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진 전 국방장관'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7.11.13 ‘문제적 군인’ ① 김관진 전 국방장관
  2. 2017.09.29 국방장관은 합참의장의 상왕이 아니다

노무현 정부 합동참모의장(2006년 11월)→이명박 정부 국방장관(2010년 12월)→박근혜 정부 국가안보실 실장(2014년 6월)→문재인 정부 구속(2017년 11월). 김관진 전 국방장관(68)의 지난 11년간 이력이다.

 

 

■무너진 ‘운장(運將)’ 신화

군에서 하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지장(智將), 용장(勇將), 덕장(德將)이 모두 합쳐서 덤벼도 이기지 못하는 장수가 바로 운이 따르는 ‘운장’(運將)”이라는 것이다. 김 전 장관은 적어도 박근혜 정부때까지는 관운이 넘친다는 측면에서 운장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 했다.

 

그는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육군본부 기참부장(소장)과 2군단장(중장), 합참 작전본부장(중장), 3군사령관(대장) 등으로 승승장구하다 군서열 1위인 합참의장으로까지 발탁됐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을 계기로 국방장관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2013년 3월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뒤에는 새로 내정했던 후임 국방장관 후보자 김병관 예비역 대장이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낙마하는 바람에 유임됐다. 2014년 6월엔 세월호 참사 이후 분위기 쇄신 등을 위해 사퇴한 청와대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의 뒤를 이었다.

 

그는 여러차례 낙마 위기를 맞았으나, 그때마다 살아 남았다. 국방장관 재임당시에는 제2해병사단 총기난사 사건과 제22보병사단 총기난사 사건, 제28보병사단 폭행사망 사건 등 악성 병영사고가 잇달아 발생했지만 육군참모총장이 책임지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도마뱀 꼬리자르기’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그에게까지는 불똥이 튀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지난 11일 이명박 정권 국군 사이버사령부의 온라인 여론조작 활동을 벌이도록 지시한 혐의(군형법상 정치관여)로 구속됐다. 군의 정치개입이란 헌정유린 행위에 깊숙히 개입했던 책임을 지게됐다. 그는 2014년 박 전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를 보고받은 최초 시각이 조작됐다는 의혹 등과 관련해서도 수사 의뢰된 상태다. 국가안보 보다 정권안보 수호에 더 앞장섰다가 공직 은퇴 후 나락으로 추락한 것이다. 김 전 장관과 공교롭게 국정원 댓글사건으로 함께 추락한 원세훈 전 국장원장도 서울고 동문이다.

 

■독일육사 출신의 원칙주의자와 장세동 경호실장과의 만남

 

1969년에 서독 육사 유학을 한 김관진 전 장관은 선후배와 동료들한테 중령보다는 대령, 대령보다는 장군, 소장보다는 중장, 중장보다는 대장때 더 진화, 발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만큼 스스로 힘쓰고 쉬지 않는 ‘자강불식(自强不息)을 실천한 장교였다. 또 서독에서 실전 위주 군 교육을 받은, 후배들이 인정한 ’미래 육군의 희망’ 이었다.

 

그는 가치관이 뚜렷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독일 육사는 학사학위를 수여하지 않기 때문에 독일 육사로 유학을 갔다 온 후 임관한 장교들은 대학 위탁교육을 통해 학사학위를 취득했다. 마찬가지로 독일 유학을 마친 김 실장에게도 서울대 위탁교육 기회가 주어졌다. 그러나 그는 거부했다. “군인이 되려고 육사를 갔지, 서울대 가려고 육사 간 게 아니다”라는 게 그의 입장이었다. 억지스러운 고집을 피운 때문에 그는 오랜 기간 공식 학력이 고졸이었다. 이후 그는 정부에 문제를 제기해 대학 졸업 학력을 정식 인정받았다. 나중 그의 최종 학력은 대학원 졸업이다.

 

김 전 장관은 전주북중을 졸업한 호남 출신이다. 그는 1972년 육군사관학교 제28기로 임관했다. 이후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그의 경력이 하나 있다. 그는 전두환 군부독재 시절 장세동 청와대 경호실장 밑에서 경호실 상황장교를 지냈다. 당시 호남 출신 장교는 지역차별로 수도경비사령부에도 근무하기 힘든 시절이었다. 그런만큼 호남출신이었던 장세동 당시 경호실장의 특별한 배려로 같은 호남출신인 김 전 장관이 경호실 근무가 가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예비역 장성은 “과거 행적때문에 진급이 어려웠던 ㄱ 장군이 진급한데는 장세동 전 경호실장의 부탁을 받은 김 전 장관의 입김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두사람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는 사례다.

