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군인체육대회는 다른 민간인 스포츠 대회에서는 볼 수 없는 5개의 군사 종목이 있다. 철인 5종과 비슷한 개념의 육군 5종, 해군 5종, 공군 5종, 고공강하, 독도법(오리엔티어링) 등이 그것이다.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을 보느라 대한민국 국민들이 밤잠을 설치고 있다. 금메달을 딴 선수의 기쁨이야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싱그러운 표정으로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드는 그들의 모습만 봐도 국민들은 즐겁다.

 그러나 나라를 잃은 국가의 스포츠 금메달리스트는 상황이 달랐다. 세월을 거슬러 일제 치하였던 1936년 8월 9일 베를린 올림픽으로 가보자. 마라토너 손기정은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따고도 일본 국가가 연주되자 시상식에서 고개를 떨구어야 했다.

 당사자의 심정이 그랬으니 국민들의 감정은 오죽했을까. 그런 정서를 담아 당시 동아일보는 시상식에 선 손기정의 가슴에 있던 일장기를 지워 신문을 만들었다. 그 유명한 ‘일장기 말소사건’이었다.

 

 이 사건이 일어난 것은 손기정이 금메달을 목에 건 지 16일 뒤였다. 그런데 이 일장기 말소 사실을 제일 먼저 알아챈 곳은 일본군이었다. 일제시대 당시 서울 용산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 제20사단 사령부는 당일 오후 4시쯤 배달된 동아일보에 실린 손기정의 사진에서 일장기가 지워져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은 조선총독부에 이 사실을 즉각 통보했다.

 세계군인체육대회 4년마다 열려

 이를 보고받은 조선총독 미나미 지로는 책상을 치면서 매우 격노했다. 하지만 신문은 이미 태반이 발송과 배달이 끝난 상태였다. 조선총독부는 그 분풀이를 신문사에 퍼부어 관련자 여러 명이 큰 고초를 겪어야 했다. 일장기 말소사건도 어찌 보면 일본 군부가 스포츠 보도에 개입한 사례였다.

 권투선수 홍수환은 4전5기의 주인공이다. 홍수환은 1974년 7월 15일 남아공에서 벌어진 WBA 밴텀급 타이틀 매치에서 아놀드 테일러를 꺾고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그때 했던 유명한 말이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였다. 그리고 나서 홍수환은 “첫째도 군인정신, 둘째도 군인정신 덕분입니다”라고 승리의 소감을 밝혔다.
 

                                                      <홍수환 전 권투선수>


 당시 홍수환은 수도방위사령부의 전신인 국군수도경비사령부 제5헌병대대 본부중대 소속 현역 군인으로, 계급은 일병이었다. 홍수환의 군인정신 강조는 현역 군인 신분이기 때문에 나온 소감이었다.

 홍수환은 중년의 나이가 되고 나서도 군부대 강연에 자주 나서고 있다. 그때마다 “쓰러지더라도 포기하지 마라. 누구에게나 한 방이 있다.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라”며 자신의 현역시절 때의 경험을 얘기하면서 군인정신을 강조하는 인기 강사다.

 군인들도 올림픽을 치른다. 매 4년마다 세계군인체육회(CISM)가 개최하는 세계군인체육대회가 그것이다. 국제군인스포츠연맹으로도 불리는 세계군인체육회는 스포츠를 통해 세계 군인들의 친목을 도모하고 세계 평화를 이끌기 위한 목적으로 1948년 설립됐다. 

 무력을 사용하는 군이 스포츠를 통해 세계 평화를 이룬다는 대목이 약간은 어색하기도 하지만 세계군인체육회는 세계 133개국이 회원국이고, 한국은 1957년 가입했다.

 세계군인체육회의 조직도 국제스포츠위원회(IOC)처럼 스포츠, 연대(連帶), 재정, 홍보, 마케팅, 규율, 의료 등의 다양한 분과위원회를 거느리고 있다.
 

세계군인체육대회는 1995년 9월 이탈리아 로마에서 처음으로 열렸다. 

