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22일 시민들이 강원도 철원군 ‘비무장지대(DMZ) 평화의 길’ 출입구를 군의 안내를 받으며 지나고 있다. 철원 구간은 15㎞이며, 차량과 도보로 이동하는 데 3시간 정도 걸린다. 현재 DMZ 출입 통제는 6·25전쟁 후 체결된 정전협정에 규정된 유엔사의 고유 권한이다. 이 때문에 남북 간 군사적 합의도 DMZ 관련 부분에서는 유엔사의 승인이 없으면 이행이 불가능하다. 사진공동취재단


유엔군사령부(UNC)의 ‘군사분계선(MDL) 통과 허가권’과 ‘비무장지대(DMZ) 출입 허가권’ 문제 등 유엔사의 관할권이 여전히 한·미 군 당국 간 ‘뜨거운 감자’다. MDL 통과·DMZ 출입 허가권과 관련한 이슈가 잊혀질 만하면 다시 툭툭 불거지고 있어서다. 정부가 남북 협력사업의 하나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북한 개별관광도 제3국을 경유하지 않는 육로 관광일 경우 유엔사 허락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런 가운데 유엔사는 지난달 29일 마치 ‘난수표’를 연상케 하는 입장 자료를 내놓았다. 내용인즉, “유엔군사령관은 정전협정을 관리하고 이행을 감독할 권한과 책임을 다하고 있으며 DMZ 출입에 관한 정책과 규정이 모든 인원에게 적용되고 시행될 수 있도록 DMZ 내 활동에 대해 지상작전사령부(지작사)에 상시 문의를 한다. 그 결과 문제가 발생했을 땐, 보통 낮은 수준에서 원만하게 해결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는 국내 한 언론이 “로버트 에이브럼스 유엔사령관 겸 한미연합사령관이 그동안 유엔사에 별도 사전통보 없이 비무장지대를 출입했던 한국군의 관행에 공식적으로 문제제기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한 보도 내용의 진위를 묻는 질의에 대한 유엔사 답변이었다.


■ UNC 항의 미스터리


유엔사 입장 자료를 보면 도대체 에이브럼스 유엔군사령관이 문제제기를 했다는 것인지, 안 했다는 것인지도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이에 대한 한국군 설명을 들어보면 더욱 헷갈린다. 통상적으로 유엔사는 DMZ 출입 이슈가 있을 경우 한국군 측에 관련 사항을 확인하는데, 이것이 일상업무 차원이라는 것이다.


앞서 지난해 12월5일 남영신 육군 지상작전사령관(대장)은 케네스 윌스백 미 7공군사령관과 함께 강원 철원군 3사단 감시초소(GP) 일대를 방문해 군 대비태세를 점검했다. 백골부대로 불리는 육군 3사단은 지작사 소속인 육군 5군단 예하 최전방 사단이다.


남 사령관 일행이 DMZ에 출입하기 48시간 전 유엔사에 통보하고 유엔군사령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며 에이브럼스 사령관이 한국군에 출입규정 위반을 추후 통보했다는 주장에 대해 한국군 당국은 부인했다. 남 사령관 일행의 DMZ 출입과 관련해 지작사는 미측으로부터 사실 확인만 있었을 뿐, 어떤 항의나 문제제기도 없었다고 3일 밝혔다. 지작사 상급 부대인 합동참모본부 역시 같은 입장이다. 3사단을 관할하는 5군단도 유엔사로부터 어떠한 형태의 항의를 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통상적으로 DMZ 상비사단을 관할하는 군단 사령부는 유엔사로부터 MDL 통과·DMZ 출입 허가를 위임받아 DMZ 내 군사작전을 하고 있다. DMZ 출입과 관련해 유엔사의 소통 통로가 되는 군 당국이 모두 유엔사 측 항의를 받은 적이 없다고 밝힌 것이다. 다만, 에이브럼스 유엔군사령관은 김종문 한미연합사 부참모장 겸 유엔사 군사정전위 수석대표(육군 소장)에게 ‘12월5일 DMZ 무단 출입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6·25 후 정전협정에 권한 규정

