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6일 국군기무사령부가 작성한 ‘촛불계엄’(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 관련 문건을 즉각 제출할 것을 국방부에 지시하면서 사건 파장이 커지고 있다. 문 대통령이 지시한 관련 문건에는 기무사 ‘촛불계엄 문건’뿐 아니라 국방부·기무사와 육군본부·수도방위사령부·특전사 등 사이에 오고 간 모든 문서와 보고까지 포함됐다.

특전사 등 관련 부대가 국방부나 기무사와 계엄과 관련해 교신한 흔적이나, 계엄령과 연계해 출동 준비를 했던 사실이 확인될 경우 ‘기무사 문건’ 파장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또 기무사 개혁 현안을 군을 담당하는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아닌 민정수석실이 주도적으로 챙겨왔던 사실도 새로 드러났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기무사 개혁과 관련해 현재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국방부 장관 사이에 이견이 없는 상태”라고 강조했다.

 

이석구 기무사령관, 송영무 국방장관, 조국 민정수석(왼쪽부터)

 

■ ‘왝더독’ 기무사 개혁

 

송영무 장관의 ‘국방개혁 2.0’
기무사 장군 9명→2명 감축
장성 수 줄이기 ‘시범케이스’

 

지난 5일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과 군인권센터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 당시 기무사가 계엄령을 검토한 문건을 공개하면서 기무사 개혁 과제는 사실상 실종됐다. 당초 송영무 국방장관이 계획했던 기무사 개혁안은 특별수사단의 송 장관에 대한 조사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등 계엄령 문건 파문에 묻혀 뒷전으로 밀려난 모양새다. 기무사 개혁이라는 ‘몸통’ 자체가 흔들리는 왝더독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국방부는 당초 국방개혁 2.0의 과제로 2020년까지 군 장성 수를 현재 430여명 중 75명을 줄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면서 국방부 직할부대인 기무사 장성 숫자를 9명에서 2명으로 감축하는 안을 놓고 청와대와 의견 조율을 시도했다.

 

송 장관은 군내 권력기관처럼 돼 있는 기무사의 장군 수 줄이기를 군 장성 숫자 축소의 시범 케이스로 삼으려 한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의 75명 장군 감축계획은 기무사 축소개편과 맞물린 사안이었다.

 

이런 배경에서 송 장관은 기무사의 조직적 반발을 우려해 기무사 개혁안을 후순위로 미루는 듯하면서 단호하게 하겠다는 복안이었다. 국방부 안이 확정될 경우 기무사령관은 소장, 참모장은 준장으로 계급이 한 단계씩 낮아지게 된다. 마찬가지로 육·해·공군 기무부대장과 장성급 기무사 간부들은 계급이 준장에서 대령으로 내려가게 된다.

 

그러나 기무사는 이런 움직임을 일찌감치 간파하고 문재인 대선후보 지지모임을 했던 예비역 등을 앞세워 강력 저지에 나섰던 것으로 알려졌다. 기무사 전·현직 간부 3명 등 군 출신이 12명이나 포함된 기무사 개혁위원회가 지난 5월 출범했다. 위원회는 기무사의 정치개입과 민간인 사찰 등 과거의 잘못된 부분을 제도적으로 막는 게 중요하다는 쪽에 무게를 두면서 사실상 송 장관의 개혁안과는 거리를 뒀다.

 

■ 민정수석실과 기무사

 

민정수석실이 기무개혁 주도
청 “현재 국방부와 이견 없어”

 

기무사 개혁의 청와대 주무부서는 국가안보실이지만, 실제로는 조국 수석이 이끄는 민정수석실이 이를 주도한 것으로 보인다. 민정수석실은 기무사 계엄 문건이 불거진 이후에도 청와대 대응을 주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문 대통령의 계엄 문건과 관련한 두 차례 지시는 모두 민정수석실이 건의한 것”이라며 “조국 수석은 기무사의 계엄령 문건을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기무사 개혁에 누구보다 적극적”이라고 말했다. 육군과 기무사 출신을 배제한 특별수사단도 민정수석실이 문 대통령에게 건의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방부 “지난 4월30일 회의서
임 실장·조 수석에 문건 언급”
청은 “주의 기울일 정도 아냐”

 

국방부는 지난 4월 말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조국 수석 등 청와대 참모진과 기무사 개혁방안을 얘기하는 과정에서 문건의 존재 등을 언급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가안보실에는 개혁방안 등 문건만 보고했다고 설명했다.  