 제2회 대회는 1999년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제3회 대회는 2003년 이탈리아 카타니아, 제4회 대회는 2007년 인도 하이데라바드, 제5회 대회는 2011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렸다.

 2015년 경북 문경대회 엠블럼 논란

 한국군은 1999년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서 열린 제2회 대회에 참가해 5위를 했던 것이 그동안 거뒀던 가장 좋은 성적이다. 당시 한국 팀은 크로아티아 현지로 출국하기 한 달 전부터 새벽 3시에 잠자리에 들고 낮 12시에 일어나는 시차적응 훈련을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내년에는 세계군인체육대회가 10월 2일부터 11일까지 경북 문경에서 열린다. 주최측인 한국 국방부는 세계 100여개국에서 8700여명의 선수단이 참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세계에서 문경으로 모여든 군인선수들은 24개 종목에서 경기를 펼치게 된다. 세계군인체육대회는 다른 민간인 스포츠 대회에서는 볼 수 없는 5개의 군사 종목이 있다. 철인 5종과 비슷한 개념의 육군 5종, 해군 5종, 공군 5종, 고공강하, 독도법(오리엔티어링) 등이 그것이다.

 육군 5종은 참가 선수가 수류탄 투척과 수영, 장애물, 사격, 야지 횡단 종목들을 차례로 해내야 한다. 해군 5종은 구명수영과 실용수영, 장애물, 수륙횡단, 함상기술 등으로 이뤄졌고, 공군 5종은 사격, 수영, 펜싱, 구기, 탈출 등으로 구성됐다.

 부연설명을 하자면 ‘구기’는 농구의 자유투로 정확도를 측정하는 종목이고, ‘탈출’은 독도법(오리엔티어링)을 활용해 장애물을 돌파하는 스포츠다. 여기서 독도법(오리엔티어링)은 말 그대로 지도를 보는 방법으로 지도가 표시하고 있는 내용을 해독하는 법을 말한다. 육군 5종 경기의 한 부분인 수류탄 던지기는 한때 우리나라 중·고교생들의 체력측정에 사용됐던 종목이기도 하다.

         <경북 문경 시민들이 2011년 3월 2일 문경시청에서 세계군인체육대회 실사단의 방문을 환영하고 있다.>

 ‘2015 경북 문경 세계군인체육대회’의 상징물은 태양 안에 산다는 세 발 달린 상상의 검은 까마귀인 ‘삼족오’(三足烏)다. 이 삼족오를 놓고 찬반 의견이 만만치 않다. 

 삼족오는 고구려가 국기로 사용한 우리 고유 상징인 만큼 문경대회 상징물로 손색이 없다는 입장과, 삼족오는 일왕을 숭배하는 일본 내 우익단체와 일본축구협회가 사용하는 왜색 상징물이라는 비판 의견이 맞서고 있다.

 학계 일부에서는 삼족오가 고대 동북아시아의 태양숭배사상과 샤머니즘의 산물로 중구과 일본, 이집트 등의 고대신화에도 등장해 고구려만의 전유물이라고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실제로 삼족오는 일본 축구대표팀의 엠블럼으로 외국에서는 일본을 연상하는 상징물로 인식되고 있다. 일본 우익단체의 상징 깃발에도 삼족오가 그려져 있다.

그러나 옛 고구려가 국기로 쓴 삼족오를 일본 우익단체와 축구협회가 사용하는 것은 그간 우리나라가 무관심했기 때문이라며 오히려 이번 대회를 계기로 삼족오를 우리 것으로 널리 알려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Posted by 경향 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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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신수와 손기정>

이번에는 군대와 금메달의 함수관계를 한번 살펴볼까 한다.
 

추신수 선수가 광저우 아시안게임 야구종목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병역 특례혜택까지 받게 됐다고 한다.
언론은 당장 군 입대 문제를 해결한 메이저리거로서 그의 연봉이 500만달러 수준으로 껑충 뛸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추신수 선수로서는 금메달 하나로 그야말로 명예도 얻고 실리도 챙긴 것이다.