합참의장·참모총장 예외 없이

48시간 전 통보·허락받게 해



이와 관련해 한국군 고위 관계자는 “최전방 군단의 작전을 지휘하는 지작사령관은 DMZ 상시 출입이 가능한 직위”라며 “유엔사가 윌스백 미 7공군사령관의 DMZ 출입을 내부적으로 문제 삼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유엔사 규정에 따르면 지작사령관의 동반자가 윌스백 미 7공군사령관이라 하더라도 DMZ 내 GP를 방문하기 위해서는 지작사 측이 DMZ에 출입하기 48시간 전 유엔사에 통보하고 유엔군사령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유엔사가 애매모호한 입장 자료를 낸 것도 규정 위반 대상이 미군 3성 장군인 미 7공군사령관이기 때문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유엔사가 “문제가 발생했을 땐, 보통 낮은 수준에서 원만하게 해결되고 있다”고 밝혔지만, 미 7공군사령관의 출입까지 경위 조사를 지시한 것은 DMZ 관할권에 집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현재 DMZ 출입 통제는 6·25전쟁 후 체결된 정전협정에 규정된 유엔사의 고유 권한이다. 이 때문에 한국군 대장이라도 유엔사에 48시간 전 통보해 승인을 받지 않고는 DMZ 출입이 불가능하다. 육·해·공군 3군 참모총장은 물론 한국군 서열 1위인 합참의장조차도 예외가 아니다. 평시 작전을 책임지고 있는 합참 작전본부장이나 작전부장 모두 마찬가지다.


■ UNC의 ‘딴지걸기’



정전협정 이행·감독 이유로

주요 남북교류 사업 수차례 딴지

지난해부터 JSA 관광도 금지

북한 개별관광·육로관광 추진도

미국 승인 없으면 사실상 불가능


유엔사가 정전협정 서명 당사자로서 정전협정을 이행·감독한다는 이유로 남북 교류와 도로·철도 연결 사업 등에 제동을 걸어왔던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남북 군사적 합의도 DMZ와 관련한 부분에서는 유엔사 승인이 없으면 이행이 불가능하다.


2000년대 들어 남북 화해무드에서 유엔사가 남북 교류에 첫 제동을 건 사례가 발생한 것은 2002년 11월24일이었다. 남북은 DMZ 지뢰 제거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검증단을 교환하기로 했으나, MDL 통과 승인권 고수를 고집한 유엔사 태도로 검증작업이 무산됐다. 당시 판문점 장성급 회담 유엔사 측 대표인 제임스 솔리건 주한미군 부참모장 겸 유엔사 부참모장(미 공군 소장)은 “남북 교류·협력 사업에서 MDL 통과는 정전협정에 따라 민간인도 유엔사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측이 유엔사의 승인을 계속 배제하려 든다면 금강산관광 등 남북 교류·협력 사업이 제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2018년 8월에는 유엔사가 남북 철도 연결을 승인하지 않아 정부 계획보다 석 달 넘게 지난 11월30일에야 가까스로 이뤄졌다. 2019년 6월에는 제9차 한·독 통일자문위원회에 참가한 독일 정부 대표단이 강원도 고성 GP를 방문하려 했지만 유엔사가 ‘안전상 이유’를 내세워 DMZ 출입 허가를 해주지 않아 불발됐다. 정경두 국방장관이 유엔군사령관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 사령관에게 협조 요청까지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난해 8월9일에는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DMZ 내 유일한 민간인 마을인 대성동 마을을 방문하려 했으나 유엔사가 동행 취재진의 방문을 불허하면서 결국 무산됐다. 유엔사가 DMZ 출입을 불허하는 사유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유엔사는 지난해 10월부터 3일 현재까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방문과 관광도 금지하고 있다. 방문 및 관광을 허가할 수 없는 이유로 ‘아프리카돼지열병’을 들고 있다. 유엔사는 한국 정부의 북한 개별관광 추진에 관해서도 개별관광객이 DMZ를 통과해 북으로 갈 경우 정전협정에 따라 유엔사 승인이 필수라고 밝혔다. 주한미군 사령관이 유엔군사령관을 겸하고 있다는 점에서 DMZ 육로를 통과하는 북한 개별관광 역시 미국 승인이 없으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지난해 12월17일에는 유엔사의 DMZ 출입·허가권과 관련한 ‘유엔사 비군사적 출입통제,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가 국회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서 유엔사는 “미국의,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고스트 아미(ghost army)”(이해영 한신대 부총장)라는 발언까지 나왔다. 민변 미군위원회에서 활동하는 김종귀 변호사는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조치는 정전협정 규율 대상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합의 이행을 위해 출입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유엔사가 정전협정에 근거해 출입권을 발동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현행 허가제를 신고제로 바꾸는 등 유엔사 문제 3단계 해법을 제시했다.



