남측은 GP 및 OP 100여개소를 운용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판문점선언을 통해 DMZ를 완전히 비무장화함으로써 실질적인 평화지대로 만들어 나가자는 데 합의한 바 있다.

 

 

 

■ 스마트 철책의 적

 

이제는 휴전선에서 윤형 철조망이 뚫리지나 않았는지 Y자 막대기로 찔러보는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철조망을 흔들어 침입 흔적을 찾지도 않는다. 2016년부터 GOP 과학화경계시스템이 본격 도입되면서 24시간 주간-전반야-후반야 3교대로 이뤄지던 경계근무가 사라졌다. 과거 1개 소대가 맡은 구간은 1.5~3㎞. 소초 간 거리가 300m를 넘는 곳도 있었다. 지형이 험준한 곳에서는 GOP 부대 병사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수백개의 계단을 오르내려야 했다. 이제는 감시·감지·통제시스템으로 철책에 광그물을 씌우고, 감시카메라와 열영상감시장비 등으로 낮엔 1~2㎞, 야간엔 200~400m 경계가 가능하다. 광그물망에 침입 움직임이 감지되면 신호가 울리고 카메라가 촬영해 영상을 지휘 통제실과 소초로 보내는 방식이다. 소위 스마트 철책이다.

 

그러나 광그물망은 짐승을 따로 구분하지 못해 감지되면 경계음이 울리고 통제실이 파악해 5분 대기조를 보내야 한다. 안개나 바람에 영향을 받는 것도 감수해야 한다.

최전방 병사들에게는 너구리와 토끼가 가장 기피하는 동물이다. 광그물망을 갉아먹기 때문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철책 아래쪽에는 동물들이 싫어하는 성분을 담은 봉지나 통들을 달아놓고 있다. 철책을 넘으려는 고라니도 골칫거리다.

 

과거 GOP 부대에서 멧돼지에게 주던 잔반은 전문 처리회사가 수거하고 있었다. 멧돼지 스스로 자연환경에서 먹이를 찾도록 해야 한다는 환경단체 조언에 따른 것이라는 게 안내 장교의 설명이다. 멧돼지의 철책선 접근을 막기 위한 목적도 있다고 했다.

 

철책의 스마트화로 과자·음료수·라면·담배 등 100여가지 물품을 트럭에 싣고 다니는 이동식 PX인 ‘황금마차’도 몇 년 후면 일부만 남고 대부분 퇴역할 것으로 전망된다. 소초들을 마트 PX가 있는 중대 이상 단위로 통폐합하면서 황금마차의 효용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안보관광에서 평화관광으로…‘전쟁 통로’를 ‘남북 번영로’로

 

지난 14일 동부전선 717 OP에서 바라본 북쪽 동해안 쪽에 감호와 금강산 끝자락인 해금강 말무리반도가 손에 닿을 듯 펼쳐져 있다.

 

 

정상회담 후 판문점 견학 급증
내국인 2배·외국인 2.5배 늘어

DMZ 내 산림·초지 면적 95%
산불 나면 남북 공동대응 필요

철원 OP 앞 궁예도성 터 조사
남북 문화사업 첫 과제로 꼽혀

 

■ DMZ의 남북 교류

 

DMZ에서는 산림이 75%를 차지한다. 초지가 20%, 농지와 습지가 각각 3%, 1% 정도다. 동부전선은 장엄한 산세와 함께 수목들이 바다를 이루고, 서부전선으로 갈수록 초지가 넓게 펼쳐지고 관목은 거대한 파도처럼 출렁거렸다.

 

강원 동부전선 GOP 전술도로를 따라 이동하면서는 나무들이 불에 타 넘어지거나 탄 흔적을 여기저기서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GOP 앞부분을 불모지화해 철책 앞에서 가까스로 불길을 막은 곳도 있었다. GOP 철책 앞 시야 확보를 위해 전방 100~200m 나무와 수풀을 제거해 만들어진 불모지는 방화지대를 형성해 산불이 철책을 넘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환경단체는 ‘불모지 작전’을 생태계를 교란하는 하나의 요인으로 지목한다.