하지만 군대와 관련해서는 금메달도 금메달 나름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때는 1936년 8월 9일. 일제 치하에서 양정고보 5년생 손기정은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따고도 일본 국가가 연주되자 시상식에서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그로부터 16일 뒤 동아일보의 일장기 말소사건이 일어난다.
(일장기 말소사건에 등장하는 사진은 손기정의 우승직후 전송된 사진이 아니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이 발간한 ‘이야기 한국체육사, 베를린의 월계관/고두현 지음’에 따르면 이 사건은 1936년 8월 25일 동아일보 체육기자 이길용이 시상대의 선수 표정이 매우 생생한 오사카 아사히(大版朝日) 신문의 격주간 화보잡지 ‘아사히 그라프’의 사진을 오려낸 후 손기정의 가슴부분 일장기를 지워버리면서 발단이 됐다. 당시 이길용의 의뢰를 받고 기술적으로 일장기를 지운 주인공은 동아일보 조사부 소속인 전속화가 이상범이었다. 그는 ‘청전’(靑田)으로 잘 알려진 그 유명한 동양화가다)

그런데 이 일장기 말소 사실을 제일 먼저 알아챈 곳은 일본군이었다.(예나 지금이나, 나라를 불문하고 군은 국기와 같은 '상징'에 매우 민감하다)
 
서울 용산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 제20사단 사령부는 오후 4시쯤 배달된 동아일보에 실린 손기정의 사진에서 일장기가 지워져 있음을 발견하고 조선총독부에 즉각 통보했다. 조선총독 미나미(南次郞)는 책상을 치며 격노했지만 신문은 이미 태반이 발송과 배달이 끝난 상태였다.

(당시 월간여성지 ‘신가정"(新家庭)은 일장기가 보이는 상체가 아닌 손기정의 다리 부분만을 사진으로 싣고 ‘이것이 베를린 마라톤 우승자, 위대한 우리들의 아들 손기정의 다리’라는 사진설명을 달았다고 한다)


<추신수는 야구 금메달을 따고 태극기를 흔들었지만,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은 월계수로 가슴의 일장기를 가렸다>

 

손기정은 나라를 잃은 탓에 올림픽 금메달을 따고도 회환의 눈물을 흘려야 했고, 그의 가슴에서 일장기를 지운 신문은 일본 군부의 핍박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추신수는 금메달을 목에 걸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면서 메이저리거로서의 꿈을 더욱 활짝 피게 됐고, 군대에서 2년여 세월을 보내지 않게 됐다. 한마디로 ‘금메달과 군대’의 관계가 완전히 다른 의미로 적용된 셈이다. (게다가 요즘은 올림픽과 같은 국제대회 출전을 위해 국적을 바꾸는 선수들도 심심찮게 있다)

그런데 군대와 스포츠의 이런 관계도 있었다. 

“(세계 챔피언에 오르게 된 것은) 첫째도 군인정신, 둘째도 군인정신 덕분입니다.”
 
이는 1974년 7월 15일 남아공화국에서 벌어진 WBA 밴텀급 타이틀 매치에서 아놀드 테일러를 꺾고 세계 챔프 차리에 오른 뒤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라고 했던 권투선수 홍수환이 기자들에게 승리의 소감으로 한 말이다.

당시 홍수환은 국군수도경비사령부(수도방위사령부의 전신) 제5헌병대대 본부중대 소속 일병이었다.
물론 군인정신의 강조는 현역 군인 신분이기 때문에 나온 소감이었겠지만 어찌 됐든 군대의 자긍심을 높여주는 발언이었다.
(하긴 1980년대 초반에는 세계 챔피언에 오른 권투선수가 전두환 대통령 각하께 우승의 영광을 돌리고, OOOOOO 사장님께 감사한다는 우승소감이 유행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홍수환 선수는 중장년의 나이가 되고 나서도 군부대 강연에 자주 나섰고, 자신의 현역시절 때와 같은 군인정신을 강조했다)