“유엔 단체도 기구도 아니다”

유엔사 권한에 끝없는 의문 제기

정부 “제도 보완” 밝혔지만 답보



한국에서는 유엔사의 존재 이유에 대한 의문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 주한 유엔사는 유엔의 ‘활동단체’도 ‘기구’도 아니다. 게다가 유엔의 ‘지휘’나 ‘통제’를 받지 않는 조직이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정전협정에는 허가권이 군사적 성질에 속한 것으로 한정돼 있다”며 “환경 조사, 문화재 조사, 감시초소 방문 등 비군사적 성질에 대한 허가권의 법적 근거가 미흡하다는 지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도적 보완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정부와 유엔사의 DMZ 출입 허가권 문제 협의는 여전히 답보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미군은 유엔사 재활성화에 나서고 있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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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수 없어. 도저히 알 수가 없어”.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1950년작 영화 라쇼몽(羅生門)에 나오는 대사다. 영화는 숲길에서 무사가 도적에게 살해당했다는 한가지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그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의 진술은 모두 제각각이다.


라쇼몽의 등장 인물들은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은 잊어버린다. 대신 자신에게 유리한 거짓을 사실이라고 믿고 싶어하는 진술 속에는 각자 입장과 이해관계가 담겨 있다. 그러다 보니 하나의 사건에 모순된 진술과 입장이 공존한다. 심지어 그 진술과 입장이 번복되기도 한다.


지뢰지대 표식. 연합뉴스


자유한국당 이종명 의원(60·육사 39기)의 ‘영웅 조작설’ 논란에서 드러나는 모습은 마치 라쇼몽을 보는 듯 하다. 핵심은 이종명 의원이 2000년 6월27일 육군 1사단 전방 수색부대 대대장(중령)으로 근무할 당시 지뢰를 밟은 후임 대대장을 구하려다 자신도 지뢰를 밟는 사고를 당했을 때의 육군 발표를 둘러싼 의문이다.


사고 초기부터 군 내부에서는 ‘이종명 중령은 영웅이 아니라 징계 대상’이라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당시 이 중령이 규정을 준수하지 않고, 후임 대대장 등을 데리고 수색로를 이탈해 지뢰밭으로 들어가 위험을 자초했다는 주장이 사실인 지 여부를 가리면 이 논란의 고리는 끊어질 수 있다.


이게 쉽지 않다. 국방부 합동조사단은 사고 다음날인 28일 국방장관에게 보고한 문건에서 사고 장소를 ‘미개척된 3m 지점’으로 특정했다. 작전로가 아닌 곳에서 지뢰를 밟았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 의원은 한 방송 인터뷰에서 조사보고서 내용을 부인했다. 당시 중대장이었던 박모 대령도 경향신문의 서면 질의에 ‘(사고 장소가) 개척된 수색로였다”고 답변했다. 두사람 모두 당시 사건 당사자들의 진술을 토대로 만들었다는 군의 공식 보고서 내용을 지금에 와서는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한 것이다.


사고가 일어났을 때 상황에 대해서는 당사자들 주장이 모두 엇갈린다. 육군 헌병과 5부 합동조사단의 보고서는 일관되게 이 중령과 후임대대장인 설 중령, 중대장인 박 대위 등이 군사분계선(MDL) 가까이 이동하는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 의원은 “MDL 선상에서 임무를 마치고 돌아나오면서 일어난 사고”라고 반박했다. 자신이 (MDL쪽으로) 앞에 가고 그다음이 중대장, 설 중령이 맨 뒤에 따라갔다가 돌아나올 때는 역순으로 설 중령이 맨 앞에 나오고 자신이 맨 뒤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당시 중대장은 “진출 및 복귀간 이종명 의원이 제일 선두에 있었다”고 증언했다. 당시 선임 대대장이었던 이 의원과 중대장이었던 박 대령, 군 조사보고서가 당시 상황을 놓고 모두 엇갈리는 모순된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 살인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의 진술이 모두 제각각이었던 영화 ‘라쇼몽’의 장면들이 철책선 인근에서 재현되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영화 ‘커리지 언더 파이어’ 포스터


#영화 ‘커리지 언더 파이어(Courage Under Fire)’의 한 장면. 1991년 1월, 걸프전에 투입된 기갑대대 대대장 나다니엘 설링 중령(덴젤 워싱턴 분)은 알 바스라에서 야간 공격 작전 도중 T-54 적군 탱크라고 여겨진 물체에 포격을 명령한다. 그러나 그가 폭파한 것은 아군 탱크였고, 이 사고로 미군 수명이 숨졌다.