 

이달 초 발생한 산불로 강원 동부전선 북쪽에서 축구장 1000개 면적이 탔다. 산불은 지난 2일 발생해 11일 만에 꺼졌다. 이렇듯 산불은 남북의 경계인 MDL은 물론 DMZ까지 무시하고 넘나든다. 산불은 지뢰와 함께 DMZ를 위협하는 남북 공동의 적이다. 산불에 대한 남북의 공동 대응이 필요한 이유다.

 

최전방 산불은 북한 지역에서 발화돼 남쪽으로까지 확산되는 경우가 많다. 북한군이 농사를 짓기 위해 야초와 잡목을 태운 불씨가 북서풍에 날려 DMZ를 넘는 사례도 있었다. 남과 북을 연결하는 동해안 군 통신선도 산불에 타버려 끊겨 있는 상태다. 정부는 남북 고위급회담이 열리면 남북 산불 및 홍수 방지 대책 등도 논의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산림청 헬기가 DMZ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다면 산불 진압을 훨씬 수월하게 할 수 있다.

 

철원 평화 OP에서는 태봉국 도성도 모형을 볼 수 있었다. 평화전망대 앞이 바로 궁예도성 터다. 1100여년 전 철원 벌판에 궁예가 세운 ‘태봉국 도성’ 터는 철원 지역 남북을 합친 DMZ 4㎞ 안에 오른쪽으로 약간 기울어진 직사각형 형태로 꽉 낀 듯 들어가 있다. MDL은 궁예도성을 가로로 나누고, 6·25전쟁 이전까지 서울과 원산을 잇던 경원선 철도는 궁예도성 터를 세로로 지나간다. 본래 월정사역도 궁예도성 터 안에 있었다고 한다. 현재 궁예도성 흔적이 약간은 있다고 하지만, 전망대에서 바라봤을 때는 수풀만 보였다. 궁예도성 조사 연구는 남북 공동 문화사업의 첫번째 과제로 꼽히고 있다.

 

■ 남침·북진로는 번영로

 

도보다리 옆 101번째 MDL 푯말 판문점 도보다리 옆에 녹슬어 글자가 없어진 군사분계선(MDL) 101번째 푯말이 서 있다.

 

한반도를 남북으로 갈라놓고 있는 MDL은 철조망이 아니다. 300~500m 간격으로 박혀 있는 푯말 1292개다. 서쪽 끝인 경기 파주시 장단면 정도리 임진강변(1번)부터 동쪽 끝인 강원 고성군 간성읍 동호리 동해안 해변(1292번)까지 이어지는 총 248㎞ 구간에 똑같은 모양의 푯말이 세워졌다. 어렵게 찾은 MDL 푯말은 모두 시멘트 기둥에 녹슨 철판이 붙어 있는 형태로 남아 있었다. ‘군사분계선’이 남쪽 방향 앞면에는 한글과 영어로, 북쪽 방향 뒷면에는 한글과 한자(중국어)로 철판에 적혀 있어야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글씨를 알아볼 만한 노란 철판은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의 90번 푯말과 도보다리 끝의 101번째 푯말에서도 글씨는 확인할 수 없었다.

 

MDL을 관통하는 도로는 6·25 당시 남침로였다. 현재는 끊겼지만 육상에서 금강산까지 가장 가깝게 연결하고 있는 31번 도로가 대표적이다. 가칠봉 OP에서 금강산까지는 31번 국도로 달리면 37㎞ 거리다.

 

15사단 승리 OP에서 바라본 남쪽 광삼역과 내금강은 과거 전기철도로 연결됐던 곳이다. 철원 지역의 멸공 OP에서는 남측 가늘골 통문을 지나 북상하면 북측 서방산 통문으로 나갈 수 있다. 이 길들은 남침로이기도 했지만 전쟁이 일어나면 국군의 북진로다. 그러나 남북은 이제 끊긴 도로를 연결해 남북 경제교류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전쟁 통로’를 ‘남북 번영로’로 탈바꿈시키려는 것이다.