<기자회견하는 홍수환 선수. 사진/국방일보>
                            
 
그동안 상무부대 소속 현역군인 신분으로 국제대회에서 군인정신을 발휘해 국가의 명예를 높인 선수들이 있는가 하면, 국제대회 금메달로 국가의 명예를 높였다는 이유로 병역혜택을 받은 선수도 있다.
이쯤되면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약간은 헷갈렸는데 병역법이 바뀌어 형평성 원칙에 의해 현역 군인이라도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되면 보충역 편입이 가능해졌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세월 따라 금메달과 군대의 함수관계는 사회 환경에 따라 변화해 온 것 같다. 결론적으로 군인정신 때문이든, 애국심 때문이든, 고액 연봉 때문이든, 병역혜택 때문이든 금메달은 따고 볼 일이다. 거기에는 군인정신을 강조했던 홍수환씨가 과거에 썼던 책 ‘누구에게나 한방은 있다’의 내용도 보탬이 되는 것 같다.

“쓰러지더라도 한방이 당신에게 있다.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라.”

Posted by 경향 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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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서실 2010.11.23 09: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모든것을 글감으로 만드는 감각과 풍부한 방증자료 그리고 느낌이 남는 마무리까지, 박부장님의 글이 오래 사랑받을수 있는 이유가 아닐까 싶네요. 한권의 책으로 엮일때까지 열심히 열씨미....

    • 장강 2010.11.23 10: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뉘신지는 모르겠으나 격려를 채찍으로 알고 일로매진하겠나이다~.

  2. 나리킴 2010.11.23 11: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손기정 사진 왠지 가슴이 찡~ 하네요.ㅋㅋ 그리고 월간여성지의 저지할 수 없는 시위도 참 멋있구요.
    그런데 대체 선배님의 쏘스는 무엇인가요? 완전 재밌어요~ 그리고 정말 동감하는 말은, 금메달은 따고 볼일이에요.ㅋㅋㅋ 저에게도 한방은 있겠죠~!

    • 장강 2010.11.23 15:22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럼요! 참 재미있는 조크 하나 소개해줄까요. 국방부 모 고위 간부 왈, "군인정신이란 제정신이 아닌 것이다"라고 한마디 농담을 날리네요. 그 이유인즉 제정신이면 포탄과 총알이 쏟아지는 속으로 '돌격 앞으로' 할 수가 있냐는거죠. 그렇다면 홍수환 선수가 세계 챔프가 된 것은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싸웠기 때문이 되나요.ㅋㅋㅋ

  3. 이성준 2010.11.23 17: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중에 올림픽이나 월드베이스볼 클래식할때 몸 컨디션이 안 좋다고 안나오는 경우가 생기면 거시기한데.
    지난번에 이승*선수도 일본 성적이 부진하자 안나왔고 박찬*선수도 미국성적이 안좋아 안나왔잖습니까.
    말로는 **하겠다 하지만 프로들의 속성상 ........상황이닥쳐봐야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지 않기를 기대하며.

    • 장강 2010.11.23 18:50  댓글주소  수정/삭제

      글쎄 말입니다. 근데 북한 애들은 아시안게임중에도 이 XX를 하니 참.

  4. 나리킴 2010.11.24 16: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원래 천재는 제정신이 아닌겁니다! 천재가 되기 위해선, 최고가 되기 위해선 미쳐야죠!

  5. 페르소냐 2010.12.06 13: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리영희 선생님까지 가셔버렸네요. 이제 어디서?, 누구에게?, 가슴이 먹먹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군병원에서 사병으로 군복무하던 시절 정훈장교(?)의 말도 안되는 자본론 비판 강연을 듣고 너무 크게 코웃음을 치다가 본부대장에게 걸려서 혼나는데, 본부대장이 군인의 길과 군인 정신이 뭐냐고 묻는겁니다.

    그래서 대답했죠 " 군인정신은 맨정신이 아니고, 군인의 길은 갈길이 아니다!" 경과는......
    좋은 글 잘보고 있습니다. 건필하십시요.

    • 장강 2010.12.06 15: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대단한 배짱이셨네요. 군이라는 통제사회에서 그런 말 하기는 정말 쉽지 않은데 말이죠. 좋은 글로 보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