진상조사에 착수한 국방부는 이 사건을 ‘아군에의 오발’로 무마하고 설링 중령을 국방성의 ‘훈장 및 포상업무 부서’에 배속한다. 설링 중령은 작전중 숨진 ‘구조 헬리콥터 조종사’ 카렌 월든 대위(맥 라이언 분)의 명예훈장 자격 여부를 심사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월든 대위는 ‘치열한 전투 상황 속에서 목숨을 아끼지 않은 용기’로 이 상의 수여 대상자 명단에 올라 있었다. 상부에서는 ‘공적이 확실하니’ 명예훈장 수여 승인을 빨리 할 것을 재촉한다. 그러나 설링 중령은 부상자 구출 작전 도중 월든 대위의 행동에 대한 구출팀 대원들의 서로 상반되는 주장에 의혹을 품고 불확실한 보고서 제출을 거부한다.


설링 중령은 국방부의 애초 발표가 월든 대위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영웅’으로 포장한 언론 플레이였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국방부 압력을 거부하고 월든 대위 죽음의 진상과 국방부의 은폐, 조작을 공개한다. 이 과정에서 국방부는 실링 중령의 오발 사건에 대해 그에게 불리한 쪽으로 결정내리겠다고 협박하지만, 그는 진실을 택한다. 국방부는 공격 받은 아군 전차가 피아식별 장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던 사실도 숨겨왔던 것으로 드러난다. ‘진실의 왜곡과 그것의 규명’이란 점에서 이 영화는 19년 전 지뢰폭발 사고와 묘하게 오버랩된다.


지난주에 육군에 질의했다. 이종명 의원 등을 포함해 당시 지뢰폭발 사고 당시 수색대대원들의 훈장 및 포상이 있었는 지에 대한 문의였다. 이에 대해 육군본부는 “훈·포상은 개인 신상에 관계된 사안으로 외부에 알려줄 수 없다”고 밝혔다. 육본 법무실의 공식 답변이라는 것이다. 과거 언론 보도를 검색해보니 이 의원은 이 사고와 관련해 보국훈장 삼일장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를 바탕으로 어떤 공적으로 훈장을 수여했는 지 다시 물었더니 육군본부의 돌아온 답변은 “훈장 공적서 보존 기간 5년이 지나 폐기한 관계로 내용을 알 수 없다”였다.


육군은 지난 16일 김승겸 참모차장 주재로 언론대응 대책회의를 열고 “기자 질문에는 ‘검토중’ 스탠스를 유지하고 이슈가 확산되지 않도록 관리하라”라는 지침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국방부 정례브리핑에서 관련 질의가 나오자, 육군은 “검토 중”이라는 답변을 17번이나 했다. 국방부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국방부는 지난 21일 정례브리핑에서 ‘국방부 차원의 조사 필요성’을 묻는 질의에 “육군 확인 이후에 상황을 보고 신중하게 판단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는 시간끌기를 하다 나중에 ‘뭉개버리겠다“는 것과 다름 아니다. “검토하겠다” ”신중하게 판단하겠다“는 말은 군이 실제론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할 때 주로 쓰는 말이기 때문이다. 또 국방장관과 육군참모총장은 진실을 ‘거추장스러운 악세사리’ 정도로 취급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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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 ‘MDL에서 남북 각각 40㎞ 사격 금지구역, 60㎞까지는 비행금지 구역’ 제안

· 북 제안은 남남 갈등까지 고려한 ‘독이 든 사과?’

· 장사정포 후방 배치와 한·미 화력 후방 배치 맞교환은 남측에 불리

· 장사정포 후방 배치까지는 남북 간 고차원 방정식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을 위협하는 북한군 장사정포의 후방 배치가 가능한가. 이 문제를 놓고 지난달 25일 이낙연 총리는 6·25 기념식 기념사에서 “장사정포의 후방 이전이 논의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총리실은 국방부가 이를 계속 부인해왔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남북 간 논의를 말한 것이 아니라 우리 정부 내부 검토를 했다는 뜻”이라고 한발 물러섰다.