 

금강산 관광객들이 이용하던 동해선 육로는 7번 국도의 연장선으로 DMZ를 관통해 금강산 삼일포로 이어진다. 하지만 2008년 7월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으로 중단된 금강산 관광이 올해로 중단 10년째다. 고성군은 금강산 관광 중단 피해액이 33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경기 파주의 도라 OP에는 단체관광객을 실은 관광버스가 줄을 이었다. 북쪽으로 가는 경의선 도로와 전력 전신탑, 문산과 개성을 잇는 철도가 한눈에 들어왔다. 안내 장교는 “남북정상회담 이후 관광객이 2배 이상 늘었다”며 “외국인 관광객은 2.5배 증가했다”고 전했다. OP에서 남과 북이 틀어대던 확성기 소리로 한반도 긴장을 느꼈던 ‘안보관광’은 이제 ‘평화관광’으로 바뀌고 있었다. 남북의 대표적 접경지역인 강원도에서는 평화특별자치도 지정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25사단 상승 OP에는 프랑스 조형작가 장 미셸 후비오가 2012년 설치한 ‘평화의 손’이 휴전선 북쪽을 향해 우뚝 서 있었다. 손가락 두 개로 철책선을 집어 들어올리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남북이 서로 교통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 부시 벙커

 

마지막 일정으로 DMZ에 위치한 판문점을 찾았다. 판문점을 들어가려면 캠프 보니파스와 과거 ‘인계철선’으로 불리던 콜리어 GP와 오울렛 GP를 지나야 했다. 캠프 보니파스는 1976년 북한군에게 ‘도끼 만행’ 사건으로 살해당한 보니파스 대위 이름에서 따왔다. 이전까지 명칭은 캠프 키티호크였다.

 

콜리어 GP와 오울렛 GP가 인계철선이었던 것은 북한군이 침공하면서 이곳 2개 GP를 공격하면 미군이 전쟁에 자동개입한다는 의미였다. 콜리어(미 육군 40사단)와 오울렛(미 육군 9사단)은 6·25 때 훈장을 받은 미군 병사들 이름에서 비롯됐다. 콜리오 GP는 미 2사단에서 운영하다 한국군 1사단에 넘겼다. OP를 겸하고 있는 오울렛 GP는 한국군이 공동경비구역(JSA) 경비 임무를 맡게 되면서 한국군 경비대대 책임지역이 됐다.

 

오울렛 OP는 MDL에서 가장 가까운 GP 겸 OP로, MDL과 불과 25m 거리에 있다. 부시 전 대통령이 2002년 2월 오울렛 OP를 방문해 북쪽을 망원경으로 관찰했다. 이후 그가 북쪽을 살폈던 벙커는 미군들에게 ‘부시 벙커’로 불리고 있다. 2012년 3월에는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이 오울렛 OP를 다녀갔다. 이곳에서는 남한 대성동 마을과 북한 기장 마을이 동시에 보였다. 오울렛 OP를 나서 판문점 자유의집을 통과한 후 도보다리로 다가갔다. 유엔사는 ‘풋 브리지(Foot Bridge)’라고 부르지만, 중감위에서는 다리가 푸른색이라고 해서 ‘블루 브리지’로 부르는 곳이다. 중감위 외국군 장교들은 습지 위에 만들어진 도보다리를 통해 하루 두 차례씩 판문점 사이를 오가고 있다.

 

지난 4월27일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면서 원래 약 70m 일자형이던 도보다리는 T자형으로 바뀌었다. 두 정상이 산책을 한 후 남북 분단의 상징이었던 MDL 101번째 푯말 앞에 배석자 없이 앉아 함께 담소를 나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기자는 두 정상이 ‘평화, 새로운 시작’의 대화를 나눴던 벤치에 조심스럽게 앉아 보았다. 두 정상이 나눴던 ‘평화, 새로운 시작’의 대화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느끼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JSA 경비대원들의 삼엄한 경호 속에 북쪽의 감시카메라까지 의식하다보니 두 정상 대화 사이에 간간이 들렸던 새소리마저 부담스러웠다. 앞서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북한 초소의 감시카메라 앵글이 함께 따라서 움직이는 것을 느끼며 걸어온 터였다. 도보다리에서 북한 초소까지는 40m 거리가 채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53년 정전협정의 산물인, 낡아빠진 분계선 푯말을 뽑아내는 날을 위해 두 정상이 미래를 기약했던 역사적 현장에서 느끼는 감동은 표현하기가 어려울 만큼 컸다.

 

<글 ·사진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Posted by 경향 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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