 

김 전 장관은 댓글공작에 투입될 군 사이버 요원을 뽑는 과정에서 호남지역 출신 지원자를 원천 배제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검찰 수사 과정에서 알려졌다. 그가 실제로 그런 진술을 했는지는 정확한 팩트가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김 전 장관이 호남출신이라는 점에서 비난은 더 크게 나오고 있다.

 

■북한이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던 국방장관

김관진 전 국방장관의 과거 프로필을 보면 전형적인 ‘용장’이나 ‘강경파’ 이미지다. 그는 2010년 12월 4일 국방장관 취임 이후 지난 3년 6개월 동안의 장관 재임 기간 중 ‘도발원점 타격’ ‘지휘세력까지 타격’ 등 북한이 도발하면 굴복할 때까지 응징하겠다는 대북 강경발언을 잇따라 쏟아냈다. 그는 신년사 격인 장관 지휘서신 1호에서도 이순신 장군의 어록을 빌려 ‘차수약제 사즉무감’(此讐若除 死則無憾), 즉 ‘원수를 무찌른다면 지금 죽어도 한이 없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죽음도 불사하겠다는 결의에 많은 시민이 뜨거운 호응을 보냈다. 이를 놓고 “역시 김관진!”이라는 반응과 ‘말의 성찬에 불과할 뿐’이라는 평가가 엇갈렸다.

 

 

그는 국방장관 취임 직후 ‘선(先) 조치, 후(後) 보고’ 지침을 내렸다. 그러나 북한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에 해안포를 발사했을 때 이 지침은 지켜질 수 없었다. 이때문에 애초부터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무조건적인 ‘선 조치, 후 보고’ 지침은 현실을 무시한 지침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그는 또 장관 집무실에 당시 북한 김영춘 인민무력부장과 김격식 4군단장 사진을 걸어놓았다.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적장을 보면서 ‘지금 이 순간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고 짚어보는 차원에서 붙여놓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유니폼(군복) 입은 장군도 아닌 반 정치인인 국무위원으로서 그런 사진을 걸어놓은 것이 부적절하다는 평가가 꽤 많았지만, 일부 시민들은 “과연 김관진”이라면서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민구 당시 합참의장도 김 전 장관을 따라서 집무실에 북한군 수뇌부 사진을 붙였다.

 

김 장관이 재임시 일선 군 부대 몇곳에서는 국방장관에게 코드를 맞추듯 예비군 사격훈련장에서 김일성과 김정일, 김정은을 사격 표적지로 사용하며 북한을 자극했다.

 

북한도 ‘특등 호전광’ ‘역도’ ‘괴뢰패당 우두머리’ ‘첫 벌초 대상’ 등의 원색적인 용어를 쓰면서 그를 비난했다. 심지어 북한군은 김관진 국방장관의 얼굴을 사격 표지판으로 사용했는가 하면 군견이 ‘김관진’이라는 이름표를 단 마네킹을 물어뜯는 장면을 조선중앙TV에서 방영하기도 했다. 그만큼 북한이 가장 싫어하는 국방장관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김 전 장관이 2014년 6월 국가안보실장 임명되자 북한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박근혜는 극악무도한 대결 광신자를 청와대 안보실장으로 지명한 것으로 하여 초래되는 모든 후과(결과)에 대해 전적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면서 김관진 실장을 ‘친미사대 매국노’ ‘민족반역자’ ‘대결 광신자’ 등으로 표현했다.

 

■군부 권력투쟁에서 승리

김관진 전 장관은 재임시절 자신을 살해하기 위한 북한 암살조의 국내 잠입설까지 나돈다면서 전용 차량의 유리를 방탄으로 바꾸고, 출퇴근 때마다 출입문을 포함해 차량의 이동로를 바꾸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북 암살조의 국내 잠입’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 추측성 언론보도”라고 답변했다. 당시 이를 놓고 김 장관이 언론에 일부러 보여주기식 행보를 한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트위터에 “저는 건재하고 임무수행에 전념하고 있습니다”라는 글을 남겨 ‘미니 북풍’을 즐긴 셈이었다.

