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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10.28 서울 관광청이 시급한 이유

얼마 전 문학기행 ‘횡보와 함께 걷는 하루’에 참가했다. 경향신문과 한국작가회의 한국문학유산사업추진단이 공동 주최한 ‘2013 염상섭 문학제’의 마지막 행사였다. 원로 문학평론가 임헌영씨, 아동문학가 김이구씨 등을 비롯해 30여명의 문인·시민·학생들을 경복궁역 6번 출구에서 만나 잠깐 걷다보니 어느새 염상섭의 생가터였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그는 <표본실의 청개구리> <삼대>의 작가다.

 

갑작스럽게 1950년대 신사 차림의 남자가 나타났다. 갈색 양복에 중절모와 뿔테 안경을 쓴 사람이었다. 생전의 염상섭으로 분장한 배우 이대연씨였다. 그는 천연덕스럽게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냈다. “지금 여러분이 서 계신 자리가 어딘지 아세요? 체부동 106의 1번지입니다. 제가 태어난 곳이죠. 예전에는 이곳 체부동·필운동·내자동·적선동 일대를 통틀어 필운방이라 불렀습니다.”


일행을 따라 덤으로 ‘목이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로 시작하는 시 ‘사슴’으로 유명한 노천명 시인이 서울생활을 했던 한옥집도 가봤다. 정확하게 말하면 노천명의 둘째언니가 변호사인 남편과 살던 집인 누하동 225-1번지다. 독신이었던 노천명은 언니 집에서 서울생활을 했다. 살짝 눈을 감고 “꼭 다문 입은 괴로움을 내뿜기보다는 혼자 삼켜 버리는 서글픈 버릇이 있다”고 고백했던 시인의 모습을 떠올리려는 순간 마침 그 집에서 한 아녀자가 문을 열고 나왔다. 그는 우리 일행을 보고 순간 당황하더니 총총 시내 쪽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엽상섭 문학기행 (경향DB)

 

 

이날 문학기행에서 옛 문인들의 흔적을 100% 확인할 수는 없었다. 사실 염상섭의 생가터도, 노천명이 살던 집도 일제강점기 이후 번지체계가 많이 바뀐 데다 세월이 꽤 흘러 정확하게 옛날 그 자리인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골목길에 있는 장소들이어서 옛 지적도를 바탕으로 추론이 가능한 것이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이 일대에 재개발로 아파트 단지라도 들어섰다면 과거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염상섭과 노천명이 살았던 서촌 일대는 이외에도 시인 이상 등 다른 문인들의 흔적도 남아 있는 곳이다.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시대 백사 이항복이 뛰어놀던 집터도 이곳에 있다. 사실 서울은 정도 600년이 넘는 도시이다 보니 꼭 서촌이 아니더라도 4대문 안은 걷는 골목골목마다 스토리텔링 대상이 무궁무진하다. 어찌보면 서울의 골목은 역사의 ‘보물지도’이자 ‘타임머신’이다.

 

마침 서울시가 관광 마이스산업을 육성해 2018년에는 외국인 관광객 2000만명을 유치하겠다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서울국제경제자문단 총회에서 “미래 성장 엔진으로 관광과 국제회의 산업을 집중 육성하겠다”며 마스터플랜을 발표했다. 관광객 수 기준 현재 11위에서 2018년 2000만명 돌파로 세계 5위까지 올리겠다는 것이다.

 

서울시 발표에서 특히 422개 모든 동마다 탐방프로그램을 발굴하겠다는 방안이 눈길을 끌었다. 탐방프로그램에는 골목길에서 만나는 문화체험도 포함시킬 수 있다. 게다가 서울의 골목길에서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는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지금도 낙산에서 동대문으로 이어지는 성곽길 아래 충신동 골목길을 순례자처럼 누비고 다니는 일본인 관광객들을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들은 골목길에 열광하고 불편한 집 밖의 초소 같은 화장실을 카메라에 담느라 여념이 없다.

 

 

서울 낙산 충신동 골목길 (경향DB)

 

골목길들이 만나는 조그마한 동네 광장은 야외극장이다. 이곳에서는 소규모의 야외 콘서트나 뮤지컬, 연극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저녁 노을이 지는 서울시내를 배경으로 낙산 중턱에서 멋진 콘서트가 펼쳐지는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보라. 그러나 현실은 이런 기대를 자꾸 배신한다. 당장 서울시는 문인들의 흔적을 만나는 문화체험의 확산에는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 4대문 순례에 나서는 서울 도보꾼들의 이정표 역할을 했던 인왕산 공원 입구의 ‘옥경이 슈퍼’도 세븐일레븐 편의점으로 바뀐 지 꽤 됐다.


로렐라이 언덕을 가봤는가. ‘옛날부터 전해오는~’으로 시작하는 노래 한곡이 교과서에 수록됐다는 이유로 별 볼일 없는 라인강변의 한 언덕은 한국과 일본인 관광객들이 반드시 들르는 관광코스가 됐다. 이에 견주면 ‘스토리텔링 도시’ 서울은 역사기행, 문화기행, 쇼핑기행, 시장기행 고궁기행 등 앞에 적당한 수식어만 붙이면 무지무지하게 가고픈 장소가 널려 있다. 그러나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서울시는 구슬을 제대로 꿰는 데 서툴러 보인다.

 

서울은 인구 1000만이 넘는 도시다. 인구 2배가 넘는 관광객을 불러들이겠다고 한다면 서울시는 관광청을 신설해 시청 여러 곳에 분산돼 있는 관광 관련 업무를 통폐합해야 한다. 그래야만 제대로 된 일관성 있는 관광행정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스토리텔링의 도시로 가는 지름길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골목길 타임머신도 제대로 작동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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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경향 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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