 

그렇다면 북한은 장사정포 후방 배치를 시사한 적이 없는 것인가. 여러 정황을 종합하면 꼭 그렇지도 않다. 북한이 장사정포 후방 배치를 시사한 것‘처럼’ 해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군사분계선(MDL) 인근에 배치된 북한의 장사정포를 후방으로 철수하는 문제는 남측의 훈련장 재배치와 남북 간 전력지수 등과 복잡하게 맞물려 있다. 사진은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2016년 3월 보도한 북한군 훈련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MDL에서 40㎞ 사격 금지’

 

군 안팎에서는 북한이 지난달 14일 제8차 남북 장성급회담에서 남측에 ‘사격 금지와 비행 금지구역 지정’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측이 “남북이 각각 서해 북방한계선(NLL) 20㎞, 군사분계선(MDL) 40㎞씩을 ‘사격 금지구역’으로 정하자”고 제안했다는 것이다. 북측은 또 군사분계선의 경우 60㎞ 이내 지역을 ‘비행 금지구역’으로 두자고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크게 보면 사격 금지구역 설정은 우선 실사격 훈련 중단과 이후 포 후방 배치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먼저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한 ‘사격 금지구역’에서 남북 간 실사격 훈련 중지가 이뤄지면 이후 북의 장사정포 후방 배치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가능하다.

 

문제는 이렇게 될 경우 남북 간 재래식 포병 전력의 균형추가 북측으로 기울어진다는 점이다. 군사분계선에서 40㎞씩 철수하면 남측 화력은 서울까지 밀리는 데 반해 북측 화력은 평양 남쪽으로 100㎞ 떨어진 지점에서 멈추기 때문이다.

 

현재도 평양은 비무장지대(DMZ)에서 180㎞ 거리인 반면 수도권은 60여㎞에 불과해, 남측은 화력을 비무장지대 인접지역에 집중해 놓고 있는 상황이다. 남측이 군사 방어적 측면에서 불리한 현실은 판문점이 서울에서 직선거리로 52㎞, 평양에서 직선거리로 147㎞인 점만 봐도 쉽게 읽을 수 있다.

 

‘비행 금지구역’ 지정도 사실상 공중 감시정찰 자산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남측에만 적용된다고 봐도 무리가 없다. ‘장사정포 후방 배치 미끼’를 내세워 남북 간 전력 균형을 단숨에 뒤집겠다는 북의 전략이라는 의심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국방부는 1일 북측이 ‘사격 금지와 비행 금지구역 지정’을 제안했는지에 대해 공식 확인을 거부하면서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최현수 국방부 대변인은 “남북 장성급회담에서 합의된 사항 이외에 남북이 서로 제안한 의제들에 대해서는 일일이 확인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 다른 국방부 당국자는 “구체적인 협의는 진행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남북 화력 ‘MDL 사이에 두고 맞대결’

 

군사분계선 인근 북측 지역에 배치된 1000여문에 달하는 각종 북한군 포 가운데 장사정포는 핵과 미사일에 이은 3대 위협 전력으로 꼽혀왔다. 장사정포는 40㎞ 이상 사거리를 가진 북한군 야포와 방사포를 의미한다. 이 중 사거리 54㎞의 170㎜ 자주포 6개 대대와 사거리 60㎞의 240㎜ 방사포 10여개 대대 330여문이 수도권을 직접 겨냥하는 것으로 군당국은 평가하고 있다. 장사정포는 갱도 진지 속에 있다가 발사 때만 갱도 밖으로 나온다. 갱도 밖으로 나와 발사하고 들어가는 데 6~15분가량 소요된다.

 

이에 맞서 한국군은 155㎜ K-9 자주포(사거리 40여㎞), 차기 다연장로켓포(MLRS) 천무(사거리 80㎞)를 전방에 배치하고 있다. 경기 연천과 포천 등 휴전선 인근 포병부대는 그동안 K55 자주포와 155㎜ 견인포(KH 179)를 운용하다 지난해 K-9 자주포로 주전력을 전환했다. 군은 서북도서와 전방 지역에 총 900문가량을 배치했다. K-9 포병부대는 비무장지대 이남 5~10㎞ 거리에 집중돼 있다. 북한이 2010년 11월23일 연평도 포격 도발 당시 트집 잡은 것도 K-9 자주포의 실사격 훈련이었다.

 

경기 동두천에 주둔하고 있는 주한 미2사단 예하 210화력여단의 다연장로켓포와 전술지대지 미사일(ATACMS), 신형 다연장로켓 발사기(M270A1), 장사거리 유도형 다연장로켓(G-MLRS) 탄약 등도 북 장사정포 대응 전력이다. 장사정포 후방 배치 논의를 본격화할 경우 K-9, K-55 등의 포병 전력 철수와 함께 미 210화력여단 전력도 협상 테이블에 오를 수밖에 없는 구조다.