 

 

그는 국장장관 재임시절 국군 사이버사령부를 통해 자신을 영웅화하는 합성사진들을 몰래 만들어 뿌렸다. 만화영화 <로보트 태권V>, TV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애니메이션 <주먹왕 랄프>의 포스터를 이용한 것들이 대표적이다. 이런 사진이나 포스터는 “국방장관의 강력한 대응의지가 도발 억지에 도움이 됐다”거나 “북한에서 제일 두려워하고 미워하는 분이죠”라는 글들이 달려 인터넷에 퍼져나갔다. 당시 군내부에서는 김 장관이 나중에 국무총리는 물론 대통령 후보가 될지도 모른다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그는 이명박·박근혜 두 정권에서 국방부 장관과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거치며 거침없는 행보를 거듭했다. 그의 첫번째 위기는 2013년 10월 군 장성 정기인사를 앞두고 발생했다. 장경욱 당시 기무사령관이 김관진 국방장관의 인사업무를 비판한 보고서를 청와대에 보고한 것이다. 기무사는 ‘장군 인사 절차 및 여망’이란 보고서에서 “김 장관이 미리 작성한 인사안대로 추천하도록 인사 추천위원들에게 지시하는 등 인사 독점을 한다”며 국방장관의 인사 전횡을 비판했다. 또 “김 장관이 ‘독일 육사’ 출신 등을 무리하게 진급시켜 장관 대 비장관 인맥 갈등을 초래한다”는 지적과 함께 “장관 교체가 최선의 방안”이라고 보고했다. 공관병 갑질 사건을 야기한 박찬주 전 육군대장도 독일 육사출신이다.

 

그러나 결과는 기무사령관의 참패였다. 장경욱 당시 기무사령관은 임명 6개월만에 전격 경질됐다. 장 사령관은 퇴임식조차 하지 못하고 쫓겨나다시피 기무사령부 청사를 나가야 했다. 김관진 당시 국방장관은 2013년 11월 국회에서 “(장경욱 기무사령관은) 능력이나 자질 등이 기무사를 계속 유지하고 개혁하고 발전시킬만하지 못하다. 그렇기 때문에 교체가 불가피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두번째 위기는 국군 사이버사령부의 댓글 부대 운영 의혹 사건이었다. 국방부 조사본부가 댓글 부대를 운영하며 2012년 총선과 대선에 개입했다는 사이버사 의혹에 대해 2013년 10월 조사에 착수한 것이다. 하지만 이 조사는 용두사미로 끝났다. 이듬해 10월까지 1년간 이어진 조사 끝에 조사본부는 2014년 11월 연제욱·옥도경 전 사이버사령관을 관리책임 소홀로 불구속 기소하고, 이태하 전 530 심리전단장의 독단적 범행이라고 발표했다. 발표에는 “개인적 일탈이지 군 수뇌부 개입은 없었고, 국정원 예산 지원도 없었다”는 내용도 언급됐다. 군 안팎에서는 김 전 장관의 입김이 작용한 결과라는 말이 파다했다.

 

결국 이는 거짓발표였다는 게 이번 국방부 재조사 TF와 검찰 조사에서 확인됐다. 그가 구속된 것도 이때문이다.

 

장경욱 기무사령관이 경질된 시기는 군 수사당국의 사이버사 의혹조사 시기와 겹친다. 이는 이미 김 전 장관이 당시 군 내부를 완전히 장악하고, 청와대에서조차 그를 함부로 내칠 수 없는 환경을 조성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방개혁 실패 및 인사잡음 야기

김 전 장관은 ‘작지만 강한 군대’를 건설하기 위한 국방개혁을 추진했지만 실패했다. 국방장관 취임 이후 군령권(작전·정보)과 군정권(인사·군수)을 통합하는 것을 골자로 한 상부 지휘구조 개편을 추진했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다.

 

전작권 전환도 마찬가지다. 김 전 장관은 2007년 12월 합참의장으로 재직 당시 청와대 오찬에서 “창군 이래 처음으로 대통령이 추진하는 국방개혁과 전작권 환수만큼은 전군이 힘을 합쳐 확실히 추진하겠다”고 건배사를 했다. 그러나 국방장관으로 내정된 2010년 12월 인사청문회에서는 “전작권 전환이 논의가 됐을 시절 나를 포함한 군부는 현재의 안보상황이 전작권 전환에 맞지 않다고 했다”며 “(한미 간 전작권 전환 합의 당시) 나는 작전본부장이었던 시절이었다”고 빠져 나갔다.