       
국가안보실에는 기무사 개혁방안 문건을 보고만 하고, 실제 난상토론은 민정수석 등과 했다는 것이다.

 

민정수석실에는 군 장교들에 대한 인사검증 등을 이유로 기무사 중령이 근무하고 있다. 그러나 인사검증이 이유라면 인사 전문장교가 파견돼야 마땅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만약 민정수석실이 군 동향 파악을 이유로 기무사 장교를 근무시키고 있다면 전 정권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군 안팎에서는 해·공군 군검사들로 구성돼 이날부터 공식 수사에 들어간 특별수사단이 기무사의 계엄 검토 문건과 관련, 민간인 신분인 송 장관을 참고인으로 조사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특별수사단은 대통령 지시에 의해 만들어진 만큼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수사 상황을 보고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 경우 군 특수단이 국방장관을 건너뛰고 문건 보고의 책임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청와대로 수사 상황을 직보하는 게 맞느냐는 반론이 나온다. 최현수 국방부 대변인은 “특별수사단의 보고체계에 대해서는 마땅한 정보가 없다”고 밝혔다.

 

국방부와 청와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기무사 계엄 문건 보고 여부와 시점을 놓고 여전히 진실게임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해당 문건은 작성된 후 1년 동안 문서철 속에 있다가 지난 3월 기무사 내부 보고를 통해 이석구 기무사령관이 알게 됐다. 3월16일 이 사령관은 송 장관에게 문건의 존재를 보고했다.

 

송 장관이 계엄 문건 공개 등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지 못한 데는 당시 청와대와 정부 내각이 4·27 남북정상회담 준비에 여념이 없었고, 이후에는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어 선거에 영향을 끼칠 것이란 정무적 판단을 했기 때문이라고 국방부는 주장했다.

 

■ 회색지대와 진실게임

 

‘청와대에 보고’ 언론 보도에
이석구 사령관은 강력 부인

 

앞서 청와대는 조국 수석이 해당 문건의 존재를 언론보도를 보고 알았다고 말해 논란을 가중시켰다. 그러나 이날 청와대와 국방부는 기무사 개혁방안을 논의하는 과정에 문건 관련 사항도 있었으나 토론 주제인 기무사 개혁에 집중하느라 주의를 기울일 정도는 아니었다는 결이 다른 해명을 내놓았다.

 

청와대와 국방부에 따르면, 지난 4월30일 임종석 실장, 조국 수석 등이 참여하는 기무사 개혁과 관련한 회의가 있었다. 이날 회의 석상에서 계엄령 문건과 관련된 질의나 토의는 없었다. 다만 국방부는 기무사의 정치개입 사례 중 하나로 ‘촛불계엄’ 검토 문건의 문제점을 언급해 청와대에 설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청와대는 참모진이 문건을 받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방장관이 생각하는 만큼 그 문제를 설명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부분에서 소위 두부 자르듯 할 수 없는 ‘회색지대’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기무사령관이 ‘촛불계엄’ 문건을 청와대에 보고했는지도 논란거리다. 당초 군에서는 이 사령관이 3월16일 오전 송 장관에게 문건을 언급하면서 “청와대 민정에도 보고하겠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기무사는 관련 보도가 나가자 지난 13일 “기무사가 작성한 계엄령 문건은 장관 외에는 보고한 사실이 없다”며 “청와대에 보고하지 않았고 민정수석실에 보고하겠다는 발언을 한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다. 이 부분도 특수단의 수사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사드 보고 누락 사건 떠올라”
군 안팎선 ‘꼬리자르기’ 우려

 

군 안팎에선 벌써부터 “이번 수사도 전 국방장관과 전 기무사령관 등이 꼬리자르기를 한다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고 누락 사건 때처럼 유야무야 처리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군 고위 관계자는 “기무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환골탈태해 방첩·보안기관으로 거듭나겠다고 선언했지만 나중에 보면 조직을 더 탄탄하게 키우며 군내 권력기관으로 살아남았음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기무사가 권력기관으로 행동하지 않는 게 기무개혁인데 청와대가 여전히 기무사를 대통령의 군 통치에 필요한 기관으로 인식해버리면 거기서 기무개혁은 끝나버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Posted by 경향 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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