 

북 장사정포가 위협적이기는 하지만 남북 화력이 맞붙을 경우 남측 전력이 압도적이다. 합참은 워게임을 통해 240㎜ 방사포는 6분 이내, 170㎜ 자주포는 11분 이내 파괴가 가능할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한반도 유사시 수일 이내에 장사정포 전력을 괴멸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북 제안은 ‘남남 갈등’ 유발

 

남북 간 군사분계선을 기준으로 ‘40㎞ 이내 사격 금지’와 ‘60㎞ 이내 비행 금지’ 구역이 정해진다면, 이는 사실상 남측 전방지역의 포사격 훈련장 무력화를 의미한다. 군 주요 포사격 훈련장이 군사분계선에서 40㎞ 이내 지역에 있기 때문이다.

 

경기 포천과 연천, 강원 철원 등 지방자치단체들은 소음과 도비탄 피해 등을 이유로 군 사격장 이전이나 폐쇄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이 때문에 북측이 40㎞ 사격 금지를 제안해 군사적 목적뿐만 아니라 군·보수층과 지자체 사이의 ‘남남 갈등’을 유발시키는 ‘일석이조’ 효과를 노린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게다가 남북 긴장 완화와 적대행위 중지라는 대의명분 아래 군이 사격훈련장 이전이나 폐쇄를 반대하기란 쉽지 않다.

 

포천만 해도 영평사격장, 바이오넷, 다락대, 도마치사격장, 아시아 최대의 승진사격장 등 총 1억평 규모의 한·미 군 사격장 9개가 자리 잡고 있다. 연천지역의 경우 군부대 87곳과 포사격 등 훈련장 39곳이 있어 전국 최대 규모다. 포천과 연천 훈련장은 지역 주둔 부대만 이용하는 게 아니다. 다른 지역 군부대도 들어와 훈련을 하기 때문에 주민들은 피해와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후방지역 훈련장들이 도시화 등으로 인해 5년 전부터 연천 훈련장으로 통합된 이후에는 전차와 자주포 등의 훈련 횟수가 늘어났다. 한·미 연합훈련 때는 일본 오키나와에 주둔하고 있는 미 해병부대까지 날아와 이곳에서 훈련을 실시한다.

 

연천군 신답리와 장탄리 훈련장에서 포를 쏘면 3~5㎞ 거리의 연천읍 부곡리 ‘다락대훈련장’ 탄착지로 포탄이 떨어진다. 다락대훈련장은 전차사격장과 공병훈련장을 갖춘 800여만평 규모의 동양 최대 종합사격훈련장이다. 다락대훈련장은 국방연구소(ADD)의 신무기 시험장이기도 하다. 현궁 대전차미사일 최종 시험 발사도 이곳에서 실시된 바 있다. 다락대사격장은 군사분계선에서 20㎞ 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철원군 갈말읍에 있는 문혜리 포사격장은 군사분계선까지 거리가 15㎞로, 다락대사격장보다도 가깝다.

 

남측이 강원 고성군 야촌리와 송지호 해변 일대, 백령도 등 3곳에서 실시하는 장거리 포병 사격도 금지 대상이 될 수 있다. 육군과 해병대가 130㎜ 다연장 로켓탄과 K-9 자주포를 20㎞ 이상 발사할 수 있는 곳은 군의 30여개 포사격장 가운데 이 3곳뿐이다. 장거리 포병 사격은 사격하는 진지와 포탄이 떨어지는 표적 지역까지의 거리가 20~30㎞는 돼야 제대로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군사분계선 60㎞ 비행 금지구역을 설정하면 포천 승진훈련장도 무용지물이 된다. 이곳은 육군 보병과 포병, 기갑 부대들이 한꺼번에 참여하고 공군 전력의 실사격까지 가능한 유일한 공지합동훈련장이다.

 

■장사정포 후방 배치는 고차원 방정식

 

북한 장사정포가 후방으로 빠진다면 한반도 군사적 긴장 완화와 신뢰 구축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 분명하다. 비무장지대의 비무장화와 함께 장사정포의 후방 철수는 전쟁 위험의 실질적인 해소 대책으로 꼽혀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측이 북의 화력 전력 후방 배치 제안을 수락하기 위해서는 훈련장 재배치와 남북 간 전력지수 등 여러 가지 함수를 고려한 고차원적 방정식 해법이 요구된다. 국방부가 “장사정포 후방 배치 등 군사적으로 매우 첨예한 사안까지 논의하기엔 남북 군당국 간에 아직 신뢰가 구축되지 않았다”고 강조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Posted by 경향 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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