 

그는 2011년 11월 장성 진급 및 보직 인사에서 정권이 바뀌면서 노무현 정권에서 혜택을 받았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올라 불이익을 받았던 장교들을 대거 발탁했다. 군 내부에서는 “관 뚜껑 열고 나와 진급했다”는 말까지 나왔다. 대부분 그가 합참의장 시절이나 작전본부장 때 챙겼거나 같은 독일육사 출신 장교들이었지만 당시만 해도 “아까운 인재들이 구제됐다”며 평가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이때 군내 사조직 하나회 출신 2명도 중장으로 진급한 것은 뒷말이 나왔다. 이중 한명은 나중에 여군 부사관을 성추행해 물의를 빚었다.

 

김 전 장관이 아꼈던 연제욱 전 사이버사령관은 ‘새옹지마’의 길을 걷게 된 케이스다. 독일육사 출신으로 엘리트 장교였던 연제욱 대령은 노무현 정부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행정관을 지냈다는 이유로 정권이 바뀐 후 장군 진급에서 잇따라 탈락했다가 김 전 장관이 부임 후 별을 달 수 있었다. 김 전 장관은 가장 믿을 수 있는 부하였던 그를 사이버사령관으로 임명했다. 그는 소장으로 진급해 청와대 국방비서관까지 지냈지만 댓글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김 전 장관은 또 2011년 6월 군 비리와 횡령을 내부 고발한 황모 중령(육사45기)를 오히려 ‘군 기강을 문란하게 했다’며 징계해 비난을 받았다. 황 중령은 그의 결혼식 때 자신이 주례를 섰던 장교였다. 황 중령이 결혼할 당시 김 전 장관은 도일규 전 육군참모총장의 비서실장(당시 준장)이었고, 황 중령은 육군총장 경호대장(당시 대위)이었다. 황 중령 입장에서는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힌 격’이었다. 이후 황 중령은 징계권자인 육군참모총장을 상대로 징계처분취소소송을 내 2013년 9월 상고심에서 승소하며 징계 취소가 확정되는 등 재판에서 이겼다. 하지만 적기가 지났다는 이유로 군은 그를 진급시키지 않았고, 최근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코너에는 황 중령을 진급시키자는 청원이 올랐다.

 

<박성진 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Posted by 경향 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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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정식 명칭이 ‘합동참모회의 의장’인 합참의장은 대한민국 육·해·공군 작전을 총지휘하는 군령권을 지닌 4성 장군이다. 군 서열 1위로 군복을 적어도 30년 이상 입어야 오를 수 있다. 대한민국 군인 가운데 유일하게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앉을 수 있는 자리다.

 

남북 간 대치가 계속되고 북한이 수시로 도발해오는 상황에서 합참의장이 견뎌야 하는 스트레스는 일반 국민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 24시간 내내 팽팽한 긴장의 연속이다. 그런 만큼 군인으로서 ‘프로 중의 프로’가 와야 한다. 30년 넘는 군생활에서 쌓아온 군사작전의 노하우를 모두 풀어 내면서 업무 스트레스를 오히려 즐길 정도가 돼야 한다는 뜻이다. 합참의장은 군생활의 마지막 불꽃을 화려하게 불태우는 자리이기도 하다.

 

합참의장은 합동군사작전 분야의 1인자가 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역대 상당수 합참의장은 정치적 고려나 육·해·공군 간 안배 차원에서 임명됐다. 그러다 보니 수평적 리더십이라는 핑계로 부하들에게 합동작전의 구체적인 적용 방법을 배워가며 의장직을 수행한 이도 있었다.

 

시간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심지어 의장 돌려막기 차원의 인사도 있었다. 2010년 6월 대장 인사가 대표적이다. 당시 합참의장 후보자는 합참에 근무한 경험이 없는 육군 대장이었다. 신임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된 육군 대장은 이전에 육군본부 근무 경력이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참의장 인사청문회 통과 가능성을 높인다며 청와대가 육본 근무 경험이 없는 장군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고, 합참에 근무한 적이 없는 육군 대장을 합참의장 후보로 하는 기형적인 ‘대장 돌려막기’ 인사를 실시한 것이다.

그 후과는 컸다.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 도발이 발생했을 때 합동작전 지휘 경험 등이 없었던 합참의장의 대응 방식은 뒷말을 낳았다. 그는 “포격 도발 당시 충분한 대응사격과 함께 추가 도발에 대응한 공군력 운용 대비를 지시했다”고 밝혔지만, 이 문제는 그가 국방장관 후보자가 됐을 때 국회 인사청문회의 쟁점이 되기도 했다.

 

연평도 포격 도발 당시 합참 전투통제실에 있었던 간부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합참의장석에는 국방장관이 앉아 있다가 나중에 자리를 합참의장에게 내줬다. 국방장관이 전투통제실 합참의장석에 앉는 바람에 의장의 초기 상황 지휘를 방해한 모양새가 됐다고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전부터 대장 출신 국방장관은 군복을 벗은 예비역 신분이었지만, 현역 합참의장의 존재감을 약하게 하는 역할을 많이 했다.

 

특히 김관진 전 국방장관은 현역 군인 시절보다 오히려 더 강경한 모습을 언론에 노출했다. 그는 국방장관 시절 군복을 입고 전방을 다니면서 북한에 대한 강성 발언을 쏟아냈다. 원수를 무찌른다면 지금 죽어도 한이 없다는 뜻의 ‘차수약제 사즉무감(此讐若除 死則無憾)’이라는 지휘서신을 전군에 내려보내기도 했다. 국민들에게는 군 서열 1위인 합참의장보다 국방장관이 더 군인같다는 분위기를 전달했다. 하지만 북한을 윽박지르는 전투적 레토릭은 필요하다면 합참의장의 몫이지, 나중에 남북 장관급 대화에 나서게 될지도 모르는 국방장관의 몫은 아니었다.

 

박근혜 정부에서 국방장관에 임명된 한민구 전 합참의장 역시 전임자와 똑같은 행보를 밟았다. 군복을 입고 일선 부대를 수시로 다니면서 지도활동에 나섰다. ‘도발하면 처절한 응징’과 같은 레토릭도 이어졌다.

 

문재인 정부의 첫 국방장관으로 임명된 송영무 전 해군참모총장의 일선 부대 순시는 과거 정부 국방장관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도 국방장관이 합참의장을 뛰어넘는 현역 군인 서열 1위인 것으로 국민들에게 보이기에 충분하다. 국방장관이 군복 상의를 입고 합참의장보다 더 많이 작전부대를 순시하는 것처럼 비치고 있기 때문이다. 국방정책 추진이라는 본연의 업무는 미뤄지고 있다는 분위기다.

 

국방장관은 군령과 군정의 책임자이긴 하지만 합참의장의 상왕이 아니다. 공군 출신인 정경두 합참의장도 아직까지는 한국군 군사작전 최고 책임자로서의 면모를 국민들에게 자신있게 보여주고 있다고 보기에는 미흡한 편이다. 그가 강력한 카리스마로 군사적 위기를 처리할 만한 사안이 지금까지는 없었던 때문일 수도 있다.

 

송 장관은 최근 청와대 입장보다는 소신을 먼저 앞세우다 경고를 받았다. 앞서 그는 문정인 청와대 통일외교안보특보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대통령 참모로서 정무직인 국방장관 입장으로서 충분히 경솔하게 비칠 수 있는 대목이었다.

 

국방부 관계자는 “송 장관은 국방장관이라면 전술핵 재배치든 뭐든 모든 옵션을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국방장관으로 통수권자인 대통령에게 직언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해왔다고 전했다. 직언을 하더라도 국민이나 국회의원들에게 통수권자인 대통령과 다른 안보철학을 갖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은 문제가 있다. ‘오랜만에 시원하게 쓴소리를 하는 국방장관이 나왔다’는 일방적인 평가에 고무돼서도 곤란하다.

 

군 안팎에서는 송 장관 성향상 앞으로도 청와대 성향이나 입장과는 다른 소리를 계속 낼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 같다. 정치권에서는 그의 도발적 발언을 일부러 유도할지도 모르겠다.

 

해병대에서 44년이나 복무한 강경파인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 역시 송 장관처럼 소신파다. 그는 그러면서도 좌충우돌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안보정책에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즉흥적인 발언이나 정책을 수습하는 등 외교·안보 정책의 안정화에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매티스 장관은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리스트들에 대한 물고문 부활을 지지했던 트럼프 대통령에게 “담배 한 갑과 맥주 한 잔으로 협조를 이끌어 내는 게 낫다”고 조언했다. 강경파인 그가 의외로 유연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대표적 사례다. 대한민국 국방장관도 이런 은유적인 표현은 벤치마킹하는 게 나쁘지 않을 듯 싶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Posted by 경향 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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